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의 끝은 왜... (3) >
* * *
한상국 대통령은 초조하게 오가고 있었다.
그는 레임덕이다.
엄대필의 비리가 터지면 바닥을 찍은 지지율이 바닥 아래 지하까지 파고들어 갈 거다.
어디까지 떨어질지 그 끝을 예상하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더 큰 문제가 남아 있다.
바로 민국당이다.
이 소식이 들어가는 순간 그들은 축포를 쏘아 올리며 대통령 사냥을 시작할 거다.
특검을 요청하고 서슬 퍼런 칼날로 대통령의 목을 겨눌 게 분명하다.
국민의 앞에 나서서 아니라고 변명해도 믿어 줄 사람은 없다.
이런 사건이 터지면 국민은 대통령이 관여했다고 생각하니까.
‘엄대필, 이 멍청한 놈!’
사위 하나 잘못 들여서 평생의 정치 인생이 쓰레기 취급을 받게 생겼다.
끓어오르는 분노는 당장 엄대필을 짓밟아도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엄대필의 처단은 잠시 미뤄 둬야 한다.
배에 구멍이 뚫리면 책임자를 추궁하기보다 해결 방법을 찾는 게 우선이다.
한상국 대통령의 시선이 비서실장에게 향했다.
비서실장은 여전히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찾았어?”
비서실장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저기 전화를 넣어 봤지만 서용우 전 총리와 정석태 회장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죄송합니다.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몇 분 남았지?”
한동일보가 포털 사이트에 기사를 올릴 시간.
이제 20여 분밖에 남지 않았다.
한상국 대통령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소파에 앉았다.
그가 담배를 입에 문다.
분노로 가득했던 표정이 다시 냉랭하게 변한다.
그의 입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흘렀다.
“포털 사이트 대표에게 연락해. 한동일보 기사, 메인에 올리지 말라고 해. 내가 당대표로 있을 때 그 친구 대마 흡연을 숨겨 준 적이 있어. 은혜는 갚을 거야.”
“알겠습니다.”
“언론사 대표들에게도 전화 돌려. 기사 한 줄이라도 올라가는 날에는 국세청의 조사를 받을 거라고. 그동안 사업하면서 먼지 날리지 않게 참아 준 것, 한 번에 다 털어 버릴 거라고. 아, 한동일보는 지금부터 조사 시작하고.”
“네.”
비서실장은 간결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표정은 불편하다.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시간을 버는 게 전부다.
지금 검찰이나 국세청이 출발한다 해도 한동일보의 내일 신문이 발행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그리고 정석태 회장은 대통령의 공격을 예상했다는 듯 해외로 도주했다.
한상국 대통령도 그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변함없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엄 서방하고 지희 오라고 해.”
“네.”
“그리고 몇 가지 더 부탁할 게 있어.”
“말씀하십시오.”
“정석태 그놈은 독단적으로 이런 일을 벌일 그릇이 안 돼. 그놈은 겁이 많고 나를 무서워하니까.”
“협조자가 있다는 겁니까?” 한상국 대통령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 집 주변 CCTV를 확인해. 녹화 영상이 남아 있는 것은 모두. 드나든 사람 명단 만들어서 가지고 와. 우유 배달원이고 택배 기사고 전부.”
한상국 대통령은 어쩌면 이번 일이 잘됐다고 생각했다.
힘이 있을 때 자신을 공격하려는 자를 찾아낼 수 있으니까.
퇴임 후에 벌어졌다면 어떤 것도 못하고 두들겨 맞기만 했을 거다.
“더 지시하실 일이 있습니까?”
“잠시 후에.”
* * *
엄대필과 대통령의 딸 한지희는 청와대로 향하며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고 있었다.
아직 기사가 나오지 않았지만 비서실장을 통해 대략의 상황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눈치를 보던 엄대필이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미안.”
“이게 지금 미안하다고 될 일이야! 생각이 없어? 그런 사람 만나지 말라고 아버지가 직접 말했다며? 그런데······!”
한지희의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지금 싸워서 해결될 일은 없다.
“검찰 조사받기 싫으면 아버지를 만나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 눈물 콧물 흘리면서 죄송하다고 말해!”
“······어.”
두 사람은 대통령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평소와 공기부터가 다르다.
한지희를 보면 웃어 주던 비서실장은 두 사람을 원수처럼 노려보고 있다.
한상국 대통령이 없었다면 멱살을 잡고 두들겨 패고 싶다는 눈빛이다.
하지만 한상국 대통령의 눈빛은 더 냉랭하다.
평소처럼 호통이라도 쳤으면 좋겠는데 무거운 침묵만 감돌고 있다.
“죄송합니다!”
엄대필이 넙죽 엎드렸다.
한지희가 시킨 대로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목소리를 절절하게 흘린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해결하겠다고? 어떻게?”
“제가 검사였지 않습니까? 검찰에 선후배가 많이 있습니다. 지금은 검사장이 된 동기도 있고요.”
“그래서?”
“오면서 사진을 봤습니다. 현금이 오갔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헌법 제27조 제4항에 보면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검찰에 연락해서 ‘현금이 오간 증거는 없다. 그래서 증거 불충분이다.’라는 이유로 무혐의를
내리게 하면······.”
한상국 대통령이 손을 저었다.
그리고 느릿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엄 변호사, 내 자네의 법 공부는 잘 들었어. 그런데, 자네는 정치 싸움을 몰라. 한동일보 정 회장이 저 사진 한 장만 믿고 사건을 터뜨렸겠나? 정치 싸움이라는 것은 한 수, 두 수를 생각하는 게 아니야. 적어도 열 수 이상을 생각해야 위태롭지 않아. 정 회장은 자네가 빠
져나올 수 없는 구멍을 만들었을 거야.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더 깊은 늪에 빠지는 게야. 지금은 우리의 반응을 보고 즐기며 그때그때 다른 증거를 던질 생각으로 즐거워하고 있겠지. 알겠는가?”
한상국 대통령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눈은 엄대필을 바퀴벌레 보듯 경멸하고 있다.
엄대필이 ‘쾅!’ 소리가 날 정도로 이마를 바닥에 내려찍었다.
“아, 아버님, 살려 주십시오!”
“불쌍한 인간, 나를 목표로 한 정치 싸움에 자네가 걸려든 거야. 자네는 미끼였어.”
엄대필은 그동안 많은 국회의원을 만났다.
누구도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모습도 가면이었고 가식이었다.
친한 척, 위해 주는 척하며 모두 엄대필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 사실을, 엄대필은 이제야 느꼈다.
“살려 주십시오! 제발! 시골에 내려가 작은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하겠습니다. 아버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걱정 끼치지 않도록 지희와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한 번만,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지희와 행복하게 살겠다고?” 눈물을 펑펑 흘리던 엄대필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딸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 부모란 없다.
대통령도 부모다.
“욕심 부리지 않고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툭, 엄대필의 앞에 서류가 떨어졌다.
-이혼 신고서
“아, 아버님?”
멍하니 서 있던 한지희의 눈도 동그랗게 커진다.
“아버지, 이혼이라니요?”
한상국 대통령은 두 사람을 상관하지 않는다.
그의 입에서 냉혹한 목소리가 흘렀다.
“너희 둘은 몇 년 전부터 별거 중이었어. 내가 대통령이라 이혼을 하지 못했던 것이야. 하지만 이혼 서류는 준비하고 있었지. 그런데, 자네는 내 딸과 별거 중이었으면서도 내 이름을 팔아 뇌물을 받고 다녔어. 알겠는가? 그게 자네야.”
“아버님!”
“검찰에 조사받아. 지은 죄 모두 벌받고 나와. 그렇지 않으면······.”
엄대필이 한상국 대통령의 다리를 잡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한상국 대통령의 마음을 돌려야 살 수 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비서실장이 입을 연다.
엄대필의 서러운 목소리와 달리 사무적이다.
“엄대필 변호사의 부친이 농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다운 계약을 해서 매입했습니다. 그 부친도 대통령님의 이름을 팔고 다닙니다. 시장에게 알아봤더니 대통령님의 사돈이라며 행패가 요란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친형이 있는데, 지역에서 룸살롱을 운영했습니다. 당
시 엄대필 변호사가 뒤를 봐줬다고 합니다. 또······.”
가족의 비리가 이어졌다.
대통령의 다리를 잡고 있던 엄대필의 손이 툭 떨어졌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래야지, 잘못한 것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법이야.”
한상국 대통령은 몸을 일으켰다.
한지희가 대통령의 앞을 가로막는다.
“지, 지금 이게 뭐예요? 이혼이라니요!”
한상국 대통령은 딸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비서실장을 보며 말한다.
“오늘부터 지희는 여기서 지낼 거야. 전 남편의 비리로 충격을 받아 밖을 오가지 못할 거야. 알았나?”
비서실장이 고개를 숙인다.
“알겠습니다.”
* * *
청와대 춘추관.
이곳은 청와대 출입 기자들이 모여 있는 건물이다.
기자들이 수군대고 있다.
“이거 사실이야?”
한동일보의 기사, 포털 사이트 메인에 올라가지는 않았지만 한동일보의 홈페이지에는 떴다.
게다가 한동일보의 기자가 쫓겨나듯 청와대를 떠났다.
신빙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한 기자가 너스레를 떨며 입을 연다. “다 알고 있던 것 아니었어? 요즘 엄대필이 어깨에 힘주고 다닌 것 다 알았잖아?”
“이것 때문에 서용우 전 총리가 배신을 했나? 갑자기 왜 정부를 욕하나 했더니······.”
“이래서 정치판에 영원한 아군도 적군도 없다는 거야.”
하지만 누구도 이 기사를 베낄 생각은 하지 못 했다.
레임덕이라 해도 대통령은 대통령.
윗선의 지시 없이는 한 줄 쓰기도 힘들다.
아직 확실한 증거가 없기도 했고······.
그때, 기자실에 연락이 들어왔다.
“대통령이 직접 브리핑할 겁니다. 2층으로 모여 주십시오.”
브리핑룸은 1층과 2층에 하나씩 존재한다.
2층에서 한다는 것은 중요한 안건이라는 것.
기자들이 벌떡벌떡 일어섰다.
“드디어 왔다!”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던 특종이다.
그들은 다급히 브리핑룸으로 향했다.
그리고 대통령이 그들 앞에 섰다.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연다.
“오늘 한동일보에서 나온 기사를 읽었습니다. 제 딸 지희의 전남편 엄대필 변호사가 제 이름을 팔아 불법적인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기자들은 눈을 깜빡거렸다.
‘전 남편?’
이들은 청와대 출입기자다.
한지희와 엄대필이 함께 다니는 걸 어렵지 않게 지켜봤다.
그런데, 전 남편이라니······.
하지만 누구도 질문하지 않는다.
한동일보의 저격은 아직 약했고 앞에 선 사람은 대통령이었으니까.
그리고 이 중 한지희와 엄대필의 사진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질문해 봤자 ‘증거 있소?’라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다.
“제 딸과 엄대필 변호사는 몇 년 전부터 별거를 했습니다. 법적인 이혼 절차를 밟지 않았을 뿐 사실상 이혼 관계였습니다.”
기자들은 이제야 대통령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도마뱀 꼬리 자르기처럼 엄대필이 잘려 나가는 거다.
대통령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알리지 않은 것은 제가 대통령이기 전에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딸이 이혼을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많은 말이 오갔을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소문이 흐르며 더러운 사람으로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요즘 세상에 이혼이 흠은 아니지만
대통령을 아버지로 둔 게 문제였습니다. 저는 그게 두려웠습니다. 제가 손가락질 받는 것은 상관없지만 제 딸은 지켜 주고 싶은 게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이날 한상국 대통령은 ‘아버지’라는 표현을 스물네 번 사용했다.
아버지로서 딸을 지키기 위해 이혼을 알릴 수 없었다는 것.
그래서 엄대필이 자신의 이름을 팔아먹으며 돈을 받고 다녔다는 것.
사람들의 감성을 흔들기엔 주효했다.
기자들이 진실을 숨기면 국민은 그 뒷이야기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집무실에 앉아 있던 한상국 대통령은 미소를 그렸다.
이번 사건으로 두 가지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하나는 엄대필과의 고리를 끊으며 비리와 단절했다.
그리고 또 하나.
“정석태 집 주변 CCTV는 확보했나?”
자신에게 이빨을 드러낸 놈들을 모조리 씹어 삼킬 수 있었다.
* * *
-아버지로서 어쩔 수 없었다니, 정말 말은 번지르르해서······.
성윤은 바에 앉아 서용우 전 총리와 통화하고 있었다.
서용우 전 총리의 목소리는 초조하다.
이번 사건으로 한상국 대통령이 궁지에 몰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지지율이 오르고 있어서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대응도 최악의 수였으니까요.”
-······방법이 있나?
“네.”
성윤은 통화를 종료했다.
그의 시선이 옆으로 향한다.
박무혁 의원이 보였다.
그가 서용우 전 총리와 똑같이 묻는다.
“방법이 있나?”
다른 게 있다면 박무혁 의원은 여유롭다는 거다.
대통령을 사냥하는 이 순간을 즐기는 것 같다.
성윤이 빙긋이 웃었다.
“있습니다.”
“말해 봐.”
성윤이 사진을 꺼내 박무혁 의원에게 건넸다.
엄대필과 한지희가 함께 있는 사진, 엄대필이 청와대 직원들과 함께 있는 사진.
그리고 엄대필이 룸살롱에서 청와대 직원들에게 잡혀 나오는 것까지.
박무혁 의원이 사진 한 장을 손에 쥐며 물었다.
“이걸로 뭘 할 생각이지?”
“대통령의 남은 임기······ 의원님의 꼭두각시로 사용되었으면 합니다.”
박무혁 의원이 경선을 이겨 후보가 된다 해도 대통령에 당선되기는 힘들다.
재벌이라는 약점이 존재했고 대한당의 지지율이 처참할 정도로 바닥을 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을 꼭두각시로 만들면······.
< 대통령의 끝은 왜...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