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42화 (142/300)

< 몸집 부풀리기. - (1) >

“자, 이제 자네의 재산을 말해 봐.”

성윤과 함께하는 국회의원은 약 서른 명 정도가 된다.

비리로 얼룩진 사람이 약 스무 명.

당과 이념에 상관없이 좋은 정치를 하자고 모인 초선 의원이 약 열 명.

그리고 서안시 임인희 시장과 수원 14선거구의 오강민이 있었다.

그중 확실히 데려올 수 있는 사람은 최소 스물 두 명이다.

박무혁 의원에게는 미안하지만 모든 패를 공개할 수는 없었다.

성윤의 경력에 그만큼의 사람을 데리고 있다는 것은 자랑이 아니다.

어쩌면 상대에게 위협 요소로 보일 수도 있다.

“여덟 명 정도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전부 대한당인가?”

“네.”

“최소 스물여덟 명······. 시작치고는 괜찮네.”

국회의원이 스무 명 이상 되면 교섭단체를 꾸릴 수 있다.

교섭단체는 정당 국가 보조금을 우선 받는다.

정책 연구 위원을 지원 받고 그 비용을 국가에서 지불한다.

물론 돈과 지원이 전부가 아니다.

국무위원 출석 요구를 할 수 있으며 주요 쟁점 법안 의논, 상임위 위원장 선임 협의 그리고 국정원의 각종 정보를 보고 받는 등 그 혜택과 파워는 대단하다.

교섭단체는 군소 정당들의 목표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성윤과 박무혁 의원이 창당할 당은 교섭단체를 만드는 것 이상의 힘을 지닐 수 있다.

얼마 전 재보궐선거를 거치며 각 당의 국회의원 숫자는 소폭 변동됐다.

박무혁 의원이 입을 연다.

“우리가 스물여덟 명을 빼 오면 대한당은 백 명 이하로 떨어져. 국회의 지도가 완벽히 바뀌게 될 거야. 거기서 돈을 좀 뿌리고 비전을 제시하면 민국당의 비주류들도 넘어올 가능성이 상당해. 그럼, 정말 대선을 노려 볼 수도 있겠어.”

박무혁 의원은 조용히 웃으며 술잔을 입에 댔다.

정치에 몸을 담고 있지만 재벌의 아들이다.

어릴 때부터 인수 합병을 보고 자라 왔다.

뺏는 것에 익숙했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먹거리가 나타나면 뼈까지 씹어 삼키는 본성이 존재한다.

그의 눈앞에 새로운 먹거리가 보이고 있었다.

그것은 국회다.

포식자의 본성이 기어 나오고 있었다.

잠시 눌러 줄 필요가 있다.

“청사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한당과 민국당에는 콘크리트 지지율이라는 게 존재한다.

어떤 일이 생겨도 그 콘크리트가 깨어지는 일은 없다.

그리고 대한당과 민국당이 가진 역사와 계보는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신당의 불꽃을 화려하게 쏘아 올린다고 해도 대한당의 한상국 대통령이나 민국당의 안재열 대통령 등 대한민국의 역사를 만들어 낸 상징적인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대한민국 정치 역사의 적통을 이을 수 없다는 약점이 있다.

성윤이 말을 이었다.

“국민이 새로운 정치를 원할 때까지는 비밀리에 움직였으면 좋겠습니다.”

박무혁 의원이 고개를 저었다.

“국민은 언제나 새로운 정당, 새로운 인물을 원해. 하지만 실제로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면 외면하지. 때를 기다린다고 좋은 날이 오지는 않아.”

“오지 않으면 만들어야죠. 새로운 바람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박무혁 의원의 시선이 성윤을 향한다.

묘한 눈빛에는 흥미로움이 가득하다.

“만들겠다고? 방법이 있나?”

“네.”

“신기해. 자네를 보면 이런 날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아. 계획을 들어 보고 싶은데.”

“조금 더 확실해지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머릿속에 계획은 잡혀 있었다.

꿈속을 통해 본 미래와 현실의 정세를 통해 대한당이 일어날 일을 조금은 예측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모든 것을 내뱉지는 않는다.

방금도 박무혁 의원은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아.’라는 식으로 말했다.

아랫사람이 지나치게 똑똑한 척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안 될 일이다.

어쩌면 박무혁 의원에게 불안감을 심어 줄 수도 있다.

“뭐, 그건 그렇고······. 자네가 새로운 바람을 만들기 전에 민국당이 움직일 거야.”

성윤도 예상하고 있었다.

이번 엄대필 사건, 민국당에서는 한상국 대통령을 짓밟아 버릴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한상국 대통령이 꼬리를 끊고 도망가 버렸다.

입맛만 다시고 있을 민국당이 아니다.

어떻게든 끊어진 꼬리의 상처를 찾아 소금을 뿌리려 할 거다.

그때, ‘지이이이잉’ 박무혁 의원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박무혁 의원이 휴대폰을 들어 귀에 댄다.

수화기 너머의 소리를 들으며 슬쩍 웃는다.

통화를 종료한 박무혁 의원이 입을 열었다.

“엄대필이 지내는 구치소에 사람을 좀 심어 뒀어. 지금 연락이 왔는데, 민국당 당 대표 민유헌이 엄대필을 면회한 모양이야.”

박무혁 의원도 가만히 있던 게 아니다.

여러 경로를 통해 민국당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 * *

여의도 한정식집.

민국당 당 대표 민유헌과 최고 위원 송건호였다.

“사람을 보내 엄대필을 면회했어.”

“엄대필? 대통령의 사위요?”

“그래.”

송건호 최고 위원이 입맛을 다셨다.

“후보 경선하기 전에 한상국 대통령으로 비리 프레임 좀 만들려고 했는데, 아쉽게 됐어요. 오히려 딸 바보라며 지지율이 올라갔으니······.”

민국당은 이번에 반드시 정권 교체를 이루려고 한다.

지난 4년간 야당으로 살아가며 당했던 날이 서럽기만 했다.

발목 잡는 야당, 능력 없는 야당······.

실상 야당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서 그랬던 것인데 수모란 수모는 다 당한 것 같았다.

민유헌 대표가 몸을 기울이며 눈을 반짝였다.

“엄대필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궁금하지 않나?”

시큰둥했던 송건호 최고 위원이 젓가락을 내려 뒀다.

“뭐가 있었습니까?”

“있었던 것 같아.”

“네? 있었으면 있었지, 있었던 것 같다니, 그건 또 뭡니까?”

“엄대필은 뭔가를 숨기고 있어.”

송건호 최고 위원이 낄낄 웃기 시작했다.

“사실은 이혼이 아니었다는 거요? 여의도에서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증거가 없어요. 두 사람이 지나다닌 길가의 CCTV까지 싹 다 지워 버렸으니까요. 게다가 여론이 대통령 편이잖아요. 지금 나서서 엄대필은 이혼남이 아니었다고 떠들어 대면 억

지나 부린다고 욕먹을걸요.”

송건호 최고 위원이 비웃듯 말했지만 민유헌 대표는 여유롭다.

빙긋이 웃으며 술병을 들어 잔을 채운다.

“욕먹는 게 하루 이틀인가?”

“얻는 게 있다면 욕을 먹어도 상관없지만 그게 아니잖아요.”

“얻는 게 있다면?”

“있어요?”

“엄대필의 뒷조사를 했어. 놈이 만난 사람, 저지를 비리, 그리고 구치소를 찾아가 확인을 했지.”

송건호 최고 위원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민유헌 대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민유헌 대표가 슬며시 웃으며 계속 말한다.

“엄대필은 서용우를 통해 정계에 입문하려고 했어. 그 다음으로 만난 사람이 이성윤이지. 그 다음은 오강민.”

민국당에서 성윤은 미운털이었다.

그들이 키우려 했던 진기성 변호사가 성윤이 공천한 오강민에게 박살이 났으니까.

“이성윤, 오강민······. 뭔가 연결 고리가 생기는 것 같은데요?”

“그래, 오강민이 엄대필을 끌고 룸살롱에 갔어. 거기, 간판 없는 룸살롱 알지?”

송건호 최고 위원이 손뼉을 쳤다.

엄대필이 왜 그렇게 이를 악물고 돈을 처받았는지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아가씨 어깨에 팔을 두르려고 그렇게 돈을 받은 거랍니까? 미친 새끼. 도대체 술을 얼마나 처마셨기에······.”

“술이 아니야. VVIP 룸에 갔대.”

“VVIP 룸요?”

“자네도 거긴 들어가 본 적 없지? 그런데, 오강민과 엄대필이 들어갔어.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회원제로 움직이는 유령 룸살롱이면서도 VVIP 룸은 쉽게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쾌락의 천국이 있다는 소문만 들려올 뿐이다.

그런데, 오강민과 엄대필이 들어갔다니······.

송건호 최고 위원이 입술을 쓸었다.

“냄새가 나네요. 그런데, 방법이 있나요? 거기 돈줄이 누군지 모르잖아요? 괜히 벌집을 건드리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검찰은 움직이지 않을 거예요. 검사장이 되면 그 룸 잡아서 파티 한다고 하잖아요. 손잡고 쎄쎄쎄 했던 아가씨들이 가득한데······.”

“엉덩이 무거운 애들을 일으키는 것은 엄마의 회초리지.”

“네?”

“여성 단체가 움직일 거야.”

송건호 최고 위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여성 단체가 들고 일어나면 여론도 시끄러워진다.

그럼, 일이 커진다.

문제는 그 룸살롱에 대한당만 다니는 게 아니다.

민국당 의원들도 곧잘 드나든다.

“대, 대표님······?”

민유헌 대표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난 이번 대선에 목숨을 걸었어. 대한당의 목숨을 거둘 수 있다면 살을 내주는 것은 개의치 않을 거야. 우리 식구 몇 명 다쳐도 대한당이 무너지면 상관하지 않을 거야.”

“그러다가 대통령을 잡지 못하면요? 아까운 살만 내주는 거예요.”

“적어도 이성윤과 오강민은 털어 낼 수 있겠지. 특히 이성윤, 어린놈이 벌써부터 룸살롱을 드나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대한당 전부를 싸잡아 흔들어 버릴 수 있잖아. 후보 경선 전에 확인 사살하고 대선은 편히 갔으면 좋겠어.”

민유헌 대표의 눈빛이 강렬하다.

아무리 말려도 코뿔소처럼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미 모든 계획과 준비가 끝난 것 같다.

송건호 최고 위원은 한숨을 내뱉으며 술잔을 입에 털었다.

“그래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시키실 일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닙니까?”

“말했던 것처럼 이번 일이 터지면 우리 민국당 의원 중에도 몇 명은 옥살이를 해야 해. 옥살이······. 자네 식구 중에 몇 명 넣었으면 좋겠어.”

송건호 최고 위원의 계파를 내놓으라는 거다.

그가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금연 공간이었고 대표의 앞이다.

하지만 민유헌 대표도 말리지 않는다.

편히 피울 수 있도록 가만히 놔둔다.

흐릿한 연기가 흐르며 송건호 최고 위원이 물었다.

“그럼, 뭘 해 주실 겁니까?”

“제 자식 내놓는 일인데, 값으로 따질 수 있을까? 뭐든 말하게.”

송건호 최고 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살을 깎아야 하는 심정.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하지만 가식이다.

새살은 어차피 돋아난다.

대선이 끝나면 곧바로 총선이 도래한다.

그때 채워 넣으면 되는 일이다.

초선 몇 명 옥살이 보내고 더 많은 요구를 하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그리고 송건호 최고 위원은 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룸살롱에 알리면······ 돈 좀 받을 수 있겠어.’

* * *

성윤은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신당 창당에 대한 고민이 가득하다.

감정적으로 탈당하면 잃는 게 많다.

최대한 여유롭게 뼈대를 세워야 한다.

그래야 모래성이 안 될 수 있다.

이리저리 고민하던 중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는 설미혜 마담이다.

“이성윤입니다.”

-설미혜예요. 지금······ 연락이 왔는데, 민국당에서 우리 가게를 타깃으로 잡았대요.

성윤의 입가에 조용한 미소가 걸렸다.

꿈속에서 봤던 민유헌 당 대표의 성격을 생각하면 예상했던 일이다.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더 큰 이득을 차지하려 하니까.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상국 대통령과 대한당을 무너뜨리려 한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서두르고 있다.

큰 싸움에서 서두르면 놓치는 게 많다.

성윤의 눈이 가늘어졌다.

설미혜 마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저희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타깃은 의원님과 오강민 의원인 것 같아요. 하지만 의원님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룸살롱의 회원권을 받은 적이 없고 마찬가지로 돈이 오간 적도 없으니까요.

어차피 걱정한 적 없다.

먼지는 좀 묻겠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런데, 설미혜 마담이 이런 것을 알리기 위해 전화할 사람은 아니다.

“본론이 있으신 것 같은데, 말씀하세요.”

-민국당에 장단을 맞춰 주면서 천천히 문을 닫을 거예요. 그리고 며칠 내로 이사할 거예요. 바람은 피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민국당에 꽃값 떼인 돈이 많아요. 믿고 거래했는데 외상값 갚기 싫어서 신고하는 진상 손님이었네요. 당하기만 하고 도망치려니까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그래서요?”

-우리에게 이 정보를 판 사람이 송건호 최고 위원이에요.

송건호 최고 위원이 민국당 지도부의 약한 고리다.

그는 당의 이득보다 자신이 얻을 떡값에 관심이 많다.

그를 손에 쥐면 민국당의 치부를 드러낼 수 있다.

“감사합니다.”

* * *

며칠 후.

성윤은 호텔 지하 주차장에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차이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VIP실로 직행하는 엘리베이터다.

“대한당에서 제일 잘나가시는 의원님이 어쩐 일일까요?”

VIP실에는 송건호 최고 위원이 앉아 있었다.

성윤이 잘나간다고 하지만 민국당 최고 위원과 비할 바는 아니다.

송건호 최고 위원이 거드름을 피우며 젓가락질을 한다.

그의 표정에 긴장감 따위는 없다.

성윤은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이성윤입니다.”

“세상 좋아졌어요. 나이 어린 재선 의원이 먼저 밥 먹자고 하는 것은 꿈도 못 꿨는데요. 대한당에서는 그런 건 안 가르치나요?”

설미혜 마담의 룸살롱은 아직 완벽히 문을 닫지 않았다.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영업을 하는 척 이사 준비를 하는 중이다.

송건호 최고 위원은 그 룸살롱을 통해 성윤을 압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눈빛에 업신여김이 가득하다.

뭐, 예상하고 있던 범위라 상관없었다.

지금부터는 성윤이 더 박박 긁을 생각이니까.

아파서 비명도 지르지 못할 때까지 상처를 후벼 팔 거다. 성윤이 의자를 빼고 앉으며 입을 열었다.

“룸살롱에 제보 전화 넣으셨다면서요?”

“뭐?”

“전화 넣고 제보비로 얼마 받았어요?”

“야!”

송건호 최고 위원은 룸이 떠나갈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그가 성윤을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한다.

“설 마담, 고것······ 입이 무거운 줄 알았는데,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고 다녀?”

“그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은데요.”

“닥쳐! 그런 것 알고 있다고 내가 눈 하나 깜빡할 것 같아! 대한당은 족보도 없어? 어린 것이 건방지게······.”

성윤의 앞에 서면 누구나 이렇게 소리를 지른다.

자신이 권력자니까······.

이런 치부는 얼마든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그 뒤는 뻔하다.

< 몸집 부풀리기.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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