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17화 (117/300)

< 보이지 않는 손. - (2) >

김상록 의원이 동그란 눈으로 성윤을 바라봤다.

앞에 성윤이 앉아 있다는 것, 현실이 이해되지 않았다.

눈동자가 멍하다.

“이, 이 의원?”

“네.”

“지금 이게 무슨......”

“죄송합니다. 십 분만 시간을 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다.

약속을 잡은 것도 아니고.......

이런 일은 납치라 해도 할 말이 없다.

게다가 성윤은 대한당이다.

김상록 의원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울렸다.

“지금 뭐하는 짓입니까!”

하지만 성윤은 느긋하다.

“옆에 서류 봉투 하나가 보이죠?”

김상록 의원의 눈동자가 옆으로 데구루루 굴러갔다.

누런 서류봉투가 보였다.

“확인해 보세요.”

김상록 의원이 다급히 서류봉투를 열었다.

두툼한 서류를 손에 들고 펼쳐보기 시작한다.

한 장, 두 장.......

그의 눈빛이 떨려왔다.

“이, 이건......”

성종 그룹이 김상록 의원의 뒷주머니를 채워 준 용돈 내역이다.

천만 원에서 1억까지, 날짜별로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김상록 의원이 서류 봉투를 콱 움켜쥔다.

서슬 퍼런 눈동자가 성윤을 쏘아본다.

하지만 흥분한 눈동자와 달리 목소리는 침착하다.

“지금 협박하는 것인가? 그런데, 자네... 상대를 잘 못 선택했어.”

성윤이 이런 서류를 가져온 것은 명백한 시비다.

김상록 의원의 입에서는 반말이 내뱉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성윤은 여전히 존대하고 있다.

“김상록 의원님... 뇌물을 받으셨습니다.”

“그래, 받았어. 그런데, 뭐? 이런 종이 쪼가리로 뭘 할 수 있지?”

김상록 의원이 ‘쿡쿡쿡’ 웃기 시작했다.

상대는 성종 그룹이다.

그들은 수많은 국회의원의 주머니를 채워주고 있다.

그가 입을 연다.

“나만 받았다고 생각하나? 이런 걸 터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나? 국회는 물론이고 검찰, 언론... 모두 쉬쉬할 거야. 자네 혼자 낙동강 오리알이 되겠지.”

상당히 많은 국회의원이 성종 그룹의 후원을 받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국회의원이 처음 돈을 받게 되는 과정은 비슷하다.

말 그대로 얼떨결에 받는다.

하지만 한두 번 받다 보면 그게 월급인 줄 안다.

나중엔 그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다.

그들은 그 돈을 받기 위해 성종 그룹을 지킨다.

돈을 받은 사람들끼리 두둔하고 돕는다. 그렇게... 성종 그룹은 철옹성이 되었다.

감히 이제 까불기 시작한 피라미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김상록 의원이 비웃듯 말을 이어간다.

“이 의원, 자네 요즘 인기 좀 있다고 시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것 같은데, 이런 것 하나 들고 왔다고 내가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아?”

“깜짝 안 하시겠죠.”

“알고 있으면 차 돌려. 여기까지는 나도 눈 감아 줄 수 있어.”

성윤이 힐끗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5분 남았습니다. 의원님.”

“차 돌리라고 새끼야! 너희 당대표고 원내대표고 다 내 후배들이야!”

“욕설은 안 하셨으면 좋겠는데요.”

김상록 의원은 발로 성윤이 앉아 있는 운전석을 쾅쾅 차기 시작했다.

“차 돌리라고 이 새끼야!”

성윤이 룸미러를 통해 힐끗 김상록 의원의 표정을 살폈다.

잔뜩 일그러져 있다.

핏발선 눈동자엔 분노가 가득하다.

성윤이 입을 열었다.

“흥분하신 것 같은데, 생각이란 것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뭐?”

“제가 나이는 어리지만 명색이 국회의원입니다. 더러운 일을 시킬 사람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어요. 그런데, 제가 직접 나선 이유가 뭘까요?”

김상록 의원의 눈빛에 의문이 잔뜩 들었다.

그러고 보니... 직접 얼굴을 내밀고 작업을 한다는 것은 뭔가 확실히 믿는 구석이 있다는 거다.

“이, 이유가 뭐야!”

“첫 번째, 전 언제나 목숨 걸고 합니다. 그러니까 의원님도 목숨을 거세요.”

성윤은 그 말과 동시에 액셀을 꾹 밟았다.

굉음이 일어난다.

갑자기 속도가 빨라졌다.

김상록 의원은 자신의 체중이 뒤로 밀리는 것을 느꼈다.

다행히 오가는 차는 없었다.

하지만 두려움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너... 너 뭐야? 뭐하는 거냐고!”

“두 번째, 대한당 의원님들이 모이면 구시렁대는 게 있어요. 왜 대한당만 스캔들이 일어날까? 민국당이라고 깨끗한 것은 아닌데.”

“뭐?”

“이제 차 돌리겠습니다.”

성윤은 브레이크를 콱 밟았다.

끼이이이익 소리가 날 때 핸들을 틀었다.

반대편 도로에 낡은 모텔 건물이 보인다.

성윤이 모텔이 보이는 곳에 차를 멈춰 세웠다.

“세 번째, 건너편의 모텔. 불법 도박판이 열린다고 합니다.”

“......!”

“도박판에서 나오는 이득의 일정 부분이 누군가의 손에 들어간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부터 그걸 파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이 의원?”

싸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차 두 대가 모텔 앞에 섰다.

김상록 의원의 표정이 파들파들 떨려왔다.

깡패의 뒤를 봐주고. 깡패는 일반 시민을 도박판에 앉혀 돈을 뜯어내고. 그 돈은 예순 넘은 늙은이의 손에 들어간다.

“힘 쓸 생각은 하지 마세요. 이미 대비해 뒀으니까요. 저도 그 정도의 힘은 있습니다.”

김상록 의원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지금 뭘 하자는 건가?”

“시작은 참고인이 되겠네요. 하지만 휴대폰을 검사하고 통장까지 조사하면.......”

김상록 의원은 눈을 콱 감았다.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정치인이 깡패의 뒤를 봐준다는 스캔들.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인식이 좋지 않기로 소문난 도박장이다.

터지면 살아남기 힘들다.

‘어쩌지? 어쩌지?’

성윤은 그의 속마음을 듣고 있었다.

그는 보신주의 정치인이다.

남의 아픔은 외면하지만 작은 개미에게만 물려도 펄쩍 뛰는 사람.

결국 그의 입에서 협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을 원하지?”

성윤이 슬쩍 웃었다.

“10분 지났네요.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성윤은 액셀을 꾹 밟았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윤이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자 김상록 의원이 다시 외친다.

“뭘 원해! 말해!”

“공천권 하나만 주십시오.”

“......!”“이번 재보궐 선거 서안 시장 자리....... 민국당의 공천권 제가 사용하고 싶습니다.”

“그... 그건......”

아직 발표가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진기성 변호사로 내부 결정되었다.

틀기는 어렵다.

김상록 의원은 초조하게 손가락을 움직인다.

“다른 곳은 안 되나? 충북에 괜찮은 자리가 있는데......”

“저는 서안시 동구 국회의원이에요. 다른 지역은 관심 없습니다.”

“이미 내부적으로 결정된 사항이 있어서 힘들 것 같은데......”

성윤은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전화번호를 찾아 꾹 누른다.

“모텔에 경찰 들어갔지? 지금 도박이 열리고 있으니까 다 잡아가라고 해. 통장, 휴대폰, 전부 탈탈 털어봐. 가관일 거니까.”

성윤이 통화 종료 버튼을 꾹 눌렀다.

김상록 의원의 시선이 다급히 창밖으로 향했다.

모텔 앞에서 서성이는 경찰이 보였다.

그들이 무전을 받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김상록 의원이 악을 지른다.

“멈춰! 그만해! 왜 그러는 거야! 내가 못 한다고 그랬어? 힘들 것 같으니까 시간 좀 달라고 한 거잖아! 왜 이렇게 성격이 급해!”

잠시 후, 김상록 의원의 사무실 앞에 차가 멈춰 섰다.

주차장에는 김상록 의원의 아내와 보좌관 그리고 운전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성윤이 운전석에서 내렸다.

성윤의 얼굴을 알아본 김상록 의원의 아내가 깜짝 놀란다.

“이성윤 의원이에요?”

성윤이 그녀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

“죄송합니다. 평소 존경하는 김상록 의원님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부득이하게.......”

“아뇨, 괜찮아요. 괜찮아.”

아내는 밝게 웃고 있었다.

성윤은 기초 의원들을 찾아봐도 보기 드문 젊은 정치인이다.

어떤 일인지는 몰라도 ‘존경하는’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아내는 입을 가리고 호호호 웃는다.

성윤의 옆으로 정우가 섰다.

쇼핑백을 건넨다. 받아 든 성윤이 그것을 다시 김상록 의원의 아내에게 전했다.

“받으십시오.”

“뭐예요?”

“신년 선물입니다.”

“저요?”

“의원님께 잘 보이고 싶으면 사모님께 잘 보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성윤이 부드럽게 웃었다.

김상록 의원의 아내가 쇼핑백을 살폈다.

빨간 가방이 보인다.

그것을 본 순간 김상록 의원의 표정이 당혹으로 물든다.

김상록 의원은 여대생 스폰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성윤이 건넨 가방은 그가 여대생에게 선물로 줬던 것과 똑같은 거다.

성윤이 입을 열었다.

“사모님 스타일을 잘 몰라서 의원님 취향을 알아봤는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김상록 의원의 귓속에 성윤의 말이 무섭게 박혔다.

성윤은 김상록 의원이 성종에서 용돈을 받을 것부터 도박장 그리고 여대생까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지금 성윤이 한 말은 마치 ‘네 모든 것은 내가 다 알고 있다.’라고 느껴졌다.

모두 안기부 출신 오강민이 가져온 정보였다.

그는 어떻게든 공천을 받고 싶어서 김상록 의원을 터는데 온 힘을 다했다.

그리고 원래 더러운 인간이었던 김상록은 먼지를 풀풀 날렸다.

덕분에 성윤의 목적도 변경됐다.

처음은 진기성의 방송 출연을 막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상록 의원이 저지른 지독한 악행은 그 이상도 가능했다.

그래서 진기성의 출마를 원천적으로 막기로 했다.

김상록 의원이 떨리는 눈으로 마른 침을 삼킨다.

심장은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는 바보같이 웃는다.

“예뻐요. 마음에 들어요. 정말 감사해요. 잘 쓸게요.”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성윤과 정우는 정중히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아내가 호들갑을 떨며 김상록 의원에게 묻는다.

“뭐야, 뭐야? 이성윤이 민국당으로 오고 싶대요? 하긴, 저 사람 하는 것 보면 대한당이랑은 안 맞는 것 같더라니... 이성윤 의원을 민국당으로 데리고 오면 당신 위상이......”

김상록 의원은 푼수같이 떠드는 자신의 아내가 밉살스러웠다.

급기야 화를 낸다.

“조용히 해!”

***

“그런데, 진기성을 왜 그렇게 신경 쓰세요?”

여의도로 향하며 정우가 물었다.

성윤은 어깨를 으쓱한다.

“내가 신경 썼나?”

“출마도 못하게 막아 버린 거잖아요.”

멀리 국회가 보였다.

성윤이 입을 연다.

“글쎄.......”

역사를 기억하면 흥망성쇠는 간단하다.

난세가 돌입했을 때, 영웅이 등장하면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악인이 판을 치면 기울어지고 무너진다.

그 악인은 정의의 가면을 쓰고 활보한다.

지금 있는 썩은 정치인들이 그냥 커피라면 나타날 악인들은 TOP였다. 그게 성윤이 본 미래였다.

그리고 그 거대한 악인 중 하나가 진기성이었다.

성윤이 픽 웃으며 말했다.

“관상만 봐도 싸이즈 나오잖아. 가식적인 인간. 그런 인간이 정치에 발을 들이는 것은 막아야지.”

사무실에 들어갔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지만 보좌진들은 오늘도 다크 서클을 턱까지 내린 채 열심히 일하고 있다.

“오늘은 일찍 퇴근하시죠?”

성윤과 정우는 손에 들고 있던 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보좌진들의 시선이 테이블로 향한다.

“뭐예요?”

“케이크. 집에서 가족과 드시라고요.”

정책을 맡은 보좌관이 기지개를 쭉 켠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능글맞게 웃으며 케이크를 바라본다.

“제가 의원님과 일한지 얼마되지는 않았지만 딱 느낀 게 있어요.”

“느낀 것?”

“이런 걸 준 다음에는 더 빡시게 일을 시킨다는 것이요. 흐흐.”

옆에서 다른 보좌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맞아. 간식 사올 때가 제일 무서워.’ 하고 있다.

이번엔 회계를 맡은 비서관이 다가왔다.

“그래도 감사히 먹을게요.”

“오늘은 푹 쉬세요.”

“다음 출근할 때는 의원님도 서른이네요? 축하해요.”

나이에 대한 것은 별 느낌이 없다.

그런데, 정우는 좋아한다.

“이제 아재 개그를 이해할 연세!”

“연세라니......”

보좌진들은 케이크를 하나씩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갔다.

정우도 마무리 일을 끝낸 후 성윤의 옆으로 다가왔다.

“퇴근하셔야죠?”

“먼저 가, 조금 있다가 갈 게.”

“어? 차는요?”

“됐어.”

“그럼, 기다릴게요. 사무실에 있는 것은 싫으니까 흡연실과 커피숍 왔다 갔다 하고 있을게요.”

정우는 사무실을 떠났다.

성윤은 의자에 앉았다.

적막함을 느끼며 잠시 쉬고 싶었다.

멍하니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김상록 의원이다.

-서안시장 후보 공천... 추천할 사람이 있는가?

“제가 추천해도 되겠습니까?”

들려온 김상록 의원의 목소리는 바람 빠진 풍선 같았다.

-...그래. 원래 서안시 시장 선거를 위해 방송도 잡혀 있었는데, 그것도 내가 일방적으로 끊었어.

김상록 의원은 자신이 최대한 노력했다는 것을 어떻게든 알리고 있었다.

그래야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성윤은 그를 향한 총을 들고 있다.

그 총은 정확히 그의 등 뒤를 겨눈 상태다.

자신의 등을 향한 총구는 무서운 법이다.

-윗선에 욕을 먹기는 했지만 내가 자네가 원하는 공천을 얻기 위해 움직였다는 것을 좀 알아주게.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진기성의 앞날은 막았다.

통화를 종료한 성윤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멍하니 생각에 빠져든다.

그동안 진기성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어깨는 군장을 짊어진 것처럼 무거웠다.

‘당분간은 조용하겠지.’

진기성이 언제 또 얼굴을 내밀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성윤이 더 막강한 힘을 얻었을 시기다.

그럼, 어렵지 않게 막아낼 수 있을 거다.

성윤이 현재를 바꾸고 바꾸며 미래는 크게 바뀌고 있었다.

노크 소리가 똑똑똑 들렸다.

“누구세요?”

성윤이 문을 열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었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수더분한 외모의 남자.

그가 천천히 허리를 굽힌다.

“진기성이라고 합니다.”

< 보이지 않는 손.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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