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정하고 속이면. - (2) >
정청호의 시선이 성윤의 손으로 향했다.
성윤의 손에 들린 임인희 변호사의 명함이 보인다.
그의 눈빛이 비틀어졌다.
하지만 최대한 눈빛을 숨긴 채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묻는다.
“······다른 후보의 명함을 받으셨나 봐요?”
성윤은 정청호의 눈빛을 봤다.
잠깐 스쳐간 눈빛이지만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속마음을 듣던 중이다.
배배 꼬인 거지 같은 심정이 그대로 들려왔다.
하지만 성윤 역시 대수롭지 않게 답한다.
“지지율 차가 많이 나잖아요. 그래서 배려해 주는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후보님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마치 큰 그릇처럼······.”
“아, 네.”
“그럼, 계속 돌리겠습니다.”
정청호는 성윤을 향해 구십 도로 허리를 굽힌다.
성윤은 살짝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자리를 떠났다.
정청호는 그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본다.
싸늘한 눈빛과 함께 입술이 움직였다.
“개새끼······ 건방 떨고 앉아 있네.”
그날 밤······.
“그 새끼······ 어깨에 뽕 들어간 것 봤지?”
정청호의 사무실이었다.
맞은편에 한 국회의원이 보인다.
국회의원의 이름은 김인홍.
그는 박대철과 가까운 사이였다.
박대철은 성윤이 보좌관 생활을 했던 국회의원이다.
김인홍 의원이 담배를 입에 물며 묻는다.
“인상 어땠어? 박대철을 보낸 게 이성윤이 맞는 것 같지?”
정청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경찰이었잖아요. 눈빛만 보면 알거든요. 이 새끼가 나쁜 놈인가 아닌가. 이성윤의 눈빛은······.”
“범죄자지?”
“네.”
김인홍 의원이 ‘크크크’ 웃는다.
“자네가 서안시에 자리를 잡으면 이성윤을 견제해야 해. 국회의원이라는 게 지역구가 흔들리면 병신이 되거든.”
“······시장이 국회의원을 견제할 수 있을까요?”
국회의원이 시장을 괴롭힐 방법은 산처럼 쌓여 있다.
하지만 시장이 국회의원을 괴롭히기란 쉽지 않다.
김인홍 의원이 빙긋이 웃는다.
“방법이야 많지. 그러니까 당선부터 되도록 해. 그러려면 이성윤에게 손바닥을 비벼야 하는 것은 알지? 서안시 시민들은 개돼지야. 이성윤은 인기를 위한 행동만 하는 새끼인데 그런 놈을 좋아하고 있어. 정치인은 인기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조금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 법인데······.”
정청호 후보가 픽 웃는다.
“손바닥은 열심히 비비고 있습니다. 오늘도 구십 도로 허리를 팍팍 숙였어요.”
김인홍 의원이 담배를 비벼 끄며 정청호를 향한다. “더 숙여, 더 굽히고. 지문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손바닥을 비벼. 함께 서안시를 발전시키고 싶다고 입에 침이 마를 때까지 씨부려. 그럼, 이성윤도 널 믿을 거야. 한 길 사람 속은 누구도 모르는 법이니까.”
박대철과 친분이 있던 국회의원들······.
그들은 지금은 재선과 중진으로 올라섰다.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그들은 하나의 소모임을 만들었다.
겉으로 보면 가볍게 등산을 하는 모임이다.
하지만 룸살롱을 돌아다니며 여자의 가슴에 돈을 꽂아 주는 게 전부였다.
그들이 성윤을 싫어하는 이유는 하나다.
나쁜 놈일수록 세상살이가 하루하루 불안하다.
살아남기 위해 눈치가 빠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은 어렴풋이 느꼈다.
성윤의 힘이 더 커지면 이들의 자리가 위태하다는 것을······.
그래서 그 전에 박살 내고 싶었다.
“이성윤은 유행 같은 정치인이야. 여름에 잠깐 입고 내년이면 찾지 않을 옷. 내가 볼 때 이성윤은 딱 그거야. 그런데, 그 새끼는 그걸 몰라. 자기가 계속 인기 있을 줄 알지. 누가 보면 대통령인 줄 알겠네.”
정청호가 빙긋이 웃었다.
“알겠습니다. 당선될 때까지 최대한 아부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선되면······ 최대한 뒤를 털어 부숴 버리겠습니다.”
그 시각, 성윤은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말없이 서류만 보고 있다.
서안시 시장 후보 지지율이다.
1위, 대한당 정청호 45.6%.
2위, 민국당 조성준 20.8%.
3위, 무소속 임인희 14.9%.
임인희 변호사가 정청호를 넘어서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그 전에 정청호를 끌어내려야 한다.
성윤이 시선을 들어 정우를 향했다.
“정청호가 사퇴하면 그 표는 어디로 갈까?”
서안시는 대한당과 민국당이 양분하는 지역이다.
최근 성윤의 주가가 높아지며 대한당의 지지율이 높지만 그래도 양당이 다 해 먹고 있다.
즉, 군소 정당의 진입을 원하지 않는 지역이라는 거다.
정청호가 사라졌을 경우 어부지리로 민국당 후보만 룰루랄라 노래를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정우의 예상은 달랐다.
“대한당 지지자들에게 민국당이 당선될 것 같다는 불안감을 심어 주면 임인희 변호사가 몰표를 받을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후 그녀의 인지도는 높아졌다.
이미 중도 성향 유권자들의 표는 그녀가 가져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대한당 지지자들에게도 그녀의 이미지는 거부감이 적었다.
“반대로 민국당 지지자들에게는 투표하지 않아도 승리할 것 같다는 낙관론을 펼치는 거죠. 그럼, 당선 가능성은 높아져요.”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청호만 내리면 되는 거네?”
“네, 그런데 그게 어렵죠.”
“내일 교도소 좀 가자.”
“네? 교도소요?”
“박대철을 면회해야겠어.”
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성윤이 입을 연다.
“박대철과 정청호는 아주 가까운 사이였어.”
“아.”
성윤은 꿈을 통해 미래를 봤다.
각 인물들의 인간관계를 알고 있다.
꿈속에서 정청호는 서안시 시장이었다. 그리고 박대철과 가까운 사이였다.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었다고 들었다.
두 사람은 매일같이 만나 술값을 계산했다.
물론 그 돈은 국민의 세금이었다.
* * *
다음 날.
성윤은 박대철과 마주보고 있었다.
수감 생활이 힘들었는지 박대철은 살이 많이 빠졌다.
국회의원 생활을 할 때 덩치 좋던 모습은 없었다.
초라하다.
성윤이 품에서 담배를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박대철은 말없이 담배를 입에 문다.
성윤이 공손히 불을 붙였다.
뿌연 연기가 공간을 채운다.
박대철이 담뱃재를 털며 입을 연다.
“어쩐 일이지?”
“친했던 분들······ 면회는 옵니까?”
박대철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들려오는 목소리는 표정과 다르다.
“자주 오지.”
속마음이 들려왔다.
-전혀. 단 한 명도······. 개새끼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박대철은 최대한 거만한 척 담배를 물며 말한다.
“온 이유나 말해.”
“정청호라고 아시죠?”
“정청호? 건물주?”
“지금은 서안시 시장 후보입니다.”
박대철이 픽 웃는다.
“예전부터 정치하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더니, 결국 시장 후보까지 하고 있어?”
“네.”
“그런데?”
“의원님과 가까운 사이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정청호의 그림자를 밟고 싶습니다.”
“크핫핫핫핫!”
박대철이 테이블을 손으로 쾅쾅 두들기며 웃기 시작했다.
그의 눈빛이 서슬 퍼렇다.
웃음을 뚝 그치더니 죽일 듯이 노려본다.
“이 새끼야······ 내가 말해 줄 것 같아?”
박대철이 감옥에 온 이유······.
성윤이었다.
그는 보육원 아이들의 기초 생활 수급 수당을 삥땅친 돈을 뇌물로 받았다.
그리고 미성년자와 원조 교제를 일삼았다.
성윤이 그 문제를 터뜨렸다.
박대철 의원이 입을 연다.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해. 내가 출소하면 밥이라도 사줄 사람이 정청호야. 그런데, 그 새끼의 그림자를 넘기라고?”
“정청호가 면회 온 적 없잖아요. 이미 정청호의 인생에 의원님은 없습니다.”
팩트는 짜증 나는 법이다.
박대철의 주먹이 꽉 쥐였다.
그리고 꽉 다물어졌던 입술이 열렸다. “그래, 시장 후보까지 된 놈이 범죄자와의 인연은 끊고 싶겠지. 그런데, 내가 너에게 말해 줄 이유가 있나? 알고 싶으면 합당한 것을 내놔.”
성윤은 그의 속마음을 계속해서 듣고 있었다.
하지만 얻을 것은 없었다.
욕만 들려오고 있었다.
모두 성윤에 관한 욕이다.
다행인 점은 성윤이 왜 정청호의 그림자를 밟으려는지 묻지 않는다는 거다.
성윤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건조하게 입을 열었다.
“먼저 이런 거래를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왜? 수감자 찾아와서 뒷거래하려니까 더러워?”
“아뇨······ 세진이.”
박대철의 눈빛이 덜컥거렸다.
세진이는 그의 딸이다.
그가 교도소에 들어올 때 딸이 일곱 살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초등학교 3학년······.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호빠에 중독되었던 아내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으니까.
그의 목소리가 떨린다.
“세, 세진이는 왜······?”
“저도 어제 알아봤습니다. 사모님과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았는데······.’라는 것은 불길한 끝맺음이다.
박대철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그가 테이블을 두 손으로 ‘쾅!’ 하고 치며 일어섰다.
동시에 그의 목소리가 피를 토하듯 울렸다.
“세진이가 왜? 빨리 말해, 개새끼야!”
성윤이 한숨을 내뱉으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지금 외가 쪽 친척집을 돌고 있습니다. 방치······된 것 같았습니다.”
박대철의 눈동자가 다급히 흔들렸다.
“외가? 친척? 왜? 세진이가 거기에 왜 있어? 내가 남겨 둔 재산이 적지 않을 텐데? 아니, 세진이 엄마는 뭐 하고?”
“의원님이 교도소에 간 후 사모님은 해외로 떠나셨습니다.”
“재, 재산은?”
성윤은 고개를 저었다.
굳이 답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박대철은 허물어지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는 지은 죄가 많다.
인생의 마지막을 암울하게 보내는 것은 하늘의 뜻이다.
하지만 어린것은 죄가 없다.
짐승도 제 새끼는 소중한 법이다.
박대철이 담배를 하나 더 빼낸다.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다.
입에 겨우 물었다.
담배 연기가 씁쓸하게 흐른다.
박대철의 부모는 모두 사망했다.
형제는 유산 문제가 꼬여 원수가 되었다.
딸을 맡길 사람이 없다.
그나마 성윤은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거래를 하자고?”
“네.”
“세진이를 돌봐 주겠다는 것인가?”
“저희 부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흔쾌히 허락하셨죠. 엄마, 아빠와 함께 있는 것보다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진심이었다.
비록 꿈속이었지만 그때의 성윤은 세진과 잘 지냈다. 세진이 어릴 때부터 보모 역할을 했으니까.
세진이는 용돈을 모아 선물을 주곤 했다.
박대철의 입에서 담배 연기가 흐른다.
그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정청호······ 경찰이었던 것은 알지?”
“네.”
“필리핀에서 사설 스포츠 도박 업체를 운영하는 깡패 새끼들의 뒤를 봐주며 주머니를 채웠어. 아마 지금도 봐주고 있겠지. 돈이란 한 번 받으면 끊을 수 없는 것이니까. 그쪽을 뒤져 봐.”
박대철과 정청호는 친한 사이였다.
그러니까 친구······.
친구는 서로의 머리에 총을 댄 것과 같다.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대화가 오갔고 서로의 그림자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등을 돌린 지금, 박대철은 정청호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감사합니다.”
성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박대철이 영혼 빠진 눈동자로 성윤을 바라본다.
“3년 남았어. 세진이······ 그때까지만 잘 부탁하네.”
“하나 더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뭐든.”
“정청호가 공천권을 받을 수 있도록 뒤에서 밀어준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뻔하지. 김인홍이야.”
성윤이 팔짱을 꼈다.
“김인홍 의원이라고요? 자세히 들어 보고 싶네요.”
* * *
그날 저녁.
김인홍 의원은 자신과 손잡은 다섯 명의 의원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재보궐선거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대선 시즌이 시작되면 대한당 지분에 지각변동이 생길 거야.”
대선 시즌······.
대통령 선거만큼 치열한 게 경선이다.
대한당의 대표로 나가도 50%는 먹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어차피 대통령은 대한당 아니면 민국당이니까.
그래서 대선 주자들은 경선에서 이기기 위해 최대한 많은 의원들과 손잡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대선에 참여하지 않는 의원들은 눈치 게임을 시작한다.
‘누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선택을 잘못해서 지지하던 사람이 나가리가 되면 숙청의 칼에 목을 내밀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줄만 잘 서면 단번에 막강한 힘을 손에 쥘 수도 있다.
청와대 진입의 공신이 되는 거니까.
이들에게는 위기이자 기회였다.
마약을 한 것처럼 눈이 반쯤 풀린 의원이 젓가락으로 육회를 집으며 물었다.
“지분이 튼튼한 쪽에 붙을 건가요?”
김인홍 의원이 서류 몇 장을 꺼내 의원들의 앞에 놓았다.
“당대표가 물러 터져서 그런지 다시 계파가 분열되고 있어. 이것은 우리 보좌관들이 며칠에 걸쳐 조사한 거야. 지라시 업체를 세탁기에 돌려서 진국만 빼 온 거니까 신뢰도가 높아.”
서류에는 대선 주자 그리고 각 계파의 이름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여기 물음표는 뭐예요?”
“아, 김대성 계파하고 아웃사이더들인데······. 지금 누구 편에 있는지 모르겠네.”
“숫자가 꽤 많은데요? 이쯤 되면 거대 계파인데? 이 사람들이 하나로 뭉쳐 있다고요?”
김인홍 의원이 고개를 저었다.
“하나로 뭉쳐 있는지 개인 플레이를 하는지 모르니까 물음표겠지. 요즘 자주 만나는 것 같지도 않고.” 그것은 성윤이 목을 틀어쥐고 있는 김대성의 계파, 그리고 손잡은 초선 의원들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성윤의 이름은 주진만 원내 대표의 계파의에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그리고 워낙 비밀리에 움직이고 있었다.
김인홍 의원이 말을 잇는다.
“어쨌든······ 여기 적힌 사람들의 이름을 머릿속에 넣어 두도록 해.”
“네.”
“그리고 우리가 머릿수만 채울 수는 없잖아? 콩고물이라도 받아먹으려면 세력을 키워야 해. 일단 서안시 시장이 될 정청호는 우리 손을 잡았어. 그러니까 이번 선거에서 당선되는 사람들 중에 영입할 수 있는 놈이 있으면 최대한 붙어 봐.”
청사진이 그려지고 있었다.
덧니가 난 의원이 손을 비빈다.
“초선들을 좀 모아서 군기 좀 잡아야겠네요.”
“군기는 뭘 잡아? 네가 잡히는 거 아니야?”
모인 사람들이 낄낄 대며 웃는다.
김인홍 의원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성윤. 다들 이놈이 찝찝하지?”
“당연하죠. 암행어사도 아니고 씨발.”
“그래서 그 새끼를 좀 잡으려고 하는데......”
김인홍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가만히 있던 휴대폰이 진동을 울려서다.
발신 번호를 본 그가 다급히 휴대폰을 귀에 댔다.
“네, 의원님!”
* * *
김인홍 의원은 술을 깨기 위해 숙취 해소 음료를 세 개나 마셨다.
그리고 생수 500밀리리터를 원 샷 한 후에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도착한 곳은 일식집이었다.
안내를 받아 들어간 곳에 노년의 남성이 앉아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김인홍 의원은 허리를 굽혔다.
사실 그는 노년의 남성과 나이 차가 많지 않다.
하지만 대한당에서의 힘의 크기가 달랐다.
노년의 남성이 고개를 든다.
“왔나?”
노년의 남성은 김대성 계파의 주요 인물이었다.
지금은 특정 계파에 속하지 않고 아웃사이더로 활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볼 때다.
그는 성윤이 개목걸이를 채운 김대성 계파 중 하나였다.
그리고 지난 ‘다문화, 다자녀 법’에서 진정으로 성윤의 손을 잡았던 0% 대출 의원이었다.
김인홍 의원이 맞은편에 엉거주춤 앉았다.
조금은 불편해 보이는 자세다.
“부르신 이유가······?”
“일단 한잔하게.”
0% 대출 의원이 술병을 들어 그의 잔을 채웠다.
김인홍 의원은 정중히 술을 받는다.
“바쁜 사람이니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하지. 서안시 시장 후보 정청호를 밀어준다고?”
“네?”
“아무개 의원에게 돈을 줘서 공천권을 샀다며? 그걸 정청호에게 줬고.”
김인홍 의원이 다급히 머리를 흔들었다.
“아뇨, 제가 어찌······.” “아무개의 이름을 밝혀야 실토를 할 텐가?”
0% 대출 의원의 눈빛은 서늘했다.
김인홍 의원은 간담이 차갑게 식는 느낌을 받았다.
“죄송합니다.”
“뭐, 그것을 탓하려고 부른 게 아니야. 정청호 그 친구······ 후보 사퇴하라고 해.”
“사, 사퇴요?”
김인홍은 마른 입술을 핥았다.
방금까지 청사진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런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0% 대출 의원이 술잔을 쥐며 입을 연다.
“다 자네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정청호라는 사람은 당선이 돼도 문제야.”
“그게 무슨······?”
“필리핀에서 사설 도박 업체를 운영하는 깡패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어. 곧 검찰이 움직일 테고······ 그 칼이 자네의 목까지 치고 들어올지도 모르지.”
“사설 도박 업체라니요?”
김인홍은 얼음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김대성 계파의 특징은 한번 꼬투리를 잡으면 골수까지 뽑아 먹는 사람들이었다.
0% 대출 의원의 목소리가 차갑게 이어진다.
“몰랐나? 그 말이 검찰에서도 통할 것 같나? 민국당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김인홍 의원의 눈동자는 갈피를 못 잡고 있다.
0% 대출 의원이 다시 술잔을 쥐며 말을 잇는다.
“살고 싶으면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을 거야. 대한당에 망신 주지 말고 빨리 내보내.”
“······.”
“그리고 자네와 함께 룸살롱에 다니는 다섯 명. 내 밑으로 들어와.”
“네?”
“싫어? 내가 지금 정청호의 그림자만 알고 있다고 생각하나?”
0% 대출 의원의 눈빛은 두려웠다.
마치 김인홍 의원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김인홍 의원은 영혼이 빠져나간 눈동자로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잠시 후, 김인홍 의원이 떠났다.
그 자리엔 성윤이 앉아 있었다.
0% 대출 의원이 빙긋이 웃는다.
“도대체 서안시장을 누구를 시키려고 우리 당 정청호 후보를 내보냈나? 민국당?”
“아뇨, 누가 되든 상관없습니다. 그저 깨끗한 사람이 되기만 바라고 있습니다.”
0% 대출 의원은 고개를 끄덕끄덕했지만 믿지 못하는 눈치다.
그가 회를 한 점 들어 접시에 올렸다.
“그런데, 자네 손에 몇 명이 있는 게야? 이번에 김인홍을 포함해서 여섯 명이 더해지면······ 내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이번엔 성윤이 빙긋이 웃었다.
“제 친구 중에 횟집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는데요. 주방을 좀 보고 싶다고 했더니 이런 말을 했어요. ‘내 주방의 위생 상태를 알게 되면 앞으로 내가 떠 준 회를 못 먹을 거다.’라고요.”
“안 가르쳐 준다는 거지?”
“네.”
* * *
대한당 정청호 후보가 사퇴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중도 포기한다고 말했지만 믿는 사람은 없었다.
곧바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됐다는 기사가 발표됐기 때문이다.
임인희 변호사의 지지율은 정우가 예상한 대로였다.
정청호 후보의 지지율을 대부분 흡수하며 곧바로 1위로 치고 올라섰다.
새벽 4시, 성윤은 지금껏 일하고 있었다. 피곤을 이기기 위해 사무실의 옥상에서 담배를 물었다.
‘이제 남은 것은······.’
오강민과 진기성이다.
< 작정하고 속이면. -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