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능한 자의 자만. - (1) >
설미혜의 행동이 멈칫거렸다.
그녀가 고개를 틀며 성윤을 본다.
그러더니 더듬더듬 묻는다.
“······대통령? 지금 한상국 대통령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네.”
성윤의 말투는 대수롭지 않았다.
동네 친구를 말하는 것 같았다.
설미혜가 손에 쥐었던 담배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통령의 사위······. 위험해요.”
“위험하다니······ 웃기네요. 여기는 대기업 이사들도 오고 국회의원도 옵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사위가 뭔데요? 돈 펑펑 쓰고 정보 많이 뱉어 내는 손님을 얻는 거예요. 이 룸살롱의 존재 가치와 딱 맞지 않나요?”
“의원님께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모르겠어요.”
성윤은 빙긋이 웃었다.
“별생각 없습니다. 알 필요도 없고요.”
말해 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성윤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자신의 의사를 밝히지 않는다.
일방적인 지시만 한다.
설미혜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래서 정치인이 싫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우습게 본다.
서민보다 못한 쓰레기로 여긴다.
웃음을 팔고 술을 따르며 얻은 정보를 쉽게 생각한다.
다른 국가의 정치인은 다르다고 들었다.
정보 제공자 또는 깡패를 대우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이들을 철저히 도구로만 본다.
쓰임을 다하면 버리는······.
성윤은 그녀의 속마음을 들었다.
술잔을 손에 쥐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
“언젠가 말했죠?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 그것은 땀 흘리는 분들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요. 감히 당신 같은 분들이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라고요. 그 생각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지만 도와주시면 보답은 하죠. 설미혜 씨가 다시 양지로 나올 수 있게 돕겠습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을 당당히 할 수 있게 돕겠습니다.”
설미혜가 조심스레 성윤을 바라봤다.
10여 년 전, 그녀는 앞날이 화려하게 펼쳐질 인기 연예인이었다.
잘못된 만남으로 이곳까지 기어들어 왔다.
‘그 일을 알고 있나?’
물론 성윤은 잘 몰랐다.
그녀의 속마음을 듣고 ‘무슨 일이 있었구나······.’ 하고 예상하고 있는 게 전부였다.
성윤이 고개를 저으며 술잔을 내려 뒀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요. 일단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통령의 사위······ 손님으로 받겠습니까?”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독단적인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대통령은 대통령이다.
네티즌에게 병신 취급을 받아도 대한민국 통수권자다.
성윤이 어떤 계획을 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잘못되었을 경우 룸살롱이 박살 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거다.
설미혜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잠시만······.”
복도로 나가며 휴대폰을 꺼내 귀에 댔다.
“어르신······ 이성윤 의원이 왔어요.”
-술이나 처먹으려고 온 것은 아니지? 이유가 뭔가?
“대통령의 사위를 손님으로 소개하겠다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대통령의 사위?
상대도 당황했나 보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기다려. 생각해 보고 연락하지.
“오래 걸릴까요?”
-10분.
“네.”
설미혜는 전화를 기다리며 빈 룸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흐릿한 연기가 공간을 채울 때 그녀의 눈빛에 의문이 가득 담겼다.
‘뭐지?’
방금 그녀는 쩐주와 통화했다.
실질적인 이 룸살롱의 지배자다.
그는 종로에서 사채업을 크게 하고 있다.
‘그런데, 뒤에 또 누가 있나?’
쩐주는 생각해 본 후 연락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어투가 꼭 누군가에게 물어보려 하는 것 같았다.
‘설마······ 지시를 받는 거야?’
쩐주의 당황스러운 목소리는 처음이었다.
그녀가 고운 미간을 찡그리며 생각에 빠진다.
잠시 후, 그녀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네, 어르신.”
그녀는 모른 척 대답한다.
수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성윤이 하자는 대로 해.
“네.”
-그리고 대통령 사위에 관한 정보를 메일로 보냈어. 이성윤과 공유해도 좋아. 그리고 읽어 본 후 대응하도록 해.
그녀는 룸에서 일어나 사무실로 향했다.
메일을 열어 쩐주가 보낸 파일을 인쇄한다.
확인 후 다시 성윤이 있는 룸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연 그녀가 살짝 웃었다.
“오래 기다리셨죠?”
성윤이 손을 저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설미혜가 성윤의 맞은편에 앉으며 인쇄한 서류를 건넸다.
“대통령의 사위면 엄대필 변호사네요. 간단히 조사한 거예요. 읽어 보세요.”
“조사까지 했다면······ 하겠다는 것인가요?”
“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성윤이 슬쩍 웃었다.
“그럼, 자세한 이야기를 하죠. 3일 후, 엄대필이 이곳에 올 겁니다. 그때 권력에 대한 환상을 심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권력에 대한 환상?”
“그런 것 있잖아요? 권력자가 누리는 뒷이야기. 사람들의 상상을 자극하는 권력에 대한 말초적인 환상 그리고 마약 같은 일상······.”
* * *
며칠 후, 청와대.
한상국 대통령이 엄대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만난다고?”
“네, 저녁을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한상국 대통령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엄대필의 표정을 살핀다.
“이성윤은 어려. 하지만 정치판에서 몇 년을 굴러먹은 놈이야. 만만히 보지 마. 쉽게 생각해서는 안 돼.”
“네, 정치의 선배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입으로는 겸손을 떨고 있다.
하지만 눈에는 자신감이 가득하다.
자신감은 교만이 되어 겉멋으로 치장되고 있다.
한상국 대통령은 미간을 찌푸렸다.
정계에서 엄대필 같은 존재는 늑대에게 둘러싸인 어린 양과 같다.
언제 씹혀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서용우 전 총리와 함께 가는 게 아니었다면 이성윤을 만나는 것을 결사반대했을 거다.
한상국 대통령이 찻잔을 내려 두며 입을 연다.
“이성윤이 하는 질문에 대답만 해. 먼저 입을 열지 마. 나서지 마.”
“네.”
“어떤 사람인지 관찰이나 하고 와. 숟가락을 드는 모습, 어느 반찬을 먼저 손에 쥐는지, 술은 어느 타이밍에 따르고 마시는지······ 자네를 어떤 눈빛으로 보는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다시 한번 당부했다.
엄대필은 넙죽 대답한다.
“네.”
대답은 잘한다.
한상국 대통령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 가 봐.”
엄대필은 청와대를 빠져나왔다.
차를 타고 약속 장소로 떠난다.
백미러를 통해 멀어지는 정문을 힐끗 바라봤다.
대통령이 사는 곳.
어쩌면 먼 훗날 자신의 집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엄대필의 입꼬리가 휘어졌다.
‘내가 못생긴 년이랑 결혼한 이유가 이거지!’
눈빛에 탐욕이 일렁거렸다.
그는 어린 시절 판자촌에서 살아왔다.
성공에 대한 욕망이 강했다.
첫 목표는 일류 대학이었고 두 번째 목표는 검사였다.
검사가 되면 세상이 바뀔 줄 알았다.
하지만 돈 없고 백 없는 놈은 검사가 되어도 다를 게 없었다.
이용만 당했다.
찔러주는 돈에 굽실거려야 했다.
그래서 당시 대한당의 당 대표였던 한상국의 딸과 만났다.
사랑은 없었다.
오로지 전략적인 목표가 전부였다.
권력이란 하늘로 오르는 동아줄이니까.
이후 예상했던 대로 엘리트 코스를 밟게 되었다.
말 그대로 쭉쭉 치고 나갔다.
잘나가던 검사를 그만둔 후 변호사가 되었다.
돈을 긁어모았다.
전관예우 따위는 없었다. 대통령의 사위의 앞에 반론할 용기 있는 검사와 판사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는 권력의 끝이라는 정치인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다가왔다.
한상국 대통령은 여전히 집무실에 있었다.
팔짱을 낀 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쉰다.
‘아무래도 불안해.’
멍청한 사위를 보고 있으니 서용우 전 총리도 의심스럽다.
자신의 사위를 이용하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안 되겠어······.’
한상국 대통령이 휴대폰을 귀에 댔다.
“이 실장······ 부탁이 있어.”
* * *
그 시각, 성윤은 전통 찻집에 앉아 통화를 하고 있었다.
상대는 강원도에서 만났던 김재형 검사다.
지금은 서울 중앙 지검에 있다.
“아, 네. 감사합니다.”
통화를 종료한 성윤이 앞을 바라봤다.
앞에는 서용우 전 총리가 보였다.
“엄대필 변호사······ 검사 시절에 뇌물 밝히기로 유명했다고 하네요.”
성윤이 휴대폰에서 기사를 찾아 서용우 전 총리의 앞으로 밀어 뒀다.
-“× 같은 검사 ×새끼 주둥이에 1억을 박아 줬더니.” 정 회장, 검찰 로비 정황 드러나
서용우 전 총리가 기사의 제목을 확인한 후 다시 성윤을 본다.
“이게 뭔가?”
“1억 받은 검사가 엄대필이라고 합니다.”
“그럴 사람으로 보였어.”
“······그런 사람과 같이 가실 겁니까?”
서용우 전 총리는 짧은 한숨을 내뱉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대선의 길은 험난하다.
말 그대로 탈탈탈 털린다.
총선에서 일어나는 비방은 귀여운 수준이다.
상대 후보는 서용우 전 총리가 걸어온 인생을 현미경으로 관찰할 거다.
그리고 수십 년 전, 서용우 전 총리는 기억에도 없는 철없던 시절에 했던 말 한마디를 찾아내 사과하라 요구할 게 분명하다.
검증이라는 말로 상대의 가슴을 후비고 쑤시는 일은 자신만 당하는 게 아니다.
다음은 가족이다.
그리고 이후는 캠프 구성원이 털린다.
그 과정에서 엄대필은 위험 요소다.
서용우 전 총리가 바짝 마른 입술을 움직였다.
“어쩌겠나?”
그는 한상국 대통령의 계파다.
한상국 대통령이 도와주지 않으면 경선에 나서기도 힘들다.
결국, 엄대필을 끌어안아야 한다.
“총리님의 어깨 위의 무거운 짐이 될 겁니다.”
정치는 사람이 한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한다면 누가 뭐라고 해도 인사다.
잘못된 인간을 옆에 두면,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리던 권력이 하루아침에 개똥같이 변할 수 있다. 서용우 전 총리가 턱을 쓸어 만지며 물었다.
“자네가 내 속을 뒤집어 놓으려고 이런 말을 할 사람은 아니고······. 방법이 있나?”
“괜찮으시겠습니까?”
성윤이 되물었다.
서용우 전 총리는 한상국 대통령의 오른팔이다.
그런데 엄대필을 치운다는 것은 한상국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하는 거다.
서용우 전 총리가 찻잔을 들어 입에 댄다.
“난 충신으로 남을 거야.”
“······네.”
“겉으로는······.”
서용우 전 총리가 빙긋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떤 그림을 생각하는지 들어 볼 수 있을까?”
서용우 전 총리는 성윤을 경쟁 상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같은 자리에 앉아 밥을 먹지만 서로가 다른 시대의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성윤이 입을 열었다.
“청사진을 보여 줄 생각입니다. 엄대필은 국회의원이 되면 검사였던 과거를 살려 법사위에 들어가려 할 겁니다. 자신이 모시던 검사장과 선배들이 허리를 굽히는 것을 기대하겠죠.”
성윤의 목소리는 이어졌다.
서용우 전 총리는 귀를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후 두 사람은 강남구에 있는 한정식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엄대필과 만났다.
엄대필이 최대한 좋은 미소를 그리며 말한다.
“언론에서 많이 봐서 그런지 이 의원님이 친숙하네요. 하하하.”
가벼운 악수를 한 후 자리에 앉았다.
처음 입을 연 것은 성윤이었다.
“말씀 들었습니다. 이번 후보 경선부터 서용우 총리님을 보좌하신다고요?”
“그렇게 됐습니다. 법원 밥이나 서초구 식당이 이제는 지겨워서요. 여의도 밥을 한번 먹어 보고 싶습니다.”
한상국 대통령은 엄대필에게 주어진 질문에만 대답하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어기고 있다.
여의도 밥을 먹고 싶다는 쓸데없는 비유까지 하며 자신을 높인다.
성윤은 그런 엄대필을 맞춰 줬다.
“변호사님 정도면 여의도 식당도 지겨워지실 것 같습니다. 잠시 계시다가 종로에서 드셔야죠?”
“종로요? 으핫핫핫!”
여의도에는 국회가······ 종로에는 청와대가 있다.
엄대필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렇게 술이 몇 잔 들어갔다.
엄대필의 허세는 점점 더 세졌다.
성윤이 잘 맞춰 준 것도 있지만 과할 정도였다.
“청와대가 그런 곳인 줄 몰랐습니다. 눈이 내리면 경찰들이 눈을 치우더라고요. 군대에 있을 때는 눈을 좌우로 뿌려서 버렸잖아요? 그런데, 청와대는 달라요. 뒤에 따라오는 트럭에 버리죠. 그 이유를 물어봤더니, 길은 바싹 말리고 조경에는 내려진 눈이 자연스레 녹는
게 예뻐서랍니다. 하하하하.”
자기만 청와대를 드나든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성윤은 조용히 미소를 그렸다.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니 왜 이준대에게 농락당했었는지 알 것 같았다.
특권 의식만 강하다.
깊은 생각이 없다.
앞에서 떠드는 사탕발림을 진심으로 믿는다.
그러면서 뇌물로 주는 돈은 덥석 집어 먹는다.
술과 여자 그리고 돈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부패한 권력자.
조선 시대 왕으로 태어났다면 간신이 비비는 손바닥에 나라를 망쳐 먹었을 거다.
‘이제 시작해야지.’ 성윤은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그때 휴대폰의 진동이 울린다.
정우다.
밖에서 기다리는 정우가 전화를 할 리가 없는데······.
“잠시만요.”
성윤은 몸을 일으켜 복도로 나갔다.
“어, 정우야.”
-확실하지는 않은데요. 엄대필의 꼬리를 밟은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감시?”
-네.
성윤의 입가에 어처구니없다는 웃음이 흘렀다.
엄대필의 꼬리를 쫓았다면 분명 청와대다.
‘한상국 이 인간······ 서용우 총리도 못 믿는다는 것인가?’
한상국 대통령은 권력 말기다.
자신의 권력을 잇기 위해 엄대필을 쓰려 한다.
권력에 미쳐 눈이 돌아갔다.
‘미친 새끼.’
정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쩌죠? 이대로 가면 한상국 대통령한테 보고가 들어갈 텐데요. 그럼, 계획이 어긋날 거예요. 위험할 수도 있고요. 여기서 멈출까요?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잘됐네. 한상국 대통령이 서용우 총리와 나를 신임할 기회야.”
서용우 전 총리는 성윤과 완벽하게 손을 잡을 테고.......
< 무능한 자의 자만. -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