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30화 (130/300)

< 경험치. - (1) >

* * *

다음 날 저녁.

호텔의 레스토랑이었다.

성윤은 정우와 함께 제임스를 만나고 있었다.

제임스는 계약에 대한 예의를 갖췄다며 낡은 양복을 입고 왔다.

그가 가방에서 서류를 꺼낸다.

투자를 받기 위해 나름 준비를 한 모양이다.

“이거······.”

성윤은 그가 건넨 서류를 받아 들었다.

눈으로 죽 훑는다.

제임스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사람들 월급하고 사무실 임대료······ 비품을 계산한 겁니다. 지분은······ 51%는 제가 갖고 싶은데요.”

“그럼, 제가 49%를 갖는 것인가요?”

“네.”

성윤은 종이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딱 창업에 필요한 비용만 적혀 있다.

약 10억.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적어서 웃었다.

그런데, 제임스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너무 많죠?”

성윤은 제임스를 만나기 전 오강민을 통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했다.

미국이었고 시간이 없다 보니 제한이 있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인지 알기에는 충분했다.

그는 정말 경영에는 문외한이었다.

성윤이 입을 열었다.

“49%······ 좋습니다. 이걸로 하죠. 제가 지분을 매각할 때는 제임스, 당신에게 우선 매각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약속했던 것을 지켜 주신다면 경영과 연구, 기타 어떤 것에도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아, 네.”

“그리고 투자 금액은······. 450만 달러.”

“네?”

“부족합니까?”

약 50억 원이다.

제임스의 눈이 커진다.

예상했던 것의 다섯 배니까······.

“아, 아뇨. 넘칩니다. 충분해요.”

낮에 만났던 짐 레이너와 전혀 다른 반응이다.

사람이 이러면 더 도와주고 싶은 법.

“앞으로의 과정에서 돈이 부족하면 더 투자하겠습니다. 그리고 특허에 대한 것도 짐 레이너보다 빠르게 등록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성종 그룹은 미국에서도 영향력이 있다.

각 계열사가 뿌리를 내리고 있으니까.

그리고 성윤에게는 윤 회장의 비서실장 정기화가 있다.

그를 통하면 갖가지 로비를 통해 빠르게 특허를 받을 수 있을 거다.

짐 레이너가 날고뛰어 봤자 아직은 동네 슈퍼마켓이다.

성종의 로비를 이길 수 없다.

복잡한 생각 없이 말 한 마디에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있는 것.

그것이 권력이다.

“현실화가 되면 한국에 법인을 만들어 주세요. 어차피 한국 기업과 손잡을 것이니까 나쁘지 않을 겁니다.” “아, 네.”

“한국에는 외국인 학교도 잘 운영되고 있어요. 가족 전체가 이주해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성윤이 할 말은 끝났다.

이제 정우와 제임스가 계약서를 두고 자세한 이야기를 하면 된다.

성윤이 맥주 잔을 들어 올렸다.

“반드시 성공하셨으면 합니다.”

두 사람의 잔이 부딪혔다.

그리고 정우가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두 사람은 반대편 테이블로 이동해 열심히 이야기한다.

정치인의 투자는 불법이 아니다.

해당 상임위와 겹치거나 불법적인 투자만 아니면 된다.

성윤은 빙긋이 웃으며 맥주를 입에 댔다.

투자 금액을 100억에서 50억으로 낮췄다.

게다가 지분도 49%.

제임스의 회사가 꿈속에서 본 짐 레이너의 회사를 대체하게 된다면 성윤은 수조 원의 자산가가 된다.

게다가 미국의 먹거리를 한국에서 나눠 먹을 수도 있다.

고용도 창출되고 이미지도 좋아지고 여러 가지로 나쁘지 않다.

정우와 제임스의 목소리를 듣던 성윤은 휴대폰을 귀에 댔다.

짐 레이너가 전화를 받는다.

“내일 한국에 돌아가서 자세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줄 수 있습니까?”

-너무 길어지면 곤란한데요.

“그렇게 길지는 않을 거예요.”

짐 레이너의 시간을 늘린다.

그사이 제임스가 준비하고 알을 박을 거다.

통화를 종료한 성윤은 다시 옆 테이블에서 이어지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제임스가 계약서에 사인했다.

그리고 사인된 계약서를 정우에게 넘기며 묻는다.

“그런데······ 이성윤 씨는 단순 투자자인가요?”

“네?”

“동양인이 돈이 많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자동차 회사 연결도 해 주고 특허까지 해결해 준다고 해서요.”

정우가 슬쩍 성윤을 본다.

다시 제임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가까운 미래에 한국의 대통령이 될 사람이에요.”

* * *

다음 날, 성윤과 정우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건 미친 짓이에요. 비행기를 탄 기억밖에 없어요. 다음에는 연수로 해서 좌석 업그레이드라도 하면 안 될까요?”

“응, 그건 싫어. 우리도 돈 있잖아. 왜 개인적인 일을 보러 가는데 세금을 써?”

정우는 한숨을 푹 내쉰다.

미국에서의 일정을 끝내자마자 바로 다음 날 한국행······.

허리와 다리가 끊어질 것만 같았다.

성윤이 울상을 짓고 있는 정우의 어깨에 손을 두르며 말했다.

“피곤하지? 오늘 일찍 퇴근해.”

“설마······ 일하시려고요?”

“어. 세비 받았잖아? 그럼, 일해야지.”

“하······ 제가 제 명에 못 죽을 것 같아요. 제 묘비에 꼭 써 주세요. 이성윤 의원은 악덕 고용주였다고요.”

“쏘리.”

며칠의 시간이 지났다.

여름이 다가오며 쏟아지는 햇볕이 따가운 날이었다.

성윤은 짐 레이너에게 연락해 질질 끌던 투자를 마무리 지었다.

투자를 할 수 없다고······.

그동안 제임스가 사업 준비를 끝냈다. 그리고 성종 그룹이 움직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짐 레이너는 이준대라는 투자자가 남아 있어서 그런지 쿨 하게 전화를 끊었다.

성윤은 임인혜 시장을 찾았다.

재보궐선거로 당선된 사람은 바로 업무에 투입된다.

조금이나마 공백을 메워야 해서다.

이제야 인사하러 온 것은 주변의 시선 때문이다.

아무래도 성윤은 대한당이고 그녀는 무소속이니까.

“축하합니다.”

“감사해요. 다 의원님 덕이에요.”

성윤은 임인혜 시장과 악수를 한 후 소파에 앉았다.

임인혜 시장이 지도를 펼친다.

그녀의 눈빛을 보면 성윤과 시시콜콜한 잡담을 이어 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성윤도 그게 좋았다.

“여쭤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

“말씀하세요.”

“지난 3년 동안 공단에서 일어난 산업재해를 확인했어요. 해마다 평균적으로 서른 명이 사망하고 부상자는 이백 오십 명 정도가 돼요. 숨겨진 것을 찾으면 더 많아지겠죠.”

“······.”

“그런데, 몇 가지 문제가 보였어요. 일단 느슨한 안전 규정. 그리고 병원에 도착하기까지의 시간만 충분했다면 살 수 있던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녀가 지도에 손을 대고 선을 죽 그으며 말을 이었다.

“안전 규정은 철저하게 관리 감독하는 수밖에 없어 보였어요. 하지만 병원까지의 시간 단축은······ 의원님이 성종 건설에서 받은 2조. 그 일부를 공단에서 병원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만드는 데 쓰고 싶어요.”

“버스 전용 차로처럼?”

“네. 출퇴근 시간에 사고가 터지면 밀려 있던 차량이 아무리 길을 터 줘도 앰뷸런스가 지체될 수밖에 없더라고요.”

성윤이 팔짱을 꼈다.

“해마다 사망자가 서른 명, 부상자는 이백 오십 명. 서안시는 50만 명이 사는 도시예요. 사망자는 공단보다 유흥가에 더 많죠. 그런데 그 몇 명을 위해 도로를 새로 만들면······ 시민들이 반길까요?”

임인혜 시장의 본질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비꼬듯 물었다.

임인혜 시장이 치켜뜬 눈으로 성윤을 본다.

“서안시 시민의 대부분은 공단 근로자예요.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이에요. 그리고 친구이기도 하죠. 이게 소수의 몇 명을 위한 정책인가요? 이런 일로 욕을 먹어야 한다면 감사히 먹죠.”

“······.”

“그리고 사고로 죽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도시. 제가 원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성윤은 방금 전과 달리 기분 좋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적극 돕겠습니다.”

“네?”

비꼬는 말투에서 갑자기 푸근한 표정을 지었다.

임인혜 시장은 이해되지 않나 보다.

성윤이 다시 말한다.

“적극 돕겠다고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해 주세요.”

“아, 네······.”

성윤이 찻잔을 들며 입을 열었다.

“저도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네.”

“지금은 무소속이신데, 앞으로 당적을 가지실 생각은 있나요?”

임인혜 시장은 ‘어?’ 하는 표정이다.

대답 없이 찻잔만 만지작댄다.

그녀가 정치에 입문한 것은 성윤의 덕이다.

즉, 그녀의 정치에 관해서는 성윤의 지분이 크다는 것.

한참 고민하던 그녀가 조심스레 입을 연다.

“······대한당에 들어오라는 말씀을 하시려고요?”

“제의는 있었나요?”

“대한당과 민국당 그리고 진보당······ 모든 곳에서 연락이 오기는 했어요.” “생각은요?”

임인희 시장은 대답하지 못한다.

성윤이 대한당이기 때문이다.

성윤이 편안히 앉으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하셔도 괜찮아요.”

“대한당과 민국당······ 관심 없어요. 제가 생각할 때 양 당의 이념은 수단으로 변질된 지 오래니까요.”

“진보당은?”

“저와 맞지 않아요.”

“그럼, 지금처럼 무소속으로 있겠다는 것인가요? 다음 지방선거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요?”

이번에는 대한당 후보가 물의를 일으키며 사라졌다.

그녀의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며 좋은 이미지를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 지방선거 때까지 그 이미지가 유지되기는 힘들다.

거품은 꺼지는 것이고 정치의 길을 걸으면 비난이 쌓이는 법이다.

이번은 재보궐선거였다.

다음 지방선거는 얼마 남지 않았다.

그녀가 연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좋은 모습을 보이면······ 지금과 다른 시를 만들어 내면······ 시민들이 선택해 주지 않을까요?”

아마추어 같은 소리다.

하지만 성윤에게는 그 말 역시 나쁘지 않았다.

“그 마음도 잊지 마세요.”

“······대한당에 들어오라는 말씀을 하시려는 게 아니었나요?”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언젠가 영입에 관한 제의를 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임인희 시장은 바보가 아니다.

성윤의 말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언젠가 탈당 후 창당을 생각하는 거야?’

성윤이 그 속마음을 들었다.

부드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언젠가······.”

임인희 시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네.”

성윤은 밖으로 나왔다.

정우가 따라붙으며 입을 연다.

“대표님께 연락 왔어요.”

“뭐라고 하셔?”

“내일 들르래요.”

“이유는?”

“대통령 후보 경선이겠죠?”

성윤은 휴대폰을 확인했다.

많은 부재중 통화가 찍혀 있다.

대선 후보들이다.

그들은 성윤을 영입하기 위해 앞다투어 나서고 있다.

정우가 묻는다.

“누구를 지지하실 생각이에요? 말씀해 주시면 지금부터 준비를 할게요.”

“글쎄.”

성윤은 잠시 다음 대선을 떠올렸다.

꿈속의 미래에서는 전 당대표가 경선에서 압승했다. 그가 대한당의 후보로 나섰다.

그런데 당대표가 경선에서 압승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경쟁 구도에 있던 대선 주자가 경선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경선 전에 대한당을 탈당하고 새로운 당을 창당한다.

그리고 출마해서 대한당의 표를 나눠 먹는다.

가뜩이나 병신 취급을 받던 대한당은 표까지 나눠 먹으며 처참하게 몰락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의 뒷이야기가 있었다.

민국당의 공작······.

대한당의 유력 주자를 섭외해서 탈당부터 창당 그리고 대선 후보까지 모든 길을 만들어 둔 것.

그들은 다음 대선에서 청와대를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었다.

반면 대한당은······.

여전히 밥그릇 싸움을 한다.

물론 민국당도 밥그릇 싸움을 하지만 대한당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대한당······ 민국당······.’

성윤은 어느 쪽이 대통령이 되어도 상관없었다.

누가되든 최악이라며 욕을 먹을 상황이니까.

하지만 엉망진창인 놈이 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완벽한 눈속임으로 국민을 속이는 사람은 막아야 한다.

“조금 생각해 보자.”

“네.”

성윤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성종 그룹 윤 회장의 비서실장 정기화다.

“네, 이성윤입니다.”

-미국 쪽의 일은 끝냈습니다.

“벌써요?”

-작은 회사의 특허인데······ 어려운 일은 아니죠.

“아, 감사합니다.”

-저기······.

정기화 비서실장이 뒷말을 끌었다.

어려운 이야기를 하려는 모양이다.

“말씀하세요.”

-미국의 일도 제게 유리할 것 같습니까?

그는 윤 회장의 사후를 적정한다.

그리고 성종 그룹을 꿀꺽할 계획이 있다.

도움이 된다면 개똥이라도 쓰려 한다.

성윤은 시원하게 답해 줬다.

“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만나서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히려 제가 감사할 일이군요.

성윤은 전화를 종료했다.

투자는 마무리되었다.

이제 심었던 씨앗이 꽃피우기를 기다리며 다시 정치를 해야 한다.

그 시각······.

샌프란시스코는 밤 9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30층이 훌쩍 넘는 건물.

고급 슈트를 입은 남자가 창밖을 보고 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샌프란시스코의 야경이 보인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외국인이 입을 연다.

“짐 레이너가 도주했다고 합니다.”

“우리 돈을 들고?”

“네. 잡아내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을 겁니다.”

“이왕 멀리 여행하는 김에 멕시코 구경 좀 시켜 줘.”

“알겠습니다.”

“그리고······.” 남자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누가 봐도 잘생기고 호감 있는 얼굴이 큰 키와 잘 어울린다.

이준대였다.

그가 부드럽게 입을 연다.

“이성윤이라고 했나?”

“아, 제임스의 회사에 투자한 사람요? 맞습니다. 한국의 이성윤. 아는 사람입니까?”

이준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됐어.”

이준대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한국 정계의 거물이라 불리던 강상원 의원과 접촉하려 했었다.

하지만 강상원 의원이 예상치 못하게 몰락했다.

그때도 주변에 이성윤이 있었다.

‘이성윤이라······.’

< 경험치.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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