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24화 (124/300)

< 작정하고 속이면. - (3) >

* * *

성윤은 주진만 원내 대표와 마주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신다.

주로 시시껄렁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주진만 원내 대표가 소주병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소줏값이 너무 비싸. 이제 4천 원은 기본이야. 8천 원, 1만 원 하는 곳도 생겼어. 이걸 내려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참에 총대 한번 메세요.”

주진만 원내 대표가 클클클 웃는다.

“총대 메는 김에 술값도 받고 담뱃값도 내려 봐?”

“그렇게 되면 전국 애연가들이 원내 대표님을 청와대로 모실 겁니다.”

“청와대?”

“네.”

주진만 원내 대표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청와대는 관심 없어. 파란색은 별로거든.”

“그럼, 담뱃값을 1천 원으로 내리고 백악관으로 진입하시죠. 흰색은 좋아하시잖아요?”

“백악관?”

“네.”

“난 영어를 못해. 으핫핫핫!”

주진만 원내 대표는 한참을 웃었다.

재보궐선거가 한창이지만 관심 없다는 태도다.

그러다가 주진만 원내 대표가 술잔을 들었다.

그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오강민······ 부정적인 여론이 많아.”

오강민은 안기부 출신이다.

부정적인 여론이 지배할 것은 충분히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더 큰 비난이 이어지는 중이다.

진기성의 여론 플레이가 생각 이상이었다.

주진만 원내 대표가 말을 잇는다.

“당선 가능성도 적어.”

오강민과 진기성은 더러운 공방을 이어 가고 있었다.

공방만 본다면 오강민도 만만찮게 진기성의 바짓가랑이를 물어뜯고 있다.

하지만 수원 14선거구는 민국당의 전통적인 텃밭이다.

평범한 방법으로 역전은 쉽지 않아 보였다.

“자네가 오강민을 밀었다는 것······ 정계에서는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소문이야.”

주진만 원내 대표가 술잔을 내려 뒀다.

성윤이 술병을 들어 그의 잔을 채웠다.

주진만 원내 대표가 계속 말한다.

“사람들은 지껄이지. 오강민은 당선되지 못할 거다. 수원 14선거구는 진기성이 가져갈 거다. 이성윤이 나서도 어쩔 수 없다. 그렇게 확신하는 분위기야. 대한당에서도 수원 14선거구는 애초에 관심 밖이었고······.”

주진만 원내 대표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강한 눈으로 성윤을 바라본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 봤어. 오강민이 당선되면 어떻게 될까?”

“······!”

주진만 원내 대표가 손에 쥔 술잔을 빙그르르 돌렸다.

“재보궐선거가 끝나면 대통령을 꿈꾸는 인간들이 움직일 거야. 지금껏 대선을 노리던 인간들 중에 미신을 안 믿는 놈은 보지 못했어. 대통령은 자신의 능력으로 되는 게 아니니까. 하늘이 내려 주는 것이니까. 모두들 운 좋은 놈을 옆에 두려 하지.” 빙그르르 돌던 술잔을 주진만 원내 대표가 콱 움켜쥔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강한 눈빛으로 성윤을 바라본다.

“난 자네가 신예에서 벗어나 더 컸으면 좋겠어.”

성윤의 힘은 충분히 강하다.

하지만 진짜 괴물들에 비해서는 초라하다.

아직은 그저 잘나가는 신예 중 한 사람이다.

주진만 원내 대표가 말을 이었다.

“대통령을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사람. 말 한마디에 총리가 달려오고 장관이 고개를 숙이는 권력자. 재벌이라는 인간들이 돈 보따리를 들고 자네의 집 앞에서 자네가 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그날······ 대한민국이 바뀔 것 같아.”

아직은 먼 이야기다.

주진만 원내 대표도 그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가 계속 말한다.

“그 시작이 이번 재보궐선거일 것 같아. 자네가 오강민을 당선시키면 대선 주자들이 자네를 보며 군침을 흘리겠지. 그럼 자네는 고르게 될 거야. 어떤 놈이 대통령에 가까운 사람일까······ 어떤 놈이 더 많은 보상을 줄까······. 그리고 대통령을 만들어 공신이 되도록 해.

자네의 주변에 사람이 모일 거야, 지금보다 더 많이······. 정치는 사람이야. 머릿수 많은 놈이 이기는 거야.”

사실 성윤에게 오강민과 진기성의 선거 결과는 관심 밖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강민이 진기성을 이기기는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성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면 어찌어찌 이길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이긴다고 해도 진기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패배한 것이지 정치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니까.

기회만 생기면 정계에 발을 들일 거다.

그가 정계에 들어오기 위해 시도할 때마다 막아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차라리 이번 기회를 통해 더러운 치부를 최대한 드러내게 만드는 것이 이득이다.

성윤은 그 과정에서 진기성이 흘리는 먼지를 주워 담을 계획이었다.

그리고 먼지를 풀풀 날리며 정계에 들어올 진기성을 기리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주진만 원내 대표가 말을 잇는다.

“오강민의 상대 진기성······ 내가 조금 훑어봤는데 꽤 깨끗한 놈이었어.”

“네.”

“······그런데 이 바닥을 기웃거리는 놈 중에 깨끗한 놈은 없어. 있다고 해도 공천을 받는 과정에서 더러운 것이 묻지. 이 바닥은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자기합리화를 시키는 곳이니까. 흐흐흐.”

주진만 원내 대표가 성윤의 잔을 채우며 계속 말한다.

“판을 뒤집어 봐. 자네가 킹 메이커라는 것을 대선 주자들의 머릿속에 집어넣도록 해.”

성윤은 주진만 원내 대표와 헤어진 후 택시에 올랐다.

서안시 사무실로 향하며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수원 14 선거구를 검색했다.

기사가 보인다.

-오강민과 붉은 모자. 계획된 자폭 테러였나. 의혹 증폭

-전 안기부 요원의 증언, “오강민은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가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것은 안 된다.” 사퇴 촉구

진기성 측의 공격이 보였다.

그들이 처음 기획했던 시민 단체의 사퇴 시위는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자 그들은 다음 계획으로 사퇴 서명을 받던 붉은 모자가 마치 오강민의 지시를 받은 것처럼 꾸며 역공을 펼쳤다.

역공은 성공적이었다.

오강민의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진기성 측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오강민과 함께 있던 안기부 요원을 찾아 증언을 받아 내며 기사화했다.

성윤은 화면을 움직였다.

이번엔 진기성의 기사가 보인다.

-앞에서는 빚만 있는 서민, 뒤에서는 루이뷔통. 진기성 후보의 아내는 명품 가방 매니아?

오강민이 당하고만 있던 것은 아니다.

열심히 진기성을 털었다.

하지만 나오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건든 게 진기성의 아내가 루이뷔통과 샤넬 등 명품 가방을 몇 개씩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성윤은 입술을 쓸었다.

정치인이 되면 가족까지 두들겨 맞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 초년생이 견디기는 힘든 일이다.

하지만 지금 성윤의 머릿속은 다른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진기성의 가족······.’

서안시 사무실에 도착했다.

시간은 새벽 1시가 넘어가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정우가 소파에 누워 자는 중이다.

책상에는 알 수 없는 서류들이 정돈되지 않고 널브러져 있다.

성윤은 재킷을 벗어 놓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담장에 몸을 기대고 담배를 물었다.

머릿속은 진기성에 관한 일로 가득하다.

‘진기성의 아내······.’

꿈속의 진기성은 이혼남이었다.

아직은 가족이 있다.

하지만 별거 상태다.

물론 지금은 선거운동 기간이라 같이 살고 있다.

‘딸이 하나 있는데······.’

성윤은 진기성의 이력을 살피며 꿈속의 기억을 더듬었다.

진기성은 빚만 갖고 있다.

하지만 아내는 다르다.

그녀의 부모는 꽤 큰 식품 회사를 운영한다.

딸의 나이가 지금 아홉 살.

기사가 딸린 자동차를 타고 학교를 오간다.

그게 당연한 것인 줄 안다.

제멋대로 자랐다.

“눈 좀 붙이시죠?”

정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정우가 눈을 비비며 기지개를 키고 있다.

“왜 일어났어? 더 자지.”

“안 잤어요. 눈만 감고 있었어요. 사장이 일하는데 직원 나부랭이가 자면 큰일 나죠.”

“코 골더라.”

“흐흐.”

정우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인 후 묻는다.

“원내 대표님이 뭐라고 하셨어요?”

“오강민을 당선시키래.”

정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저도 그게 더 남는 일인 것 같아요. 진기성이 싼 똥만 줍고 다니는 것은 의원님 스타일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남은 선거운동 기간이 5일이다.

지지율은 수십 퍼센트가 차이 난다.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뒤집기 어렵다.

성윤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우리······ 지금 돈이 얼마 있지?”

“잠깐만요.”

정우가 휴대폰을 들어 벤처 사업가 신중석의 아이워치 가드를 검색했다.

“아, 또 올랐어요.” 최근 인공지능 어쩌고 하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발표가 터지며 주가가 또 오르고 있다.

성윤이 가진 5% 주식의 가치는 백억에 육박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신중석의 회사는 빠른 시간 안에 매출 1조 클럽에 가입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치고 올라간다.

10년 후에는 대한민국 대기업 중 하나가 되어 있을 거다.

성윤은 그 전에 신중석의 회사에서 발을 뺄 거다.

앞으로도 상승하지만 가파른 상승세는 끝났다.

이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

성윤의 머릿속에는 미래에 발전할 수많은 기업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내일 5억 정도 빼 놔.”

정우가 눈을 깜빡인다.

“5억요? 왜요? 설마······ 뇌물 먹이려고요?”

“어.”

“누구한테요?”

“정치인을 잡는 가장 쉬운 방법이 뭐지?”

“수행 비서를 조지는 거요.”

“잘 아네.”

성윤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다음 날.

정우는 강남구에 위치한 일식집에 앉아 있었다.

손목을 틀어 시간을 확인했다.

‘20분······.’

약속 시간보다 20분이 지났다.

하지만 상대는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20분이 더 지났다.

밤 11시다.

미닫이문이 열리고 예순이 조금 넘어 보이는 남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고된 일을 했는지 눈동자에 초점이 잡혀 있지 않다.

정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오셨습니까? 박정우라고 합니다.”

정우는 보좌관이다.

당연하지만 사람들은 보좌관의 얼굴과 이름은 모른다.

자기 지역구의 국회의원 얼굴도 모르는데 보좌관을 기억하기는 쉽지 않다.

“박형묵이라고 합니다.”

남성이 한숨을 내뱉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정우가 벨을 눌렀다.

곧 음식들이 테이블에 놓였다.

두툼한 회와 초밥, 한눈에 봐도 고급 음식이다.

정우가 입을 열었다.

“식사 못 하셨죠? 일단 드세요.”

하지만 남자는 젓가락을 집지 않는다.

조심스레 정우를 바라본다.

“무슨 일로······?”

“진혜연 양의 운전기사를 하신다고요?”

진혜연······. 진기성의 딸이다.

남자는 회사를 그만둔 후 아홉 살 난 아이의 운전기사를 하고 있었다.

학교를 데려다주고 학원 그리고 친구들과 놀러 가는 것을 책임진다. 남자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그런데 저를 만나자고 한 이유가 무엇인지······?”

정우의 인상은 험악하다.

남자는 이유가 궁금했다.

정우가 회를 들어 남자의 접시에 놓으며 입을 열었다.

“조금 알아봤습니다. 진혜연 양의 운전기사가 1년 동안 여섯 번이 바뀌었더라고요.”

“······!”

“아홉 살짜리 여자 애가 기사님들의 운전석을 발로 차면서 ‘죽어.’, ‘병신.’ 등의 말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남자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가고 있었다.

나이가 예순이 넘었다.

아무리 월급을 받는 월급쟁이라 해도 아홉 살짜리 여자 아이에게 쌍욕을 먹는 것이 기분 좋을 리 없었다.

하지만 대답하지 못한다.

여자아이를 향한 충성심 따위가 아니다.

내부 고발자가 된다는 것은 찜찜한 거다.

누구나 ‘내가 회사에서 나가면 다 찌를 거야!’라고 말하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의 얼굴이 아른거려 행동하기 어렵다.

정우가 입을 열었다.

“진혜연 양의 아버지는 지금 수원시의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중입니다. 아십니까?”

“······네,”

“진혜연 양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부모의 아래에서······ 더 괴물이 되겠네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떵떵거리며 살 거고요.”

“······.”

“하지만 박형묵 씨의 손녀는······ 똑같을 겁니다.”

악담이다.

그것도 지랄맞은 악담이다.

자기 새끼를 욕먹이고 가만히 있을 짐승은 없다.

남자가 콱 인상을 쓰며 정우를 노려봤다.

정우가 고개를 저었다.

“괴물이 위에 서는 세상, 우리는 아래에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이 지금과 같다면······ 손녀분이 살아갈 세상도 바뀌지 않을 거란 이야기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그리고 또 아실 겁니다, 박형묵 씨도 1년이 안되어 잘릴 거라는 것을······. 하지만 퇴직금은 없지요. 오히려 냉랭한 작별의 인사만 있을 겁니다. 그 퇴직금, 제가 드리겠습니다.”

“······!”

“그리고 진혜연 양의 아버지가 위에 서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어른이잖아요, 진혜연 양 같은 아이가 괴물이 되지 않도록 회초리를 들어야 하는 게 우리들의 일이니까요.”

퇴직금을 이야기했다.

보상을 말한 거다.

그리고 괴물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명분을 줬다.

정우는 남자의 흔들리는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그 순간을 찌르고 들어간다.

“제가 준비한 퇴직금은 5억입니다. 그리고 손녀가 살아갈 세상에 괴물 하나를 치울 수도 있고요.”

“5······ 5억요?”

뉴스를 틀면 수백억의 돈도 흔하다.

하지만 서민에게 현금 5억은 꿈같은 돈이다.

특히 남자에겐 더 그랬다.

남자의 자식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가 손녀를 키우는 중이다.

5억이면······ 더 좋은 옷을 사 줄 수 있다.

잠시 멍하니 있던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뭘 하면 될까요?”

“녹음 하나만 해 주세요, 이틀 안에······.”

남자가 떠났다.

방에는 정우 혼자 앉아 있었다.

미닫이문이 열리고 성윤이 들어왔다.

“촉박하겠지만 3일 전에 터뜨릴 수 있도록 준비해.”

“네.”

“그리고 그 전에 진기성 대응 방법을 생각하고 모두 막아 버려.” 정우가 뒷목을 꾹꾹 주무른다.

“기자들이 바빠지겠네요.”

< 작정하고 속이면. -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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