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39화 (139/300)

< 대통령의 끝은 왜... (2) >

* * *

“늦은 시간에 찾아봬서 죄송합니다.”

“나랏일에 바쁘신 분인데, 시간이 뭐가 중요할까요.”

성윤은 정석태 회장의 자택을 찾았다.

그는 진심이 느껴질 정도로 성윤을 반겼다.

“들어 오세요.”

성윤은 그를 따라 거실로 향했다.

거실만 해도 20평이 넘어 보인다.

그의 집은 대궐이라 말할 정도로 넓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집에는 정석태 회장 그리고 소수의 경호원만 존재했다.

소파에 앉았다.

정석태 회장이 직접 탄 차를 가져와 성윤의 앞에 놓는다.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퇴근해서 대접할 게 없어요. 입에 맞을까 모르겠네요.”

정석태 회장은 권력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대한민국 언론을 주물렀던 사람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성윤 같은 미약한 존재가 그를 독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년은 쓸쓸했다.

일선에서 물러난 후 곁에 남은 사람은 없었다.

함께했던 아내도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낚시나 하며 세월을 보내는 중이다.

그리고 그는 지난 삶을 후회한다.

돈을 벌기 위해, 권력을 위해 거짓 기사를 쓰고 내뱉었던 지난 날······.

이제 그동안의 죗값을 씻으려 한다.

정석태 회장이 찻잔을 내려 두며 성윤을 향했다.

“그래, 찾아온 이유가 뭡니까?”

성윤은 말을 빙빙 돌리지 않았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무너뜨리고 싶은 사람이 생겼습니다.”

지난번 주진만 원내 대표와 낚시를 할 때다.

정석태 회장은 성윤에게 무너뜨리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그럼, 10년이고 100년이고 쫓을 거라면서······.

“말씀해 보세요.”

“한상국 대통령의 사위 엄대필 변호사를 무너뜨리고 싶습니다.”

정석태 회장의 표정이 굳는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센 이름이다.

대통령의 사위를 건든다는 것은 곧 대통령의 목에 칼을 댄다는 것이다.

그가 다시 찻잔을 손에 쥐었다.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다.

성윤과 했던 가벼운 약속이 이렇게 돌아올 줄 예상 못 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대통령······.”

잠시 중얼대던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대통령의 사위를 건든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고 계시는 겁니까?” “네.”

“그럼, 사위의 문제가 터져도 대통령은 대통령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네.”

대통령의 가족 비리는 참 지겨울 정도로 꾸준히 터져 나왔다.

아들, 딸, 아내, 형제, 사위, 며느리······.

하지만 가족의 문제가 터져도 대통령은 무사하다.

도덕성에 흠이 가고 레임덕이 더 가속화된 것이 전부다.

“제가 이성윤 의원님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네.”

정석태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어려워요, 대통령과 싸운다는 것은······.”

성윤이 그의 말을 막았다.

“한상국 대통령이 대한당의 당 대표일 때, 회장님을 구속하려 했죠. 이유는 치졸했어요. 회장님이 대한당의 다른 계파와 손잡았다는 것이었으니까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에 정석태 회장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성윤은 계속 과거를 끄집어 냈다.

“한상국 대통령은 이런저런 죄를 던져 놓으며 회장님을 옭아맸습니다. 검찰이 압수 수색을 하고 국세청이 움직이고. 그 일로 회장님의 양아들이 목숨을 끊었다고 들었습니다. 회장님은 사회에 천억을 환원했고요. 그 복수······ 돕겠습니다.”

정석태 회장이 테이블 위의 담배를 손에 쥔다.

떨리는 손으로 라이터를 만졌지만 틱틱거릴 뿐이다.

불꽃이 올라오지 않았다.

성윤이 자신의 라이터에 불을 붙여 정석태 회장의 담배에 가져다 댔다.

불을 붙인 정석태 회장이 성윤을 향했다.

“제 뒷조사를 했습니까?”

“네?”

“그 일을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한상국과 비서실장 그리고 당시 검찰총장뿐입니다. 그런데 이 의원님이 어떻게······?”

그러고 보니, 정석태 회장의 사후에 알려진진 사건이다.

꿈속에서도 한상국 대통령은 퇴임 후에 권력을 가지려 했다.

그걸 아니꼽게 생각했던 당시의 검찰총장이 세상에 공개했었다.

작은 실수였지만 이런 일이야 얼버무릴 수 있다.

“회장님······ 저도 정보통이 있습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는 법이고요.”

정석태 회장은 더 꼬치꼬치 캐물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흐린 연기를 내뱉었다.

손은 여전히 가늘게 떨린다.

지옥 같았던 과거를 떠올리고 있어서다.

그는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입양했다.

아내와 함께 친자식처럼 키웠다.

아니, 친자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상국의 더러운 입김에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언론은 쉬쉬했다.

그가 언론사의 사장이었지만 권력자의 그늘 아래서 할 수 있는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내는 그를 원망했다.

-왜 아무것도 못 해요! 우리 아들이 죽었잖아!

비명 같은 목소리가 계속되었다.

그러다 아내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남을 밟고 부수고 거짓말을 해서 정상에 올랐지만 그동안 걸어온 발자국이 발목을 잡고 있었다.

“남은 시간 동안 좋은 일만 하다가 떠나려고 했는데······.”

정석태 회장이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천천히 시선을 들어 성윤을 본다.

그리고 낮지만 강한 어조로 말을 잇는다. “좋은 일 하기 전에 한상국 그 인간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는 것은 봐야겠습니다.”

정석태 회장이 결심했다.

성윤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큰 결심 감사드립니다.”

“그래요. 그럼, 이제 대통령 사위의 그림자를 밟아 봅시다. 뭐가 있습니까?”

성윤은 가져왔던 서류 봉투를 건넸다.

정석태 회장이 내용물을 확인한다.

여러 장의 사진이었다.

엄대필이 양아치를 만나 뇌물을 받는 장면을 찍은 거다.

비록 현금은 보이지 않았지만 상징적인 과일 박스가 수북했다.

그것도 한두 명을 만난 게 아니다.

“허 참······.”

정석태 회장의 입에서 어이없다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지금껏 돈 처먹은 대통령의 가족은 많이 봤지만 이렇게 탐욕스러운 놈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이 나왔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룸살롱에 들어가는 것.

“누구죠?”

“청와대 사람들입니다.”

“청와대요?”

정석태 회장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와대가 직접 엄대필 변호사를 찾아갔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불법행위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눈감아 줬다는 증거입니다.”

아니어도 상관없다.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정석태 회장이 사진을 내려 두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 사진을 공개하면 다음 여당은 민국당이 될 겁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성윤은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민국당 경선에서 누가 승리할 것 같습니까?”

지금까지의 대화와 전혀 이어지지 않는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정석태 회장은 허투루 듣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민한다.

“글쎄요, 지금으로 본다면 민유헌 대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전 도제성 의원이 될 것 같습니다.”

“도제성 의원요?”

“네.”

정석태 회장은 표정은 황당했다.

도제성 의원은 어떤 존재감도 없다.

이번에 후보에 출마하지 않았다면 이름조차 희미했을 거다.

그런데 도제성이라니······.

“도제성 의원이 민국당 후보가 된다는 것은 이성윤 의원님이 지금 당장 서울 시장에 당선되는 것보다 희박하다고 생각합니다.”

“도제성 의원이 될 겁니다.”

확신에 찬 목소리다.

정석태 회장의 눈에 의아함이 솟았다.

성윤이 말을 이었다.

“경선을 지켜보면 아실 거예요. 그리고 대선은 더 모르는 겁니다. 대한당이 우세하네, 민국당이 우세하네 하는 것은 지금의 이야기죠. 전혀 다른 결과도 나올 수 있습니다.”

정석태 회장이 슬쩍 웃었다.

“이번에도 내기 하나 할까요? 의원님의 말씀대로 도제성 의원이 민국당의 후보가 되면······ 이 노인네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 들어드리죠.” 그는 지금도 도제성 의원이 민국당 후보가 될 것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성윤의 안목을 조금은 지켜보고 싶었다.

* * *

며칠 후.

한상국 대통령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의 미간은 일그러져 있다.

화면에 서용우 전 총리가 보였다.

-대한당은 새롭게 바뀌어야 합니다! 구태의연한 정치를 버리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야 합니다!

서용우 전 총리는 성윤을 통해 한상국 대통령의 몰락이 다가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상국 대통령과의 거리를 벌리려 한다.

그의 입에서 나온 구태의연한 정치의 타깃은 누가 뭐라 해도 한상국 대통령이었다.

“저놈이······?”

서용우 전 총리는 한상국 대통령의 계파다.

그것도 오른팔로 불린다.

그런데 지금 대놓고 한상국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었다.

-새로운 정권! 새로운 대한민국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한상국 정부는 서민에게 책임을 전가했고······!

지금의 말만 들으면 총리직을 그만둔 이유가 마치 정부의 부패함 때문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린벨트 해제를 기억하십니까? 서민을 위한다며 임대주택을 마련한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분양 가격이 얼마인지 아시는 분은 없습니다. 정부는 그린벨트를 해제를 통해 땅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전 총리로서 참담한 심정을 참을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으로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텔레비전 화면에 서용우 전 총리의 얼굴이 가득 찼다.

그의 눈빛은 이글이글 타들어 가고 있다.

이어지는 폭로에 한상국 대통령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비서실장······. 서용우 연락해.”

비서실장은 이미 휴대폰을 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전화기가 꺼져 있어······.

“전화가 꺼져 있습니다.”

“주변에 연락해서 찾아내! 당장!”

“아, 네.”

벼락같은 호통 소리에 비서실장은 이리저리 전화를 돌린다.

한상국 대통령은 이마를 쥐었다.

서용우 전 총리가 등을 돌렸다.

주인 앞에서 꼬리를 흔들던 개가 사나운 이빨을 드러냈다.

이럴 때는 확실히 서열을 정리해야 한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개새끼인지······.

한상국 대통령은 이런 일에는 전문이었다.

“오랜만에 식구들 얼굴 좀 봐야겠어. 서용우를 제외하고 모두 모이라고 해.”

권력에 의리는 없다.

정치인은 강자를 좇는다.

한상국 대통령이 레임덕이라 해도 그는 강자다.

계파 인물들은 서용우 전 총리를 버리고 한상국 대통령의 손을 잡을 것이다.

그건 분명했다.

‘내 지지 기반이 없으면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는 놈이 감히······.’

한상국 대통령은 서용우 전 총리를 자근자근 짓밟아 버릴 생각이었다.

한상국 대통령의 그늘 아래가 아니면 잔인한 태양에 말라 죽을 놈이 겁 없이 덤볐으니까.

한상국 대통령은 입술을 잘근 씹었다.

비서실장은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전 의원님? 청와대입니다. 오늘 밤 9시에 청와대로 오십시오.”

비서실장이 또 다른 전화번호를 찾았다.

그때 그의 휴대폰이 지이잉, 진동을 울린다.

‘어?’

비서실장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 휴대폰을 귀에 댄다.

-한동일보 오 부사장입니다.

목소리가 다급하다.

비서실장의 눈동자가 텔레비전으로 향했다.

화면에는 서용우 전 총리에 관한 뉴스가 계속 나오는 중이다.

‘서용우의 배신······ 그리고 한동일보 부사장······.’

뭔가 불길했다.

하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죠?”

-1시간 후에 기사가 올라갈 겁니다. 관련 내용 메일로 보내겠습니다. 회장 지시라 제 손으론 막을 수 없어서······.

부사장은 알 수 없는 말만 지껄이고 통화를 종료했다.

곧 메일이 도착했다.

메일을 확인한 비서실장의 얼굴이 종이처럼 구겨졌다.

“대······. 대통령님.”

“뭐야?”

비서실장이 한상국 대통령에게 재빨리 휴대폰을 건넸다.

“한동일보 정 회장의 지시라고 합니다. 1시간 후에 기사를 올릴 거랍니다.”

“한동일보?”

여기까지 한상국 대통령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하지만 휴대폰의 화면에서 엄대필의 얼굴이 보이는 순간······.

그의 눈동자에 핏발이 쫙쫙 서기 시작했다.

핏기가 빠진 얼굴은 석고상처럼 허옇게 굳어 갔다.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입술만 더듬더듬 움직이던 그가 소리를 내질렀다.

“정석태! 당장 연락해!”

“그, 그게······ 오늘 아침에 출국했다고 합니다.”

“찾아! 찾으라고, 이 새끼야! 서용우도 못 찾고 정석태까지! 넌 도대체 할 줄 아는 게 뭐야!”

정석태 회장은 가볍게 폭탄을 던져 두고 한국을 떠났다.

지금쯤 휴양지에 도착해 한국 뉴스를 즐기고 있을 거다.

데킬라를 한 잔 마시면서······.

< 대통령의 끝은 왜... (2)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