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45화 (145/300)

< 몸집 부풀리기. - (4) >

성윤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박대철이 조심스레 말을 잇는다.

“대한당의 지지율을 낮춰 반사이익을 얻겠다는 건가?”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세진이에게 시선을 돌린다.

“내후년이면 세진이도 열두 살이 되겠네요.”

한상국 정부가 끝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시기다.

박대철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성윤의 말이 이어진다.

“대한당이나 민국당……. 지금 이대로라면 둘 중 한 당이 정권을 차지하겠죠. 그런데, 정권이 바뀐다고 바뀌는 게 있을까요? 국민은 언제나 말합니다. ‘바뀌어 봤자 똑같다. 그놈이 그놈이다.’ 이제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내가 일 잘하는 놈을 뽑았구나.’라는 말을 했으면 좋겠어요.”

신당 창당을 넘어 대권까지 넘보겠다는 말이다.

그리고 저런 말을 할 정도면 단단한 뒷배가 있다는 뜻이다.

박대철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그도 정치에 몸을 담았던 사람이다.

대권이라는 말에 몸이 뜨거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권력의 톱에 오르는 것은 정치인의 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였다.

쥐였던 주먹이 스르륵 풀렸다.

그는 죄인이다.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감옥에 앉아 밖의 소식을 듣는 게 전부다.

입에서 낮은 한숨이 흘렀다.

“청소를 하고 싶다고?”

“네.”

“정한보라고 알지? 아직 국회에 있나?”

정한보 의원, 변호사 출신으로 대한당의 거수기 노릇을 했던 사람이다.

대부분 거수기의 삶이 그렇듯 임팩트 있는 활동은 없었다.

그리고 지난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고 역사에서 사라졌다.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없습니다.”

박대철 의원이 끌끌끌 웃는다.

“공천도 못 받았지?”

“네.”

“그럴 줄 알았어. 그놈은 불만이 많았거든. 잘나가는 변호사였는데 국회에 들어오니까 아무것도 아닌 거야. 잔챙이였고 시다였지. 까라면 까는 게 초선의 생활이니까. 그래서 그놈이 남몰래 무슨 짓을 한 줄 알아?”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자기를 무시하는 대한당을 무너뜨리고 싶어 했어. 그래서 다른 의원들의 뒷조사를 하고 다녔지. 변호사였는지 흥신소였는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그런데, 조용한 것을 보니 결국 아무것도 못 했나 봐. 그놈을 찾아가 봐. 여기저기 냄새나는 일을 많이 알고 있을 거야.”

성윤은 박대철 의원의 말을 들으며 꿈속에서 봤던 미래를 떠올렸다.

‘정한보?’

특별한 기억은 없었다.

박대철과 룸살롱을 찾아다니며 술만 퍼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성윤의 시선이 다시 박대철에게 향했다.

“정한보 의원의 일을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비밀스럽게 움직였다면 아무도 몰라야 한다.

그런데, 박대철이 알고 있다면 비밀이 아닌 거다.

빛바랜 비밀은 쓸모가 없다.

박대철이 옆에 앉은 세진이를 슬쩍 본다.

“지금 말하기는 좀 그래.”

세진이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거다.

성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듣겠습니다.”

“그래,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야.”

***

며칠 후, 성윤은 서안시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마주 앉은 정우가 황당한 표정으로 말한다.

“영화에서 나오는 악의 축 같은데요? 빌런의 총집합이에요.”

테이블에 놓인 용지, 사람들의 이름이 낙서처럼 휘갈겨져 있었다.

이름만 봐도 똥 냄새가 풀풀 나는 비리 의원들, 신당에 들어올 사람들이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의 거취가 바뀔 거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

“일단 머릿수는 채워야지.”

“그다음은요?”

“지난 일을 반성하게 만든 후에…….”

“만든 후?”

“감옥으로 인도해 주겠지.”

정우는 어색하게 웃었다.

“의원님이 끝판왕 같아요. 토사구팽의 끝판왕.”

성윤이 장난스러운 시선으로 정우를 바라봤다.

“넌 안 버릴 거니까 걱정하지 마.”

“정말, 진짜, 아주,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연구소는 어떻게 되고 있어?”

성윤은 각 분야의 전문가를 데려와 정책 연구소를 준비하는 중이다.

완벽한 인간은 없고 정책은 연습이 아니다.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외교 분야에 서지유 씨가 합류하기로 했어요.”

서지유는 일본에서 강상원 의원에게 성추행을 당할 뻔했던 외교관이다.

그 사건 이후 외교관을 그만뒀고 성윤의 정책 연구소에 합류했다.

정우가 계속 말한다.

“사람은 다 구한 것 같아서 이제 슬슬 오픈하려고요. 사무실은 여의도로 잡을게요.”

“사무실은 알아서 하고 조만간 얼굴 볼 수 있도록 자리나 만들어 줘.”

“넵. 또 지시할 일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정한보 의원은 연락됐어?”

박대철이 말한 정한보 의원, 교도소에서 나오자마자 정우에게 현황을 파악해 달라고 부탁했었다.

“미국에 있다고 했어요. 들어오면 연락 준다고 했는데, 아직이네요.”

“미국?”

성윤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며칠 동안 꿈속의 일을 더듬으며 정한보 의원이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해 보려 했다.

하지만 꿈속의 성윤도 전혀 관심 없던 인물이었나 보다.

어떤 정보도 없다.

“들어오면 바로 연락 달라고 해.”

“넵.”

그때, 성윤의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다.

“네, 회장님.”

한동일보 정석태 회장이다.

-말씀하셨던 민국당 대표 아들놈의 기사가 2시에 올라갈 거예요. 일단은 이니셜로 간을 볼 겁니다. 대응은 그쪽 반응을 보고 움직이라고 지시했으니까 즐겨 주세요.

폭죽을 쏠 때가 됐다.

현재 대권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사람이 민유헌 대표다.

민유헌 대표가 기우뚱하면 민국당 전체의 지지율도 급물살을 타며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

“감사합니다.”

성윤이 통화를 종료하며 정우를 향했다.

“당사로 가자.”

“터졌나요?”

“곧.”

***

민국당 당 대표 민유헌을 향한 태풍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민국당은 자신들의 높은 지지율에 취해 다가오는 태풍을 보지 못한다.

그저 태풍이 오기 전 맑은 하늘을 즐기고 있다.

당 지도부의 회의도 그랬다.

“지금까지 경선 신청한 후보가 몇 이지?”

뚱뚱한 뱃살을 자랑하는 한 최고 위원이 입을 열었다.

“다섯 명입니다.”

민유헌 대표가 서류를 넘기며 말한다.

“지금까지 나온 게 서울, 경기, 강원, 충남, 전남……. 다른 지역에서도 출마할 수 있도록 독려해. 가능성이 없어도 당을 위해 출마하라고 등을 떠밀어. 이번 경선은 전국적인 축제로 만들어야 하니까 어지간하면 후보자 커트하지 말고.”

지도부들이 낄낄낄 웃는다.

민유헌 대표의 의도를 알기 때문이다.

한 여성 최고 위원이 입을 열었다.

“각 지역 대표가 나오면…… 남자들이 좋아하는 야구? 축구? 그런 지역 경쟁 구도로 가실 건가요?”

민유헌 대표가 고개를 끄덕인다.

“스포츠 같은 지역 경쟁? 예시가 좋네. 축구에는 훌리건이 있지. 이번 경선은 그랬으면 좋겠어. 후보들 간의 네거티브로 얼룩져야 해. 지지자들끼리 치고받고 싸울 정도로 자극적이고 말초적이어야 해. 역대 최악의 경선이라는 말을 들어도 좋아.”

모든 관심을 민국당 경선에 집중시켜야 한다.

그래야 대한당으로 포커스가 넘어가지 않는다.

그럼, 대한당이 군소 정당처럼 보일 수도 있다.

민국당 후보가 곧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게 민유헌 대표의 목표였다.

민유헌 대표가 깍지를 꼈다.

그리고 테이블에 팔꿈치를 대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알겠지만 나도 경선에 나갈 거야. 나에 대한 비판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도록 준비해 줘.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게 있어. 비판과 욕설이 난무하더라도 대한당에 소스를 줘서는 안 돼.”

감정은 건들더라도 진짜 치부는 들춰내지 말라는 것이다.

극해진 감정싸움 중에 법적인 문제가 터져 나오면 대한당의 얄미운 놈들이 어떻게 꼬투리를 잡아 치고 나올지 예상할 수 없다.

지도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민유헌 대표의 말이 계속됐다.

“그리고 의원, 시장, 도지사에게 말해. 우리는 이제 대선 모드로 들어갔어. 대선이 끝날 때까지 만취하는 것은 금지야. 술을 마실 일이 있으면 한두 잔으로 끝내라고 해. 지시를 어기면 다음 공천은 없을 거라 전하고.”

술을 마시면 사고가 난다.

대리 기사에게 갑질, 술집 종업원에게 갑질.

서용우 전 총리가 ‘갑질 없는 사회’의 슬로건을 들고 나온 이상 그 빌미를 만들어 줘서는 안 된다.

민유헌 대표의 말에 모두가 한목소리로 답했다.

“예!”

그러가 민유헌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앞으로 1년! 그동안 못 마신 술은 청와대에서 주겠어. 그때 죽을 때까지 마시자고!”

“예!”

민유헌 대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며칠 전 한상국 대통령이 언론을 이용해서 싸움을 걸었지만 연예인과 종교인의 스캔들로 무사히 넘겼다.

이제 거칠 것이 없다.

한상국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1년.

대한민국은 곧 민국당의 깃발 아래에 놓일 것이다.

그리고 그 주인은…….

‘내가 됐으면 좋겠어.’

민유헌 대표도 대선을 노리고 있다.

그때, 회의실의 문이 ‘쾅!’ 하고 거칠게 열렸다.

당직자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기분 좋게 휘어졌던 민유헌 대표의 입꼬리가 찌그러진다.

당직자의 저런 표정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뭐야!”

“저, 저기…….”

당직자는 회의실에 앉은 당 지도부를 살핀다.

당 지도부도 인상을 구긴 채 당직자를 노려보고 있다.

당직자는 그들의 눈치를 볼 시간이 없다는 듯 민유헌 대표를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그리고 태블릿 PC를 건넨다.

“이, 이걸 보십시오.”

당직자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민유헌 대표는 다급히 태블릿 PC를 손에 들었다.

A씨 B씨 써 있는 삼류 지라시 기사가 보인다.

‘개 같은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야당 정치인 A 씨의 아들이 호주 클럽에서 상습적으로 마약을 투약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카지노에서 도박을 즐기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는데요.

카지노 관계자의 말을 들어 보면 A 씨의 아들은 단골 고객이며 하루에 탕진하는 돈이 수천만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또 A 씨의 아들은 여자 친구를 사귀고 임신을 시킨 후……(중략)…….

A 씨의 아들은 금수저이지만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자립하겠다며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일은 하지 않고 클럽에서 마약을 하고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고 골프를 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의 서민 코스프레야 익숙하지만 그 자식들까지 이러는 것을 보니……(후략)…….

민유헌 의원의 표정을 살피던 지도부들도 휴대폰을 꺼내 기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름만 대면 아는 야당 정치인.

호주 워킹 홀리데이.

A 씨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동일보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쐐기를 박았다.

사진이 있어야 할 자리에 민유헌 의원의 모습을 음영으로 처리해서 걸어 뒀다.

당직자가 눈치 없이 더듬더듬 말한다.

“호주에 간 야당 정치인의 아들이라고 하면…….”

“닥쳐!”

싸늘한 눈빛에 당직자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당직자는 물론 지도부도 마른 침을 삼키며 민유헌 대표만 보고 있다.

민유헌 대표는 정지된 화면처럼 멈춰 있었다.

그러다가 비웃 듯 미소를 짓더니 손에 든 태블릿 PC를 천천히 흔든다.

“한상국 이 새끼……. 정권이 바뀌면 옥살이 좀 시켜 줘야겠어.”

그 말뜻을 가장 빨리 이해한 사람은 뱃살이 출렁이는 최고 위원이었다.

그가 빠르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할까요?”

“아직 이니셜이야. 여기서 설치면 의심만 받아. 일단 한동일보 대표한테 연락해서 식사 자리 만들어. 지금까지는 대한당과 손잡았지만 이 바닥에 영원한 아군이 있나? 정권이 바뀔 테니 앞으로 우리와 함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알려 줘야지.”

“네!”

“그리고 한상국…… 그놈은 이미 주변 정리를 했을 거야. 하지만 사람 정리는 어려운 법이지. 사위는 끊을 수 있어도 피붙이를 떼어 낼 수는 없어. 아내, 딸, 형제 모두 털어 봐.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라도 떨어지면 열 배, 백 배로 부풀릴 준비 하고.”

“네!”

민유헌 대표는 잠시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화를 참으며 마지막 말을 내뱉는다.

“내 아들놈 잡아 와.”

당 지도부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민유헌 대표의 지시 사항을 이행할 거다.

그래야 민유헌 대표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한 자리라도 차지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한 사람은 달랐다.

미적미적 일어난다.

성윤과 손잡은 송건호 위원이었다.

그가 민유헌 대표의 표정을 살핀다.

‘병신 새끼. 널 공격하는 것은 이성윤이야!’

한 당의 최고라는 사람이 정세를 읽지 못하고 한상국 대통령만 의심하는 게 한심했다.

조금만 객관적으로 보면 한상국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당을 의심했을 거다.

한상국 대통령의 지지율이 소폭 상승했지만 그는 여전히 뒷방 늙은이다.

민국당을 공격해서 얻을 이득이 없다.

그런데, 한상국 대통령의 바짓가랑이만 잡고 질질 늘어지다니…….

송건호 위원은 비웃듯 진실을 말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꾹 참고 이 상황을 즐겨야 한다.

그래야 민유헌이 앉은 저 자리에 자신이 앉을 수 있을 거니까.

민유헌 대표는 삽질만 하다가 쓰러질 게 분명하다.

여기까지 생각하던 송건호 위원은 순간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설마……?’

그러고 보니, 민유헌 대표는 성윤과 박무혁 의원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성윤은 철저히 한상국 대통령이라는 그늘에 숨어 상대를 찍어 누르고 있다.

‘여기까지 생각한 것인가?’

송건호 위원은 마른 입술을 핥았다.

어쩐지 자신도 성윤의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럼, 자신의 마지막도 성윤이 선택한 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는 성윤에게 손바닥을 비벼야 할 것 같다.

< 몸집 부풀리기. -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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