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집 부풀리기. - (5) >
***
그 시각, 성윤은 당사에 도착했다.
한동일보의 이니셜 기사로 대한당도 비상이다.
당직자들이 엄청 심각한 표정으로 뛰어다닌다.
“그러니까, 그 기사의 주인공이 정말 민국당 민유헌 대표의 아들이 맞아요?”
다들 휴대폰을 귀에 대고 아는 기자에게 전화를 하느라 난리다.
구레나룻이 귀까지 내려온 중년의 당직자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입술을 꽉 깨물고 있다.
“그런데. 왜 이니셜이야! 한동일보도 지금 증거 없는 거 아냐? 다른 언론사는 조용하잖아! 그냥 찔러 보는 거야? 씨발, 좀 사실을 말해 달라고! 팩트가 아니었다가 역풍 당하면 어쩌려고? 가뜩이나 우리 병신 취급받는 거 몰라서 그래?”
대한당은 오랜 시간 스캔들에 시달렸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민국당을 공격할 탄환이 손에 들어왔지만 망설이고 있다.
지난번, 민유헌 대표가 엄대필을 사주하려 했다는 기가 막힌 사건이 있었지만 바보 같이 놓쳐 버렸던 것도 이런 이유다.
성윤은 당직자의 옆에 서서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꾹 눌렀다.
전화를 하던 당직자는 성윤을 보고 꾸벅 고개를 숙인 후 슬금슬금 자리를 피한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스르륵 열린다.
“같이 가!”
닫힘 버튼을 누를 때, 달려오는 국회의원이 보였다.
턱수염이 삐죽삐죽 난 사람, 당 지도부 중 한 명이다.
채정학 대표도 당 지도부를 호출했다.
이번 사태를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고민인 거다.
안에 탄 턱수염 국회의원이 숨을 헐떡이며 넥타이를 풀어 헤쳤다.
그를 보며 성윤이 물었다.
“꼭대기 가세요?”
“어? 어, 이 의원은?”
“저도요.”
성윤은 가장 윗층의 버튼을 꾹 눌렀다.
턱수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성윤을 본다.
“윗층에 간다고?”
“네.”
당 지도부 회의에 성윤이 간다는 게 이상했다.
성윤은 지도부가 아니다.
그리고 겉으로 볼 때 성윤의 위치는 대한당의 자라나는 새싹, 딱 그 정도였다.
채정학 대표를 당 대표에 올린 킹 메이커였지만 아직 지분이 빈약했다.
성윤은 고개를 들어 바뀌는 숫자를 확인했다.
‘대한당으로 민국당을 공격한다…….’
이런 일로 대한당의 지지율이 오르지는 않는다.
민국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무당층으로 떠나는 계기를 만들 거다.
신당 창당의 첫 번째 단추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내렸다.
당 대표실이 있는 복도, 가장 끝 회의실에 대한당의 거물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지금껏, 많은 거물을 만나 봤다.
채정학 당 대표, 주진만 원내 대표, 박무혁 의원.
하지만 개별적인 만남이었지 당 지도부 앞에 서는 것은 처음이다.
성윤은 주먹을 꽉 쥐며 턱수염의 뒤를 쫓아 회의실로 향했다.
안의 분위기는 바깥과 달리 더욱 살벌했다.
약 스무 명이 넘는 지도부가 ‘공격해야 한다.’와 ‘하지 말아야 한다.’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는 중이다.
모두가 참석한 것은 아니다.
오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익숙한 얼굴은 채정학 대표만 보인다.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움직일 수는 없어요!”
“그러다가 지난번 엄대필 일도 놓쳤잖아요! 모든 일은 때가 있는 법이에요!”
반대편에 앉은 사람이 시뻘게진 얼굴로 입을 연다.
“한동일보를 믿을 수 있습니까? 한상국 대통령을 공격했던 곳이 한동일보예요. 그게 며칠 전이라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민국당? 하! 대한당과 민국당을 동시에 건드는 참된 언론사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랬다가 대한민국 땅에 발붙일 곳이 없을 텐데? 생각 좀 하세요. 이건 함정일 겁니다!”
민유헌이라는 사냥감을 발견해서인지 평소와 다른 날카로운 눈빛이다.
살기가 뚝뚝 떨어진다.
“그리고 아들을 잘못 키웠다고 울면서 무릎 꿇으면 오히려 지지율이 상승할 수도 있어요! 우리가 그 무대를 만들어 주라고요?”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금수저 논란이 얼마나 심한데, 아마 이게 진실로 밝혀지면 민유헌은 대표에서 내려와야 할 겁니다!”
목소리가 시끄러워진다.
채정학 대표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쾅! 쾅! 쾅!’ 하고 내려쳤다.
“일단 사실 확인부터 하죠. 보좌관, 민국당 반응은 어때?”
지시를 받은 보좌관이 휴대폰을 들고 메시지를 확인한다.
그러더니 고개를 저었다.
“민국당에 심어 둔 당직자에게 알아봤는데 민국당의 대응은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지시만 받았다고 합니다.”
그 말에 회의실의 분위기는 공격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으로 확 기울었다.
단발머리 여성 의원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손뼉을 짝 쳤다.
“반응이 없어? 이유가 뭐겠어요? 한동일보에서 잘못 찌른 거죠. 언론에 놀아나면 꼴만 우스워져요. 됐어, 회의는 여기까지만 해도 되겠네요.”
그녀의 이름은 김선희.
판사 출신으로 채정학 대표와 반대되는 계파의 인물이다.
지금은 대한당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그녀의 말에 그쪽 계파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한다.
“그러네, 여기서 끝내면 되겠네.”
“가서 삼계탕이나 먹을까요?”
채정학 대표는 골치 아프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대표가 버젓이 있는데 회의를 그만하자 어쩌자 하는 말이 나오다니…….
대표의 힘이 미약해서다.
“어? 이 의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채정학 대표가 문 앞에 선 성윤을 발견했다.
모두의 시선이 성윤에게 향한다.
다들 여긴 왜 왔냐는 눈빛이다.
다시 말하지만 당 지도부 회의다.
성윤은 초대되지 않는 손님이다.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서안시 동구 이성윤 의원입니다.”
성윤이 채정학 대표와 주진만 원내 대표의 사람이라는 것은 이곳에 모인 사람이 모두 알고 있다.
반대되는 계파의 남자 의원이 미간을 찌푸린다.
“이 의원, 지도부 회의인 것 몰라? 자네가 올 곳이 아니야!”
“죄송합니다. 말씀드릴 게 있어서 무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대표님께 말씀드릴 게 있다면 기다려야지. 회의 중간에 불쑥 찾아 들어오는 것은 안 될 일이야!”
채정학 대표와 반대되는 계파들의 속마음이 들려왔다.
그들은 이를 악물고 공격하는 것을 막으려 한다.
역풍 맞는 게 두렵기 때문이 아니다.
이들은 민국당 대표의 아들 문제가 사실로 드러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럼, 대한당의 지지자들은 멍청하게 손가락만 빨고 있던 대한당 대표 채정학을 욕할 거다.
이 기회를 잘 이용한다면 대표를 갈아 버릴 빌미를 만들 수 있다.
그들은 이 순간에도 당 내 입지만 생각한다.
정말 정 떨어지는 인간들이다.
이런 인간들을 치우고 제대로 된 사람으로 국회를 채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5년 후, 10년 후에도 대한민국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가!”
성윤이 나가지 않고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자 호통이 떨어졌다.
채정학 대표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의원, 조금만 기다려. 잠시 후에 이야기하지.”
“그럼,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한동일보 기사…… 사실입니다.”
“뭐? 사실?”
회의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단발머리 김선희 의원이 눈을 부릅뜨고 성윤을 노려본다.
“무슨 소리야! 이성윤 의원, 이거 지금 말조심해야 하는 것 몰라? 우리 당에 대한 신뢰가 걸려 있어!”
당의 신뢰는 개뿔.
자기 계파의 입지가 걸려 있을 뿐이다.
“한동일보에 제보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출처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확실한 내용입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게 확실한 내용이라고? 그런데, 왜 이니셜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민국당 대표를 겨눴습니다. 한동일보에서는 대표의 반응을 보고 움직이려 하고 있습니다. 대한은 여러 가지가 있는 게 좋으니까요.”
당 지도부는 휴대폰을 들고 다시 기사를 훑기 시작했다.
채정학 대표는 말없이 성윤을 보고 있다.
그 눈빛이 말하고 있다.
‘진짜인가?’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입니다.’
채정학 대표가 테이블을 짚으며 일어섰다.
“전 이 의원의 말을 믿고 싶은데요.”
김선희 의원이 홱 고개를 돌린다.
“아…… 아직 확실한 게 없잖아요! 이 의원 말만 믿고 움직였다가 아니면요? 민국당은 이제 열심히 살고 있는 가족까지 건드냐면서 덤빌 게 분명해요. 그럼, 우리 당은 또…….”
채정학 대표가 부드럽게 웃으며 자신의 책상을 손가락으로 쿡쿡 두들겼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이 자리는 책임지라고 앉아 있는 곳이니까요.”
채정학 대표와 반대되는 계파의 인물들은 입을 꽉 다문다.
성윤이 나타나 제보한 사람을 알고 있다 말했고 대표의 입에서 책임진다는 말까지 나왔다.
더 억지를 부릴 수 없었다.
비아냥대는 말만 할 뿐이다.
“책임이라는 말 함부로 쓰는 게 아니라는 것 아시죠? 일이 잘못됐을 경우…….”
“그건 그때 생각하죠.”
채정학 대표는 그녀의 말을 끊어 버렸다.
김선희 의원은 차가운 미소로 채정학 대표를 노려본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회의를 이어 갈 필요는 없겠네요. 대표님이 알아서 하는데 지도부는 왜 모이라고 하셨을까?”
그녀의 뒤를 따라 그 계파의 의원들이 우르르 따라나섰다.
그녀가 문으로 향한다.
그리고 앞에 서 있던 성윤의 옆을 스치며 조용히 입을 연다.
“너 확실히 알고 말하는 거야? 민유헌의 아들은 이미지가 좋아. 나중에 ‘죄송했습니다.’라는 말로 끝나지 않을 거야.”
“책임지죠. 됐습니까?”
“야……!”
성윤은 그녀의 말을 무시하며 채정학 대표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눈을 부릅뜨며 성윤의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몸을 돌려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채정학 대표는 보좌관에게 지시하고 있다.
“대변인을 불러서 지금 당장 브리핑하라고 해. 당사에서 대기하는 기자들을 전부 부르고. 내용은…….”
잠시 후, 브리핑 실에 대한당 대변인이 섰다.
“대한민국 검찰과 재판부는 권력에 기댄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그 의혹을 벗기 위해서는 보여 주기 쇼가 아닌 성역 없는 수사, 엄중한 처벌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윤은 당사를 벗어나고 있었다.
휴대폰을 귀에 댄다.
“이쪽은 끝났습니다.”
박무혁 의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인가?
***
“새끼야!”
검사장이 서류를 집어 던졌다.
서류는 김재형 검사의 몸에 맞고 땅바닥에 널브러진다.
검사장이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말한다.
“미쳤어? 다음 주인이 누가 될지 몰라서 이 지랄 하는 거야? 또 시골 내려가서 농사짓고 싶어? 지으려면 너나 지어. 물귀신처럼 끌어당겨서 내 옷 벗기지 말고!”
순간, 김재형 검사의 머릿속에 성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검사님이나 저나 국민의 하수인인데, 불법을 알고도 모른 척 넘어가면 업무 태만이죠.
어린 성윤도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검사장까지 된 새끼가 다음 주인을 운운하다니…….
김재형 검사의 눈빛이 사납다.
“주인이라뇨?”
“됐고. 너 이 사건 진행할 생각 하지 마. 덮어, 이 새끼야!”
김재형 검사가 천천히 몸을 숙였다.
바닥에 널브러진 서류를 주우며 입을 연다.
“검사장님, 일개 검사인 제가 여기까지 끌려 올라온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민유헌이라는 사람이 국외로 자금을 빼돌렸습니다. 그 돈을 아들놈이 몰래 빼먹었고요. 그 조사는 마쳤고 준비가 됐습니다. 게다가 언론이 불을 지폈고 대한당에서 브리핑까지 했습니다. 이거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도대체 뭐가 무섭죠?”
“이 새끼가 끝까지!”
검사장이 말을 씹어뱉었다.
김재형 검사가 헝클어진 서류를 들고 몸을 일으켰다.
“죄송합니다. 끝까지 하겠습니다. 불법을 알았는데 멈출 수는 없습니다.”
검사장이 손을 휘둘렀다.
‘짝!’ 소리와 함께 김재형 검사의 얼굴이 돌아간다.
“이 새끼야, 너 앞으로 아무것도 하지 마. 유배 갈 때까지 연필이나 깎다가 꺼져.”
김재형 검사는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이런 성깔머리가 문제였다.
적당히 웃으면서 넘어가면 되는데 기어이 끝을 보려 한다.
그래서 예전에도 유배를 갔었다.
‘또 가겠네.’
이번에 가면 또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어쩌면 영원히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기 혼자 뒤집어쓴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억울했다.
그가 손에 쥔 서류를 꽉 쥐었다.
‘터뜨리고 가면 아쉽지나 않을 텐데…….’
언론까지 움직여 줬는데, 검사장이라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몸을 사릴 줄은 몰랐다.
‘씨발, 검사가 나쁜 놈 잡는 게 뭐가 문제지?’
그때, 문이 끼익 열렸다.
“안 돼요!”
비서의 목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검사장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잖아!”
하지만 검사장은 곧 입을 다문다.
“날씨가 좋아요.”
여유롭게 말하며 들어온 사람…….
박무혁 의원이었다.
그의 등장에 놀란 것은 검사장만이 아니었다.
김재형 검사도 눈을 깜빡였다.
박무혁, 그냥 정치인이 아니다.
각 기관의 힘 있는 사람들에게 집도 사고 차도 사라며 용돈을 꽂아 주는 대정 그룹의 아들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각 당의 대표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검사장이 더듬더듬 말한다.
“박, 박무혁 의원?”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은데…….”
잠시 후, 김재형 검사는 떠났고 그 자리에는 박무혁 의원과 검사장이 마주 앉아 있었다.
박무혁 의원이 찻잔을 손에 쥐며 말한다.
“검찰을 검이라고 하죠?”
“...그렇게들 부르기도 하죠.”
박무혁 의원이 손을 쥐었다 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난 지금까지 칼싸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칼 들고 설쳤다가 다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네요. 나도 슬슬 칼 한 자루 손에 들었으면 하는데…….”
검사장의 눈에 욕망이 깃든다.
그 말의 뜻을 알고 있어서다.
박무혁 의원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검사장, 이 자리 끝나고 고검장 1, 2년 정도 하면 총장 달 기수가 됩니까?”
“네?”
“총장 자리를 잠시 스쳤다가 법무부 장관, 거기서 더 올라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개인 역량이겠고……. 역량이 달려 공직을 떠나게 되면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겠죠. 그때가 되면 제가 가진 회사의 일을 검사장에게 의뢰하고 싶은데, 얼마나 줘야 합니까?”
“박, 박무혁 의원님?”
박무혁 의원이 조용히 웃는다.
“난 이 정도의 길을 제시해 줄 수 있습니다. 이제 검사장이 선택할 때예요. 민유헌과 함께 갈 겁니까? 아니면 제가 제시한 길에 올라타시겠습니까?”
< 몸집 부풀리기. -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