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란은 기회. - (2) >
***
기자들 앞에 선 민유헌 대표는 입을 열지 못하고 깊은 한숨만 내쉰다.
얻은 것 하나 없이 두들겨 맞기만 했다.
지지율은 떨어졌고 당 대표에서 물러나라는 소리마저 나온다.
그가 시선을 들어 앞을 바라봤다.
하이에나 같은 기자들이 눈을 반짝이고 있다.
먹잇감을 기다리는 듯 침을 질질 흘리면서…….
“아버지로서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마음이며 민국당의 당 대표로서 국민들께 죄송한 마음입니다.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제가 죄인입니다. 저를 욕해 주십시오. 제 아들은 지은 죄에 대한 합당한 벌을 받을 것입니다. 괴롭지만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아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반성하고 새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로서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저는 민국당의 당 대표입니다. 당 대표로서 민국당이 흔들림 없도록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민유헌 대표는 단상의 옆으로 서서 허리를 굽혔다.
동시에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며 기자들의 질문이 시끄럽게 울린다.
“당 대표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말씀이십니까?”
“후보 경선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참여하실 생각입니까?”
민유헌 대표는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복도로 나서자 옆으로 보좌관이 섰다.
민유헌 대표의 표정이 사납게 변한다.
“지금부터 언론 막아. 소설 쓰는 새끼들 없도록 만들어. 딱 여기까지로 끝내. 그게 네가 해야 할 일이야.”
이미 불씨가 번져 활활 타오르며 민국당을 태우는 중이다.
유능한 소방관이 달라붙어도 쉽게 끌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국당은 분열될 거다.
화재가 난 집에서 불을 끄기는커녕 각자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돈 되는 물건을 들고 나르는 거지같은 모습…… 안 봐도 뻔했다.
보좌관은 민유헌 대표를 향해 고개를 숙인다.
“알겠습니다.”
민유헌 대표는 인상을 구기며 복도를 걸었고 보좌관은 몸을 돌려 다시 브리핑실로 향했다.
브리핑실에 모여 있던 기자들은 노트북을 접으며 떠날 준비를 하던 중이다.
“아, 잠깐만요.”
보좌관의 말에 기자들이 행동을 멈칫거린다.
그리고 시선을 들어 보좌관을 바라본다.
보좌관이 마이크 앞에 섰다.
긴장 어린 한숨을 토해 내며 가장 앞에 앉은 기자와 눈을 마주친다.
“강 기자님, 결혼식 때 뵙고 처음 인사드리네요. 조금 있으면 딸이 돌이죠? 돌 반지 준비해 뒀습니다.”
“아, 네.”
강 기자는 멋쩍게 웃는다.
보좌관의 시선이 다른 기자에게 향했다.
“성 기자님, 삼성동으로 이사할 때, 청소기 선물했었는데 고장 안 나고 잘 되나요?”
“비싼 것 주셔서 잘 쓰고 있습니다. 하하.”
보좌관은 그렇게 몇 명의 이름을 더 불렀다.
한 사람, 한 사람 과거의 인연을 꺼내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여기 계신 모든 기자님들, 우리는 오랜 시간 함께 알고 지냈습니다.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죠. 하지만 모진 바람은 언젠가 지나갑니다. 지금의 바람도 마찬가지에요. 뿌리 깊은 나무를 뽑을 만큼 거센 바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탁을 좀 드리고 싶습니다.”
기자들은 마른 침을 삼켰다.
어떤 난처한 내용을 내뱉을지 알 수 없었으니까.
잠시 침묵했던 보좌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기자님들도 어쩔 수 없이 기사를 써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과 사의 구분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대표님의 아들 나이가 스물여덟이에요. 자기의 잘못은 스스로 책임질 나이죠.”
민유헌 대표와 아들의 일을 구분지어 달라는 것이다.
기자가 휘두르는 펜대를 따라 민심이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당 대표의 아들이라고 특별한 게 아닙니다. 한 사람의 국민이 저지른 일탈 행위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연좌제를 적용하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지금껏 대표님이 이뤄 냈던 공을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뒤에 서 있던 비서관이 흰 봉투를 들고 기자들의 책상 위에 탁탁 놓았다.
부탁을 했으면 기름칠을 하는 게 당연한 거다.
하지만 기자들은 봉투를 손에 쥐지 않는다.
평소라면 주섬주섬 봉투를 챙겨 주머니에 넣었을 텐데 망설이고만 있다.
돈이 아니라 독이 들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불편한 침묵이 브리핑실을 채우고 있었다.
그 시각, 대한당의 브리핑실.
대변인이 나와 피를 토하듯 외치고 있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식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사람이 대권에 도전한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이건 대한민국 국민을 우습게 보는 겁니다. 민유헌 대표는 지금 당장 경선 후보를 사퇴하고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민국당의 불행은 대한당의 행복이다.
거물 정치인의 아들 문제로 국민은 답답한 가슴을 두들기는 중인데 대한당은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카메라가 꺼지자 대변인이 빙긋이 웃으며 말한다.
“식사하고 가셔야죠?”
그리고…….
성윤은 김재형 검사와 자장면을 먹고 있었다.
“바로 잡아도 되는 거였습니까?”
“왜요? 바로 잡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었나요?”
김재형 검사가 고개를 저었다.
“정치하는 분들은 이것저것 따지잖아요? 잡아 두고 거래하고 뭐 그런 것.”
“호랑이를 잡을 때 이것저것 생각하면 오히려 물어뜯겨 죽어요.”
민유헌 대표는 민국당의 지지도를 좌지우지할 만큼의 거물.
정면으로 맞붙었다가는 승리라는 단어를 구경도 못 했을 거다.
게다가 자식 잃은 짐승은 무서운 법이다.
생각할 시간을 줘서는 안 된다.
성윤이 티슈를 꺼내 입술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정신 차리기 전에 해외로 빼돌린 자금 터뜨려 주세요. 포토 라인에 선 민유헌 대표의 얼굴을 보고 싶네요.”
“그 얼굴은 저도 보고 싶습니다. 하하하.”
김재형 검사가 크게 웃는다.
그는 10여 년 전, 정치인을 잡다가 유배를 당했었다.
그 정치인에게 보복하고 싶었지만 세상을 떠나 버렸기에 기회는 존재하지 않았다.
민유헌 대표로 대리 만족하는 중이다.
“쉽지는 않을 겁니다.”
성윤의 말에 김재형 검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사냥개가 사냥을 못하면 쓸모없는 법 아닙니까?”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지만 그는 ‘사냥개’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성윤에게 넌지시 묻는 거다.
자신을 도구로 쓸 것인지 아닌지.
그리고 성윤의 대답 여하에 따라 노선을 분명히 할 생각이다.
‘난 정치인의 꼭두각시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어.’
서울로 다시 올려 준 것은 고맙지만 거기까지였다.
누군가의 칼이 되어 장단 맞춰 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 생각을 듣던 성윤은 픽 웃고 말았다.
정치 검사와 떡값에 묶인 검사가 주류가 된 세상이다.
그런데, 김재형 검사는 다르다.
좋게 말해 낭만적인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면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철부지.
하지만 성윤은 그게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의 싸움에는 여러 사람이 있어야 하니까.
검사장처럼 이득에 밝은 사람도 필요했고 김재형 검사처럼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이 필요했다.
“사냥개라뇨……. 말씀드렸잖아요? 검사님이나 저나 국민의 하수인일 뿐입니다. 세금으로 월급 받았으면 그만큼의 일은 해야죠. 우리는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윤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김재형 검사가 계산서를 손에 든다.
“자장면값은 제가 내죠.”
***
-민국당의 지지율이 지난주 대비 5% 하락하며 35%를 기록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19∼29세 지지자들입니다. 지금껏 민국당의 핵심 지지층이었던 이들이 대거 이탈했습니다. 워킹 홀리데이를 간다던 민유헌 대표의 아들이 수영장까지 딸려 있는 초호화 저택에서 지낸 것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한 취업 준비생은 허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며…….
민국당의 지지율이 5% 하락했지만 대한당의 지지율은 고작 1% 상승하며 21.9%를 기록했다.
이탈한 20대 지지자들이 대한당을 뽑을 바에는 어느 곳도 지지하기 않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서다.
그 덕에 무당층만 높아졌다.
성윤이 바라는 바였다.
그리고 성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존재했다.
대한당 사무총장 김선희 의원이었다.
그녀는 주진만, 채정학 대표와 반대되는 계파의 사람이다.
“이것 봐, 대표가 유순하니까 이런 기회도 못 살리고 있잖아?”
그녀는 민유헌 대표의 아들 문제를 거론하는 것을 반대했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입장을 바꿔 채정학 대표의 무능함만 지적하고 있다.
그녀가 시선을 돌려 앞을 바라봤다.
스무 명의 의원이 앉아 있다.
“이렇게 있다가는 다음 대권을 민국당에 넘겨줘야 할 거예요. 그럼, 우리는 야당이 될 테고 여러분이 누리는 생활은 절반으로 떨어지겠죠. 지금 대한당에는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채정학 대표는 우유부단해요. 민국당을 물어뜯지 못하고 넋 놓고 지켜만 보고 있어요. 경선 전에 세대교체를 이루지 못하면 우리는 반드시 패배할 겁니다.”
의원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동의한다는 뜻이다.
채정학 대표는 모두를 만족시키려 했다.
모두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그래서 전부의 욕심을 채우지 못했다.
찔끔찔끔 채워 줬을 뿐이다.
김선희 의원이 차갑게 웃으며 말을 잇는다.
“기회라고 생각해요. 민유헌이 내려갈 때, 우리도 대표를 교체하는 거예요. 민국당에 포커스가 맞춰질 테니 잡음은 없을 거라고 예상해요.”
대한당만 이러는 게 아니다.
민국당에서도 민유헌 대표를 내리고 새로운 대표를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사람을 올리기 위해 머리를 쓰고 있다.
거대 정치인 민유헌의 몰락은 대한당과 민국당에 혼란을 만들어 내는 중이다.
그리고 성윤은 그 혼란이 만들어 낸 틈을 노리고 있다.
***
며칠 후, 서안시의 한정식집.
백형욱 계파에서 김대성 계파 그리고 지금은 성윤에게 목줄이 걸린 의원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있었다.
0% 대출 의원 등 모인 사람의 숫자가 스무 명.
모두 찝찝한 표정이다.
벤처 기금을 꿀꺽한 의원이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왔다.
모인 사람들의 얼굴을 보더니 센 척 말한다.
“뭐야? 이성윤은 아직 안 왔어?”
“네.”
“이 자식은……. 지가 불러 놓고 늦고 있어. 쯧, 가서 술이나 먼저 달라고 해.”
곧바로 술이 놓였다.
벤처 의원은 술을 잔에 채워 입에 털어 넣은 후 주변을 살핀다.
“이성윤이 왜 불렀는지 아는 사람?”
아무도 대답이 없다.
테이블에 음식이 쌓이지만 홀짝홀짝 술이나 마신다.
긴 침묵 끝에 0%대출 의원이 입을 열었다.
“이성윤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잖아?”
벤처 의원이 버럭한다.
“뭐요? 이성윤이 안 나쁘다고?”
“우리 비리를 손에 들었다고 갑질 한 적 있나? 건방은 떨었지만 고작 법안에 사인이나 해 달라고 했었지. 그 법안도 국민을 위한 거고.”
“법안을 보고 생각을 한 후에 서명해야 하는데, 무작정 들이밀면 그게 갑질이죠!”
0% 대출 의원이 낄낄 웃는다.
“자네가 법안을 보고 서명한 적이 있다고? 내가 알기로는 죄다 청부 법안이었던 것으로 아는데? 지나가는 개가 웃겠어.”
“형님!”
“지금까지 나쁜 짓 한 것…… 회개해, 이 사람아. 흐흐.”
“에이.”
벤처 의원은 다시 술을 입에 댔다.
0% 대출 의원이 다른 의원들을 보며 부드럽게 말한다.
“이성윤을 보면 이번에도 나쁜 짓은 안 시킬 거야. 좋은 일을 위해 무리한 부탁을 하겠지. 너무 기분 나빠 하지 마.”
하지만 다른 의원들의 표정은 불편하다.
벤처 의원은 팔을 걷어붙인다.
“난 그놈이 무리한 요구를 하면 이번엔 안 참을 겁니다. 내가 가진 비리? 터뜨려도 상관없어요. 민유헌 아들놈이 헤드를 장식하고 있어서 조용히 넘어갈 거예요. 그리고 이 정도 비리는 언제나 터져왔던 거니까 언론도 문제 삼지 않을 거고요.”
다른 의원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가 언제까지 어린 새끼한테 질질 끌려 다녀야 합니까?”
“내가 이 바닥에 들어왔을 때 이성윤 그놈은 초등학교 다니고 있었어!”
민유헌 아들의 기사가 계속해서 실검을 장악하고 있다.
금수저, 그것도 권력자의 아들, 게다가 서민 코스프레를 하다가 제대로 걸린 사건이다.
그것도 다른 국가에서…….
네티즌은 국가 망신이라며 세상의 모든 비난을 쏘아 댔다.
그 덕에 평소라면 난리가 났을 연예인의 음주 운전이나 40대 중년 배우의 불륜 스캔들마저 조용히 넘어가고 있었다.
의원들은 성윤에게 벗어날 시점으로 지금을 선택했다.
지금은 살인 사건이 일어나도 묻힐 것 같은 분위기다.
그리고 이들은 여론만 움직이지 않으면 자질구레한 사건이야 어떻게든 땅속에 처박아 버릴 자신이 있었다.
그때, 드르륵 문이 열리며 시끌거렸던 공간이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드디어 성윤이 등장했다.
의원들은 불편한 표정으로 성윤을 바라본다.
“왔어?”
성윤은 정중히 허리를 굽힌 후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런데, 평소처럼 건방지에 상석을 차지하지 않고 적당한 자리에 엉덩이를 붙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주변 상황을 좀 파악하느라 시간이 늦었습니다.”
의원들은 “끔” 소리만 낼 뿐,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성윤의 말을 받은 것은 0% 대출 의원이다.
“젊은 사람이 바쁜 게 당연하지.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남는 게 시간이야.”
부드러운 대화로 흘러갈 수 있었다.
하지만 벤처 의원이 말을 가로막으며 입을 연다.
“우린 기다리면서 저녁 먹었고, 술도 마셨고. 이제 가야 할 것 같은데, 본론이나 말하지?”
상당히 비아냥댄다.
하지만 성윤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비아냥대는 말 따위…….
지금부터 떨어지는 폭탄 발언에 비할 수 없으니까.
< 혼란은 기회. -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