< 혼란은 기회. - (3) >
“본론요?”
성윤은 술잔을 손에 쥐었다.
표정이 심상치 않다.
지금껏 이죽대던 벤처 의원도 입을 다물 정도다.
모두 성윤의 눈치를 살핀다.
그리고 성윤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대한당의 상황은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밖으로는 민국당에 치이고 안에서는 내분이 일어나고 있지요. 민심은 떠났고 수습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혼란이 더 커질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래서…… 길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신당을 창당하려고 합니다.”
“시, 신당?”
모든 의원들의 얼굴은 똑같았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표정 관리가 되지 않는다.
입을 크게 벌린 채 눈만 껌뻑거린다.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잠시의 정적…….
가장 먼저 정신 차린 사람은 0% 대출 의원이었다.
“이 의원…… 지금 창당이라고 그랬나? 신당?”
“네.”
“그,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원님들도 알고 계실 겁니다. 저 같은 피라미 한 마리가 신당 운운할 수 없다는 것을요. 집주인이 따로 있고 이사할 집도 구했습니다. 짐만 들여놓으면 되는데……. 의원님들이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집주인?”
의원들의 머릿속에는 ‘집주인’이라는 말이 각인됐다.
창당을 주도하는 사람.
어지간한 힘이 없으면 시도조차 할 수 없다.
의원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머리를 굴린다.
‘이성윤의 뒤에 서서 신당을 창당할 사람? 누가 있지?’
‘채정학?’
‘채정학은 당 대표잖아!’
‘지금 그 자리가 위태한 것 몰라? 하이에나 같은 인간들이 이를 갈고 있어!’
‘나도 채정학은 아닐 것 같은데……. 집주인은 당 대표나 원내 대표와 비슷한 체급의 사람이 아닐까?’
‘그게 누군데?’
‘……모르지.’
의원들의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100원, 200원을 더 먹기 위한 계산이 아니다.
생존을 위한 머리 굴림이다.
‘어쩌지?’
신당에 합류하면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동시에 지역구에서 계란을 처맞을 수 있다.
게다가 벌써 다음 총선이 두려워진다.
대한당은 배신자를 처단하고 지역구를 탈환하기 위해 거물급 정치인을 공천할 게 분명하다.
대한당의 깃발을 든 거물급 정치인…….
정통성 없는 신당으로 대한당의 거물을 이기기는 어렵다.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친다.
하지만 신당이 잘됐을 경우도 생각해 봐야 한다.
개국공신이 되어 단번에 거물 정치인이 될 수 있다.
고위직에 앉아 거드름을 피우고 자신의 이름을 딴 계파가 만들어질 가능성도 크다.
집 앞은 손바닥을 비비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룰 거다.
말 그대로 꿈같은 생활이 펼쳐진다.
성윤은 그들의 속마음을 듣고 있었다.
이들은 주류에서 비주류가 된 사람들이다.
백형욱 의원에서 김대성까지……. 비리에 얼룩지며 침몰하고 말았다.
거기에 연좌제까지 받고 있다.
대한당이 흔들리게 된 원인으로 찍히며 온갖 비난을 받는 중이다.
예전 같았다면 신당 창당이라는 말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을 위인들.
하지만 지금은 갈등하고 있다.
그들의 마음을 듣던 성윤이 쿡쿡쿡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이 점점 커진다.
“하하하하하!”
비웃는 것 같은 웃음소리에 의원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벤처 의원이 무서운 목소리를 씹어 뱉는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웃기나!”
성윤이 웃음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의원님들께서 고민하는 게 재밌어서요.”
“재밌어?”
“다음 총선까지 남은 시간이 2년인가요? 3년인가요? 그 시간 동안 손바닥을 비비고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면 공천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이들도 세대교체라는 명목으로 이들의 이름이 싹 지워 질 게 분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공천을 받을 수 없을 거다.
그런데, 이들은 생각한다.
‘설마, 내가 버림받겠어? 난 공천받을 수 있을 거야.’
그래서 웃겼다.
공천을 꿈도 꿀 수 없는 인간들이 다음 선거를 고민하며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
“길게 고민하실 필요 없습니다. 의원님들이 이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입니다.”
살벌한 분위기가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윤은 처음과 같은 눈빛으로 의원들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의원님들께서 대한당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없습니다. 밖으로 나가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새로운 집주인은 의원님들을 반길 겁니다. 그리고 할 일이 아주 많죠. 집안 청소도 해야 하고 정리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이사가 끝나면 방 하나쯤은 내주시겠죠.”
의원들은 어떤 대답도 없다.
긴 한숨만 내뱉는다.
입을 연 것은 0% 대출 의원이다.
그가 마른침을 삼키며 성윤을 향했다.
“이 의원, 집주인을 알려 줄 수 있나? 주인과 집 주소를 알면 찾아가기가 더 쉬울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그건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창당의 공식적인 발표 전까지는 비밀로 하고 싶습니다.”
대한당을 배신하는 일이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성윤의 말이 이어졌다.
“제가 신당에 대해 떠벌리는 것은 여기 계신 분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소문이 퍼지면…… 의원님들을 의심하겠죠. 그러면 의원님들의 성함이 불명예스럽게 언론에 오르내릴 겁니다.”
“……!”
“민유헌 대표의 아들이 실검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작은 비리 정도는 소문나지 않게 막을 수 있다고 자신하지 마세요. 집주인은 실검의 순위를 바꿀 힘이 있습니다. 검찰이 움직일 거고 포토 라인에 서게 될 겁니다. 명예는 곤두박질치고 쌈짓돈이 공개되어 모조리 빼앗기겠죠. 의원님들의 노후는 불안할 겁니다.”
성윤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내용은 명백한 협박이다.
벤처 의원이 눈알을 부라린다.
“이 의원, 지금 협박하는 건가? 아니면 신당에 들어오라고 회유하는 건가?”
“지금은 협박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이야기가 돌지 않으면 저도 꺼내 쓸 생각은 없습니다. 신당도 선택으로 남겨 드리죠. 원치 않는 식구는 저도 바라지 않으니까요.”
신당 가입은 선택, 하지만 성윤의 말에 손에 쥔 비리를 놓겠다는 내용은 없었다.
끝까지 목줄을 쥐고 있겠다는 뜻이다.
벤처 의원이 고개를 저었다.
“자넨 지독히 나쁜 새끼야.”
“지금 의원님께 필요한 것은 인성 좋고 착한 사람이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금 앉아 계신 그 자리를 지켜 줄 수 있는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침묵만이 이어졌다.
간간이 “끔”하는 고민 어린 소리가 들려온다.
성윤은 손에 쥔 술잔을 입에 댔다.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 같은데,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성윤은 정중히 허리를 굽힌 후 그 자리를 떠났다.
자리엔 의원들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그저 적막이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0% 대출 의원이 힘겹게 입을 연다.
“어떻게 생각해? 노인네 생각에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우리가 대한당에 있다고 해도 변하는 것은 없어. 이성윤 말대로 다음 총선에서 공천받기란 쉽지 않으니까. 지금 우리는 시한폭탄처럼 째깍째깍 마지막 날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잖아?”
벤처 의원이 허탈하게 웃는다.
“이성윤 저놈이 신당으로는 개 목걸이를 휘두르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요. 대한당에 충성할 놈은 남고 미래를 생각하는 놈은 가고! 각자 선택하는 것으로 합시다. 그리고 오늘은 복잡한 생각말고 술이나 마시죠. 어린놈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내 인생이 참…….”
그 시각, 성윤은 서안시로 향하는 중이었다.
정우가 입을 연다.
“말씀하신 대로 대정 그룹 홍보 실장에게 김선희 사무총장 문제를 흘렸어요.”
“섭외는?”
“가능할 것 같아요. 그런데, 박무혁 의원님은요?”
“지금 박영훈 부회장과 만나고 계실걸?”
정우가 묘하게 웃는다.
“이제 대한당에 폭탄이 떨어지겠네요. 시작은 사무총장 김선희. 아이고, 한동안 재수 없이 날뛰는 것 참고 보려면 참 눈꼴 시리겠어요.”
***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스테이크가 대정 그룹 박영훈 부회장의 입으로 들어갔다.
한강이 한눈에 보이는 레스토랑이다.
그곳에 박영훈 부회장과 박무혁 의원만이 존재했다.
타인과 섞이기 싫어하는 두 사람의 특징이다.
박영훈 부회장이 포크로 박무혁 의원을 가리킨다.
“왜 안 먹어?”
“식사하고 왔어.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이나 해.”
박영훈 부회장이 티슈로 입을 닦은 후 툭 던지며 말한다.
“후보 경선에 나간다고? 사실이야?”
“그럴 생각이야.”
아직 출마 선언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눈과 귀가 있으면 알 수 있다.
지금껏 조용했던 박무혁 의원이 사람을 만나고 다닌다.
이 시기에 사람을 모으는 이유를 꼽자면 단 하나다.
박영훈 부회장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거기까지만 해. 마지막 기회야. 더 깊이 들어가면 다칠 거야. 착한 동생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착한 동생을 바라기 전에 좋은 형이 되는 것은 어때?”
박영훈 부회장이 픽 웃는다.
“좋은 형 해 줄 테니까, 집안 망신시키지 말고 국회의원 놀이나 해. 술이나 먹고 여자나 부르며 한량처럼 살아. 그럼, 형아가 용돈도 많이 줄게. 이 정도면 좋은 형이지?”
박무혁 의원이 무심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용돈 많이 주면 좋은 형이지.”
장난스러운 대답에 박영훈 부회장이 미간을 찌푸린다.
“무혁아, 분수를 좀 생각해. 국회의원? 네 능력으로 하고 있는 것 아니야. 회사 식구들 있는 곳에 출마하면 우리 집 개가 가도 당선될 거야. 네가 가진 돈, 만나는 사람, 지역구…… 내가 마음만 먹으면 뺏어 버릴 수 있어. 그러니까 여기가 끝이야. 더 까불지 마. 조용히 놀아. 너 노는 것 좋아하잖아?”
“보통 좋은 형이면 동생이 열심히 사는 것을 축하해 주지 않나?”
“끝까지!”
박영훈 부회장이 험악한 눈빛으로 박무혁 의원을 쏘아본다.
그러자 박무혁 의원이 천천히 박영훈 부회장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내가 일하는 게 그렇게 무서워?”
“……!”
“그럼 평소에 잘하지 그랬어.”
박영훈 부회장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너 이 새끼…….”
박무혁 의원이 빙긋이 웃으며 테이블에서 일어섰다.
그가 옷매무새를 고치며 말한다.
“할 말 끝난 것 같으니까 갈게. 맛있게 먹어.”
“너 왜 이렇게 삐딱선이야!”
“초등학생이 장난감 총을 사면 쏴 보고 싶어 하잖아? 똑같은 거야. 난 권력을 손에 쥐었고 쏴 보고 싶은 거야. 그 타깃이 어디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칠 거야.”
“총싸움하다 보면 다칠 수도 있는 거지. 겁나지 않아.”
박무혁 의원이 그 자리를 떠났다.
박영훈 부회장은 험악한 인상으로 방금 박무혁 의원이 앉아 있던 곳을 노려본다.
그의 입술이 비틀어졌다.
“겁나지 않는다고? 미친 새끼…… 당해 보지 않았으니까 모르는 거야.”
박영훈 부회장이 휴대폰을 귀에 댔다.
“전략 기획실, 비서실 모두 이쪽으로 오라고 해. 지금 당장!”
평소였다면 가족, 연인이 즐겁게 식사를 해야 할 레스토랑이다.
하지만 대정 그룹의 회의실이 되어 버렸다.
“비서실장, 대한당에서 가장 유력한 사람이 서용우 총리라고?”
“네, 아직까지 서용우 전 총리의 지지율이 가장 높습니다.”
“계속 1등 할 수 있도록 자금 좀 보내.”
“네.”
“그리고…… 박무혁과 물어뜯고 싸울 수 있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대관 담당, 보고해 봐.”
홍보실장이 일어섰다.
“김선희 사무총장이라고 있습니다.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당 대표에게 불만이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금이 부족해서 큰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고 있습니다. 자금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손을 벌리는 것 같은데 여의치 않은 모양입니다.”
“기업에서 돈을 안 줘? 이유는?”
“대선에서의 존재감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입니다. 큰돈을 투자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갑을 채워 주면 사냥개의 역할은 할 것으로 보입니다. 어차피 김선희의 목적도 대선인 만큼 박무혁 의원과 싸울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영훈 부회장이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였다.
“만나 봐, 그런 곳에 돈 아끼지 말고.”
***
다음 날, 성윤은 박무혁 의원의 사무실에 있었다.
“박영훈 부회장 측에서는 김선희 사무총장과 만날 겁니다.”
박무혁 의원이 흥미로운 눈으로 성윤을 바라본다.
“그래서?”
“김선희 사무총장을 사냥개로 쓰는 거죠.”
“사냥감은 나?”
“네.”
박무혁 의원이 재미있다는 듯 웃는다.
“지금 내가 대한당 후보에 나설 것으로 생각해서 저러는 거지?”
“네.”
“재밌네, 재밌어.”
박영훈 부회장은 박무혁 의원이 대한당 경선에 참여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김선희 사무총장을 이용하려 한다.
하지만 박무혁 의원은 대한당 대선 후보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즉, 박영훈 부회장은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쓰는 중이다.
그리고 김선희 사무총장을 시작으로 대한당에는 큰 내분이 일어날 거다.
성윤은 그 틈을 기다리고 있었다.
틈은 기회를 만드니까…….
< 혼란은 기회. -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