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19화 (119/300)

< 보이지 않는 손. - (4) >

성윤은 시선을 텔레비전으로 옮겼다.

화면으로 김상록 의원의 자택이 보인다.

집 앞은 복잡하다.

시민 단체에서 나온 사람들이 시위를 벌였다.

경찰들 그들을 막고 있다.

기자들의 카메라가 가득하다.

김상록 의원은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얼굴도 내밀지 않고 있다.

성윤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변호사님이 한 일입니까?”

수화기 너머에서 차분하고 느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뇨,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요.

“그럼, 전화한 이유가 뭐죠?”

-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김상록 의원 같은 거물도 저렇게 쓰러지는구나... 하는 것을요. 자기 그림자를 지울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내 앞길을 막으면 너도...’ 라는 협박처럼 들려왔다.

진기성은 그런 사람이다.

원하는 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손에 넣어야 만족한다.

그는 이번에 공천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목표는 무너졌다.

준비했던 모든 것이 쓸모없게 되었다.

겉으로만 보면 그 앞길을 막은 것은 김상록 의원이다.

하지만 그 속을 보면 성윤이 존재하고 있었다.

‘내가 뒤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

잠시 생각해봤지만 어려운 일이다.

김상록 의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성윤의 이름을 팔지 못한다.

불법 도박장의 뒤를 봐준 것 말고도 여자 문제, 돈 문제 등 엮여 있는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면 뭐지?’

진기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정치인이 되면 저런 악습을 없앨 겁니다. 이 세상은 뒤집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썩어 버렸으니까요. 비록 의원님과 당은 다르지만 같은 목적을 공유할 수 있다는 생각이드네요. 조만간 만나서 차라도 같이 마시고 싶습니다.

통화가 종료됐다.

성윤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진기성은 처음엔 성윤을 협박했다.

그다음은 목적의 공유였다.

‘도대체.....’

성윤은 꿈속에서 봤던 진기성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다시 처음부터 세세하게......

기억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성윤은 진기성과 상당히 친했다.

때로는 형제 같았고 때로는 원수 같았다.

상당히 많은 부분을 알고 있었다.

진기성의 외모는 수더분하다.

시골에 가서 막걸리를 마시는 소탈한 모습에 반한 지지자가 많았다.

어딜 가도 인상 좋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외모였다.

평범 그 자체.

게다가 행동도 과하지 않았다.

차분했고 조용했다.

그래서 드러나지 않았다.

진기성은 그 장점을 살렸다. 뒤에 앉아 정국을 움직였다.

나서지 않고 사람들을 앞세워 목적을 관철시켰다.

그 덕에 사건 사고가 터져도 멀쩡했다.

주변 인물들이 감옥에 가고 언론의 사냥감이 되어도 진기성의 옷에는 작은 먼지조차 튀지 않았다.

정치 전문가들은 진기성을 보며 대한민국 헌정 역사상 최고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칭호를 내뱉기도 했다.

기억을 더듬던 성윤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꿈속의 진기성......

지금의 성윤과 비슷하다.

뒤에서 칼을 들이밀어 협박하고 목적을 이루는 것.

‘생각해보면 비슷할 수밖에 없잖아?’

성윤을 정치에 입문시켜줬던 게 진기성이다.

진기성은 성윤을 민국당으로 영입했다.

공천을 주고 국회의원에 당선시켰다.

정치적 목적을 어떻게 달성하는지 가르쳐줬었다.

‘김상록 의원의 사건을 터뜨린 후 전화를 건 이유를 알겠네.’

생각을 이어 가다 보니 진기성의 성격과 수법이 정리됐다.

진기성은 성윤과 김상록 의원의 관계를 모른다.

어떤 커넥션이 있었다는 것만 예측하고 있다.

진기성은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을 좋아한다.

김상록 의원의 사건을 던지면 성윤이 파뜩 놀라 무리수를 던질 거라 생각했다.

무리수를 던지는 순간 숨어 있던 사나운 이빨을 드러낼 계획이었다.

게다가 마지막에 목적의 공유에 대해 이야기한 것......

성윤이 무리수를 던지지 않을 경우도 계획에 넣은 거다.

진기성에게 배웠기 때문에 그의 수법을 알고 있다.

성윤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리고 성윤은 배운 것이 또 있었다.

배신할 것 같은 사람.

덤빌 것 같은 사람......

사전에 자근자근 짓밟아라.

“정우야.”

“네, 의원님.”

“민국당 강홍장 의원, 이창희 의원, 위성원 의원......”

성윤의 입에서 민국당 의원의 이름이 줄줄줄 나오기 시작했다.

민국당 당대표 민유헌과 반대되는 계파의 인물들이다.

민국당은 크게 두 세력으로 나뉘어 있었다.

먼저 안재열 전 대통령의 이름 아래에 뭉친 계파.

일명, 민국당 당대표 민유헌의 계파다.

그리고 그 반대 세력으로 학생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모인 계파가 있다.

물론 그 안으로 들어가면 또 세세하게 나뉘지만 일단은 크게 두 부류였다.

김상록 의원은 당대표 민유헌의 계파다.

진기성이 김상록을 쳤다면 당연히 반대 계파에 붙었을 거다.

대한당보다는 덜하지만 민국당도 싱숭생숭하다.

대선이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존재감을 보여야 겨울에 있을 대선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

각 계파는 자신들의 인물을 대선에 세우려 한다.

‘진기성이 그걸 노렸겠지.’

상대의 욕망을 노리는 것은 정석 중에 정석이다.

학생운동 계파는 호시탐탐 당대표의 계파를 노렸다.

진기성은 당대표 계파의 핵심인 김상록 의원을 무너뜨릴 폭탄을 들고 학생운동 계파에 접근했을 거다.

진기성은 바보가 아니다.

직접 칼을 들고 나서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상대의 그림자를 밟으며 뒤에서 움직인다. 성윤이 입을 열었다.

“지금 말한 사람들, 연휴에 누구를 만났는지 어디를 갔는지... 알아낼 수 있는 만큼 알아와 봐.”

“네.”

우선 진기성이 누구와 손잡았는지 확인하려 했다.

싸움 전에 상대를 파악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일.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위태롭지 않다.

***

며칠 후, 성윤과 정우는 서안시 사무실에 마주 앉아 있었다.

세상은 김상록 의원에 관한 일로 시끄러웠다.

실검 순위에서 김상록 의원의 이름이 떨어질 줄 몰랐다.

정우가 휴대폰을 내려두며 입을 열었다.

“찌라시 취급하는 기관은 전부 뒤졌어요.”

“그래서?”

“1월 2일에 민국당 강홍장 의원이 강남 한정식집에 들렀어요. 그래서 CCTV를 확보하려 했는데 이미 그쪽에서 가져갔대요.”

“가져갔다고?”

“네.”

CCTV를 지웠다는 것은 어떤 꿍꿍이가 있었다는 거다.

당당하면 그런 것을 가져갈 이유가 없다.

정우가 슬쩍 웃으며 말한다.

“그런데, 거기서 멈췄다면 박정우가 아니죠. 종업원에게 진기성의 사진을 보여줬거든요? 그랬더니 같이 온 사람이 맞대요. 흐흐.”

진기성과 강홍장 의원이 만났다.

강홍장 의원은 민국당 학생운동 계파의 수장이다.

차기 대선의 유력 주자이기도 했다.

예상했던 것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었다.

“고생했어.”

성윤이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강홍장 의원은 진기성에게 공천을 줄 거다.

그것도 괜찮은 곳, 민국당의 텃밭을 찾아서.....

세상은 상부상조, 기브 앤 테이크니까.

쉽게 당선되게 놔둘 수는 없었다.

이번에 진기성에게 한 방 맞은 게 꽤 기분이 나빴다.

직접 맞은 것은 아니지만 김상록 의원은 성윤이 손바닥 위에 두려던 사람이다.

‘돌려줘야겠어.’

성윤이 시선을 들어 정우를 향했다.

“이번 재보궐선거, 민국당 텃밭을 찾아봐. 지난 총선 기준으로.”

“옙.”

정우는 휴대폰을 손에 들고 검색을 시작했다.

텃밭을 찾는 거야 인터넷 검색으로도 충분하다.

한참 꾹꾹 버튼을 누르며 검색하던 정우가 다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떨리는 시선이 성윤을 향했다.

“의, 의원님!”

“왜?”

저런 목소리는 불안하다.

꼭 다른 사건이 터질 것만 같다.

정우가 마른 입술을 움직인다.

“지, 지금 의원님이 실검 1위예요.”

“어?”

성윤도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실시간 검색어의 순위가 보였다. 1위. 이성윤 의원.

2위. 김상록 의원.

3위. 불법 도박.

.

.

.

지금 세상의 이슈는 김상록 의원이다.

그런데 성윤이 김상록 의원을 밟고 1위가 됐다.

사건 사고가 터지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분위기가 서늘해졌다.

성윤은 다급히 검색어를 눌렀다.

기사가 보인다.

-<언제나 친구> 전소희, 이성윤 의원과 이웃사촌.

‘어?’

뭔가 싶었다.

클릭해서 들어가 보니......

[<언제나 친구> 전소희, 이성윤 의원과 이웃사촌.

지난 밤 11시에 시작하는 LHN 방송국의 예능 프로그램 언제나 친구에 인기 가수 전소희가 출연했다.

그녀는 프로그램의 ‘팩트 확인’ 코너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보육원에 전화를... (중략) ...이성윤 의원과 통화가 됐다.... (후략)]

성윤은 허탈하게 웃었다.

잔뜩 긴장했는데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어이가 없었다.

“이런 것으로도 실검 1위가 될 수 있나?”

“정치보다는 예능이 더 재밌... 아닌데, 생각해보면 정치가 더 코미디인데요. 흐흐.”

***

새해의 첫 국회가 열렸다.

의원들은 여기저기 모여 덕담을 나누고 있다.

기자들은 그런 의원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성윤의 주변에도 사람이 많이 몰린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의원님도요.”

“올해는 좀 살살 합시다.”

성윤은 의원들과 가벼운 새해 인사를 나누며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찾는 것은 강홍장 의원이다.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멀리 강홍장 의원이 등장했다.

그는 민국당 거대 계파의 수장이며 차기 대권에 가까운 인물 중 하나다.

민국당 의원들이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오셨습니까!”

오늘따라 민국당 의원들은 죄다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그런데 강홍장 의원의 덩치가 멧돼지 같다보니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조폭 두목의 행차로 여길 정도였다.

성윤은 강홍장 의원과 대화는커녕 인사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시선을 돌리다가 우연인 것처럼 눈을 마주쳤다.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서안시 동구 이성윤 의원입니다.”

“소개할 필요까지 있나요? 유명한 장판교 이성윤 의원인데. 하하하.”

강홍장 의원이 크게 웃는다.

거대한 덩치답게 호탕한 웃음소리다.

국회에 상주하는 기자들은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민국당의 대권 주자 중 하나인 강홍장과 대한당의 떠오르는 신예 이성윤의 만남이다. 쓰일지 안 쓰일지는 몰라도 그림은 될 것 같았다.

강홍장 의원이 성윤과 악수하며 입을 열었다.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의원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강홍장 의원의 옆으로 김미선 기자가 섰다.

그녀가 성윤과 살짝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는 성윤에게 부탁받았다.

-강홍장 의원과 인터뷰해주세요. 질문은......

그 기억을 떠올리며 그녀가 강홍장 의원에게 시선을 돌린다.

“의원님, 짧게 인터뷰 가능할까요?”

“말씀하세요.”

“재보궐선거 공천이 거의 마무리되었다고 들었는데요. 민국당의 텃밭이라 불리는 수원시 14선거구에 출마할 후보는 누가 되나요? 그 지역에서 의원님의 인기가 높잖아요. 그래서 그곳에 출마하는 후보가 의원님의......”

강홍장 의원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고, 내가 김 기자가 하는 질문이면 다 대답해 주고 싶은데요. 그런 것을 말해 줄 수 없다는 것 잘 알잖아요. 미안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 성윤의 귀에는 강홍장 의원의 속마음이 들려왔다.

-진기성 변호사가 들어가게 될 거야.

성윤은 꾹 주먹을 쥐었다.

이제 진기성의 출마 지역을 알았다.

그렇게 국회가 끝났다.

성윤은 곧장 채정학 대표의 사무실로 향했다.

채정학 대표는 골치 아픈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공천에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공천? 어디?”

“수원시 14선거구입니다.”

민국당의 텃밭 중 하나다.

당연하지만 대한당의 깃발을 들고 출마하는 것은 기피한다.

아직 그 자리는 비어 있었다.

채정학 대표가 고개를 끄덕인다.

“누구를?”

“오강민이라고 있습니다. 이력서는 조만간 가지고 오겠습니다.”

성윤은 안기부 출신 오강민을 진기성의 대항마로 사용하려 한다.

오강민은 절실하다.

어떻게든 당선되기 위해 애쓸 거다.

게다가 그는 정보를 얻는 것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

진기성을 끝까지 괴롭힐 거다.

채정학 대표는 한숨을 내뱉었다.

“수원 14선거구...... 기피하는 지역이니까 가능하기는 하지. 그런데, 지금은 내 결정만으로 되는 게 아니야. 원로들이 공천심사위원회에 들어갔어.”

지금껏 조용했던 원로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점잖게 국회의원을 해 먹는 중이었다.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에 정년이 없는 것을 이용했다.

원로라는 이름으로 ‘엣헴’ 헛기침이나 하며 천만 원이 넘는 월급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강상원 의원의 사건 때문이다.

가만히 있다가는 언제 치욕을 당할지 몰랐다.

“심사위원회에 있는 원로를 설득해야 해. 그런데, 설득할 수 있겠나?”

설득은 논리로 하는 게 아니다.

이득으로 하는 거다.

욕심 많은 늙은이라면 어렵지 않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설득할 수 있습니다.”

< 보이지 않는 손. - (4)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