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37화 (137/300)

< 드러나는 발톱. - (4) >

박무혁 의원이 천천히 성윤을 본다.

그리고 성윤의 잔에 술을 채우며 입을 열었다.

“어.”

* * *

대한당도 본격적으로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가장 먼저 깃발을 세운 것은 서용우 전 총리다.

그가 기자들 앞에 섰다.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이는 가운데, 서용우 전 총리는 강력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당원 동지 여러분! 이 자리에 서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화면이 바뀌며 아나운서가 나타났다.

-서용우 전 총리를 시작으로 대한당도 경선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서용우 전 총리는 특권 없는 사회, 갑질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며······.”

텔레비전이 ‘삑’ 소리와 함께 종료됐다.

한상국 대통령이 리모컨을 내려 두며 앞을 바라본다.

비서실장이 앉아 있다.

“국민의 시선이 바뀌었어.”

각 당의 대선 후보 경선으로 난리다.

국민과 언론은 대통령을 보지 않는다.

한상국 대통령은 지금을 노렸다.

“돈이 필요하겠지?”

그는 퇴임 후에도 계파를 유지하고 권력을 놓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오른팔인 서용우 전 총리를 대선 후보로 밀었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서용우 전 총리는 대통령의 가족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말 잘 듣는 충견이었지만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

권력의 유지를 위해 전 정권을 물어뜯고 찢어발기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니까.

그게 권력이다.

그 때문에 한상국 대통령은 사위인 엄대필을 꽂으려 한다.

하지만 엄대필은 아직 모자라다.

사법 고시를 패스한 뛰어난 머리가 있지만 정계에서 그 정도 스펙은 우습다.

게다가 엄대필 역시 잔머리를 굴리지만 정계에 있는 인간들은 몇 수 앞을 생각하는 괴물들이다.

엄대필 따위는 손바닥 위에서 장난감처럼 놀아날 거다.

그래서 한상국 대통령은 엄대필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직접 계파를 유지하려 했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해.’

곳간이 가득해야 똥파리가 떠나지 않는다.

권력도 돈이 있을 때 유지될 수 있다.

비서실장이 입을 연다.

“성종에 연락해 볼까요?”

한상국 대통령은 고개를 저었다.

“성종 윤 회장, 그 여우 같은 인간이 정권 말기의 대통령에게 큰돈을 쏠 것 같아? 돈이 없다느니 어쨌느니 하며 앓는 소리나 할 게 분명해.”

그리고 한상국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단발성 돈이 아니다.

단발성은 말 그대로 한 순간에 끝난다.

그러면 또 손을 벌려야 한다.

노예의 길로 들어서는 일이다.

그것은 피해야 했다.

한상국 대통령은 써도 써도 끊임없이 돈이 나오는 마법의 지갑을 원했다. 비서실장이 턱을 매만지며 한참 고심에 빠졌다.

그가 조심스레 입술을 움직였다.

“현금 많은 중소기업을 알아보겠습니다. 국가사업 하나 던져 주고 해외 진출도 적극 지원해 주는 거죠.”

“그래서 얻는 것은?”

“동일한 지분의 캐피털 회사입니다. 대통령님의 처가나 조카 중 하나를 골라 대표에 앉혀 두고 배당금을 받는 식으로 움직이면 탈 날 일도 없을 겁니다.”

한상국 대통령이 턱을 매만졌다.

“혹시나 대선에서 서 총리가 패배하고 민국당이 정권을 잡으면? 쑤시지 않을까?”

비서실장이 픽 웃었다.

“가만히 있을 겁니다. 지들도 똑같이 하고 있으니까요.”

한상국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 쓰는 사람은 없을 거다.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니까.

오히려 중소기업을 육성했다며 칭찬받을 수도 있다.

한상국 대통령이 팔짱을 끼며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중소기업 하는 놈이 동일한 지분을 뱉어 낼까?”

“반길 겁니다. 5년에서 10년, 정권이 바뀌어도 지원을 받도록 로또를 만들어 줄 테니까요. 만약 외면하면 부수면 되고요.”

“밑그림만 그려 봐.”

밑그림만 그린다.

색칠은 하지 않는다.

그렸던 선을 지웠다가 그렸다가 완벽할 때까지 계속 그릴 거다.

색칠은 그 후에 하는 거다.

지금은 정권 말기다.

한상국 대통령은 그 살얼음판을 한걸음, 한걸음을 신중하게 디디며 뒷주머니를 채우고 있다.

“이런 것은 초기에 준비했어야 하는데......”

한상국 대통령의 입에서 아쉬운 소리가 흘렀다.

대통령의 정권 초기와 말기는 상당히 다르다.

초기에는 대기업이 달라붙는다.

어떻게든 대통령을 한번 만나 보려고 손바닥을 비비며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든다.

그때는 잡놈들이 끼어들 틈이 없다.

하지만 말기가 되면 대기업이 엉덩이를 뺀다.

그들은 돈이 되는 다음 정권을 찾기 시작한다.

그럼, 지금껏 숨어 있던 양아치들이 스리슬쩍 다가오기 시작한다.

물론 놈들이 다이렉트로 대통령을 만날 수는 없다.

그래서 놈들이 노리는 것은 가족이다.

대통령의 아내, 대통령의 아들, 딸, 대통령의 형제, 사돈에 팔촌까지.

돈을 주고 매수하며 국가사업을 받거나 돈이 될 정보를 얻는다.

한상국 대통령은 정권 말기다.

그것도 레임덕에 허덕이는 뒷방 늙은이로 불린다.

영원할 것 같은 권력은 끝을 향한다.

뒤늦게 노후를 준비하려 하지만 대기업은 이미 등을 돌렸다.

어쩔 수 없이 양아치를 찾아야 한다.

불법적인 일을 해야 하지만 그런 것은 두렵지 않았다.

자신의 발자국은 빗자루질을 하고 물을 뿌려 먼지까지 씻어 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가족의 발자국은 감추기 어렵다.

어디서 묻혀 온 진흙인지 찾아내는 것도 일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하던 한상국 대통령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린다.

그리고 다급히 말했다.

“지희 주변에 사람을 붙여!”

지희는 한상국 대통령의 딸이다.

권력의 단맛만 맛보며 자랐다.

어려움을 모르고 욕심만 많다.

양아치들이 혓바닥을 놀리면 넙죽 돈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게 꿀인지 독인지도 모른 채. 이미 몇 번이나 더러운 돈을 받아 명품 가방 따위를 샀던 전력이 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엄 서방 불러!”

“엄 변호사는 검사 출신입니다. 뇌물이 무서운 것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똥오줌은 가릴 테고요.”

“뇌물 무서운 걸 몰라서 떡검이 생기나? 똥오줌 가릴 줄 아는 놈이 국회의원들 앞에서 모가지를 세워? 어서 불러!”

“알, 알겠습니다.”

비서실장은 자신의 논리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했다.

재빨리 주소록에서 엄대필의 이름을 검색한다.

그 시각, 경기도 광주의 한정식집.

엄대필은 황산 캐피털이라는 회사의 대표와 마주 앉아 있었다.

캐피털 대표가 입을 열었다.

“작은 회사 하나를 인수하고 싶습니다.”

엄대필은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자세만 보면 5선급 국회의원이다.

어깨에는 힘이 꽉 들어가 있고 눈은 상대를 내리깔아 본다.

국회의원과 함께 놀아서 그런지 권력의 뽕에 취해 있다.

이미 스스로를 권력자라고 생각했다.

“도와드리고 싶지만 제가 힘이 어디에 있다고요.”

“같이 술만 마셔 주시면 됩니다. 그게 우리같은 놈들에게는 큰 힘이니까요.”

엄대필은 대통령의 사위다.

앉아 있기만 해도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일반 사람에게는 두려운 이름이다.

엄대필이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거 아버님께 누가 되는 일 같은데······. 제가 아버님 얼굴을 어떻게 보라고요......”

그는 일부러 ‘아버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리고 캐피털 대표는 엄대필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돈을 달라는 거다.

그럼, 못 이기는 척 도와주겠다는 뜻이다.

‘개새끼.’

저런 새끼가 대통령의 사위라고 거들먹거리는 게 정말 꼴보기 싫었다.

하지만 겉과 속은 달라야 한다.

캐피털 대표는 비굴하게 웃으며 입을 연다.

“곧 있으면 추석입니다. 과일을 준비했는데······. 들고 오기는 무겁고 트렁크에 넣어 드릴까요?”

과일은 무슨······. 돈이다.

엄대필은 모른 척 차 키를 내려 둔다.

“과일요? 내가 또 사과를 좋아하는데······.”

대표는 비굴한 미소를 지우지 않고 차 키를 손에 쥐었다.

하지만 엄대필은 모른다.

비굴한 미소 속에 칼이 있다는 것을······.

대표는 엄대필을 앞에 두고 탈탈탈 털어먹을 생각이다.

그때, 엄대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청와대다.

엄대필은 휴대폰을 다급히 귀에 댔다.

“네, 엄대필입니다.”

-들어오시라는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한상국 대통령은 엄대필에게 뇌물을 받지 말라고 지시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늦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서운 법이다.

한상국 대통령이 전면에 나선다고 해도 엄대필의 발자국을 지우기는 힘들 거다.

그의 신발에는 이미 많은 진흙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모든 비리를 솔직히 고백할 수 있는 사위란 존재하지 않는다. 엄대필은 서둘러 청와대로 향했다.

물론 자동차의 트렁크에는 사과 박스가 가득했다.

“부르셨습니까?”

“앉아.”

한상국 대통령의 표정은 평소와 다르다.

더 차갑고 냉혹해 보인다.

엄대필은 조심스레 한상국 대통령과 마주 앉았다.

“무슨 일로······?”

“최근에 누구 만나고 있어. 한 명도 빠짐없이 읊어 봐.”

“대한당 의원들 중에 캠프를 구성할 사람들을 만나 안면을 익히고 있습니다. 최근에 만난 사람이 시흥에 신 의원, 오산에 유 의원······.”

한참을 듣던 한상국 대통령이 못 믿겠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정말이야? 다른 사람 없어?”

“네.”

엄대필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내뱉었다.

아니, 전부 거짓은 아니다.

그 국회의원들을 만난 것은 맞다.

뇌물을 줬던 사람과 여자들의 이름을 제외했을 뿐이다.

한상국 대통령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엄대필의 모습을 샅샅이 살폈다.

“떡값 찔러주는 놈들을 조심해. 정치에 입문도 하기 전에 몸에 떡가루를 치덕치덕 발라서 좋을 것 없어. 떡가루 하나가 돌덩이가 돼서 날아올 거야.”

“아······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엄대필은 한상국 대통령의 매서운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어쩐지 눈동자를 마주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럼, 나가 봐.”

“아, 예.”

엄대필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한상국 대통령의 앞에서 벗어났다.

그 모습을 한상국 대통령이 차가운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문이 닫히자 옆에 앉아 있던 비서실장을 향했다.

“저놈... 의심스럽지?”

“네, 아무래도 달라붙는 인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놈 옆에도 사람 붙여.”

“네.”

* * *

며칠 후, 서안시 사무실.

문이 딸칵 열렸다.

정우가 들어왔다.

책상 앞에 선 정우가 입을 연다.

“여기요.”

두툼한 서류 봉투가 책상에 놓였다.

열어 보자 사진이 후드득 떨어진다.

엄대필의 자동차 트렁크에 과일 박스가 실리는 사진이다.

“또?”

“네.”

“지금까지 대략 얼마야?”

“30억 정도요.”

“30억? 몇 달도 안돼서?”

“네.”

성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꿈속에서도 이놈은 이렇게 몰락했다.

돈 무서운 줄 모르고 날름날름 받아 처먹다가 체해 버렸다.

그리고 검찰의 칼이 한상국 대통령까지 향하게 만들었다.

말 그대로 사위 하나 잘 못 얻었다가 집안이 패가망신한 거다. 그런데, 이번은 더 심하다.

세상 모든 돈을 처먹을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정우가 입을 연다.

“슬슬 터뜨릴까요?”

“아니. 더 신나게 날뛰라고 해. 이놈에게 돈 찔러준 인간들도 다 같이 몰락시켜야지.”

“한상국 대통령이 이 사실을 알면 기겁하겠네요.”

“기겁만 할까?”

“난리가 나겠죠.”

정우가 한숨을 내뱉었다.

그동안 한상국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라를 챙기지 않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워 나간 전형적인 생활형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뭐, 어쨌든... 의원님이 말씀하신 연구소 있잖아요?”

“어? 어.”

성윤은 지금 정책 연구소를 준비하고 있다.

경제부터 외교, 국방, 복지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영입해서 조금 더 나은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다.

국회의원이 만능은 아니다.

도움을 받을 사람은 필요하다.

“일단 외교쪽은 서지유 씨에게 언질을 넣었어요.”

서지유는 일본에서 성폭행을 당할 뻔했던 외교관이다.

지금은 외교관을 그만 둔 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뭐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경제는......”

그때, 성윤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는 오강민이다.

성윤은 정우에게 잠깐만 기다려 달라는 신호를 보낸 후 휴대폰을 귀에 댔다.

“네, 이성윤입니다.”

-엄대필의 옆에 사람이 붙었습니다. 쫓아다니면서 감시하는 것 같은데······

“누가 지시한 거죠?”

-청와대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성윤은 통화를 종료했다.

‘한상국 대통령이 눈치를 챘어.’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줄 알았다.

엄대필은 대통령의 눈과 귀가 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확실히 눈치가 빠르다.

네티즌들이 ‘멍청하다.’, ‘뇌가 없다.’ 하고 놀려 대지만 대한민국 정점에 오른 사람이다.

만만히 볼 수는 없었다.

성윤이 정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방금 한 말 취소.”

“네? 어떤 거요?”

“엄대필이 더 신나게 날뛰었으면 했던 것... 취소하고 슬슬 터뜨리자.”

한상국 대통령은 엄대필이 밟고 지나온 길의 발자국을 지우려 할 게 분명하다.

모든 것을 지울 수는 없겠지만 그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도 많을 거다.

엄대필이 모든 죗값을 받을 수 있도록 빠르게 사냥할 생각이다.

문제는······.

‘엄대필을 누구한테 넘기지?’

그를 원하는 사람은 둘이다.

한 명은 박무혁 의원.

그리고 또 한 명은 서용우 전 총리.

누구의 손에 엄대필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릴 거다.

박무혁 의원에게 들어가면 서용우 전 총리와 대통령이 끝장날 것이고 서용우 전 총리에게 들어가면 대통령만 끝장날 것이다. 잠시 생각하던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 드러나는 발톱. -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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