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44화 (144/300)

< 몸집 부풀리기. - (3) >

“알겠습니다!”

민유헌 대표의 지시를 받은 당직자가 다급히 달려 나갔다.

민유헌 대표는 곧바로 전화기를 손에 든다.

“김 대표!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상대는 민유현 대표와 손을 잡은 언론사 대표다.

수화기 너머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대표님, 우리가 광고주 눈치 보고 사는 것 아시잖아요.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광고주? 누구야? 어디서 감히 나를!”

-그건 저희 밥줄이라 말씀드리기가…….

따박따박 변명하는 목소리에 민유헌 대표의 얼굴은 분노로 휩싸였다.

“너…… 내가 살려 줬던 것 잊었어? 네가 여직원 성추행했던 동영상을 막아 준 게 누구야!”

-알죠! 기억합니다. 제가 어떻게 잊겠습니까? 그런데, 이번은 진짜 어쩔 수 없었습니다.

“헛소리하지 말고 1시간 내로 정정 기사 올려. 그렇지 않으면 내 방에 들어올 때 무릎을 꿇어야 할 거야.”

민유헌 대표가 전화기를 거칠게 내려 뒀다.

‘한상국 이 새끼…….’

언론사 대표가 저렇게 절절맬 정도면 한상국 대통령이 직접 움직였다는 거다.

모든 재벌 총수의 목에 칼을 겨누고 언론을 압박했을 게 분명하다.

‘미친놈이, 지금도 힘이 있는 줄 알아?’

권력자는 여름과 같다.

가을이 성큼 다가와도 물러날 줄 모르고 기승을 부리는 여름처럼 끝까지 발악을 한다.

민유헌 대표는 한상국 대통령을 의심하고 있었다.

‘마지막 발악을 하는구나.’

그는 방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지금의 사태를 벗어날 온갖 생각이 오가는 중이다.

그러다가 그의 눈썹이 꿈틀댔다.

‘정정 기사가 나간다고 한들 사람들이 믿을까?’

믿어 줄 사람은 없다.

민유헌 대표가 권력을 써서 덮었다고 생각할 거다.

아니, 애초에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사람들은 스캔들만 기억한다.

‘젠장, 한 방 맞았어.’

어쩌면 민국당의 지지율이 흔들릴 수도 있다.

만약 꺾이기라도 하면 어디까지 내려갈지 알 수 없다.

대통령 후보 경선이 시작되기 전에 잡음을 없애야 한다.

그럼, 방법은 하나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거다.

민유헌 대표가 다급히 전화기를 귀에 댔다.

“금감원에 지라시 담당하는 게 누구지? 이 국장? 당장 내 방으로 불러. 그리고 연예부 소속 기자들에게 연락해서 기사를 쓸 준비 하라고 해.”

잠시 후, 대표실의 문이 열렸다.

금융감독원에서 지라시를 담당하는 정문중 국장이 들어왔다.

그는 뜬금없이 민국당 당 대표에게 호출 받았다.

눈만 깜빡이고 있다.

민유헌 대표의 부리부리한 눈이 정문중 국장을 훑는다.

“정문중 국장이라고?”

“네!”

“국장 된 지 얼마나 됐지? 다음 정권이 들어서면 적어도 부원장은 해야지 않겠어?”

“네?”

“아니면 이번 국감 때 스타 한번 만들어 줘?”

정문중 국장은 민유헌 대표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챘다.

자신의 말을 따르면 앞으로의 길을 뚫어 주겠다는 거다.

하지만 따르지 않으면…….

정문중 국장의 눈동자가 돌아간다.

어떻게 하는 것이 이득일지 계산하는 거다.

지지율만 봐도 다음 청와대의 주인은 민국당이 유력하다.

대통령의 입김으로 부원장보가 된다면…….

‘노후는 문제없어.’

각 금융회사는 금융감독원의 원장, 부원장, 부원장보를 이사나 감사로 모셔 간다.

은행의 목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그 연줄을 손에 넣고 싶어서다.

그가 눈동자를 굴리고 있을 때 민유헌 대표의 목소리가 흘렀다.

“자네에게는 기회야.”

“말씀하십시오.”

그는 민유헌 대표가 내민 줄을 덥석 잡았다.

민유헌 대표가 고압적인 태도로 지시한다.

“연예부 기자들을 모아 줄 테니까 연예계, 재벌가, 종교인의 스캔들 중에 자극적인 것을 던져 봐.”

금융감독원은 돈이 움직이는 곳이다.

작은 정보에도 민감하다.

그래서 지라시를 취급하는 최고의 기관 중 하나로 꼽힌다.

성종이나 대정보다는 약하지만 여의도 지라시가 비빌 곳은 아니다.

***

다음 날, 서초동 한정식집.

성윤은 정우와 함께 앉아 있었다.

휴대폰을 만지작대던 정우가 입을 연다.

“MC 정근이 또 구속됐대요.”

“힙합 가수? 또 구속됐다고?”

MC 정근, 악동 이미지의 힙합 가수다.

그런데, 허구한 날 구속당하는 바람에 악동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죄수 이미지가 씌워졌다.

이번에는 걸 그룹 가수를 성추행했다고 한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감옥에서 보내는 것 같다.

정우가 휴대폰을 덮으며 성윤을 향했다.

“MC 정근의 성추행, 재벌 3세의 마약 파티, 교회 목사의 불륜, 스님의 룸살롱 출입. 하루에 네 가지 스캔들이 터졌어요. 민유헌 대표의 실력인 것 같죠?”

“그렇겠지.”

더러운 스캔들이 네 개나 터졌다.

그 덕에 민유헌 대표의 이름은 하루 만에 사라졌다.

정치인이 정치 모략을 했다는 것보다 연예인의 성추행, 재벌 3세의 마약 파티가 더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미닫이문이 열리고 김재형 검사가 들어왔다.

그는 권력자와 싸우다가 유배되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성윤의 도움으로 다시 서울에 입성했다.

그가 성윤의 앞에 마주 앉는다.

“그런데, 어쩐 일로?”

“식사 안 하셨죠?”

김재형 검사가 피곤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일이 많아서 바로 들어가 봐야 합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요.”

정치인이 불러 부탁하는 것은 단 하나다.

사냥개가 되어 달라는 것.

김재형 검사의 표정이 불편해진다.

“……저는 정치인의 칼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불의를 보고 넘어갈 수는 없잖아요? 검사님이나 저나 국민의 하수인인데, 불법을 알고도 모른 척 넘어가면 업무 태만이죠.”

옆에 앉아 있던 정우가 뭔가를 꺼내 테이블에 놓았다.

사진 몇 장, 20대 중 후반의 남자가 클럽에서 놀고 있는 사진이다.

필로폰을 투약하는 모습도 보인다.

민국당 송건호 최고 위원이 보내 준 자료였다.

김재형 검사는 사진을 손에 들고 확인했다.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다.

조심스럽게 묻는다.

“누구죠?”

“민유헌 대표의 아들 민재환. 호주에 워킹 홀리데이 하러 갔다고 하더니 일은 안 하고 마약 맛을 알았나 보네요.”

김재형 검사의 미간이 좁혀진다.

“민유헌? 민국당 당 대표요?”

“네.”

김재형 검사의 입이 꽉 다물렸다.

성윤이 평범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은 예상했다.

그런데, 상대가 민국당의 당 대표라니…….

민유헌 대표를 건들면 김재현 검사만 다치는 게 아니다.

주변의 동료까지 주르륵 갈려 버릴 수 있다.

게다가 민유헌 대표는 민국당의 유력한 대권 주자이기도 하다.

덜컥 대통령이라도 되면 보복을 받을 수 있다.

대통령이 ‘검찰의 힘을 반토막 내겠습니다!’라며 달려들면 정말 골치 아파진다.

위험한 일이다.

그가 시선을 들어 성윤을 향했다.

“어렵습니다. 제가 나선다고 해도 막힐 겁니다. 딱 봐도 덩어리가 커요. 묻혀 버릴 사건입니다.”

“그래서, 못 하시겠습니까?”

“어렵다고 했지, 못 한다고는 안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하려면 민유헌 대표와 비슷한 체급의 사람이 뒤를 봐줘야 합니다. 이번에는 제가 묻겠습니다. 의원님은 뒤를 봐주실 수 있습니까?”

“들어 보죠. 범위를 말씀해 보세요.”

“이 사건에 관련된 검사가 옷을 벗거나 유배를 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단 한 명도.”

권력자를 향해 칼을 휘둘렀을 때 적어도 한 명은 책임을 뒤집어써야 한다.

그래야 검찰의 윗선이 “저 아웃사이더 놈이 혼자 벌인 일입니다. 저희도 몰랐습니다.”라며 변명할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지금껏 승승장구했던 앞길이 콱 막혀 버리기 때문이다.

오래된 관례다.

새파랗게 어린 정치인이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김재형 검사는 지금 성윤의 부탁을 에둘러 거절하는 중이다.

검사로서 불의를 보고 참고 넘어간다는 게 자존심 상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상대는 괴물이다.

영화나 소설 속의 악당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진정한 괴물…….

물론, 모든 책임을 혼자만 질 수 있다면 물불 가리지 않고 덤볐을 거다.

하지만 자신 때문에 동료가 유배당하고 옷을 벗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미 그런 더러운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다.

정치인을 털었다가 주변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는 마법 같은 일.

또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성윤이 빙긋이 웃는다.

“그런 건 염려하실 필요 없습니다. 유배는 누구도 가지 않을 거예요. 이 일은 ‘정석’대로 갈 거니까요.”

“정석요?”

“언론이 터뜨리고 검찰이 수습.”

“아!”

김재형 검사의 표정이 밝아졌다.

언론이 불을 내면 상관없다.

수습은 검찰이 해야 하는 일이다.

“한상국 대통령이 움직일 겁니다. 눈엣가시 같은 민국당을 박살 낼 기회니까요.”

검찰에 수사를 종용하며 성역 없는 수사 어쩌고저쩌고.

대통령의 지시가 내려왔는데 검사장이고 총장이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엉덩이를 씰룩이며 설쳐 댈 게 분명하다.

김재형 검사가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겠습니다.”

성윤이 김재형 검사의 앞으로 사진을 밀어 넣었다.

“걱정하는 것은 흐지부지 끝나는 겁니다. 검사장이 민국당의 눈치를 볼 수도 있으니까요. 제대로 칠 수 있게 준비해 주세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검사장에게 뺨 몇 대 맞으면 될 겁니다.”

한정식집을 나온 성윤은 차에 올랐다.

다시 서안시로 향하며 휴대폰을 들어 한동일보 정석태 회장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한상국 대통령을 피해 출국했던 그는 얼마 전 돌아왔다.

평소처럼 낚시를 하며 세월을 보내는 중이다.

“이성윤입니다.”

-아, 이 의원님.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껄껄대는 웃음 소리가 들렸다.

-이 의원님의 부탁이라면 겁부터 덜컥 나네요. 지난번에는 대통령, 이번에는 누구입니까?

“민유헌 대표의 아들입니다.”

성윤은 정석태 회장에게 민유헌 대표의 아들이 호주에서 필로폰을 투약한 사실을 알렸다.

정석태 회장은 다시 껄껄 웃는다.

-이거…… 또 해외를 나갔다 와야겠네요. 이번에는 어디가 좋을까요?

민국당 당 대표 민유헌의 아들.

아버지가 대한민국의 권력자였지만 자신은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며 워킹 홀리데이를 선택했다.

민유헌 대표의 지지자들은 그 선택에 박수를 보냈다.

금수저 논란이 커지는 세상이다.

스스로 자립하는 모습은 분명 응원받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가식이었다.

민유헌 대표의 아들은 마약과 도박으로 젊음을 탕진하고 있었다.

***

주말이었다.

성윤은 세진이와 함께 교도소를 찾았다.

박대철을 만나기 위해서다.

혼자만 가려고 했는데 계속 세진이에게 전화가 왔다.

세진이는 아빠를 보고 싶다고 계속 졸라 댔다.

결국 함께 왔다.

“아빠 보면 웃어야 해. 그래야 아빠가 마음 편히 계실 수 있으니까. 울면…… 걱정하시겠지?”

세진이가 작은 얼굴을 끄덕인다.

“네,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할게요. 이번에 영어 단어 대회에서 1등 한 것도 말할 거예요. 상장도 가지고 왔어요.”

“그래.”

성윤이 세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박대철이 들어왔다.

“세, 세진아…….”

박대철은 다급히 성윤에게 시선을 돌렸다.

원망스러운 눈빛이다.

죄수복을 입은 모습을 보여 주고 싶은 아버지는 없다.

성윤이 미안한 미소를 지었다.

“죄송합니다. 세진이가 계속 졸라서요.”

성윤이 세진이의 등을 가볍게 두들겼다.

아빠를 보면 하고 싶었던 말을 전하라는 거다.

하지만 세진이는 고개를 숙이고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울면 아빠가 걱정한다고 그래서 그런지 울먹울먹 눈물을 참고 있다.

박대철이 낮게 한숨을 내뱉었다.

터벅터벅 힘없이 다가와 무릎을 꿇어 세진이와 눈높이를 맞춘다.

“세진아.”

“아빠…….”

세진이는 박대철에게 와락 안겼다.

엉엉 울기만 한다.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사는 것은 힘든 일이다.

아무리 성윤의 부모님이 잘해 준다고 해도 채워질 수 없는 게 있다.

박대철의 눈시울도 붉어진다.

일곱 살이었던 아이가 열 살이 됐다.

키도 컸고 얼굴도 예뻐졌다.

박대철의 입에서도 울먹이는 목소리가 흘렀다.

“많이 컸네. 우리 딸…….”

잠시 후, 부녀 상봉이 끝났다.

세진이는 박대철의 옆에 앉아 재잘거린다.

이제야 준비했던 말을 하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랑 동물원에 다녀왔어. 그리고 지금 영어 학원에 다니는데 단어 대회에서 1등도 했어.”

할아버지, 할머니는 성윤의 부모님이다.

애를 봐주는 것도 감사한데 동물원에 영어 학원이라니…….

게다가 1등이란다.

자랑스레 보여 준 상장에 1등이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표정만 봐도 세진이가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박대철이 마주 앉은 성윤에게 시선을 옮겼다.

“고마워.”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지난번 말씀드렸던 명품 가방 좋아하는 분 있잖아요?”

세진이의 엄마 이야기다.

성윤은 세진이가 이해할 수 없도록 돌려 말했다.

하지만 박대철은 단박에 알아듣는다.

“어? 어, 그래.”

“미국에 있습니다. 사람 붙여서 관찰하고 있으니까 나오시면…… 법으로 해결하세요.”

박대철의 입에서 한숨이 흘렀다.

마누라가 돈을 들고튀었다.

반드시 잡아서 그 돈을 돌려받아야 한다.

그래야 세진이와 밥을 먹고살 수 있다.

“이것도 고맙네. 내가 자네 부탁이라면 뭐든 할 거야.”

“그럼, 염치없이 부탁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뭐든.”

“의원님과 친하게 지냈던 국회의원들…… 이번 대선 과정에서 청소를 하고 싶습니다.”

박대철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그도 국회의원이었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며 이득을 철저히 따지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예상할 수 있었다.

대선 과정에서 대한당 의원들을 청소한다는 것.

둘 중 하나다.

성윤이 민국당의 쁘락치가 되었거나…….

“자네, 신당을 준비하고 있나?”

< 몸집 부풀리기. -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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