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22화 (122/300)

< 작정하고 속이면. - (1) >

같은 시각······.

진기성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가 휴대폰을 손에 든다.

기사가 보인다.

시선은 화면 아래의 댓글로 향했다.

-20년도 더 전에 있던 일이다. 충분히 반성한 것 같다. 이제 그만 놔줘라.

-그 시대에는 어쩔 수 없던 일이다. 지금의 잣대로 조선시대를 바라보면 안 되는 것과 같다.

-위에 새끼들 웃기네, 네 가족이 당했어도 그럴 거냐?

우리 가족이 아니잖아!

└대한당이 또 알바 풀었네.

-그동안 봉사도 많이 했고 나쁜 사람들 선도도 많이 했다던데? 이러면 된 것 아님? 다른 후보들 보니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잖아?

-원래 국회의원은 이런 사람들이 하는 거야.

기사 댓글을 확인하던 진기성은 SNS로 시선을 옮겼다.

‘[펌]’이라 적힌 글의 내용이 보인다.

[오늘 오강민 후보의 선거운동 중에 계란 맞았던 봉사자입니다.

오강민 후보의 과거가 어땠는지는 제가 어려서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계란에 맞자 오강민 후보님은 진심으로 미안해하셨습니다.

자기 때문에 험한 꼴을 봤다며 눈물도 글썽여 주셨습니다.

사회 경험을 쌓으려고 나간 봉사였지만 이제는 진심으로 지지합니다.]

진기성의 입에서 낮은 한숨이 흘렀다.

인터넷 민심은 골목 민심을 대변할 수 없다.

하지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있다.

여론의 바람이 바뀌고 있었다.

진기성이 몸을 돌렸다.

선거 캠프의 관계자들이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 있다.

그들의 얼굴을 보며 진기성이 슬쩍 웃는다.

“당했네요.”

이번 계획을 세웠던 선대위원장은 고개도 들지 못한다.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아요. 하지만 당한 만큼 되돌려 줘야겠죠?”

다들 눈을 깜빡인다.

시선은 진기성에게 집중됐다.

진기성이 휴대폰 화면을 보였다.

“오늘 계란에 맞은 봉사자가 SNS에 글을 올렸어요. 여기저기 퍼지는 중이죠.”

캠프 관계자들은 다급히 내용을 확인했다.

인상이 찌푸려진다.

“씨발······.”

안기부 출신인 오강민을 호인으로 만들어 주는 쓰레기 같은 글이었다.

진기성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시민 단체에서는 계란을 던질 계획이 없었다면서요? 계란을 던진 사람도 없고요.”

“아, 네. 계속 확인해 봤지만 없었다고 합니다. 자기들이 아마추어도 아니고 상대한테 도움이 되는 짓은 하지 않는다고······.”

진기성이 텔레비전을 틀었다.

오늘 있었던 뉴스가 나온다.

붉은 모자를 쓴 남자가 봉사자의 앞으로 다가가는 장면이다.

진기성이 손가락으로 화면을 툭 치며 입을 열었다.

“이 붉은 모자 쓰신 분······ 하필이면 왜 이 봉사자에게 갔을까요?”

“······!”

“그리고 시기적절하게 계란이 던져졌고 계란을 맞은 사람이 나타났어요. 그리고 곧장 SNS에 올린 행동력······. 냄새가 나지 않나요?” 붉은 모자를 쓴 남자는 시민 단체의 사람이다.

그 봉사자 앞에 선 것은 단순히 어려 보여서다.

하지만 그는 스파이처럼 여겨지는 중이다.

모두가 알고 있다.

그가 스파이가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누구도 옹호하지 않는다.

이용해 먹을 수 있겠다는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선대위원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자작극이 될 수도 있겠네요. 그림을 그려 보겠습니다.”

진기성이 빙긋이 웃으며 몸을 돌린다.

그의 시선이 텔레비전에 닿았다.

여전히 붉은 모자를 쓴 남자가 보인다.

“이 사람은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겠네요.”

그래야 리얼하게 당황한 표정이 나온다.

그림이 사실에 가까울수록 유권자의 믿음은 강해진다.

며칠 후······.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시끄러웠다.

[정치인이 테러를 당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그 테러가 지지도를 올리기 위한 자작극이라는 설정이 있는데요. 실제로 그런 의혹을 받는 국회의원 후보가 있습니다. 수원시 14선거구의 오강민 후보입니다.]

화면이 바뀌었다.

붉은 모자를 쓴 남자가 보인다.

그의 곁으로 마이크가 내밀린다.

-오강민 후보에게 지시를 받은 겁니까?

-봉사자에게 서명을 받으려던 행동이 계획된 것이었나요?

-대답 좀 해 주세요!

남자의 눈동자가 떨 려왔다.

그는 당황하고 있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른다.

그가 모자를 푹 눌러썼다.

-저,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다급히 자리를 피했다.

그 뒷모습이 화면에 나온다.

의혹을 갖기에 충분했다.

인터넷 여론의 방향이 또 바뀌었다.

-설정이었음?

-역시 국정원의 조상 안기부. 조작의 클라스가 다름.

-빨리 조사해서 다 감옥에 처넣어라!

-더러운 새끼들. 퉤퉤!

쾅! 오강민이 테이블을 내리치며 일어섰다.

꽉 다물린 치아에서 분노가 흘러나온다.

“진기성······.”

* * *

“똥을 싸고 또 싸고······.”

운전을 하던 정우가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선거판이라는 게 참 웃기다.

대한민국을 발전시키고 국민을 편안히 하는 정책이 우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서로 헐뜯고 깎아내리기 바쁘다.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패악질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그런 정치인의 모습을 보며 유권자는 고민한다.

지지하는 정당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새끼는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생각하지만 상대 당의 후보도 똑같이 더럽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지지하는 정당에 도장을 찍는다.

성윤은 조수석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직······.’

진기성은 더 악랄하고 잔인하다.

이런 것은 진기성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는 아직 움직이지 않는다.

손가락으로 지시만 내리고 있다.

‘오강민을 우습게 보는 것인가? 지지율이 좁혀져야 가면을 벗을 생각인가?’

그럼, 지지율을 좁혀 주면 된다.

턱밑까지 추격해서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게 만들 생각이다.

성윤이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오강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의원님.

오강민의 목소리는 조금 흥분된 상태였다.

추격의 탄환을 쏘았는데 곧바로 찬물이 쏟아졌으니 성질이 날 만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하······ 진기성의 개인 신상을 털고 있는데 나오는 게 없습니다. 변호사를 했으면 재산이 1억은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런데 어떻게 된 게······ 빚만 있습니다.

진기성의 껍데기는 그 누구보다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 속은 다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내로남불의 전형적인 인간이 된다.

변호사 출신이 법을 무시하고 움직였었다.

성윤이 입을 열었다.

“진기성은 인권 변호사입니다.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사건도 많이 맡았어요. 그쪽을 파 보세요. 그리고······.”

-그리고요?

“오강민 씨의 장점을 살리세요. 남의 뒤만 캐는 게 오강민 씨의 능력은 아니잖아요?”

성윤은 통화를 종료했다.

오강민은 선동, 선전에 능한 사람이다.

독일 나치의 선전장관 괴벨스처럼 한 줄의 문장으로 사람을 범죄자처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정우가 입을 열었다.

“도착했어요.”

성윤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세 차량의 스피커에서 대한당 후보 정청호의 음악 소리가 쿵쾅쿵쾅 들려오고 있었다.

성윤은 정청호 후보의 유세를 도와야 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같은 지역이라 어쩔 수 없었다.

정우가 차를 주차하며 입을 연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저 인간은 정이 안 가요.”

“그러게.”

멀리서 봐도 욕심 많은 두꺼비가 연상된다.

투실투실 볼살이 흘러내렸다.

대화를 나눠 보면 참 저렴하다.

여성을 비하하고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긴다.

가식이 뚝뚝 떨어진다.

성윤이 차에서 내렸다.

오가는 시민들에게 굽실굽실 허리를 굽히던 정청호가 성윤을 발견했다.

빠르게 다가와 기름진 얼굴로 인사한다.

“오셨습니까?”

허리를 굽히는 게 꽤 익숙하다.

선거를 하며 하도 굽실대서 그렇다. 당선되는 동시에 굽혔던 허리는 빳빳하게 굳어질 것이지만······.

말을 더 섞고 싶지 않아서 손을 내밀었다.

“명함 주세요. 반대쪽을 돌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하하.”

정청호는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두툼한 명함을 건넨다.

“그럼.”

성윤이 인사하며 몸을 돌렸다.

정청호는 다시 성윤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잘 부탁드립니다!”

성윤은 꿈속을 통해 그를 알고 있었다.

성윤이 보좌관 시절 모시고 있던 박대철 의원과 베스트 프렌드, 룸살롱 중독자, 돈만 밝히는 사람.

가난한 사람을 거지 취급했고 여자는 무시했다.

엮이고 싶지 않았다.

성윤은 정우 그리고 봉사자 두 명과 함께 빌딩이 들어선 번화가로 향했다.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술 한잔하기 위한 사람들과 학교를 마치고 거리를 배회하는 학생들이 보인다.

성윤은 명함을 건네며 인사하고 악수했다.

시민들은 반갑게 맞아 줬다.

“이성윤 의원님 맞죠? 항상 지지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이성윤 파이팅!”

선거에 나가는 것은 성윤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윤의 이름을 외친다.

지나던 고등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방향은 조금 달랐다.

“소리 질러 주세요!”

“욕해 주세요!”

“인상 써 주세요!”

성윤이 픽 웃으며 장난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조용히 해!”

“와!”

학생들이 손뼉 친다.

다가와 인증 샷을 남기려는 학생도 보인다.

몇 장 찍어 줬더니 학생 여섯 명이 뒤를 쫓아오며 “이성윤! 이성윤!” 하고 외쳤다.

“난 선거운동을 도와주러 온 거야. 그러니까 내 이름 부르지 말고 조용히 해.”

“인상 쓰니까 더 멋져요!”

“멋있는 것은 나도 알아.”

애초에 대한당 후보 정청호의 선거운동을 도울 생각은 쥐똥만큼도 없었다.

그래서 거리를 걸으며 학생들과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장판교 팬 카페 가입했어요. 오늘 찍은 사진 올릴 거예요.”

“제발 하지 마.”

“나중에 의원님이 대선에 나가면 꼭 뽑을게요.”

“그건 꼭 하고.”

학생들이 낄낄대며 묻는다.

“그런데, 결혼은 언제 하실 거예요? 전소희랑 사귀는 것 맞아요? 이웃사촌이라면서요?”

처음 듣는 소리다.

“사귄다니?”

“찌라시가 돌고 있어요. 우리도 증권 찌라시 보거든요. 그런데, 의원님하고 전소희하고 사귄대요.”

“객관적으로 생각해 봐. 연예인이 날 좋아하겠어?” 학생들은 물끄러미 성윤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고개를 젓는다.

“······그건 아니죠.”

학생들은 단호했다.

예의상 하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학생들과 대화를 하는데······.

반대편에서 이번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임인희 변호사가 보였다.

선거운동이 고된지 얼굴은 초췌하다.

성윤은 그녀를 시장에 올리려 한다.

하지만 그는 대한당이다.

대놓고 무소속을 도울 수 없다.

뒤에서 돕는 중이다.

다행인 것은 그녀는 14%로 3위의 지지율을 얻고 있다.

다큐멘터리가 성공적으로 방영됐기 때문이다.

지금 사회는 계층 간의 사다리가 무너지고 가난이 대물림 되고 있다.

개천 물이 말라 용이 날 수 없다는 소리마저 들려온다.

그래서 그녀의 인생 역전 스토리는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만약 그녀가 서안시가 아닌 다른 지역에 출마했다면 더 높은 지지율도 가능했을 거다.

하지만 서안시에는 성윤이 존재한다.

성윤이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대한당의 지지율은 올라갔다.

그 지지율은 대한당 후보 정청호가 고스란히 처먹고 있다.

시민들은 성윤과 새로 뽑힐 시장이 같은 당이기를 바란다.

아무래도 같은 당끼리 협조가 잘될 거라 생각하니까.

성윤과 임인희의 눈이 마주쳤다.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성윤입니다.”

“기호 5번 임인희입니다.”

두 사람은 처음 보는 척 인사를 나눴다.

그래야 하니까.

그녀가 성윤의 옆을 스친다.

성윤이 입을 열었다.

“명함 주세요.”

그녀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들려온다.

“명함 주세요. 같이 뿌릴게요.”

“의······ 의원님?”

임인희 변호사가 당황한 눈으로 성윤을 바라봤다.

성윤이 웃으며 손을 내밀고 있다.

“다큐멘터리 봤어요. 감동적이었습니다. 이것도 인연인데, 명함 안 버리고 같이 뿌릴게요. 저는 임인희 후보님 같은 사람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거든요.”

워낙 돌발 행동을 일삼는 성윤이었다.

그래서 이런 모습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지켜보는 사람들도 다들 그러려니 하고 있다.

임인희 변호사가 살짝 웃으며 성윤의 손에 명함을 건넨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그녀가 떠났다.

쫓아다니던 고등학생들도 학원에 가야 한다며 종종걸음으로 빠져나갔다.

성윤의 옆으로 정청호 후보가 섰다.

그가 멀리서 선거운동하는 임인희 변호사를 보며 이죽거린다.

“공순이에서 에스 로펌 변호사 그리고 시장 후보라······. 여자가 참. 분명 뭔가 있었을 것 같지 않아요?”

“네? 뭔가 있다니요?” “집안에 돈이라도 많다면 모를까······ 요즘 세상에 몸이라도 팔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죠.”

성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공천 시스템이 얼마나 병신 같기에 이런 놈이 후보로 나왔는지 이해조차 안 된다.

성윤의 시선이 정청호에게 향했다.

“그러게요, 뭔 일이 있었는지······. 시장 후보로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하네요.”

정청호가 재수 없게 웃는다.

“그렇죠?”

제 이야기인 줄도 모르고 웃고 있다.

성윤도 조용히 웃었다.

선거가 끝나기 전에 이놈부터 박살 내야겠다.

< 작정하고 속이면.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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