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14화 (114/300)

< 사람이 많으면. - (5) >

“맞아요. 대한당이죠.”

임인희 변호사의 눈빛이 묘해진다.

그녀는 변호사다.

많은 시간을 법정에서 보냈다.

정치바닥만큼 거짓말이 많은 곳이 법정이다.

거짓말은 일상이고 진실은 흐리다.

그래서 그녀는 성윤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성윤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녀의 속마음은 이미 듣고 있었다.

하지만 모른 척 입을 연다.

“생각이 있으십니까?”

“갑작스러운 제안이라서... 이유를 듣고 싶어요.”

성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뭐든 물어보세요. 속이지 않고 말씀드리죠.”

“전 방송에 출연하는 변호사가 아니에요. 대중은 제 얼굴과 이름을 모르죠. 그런데, 권유하는 이유가 뭔가요?”

“정치적 문장으로 말씀드리면 스토리텔링이 좋아서요. 이백만 원을 받던 공장 직원. 그런데, 그런 사람이 수억 원의 연봉을 받는 에스 로펌의 변호사가 되었다. 인생 역전의 시나리오. 매력적이지 않나요?”

“정치적 문장을 빼면요?”

“오랫동안 뒷조사를 했습니다. 변호사님과 함께 일하고 싶었거든요.”

그녀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뒷조사라는 말에 기분 좋을 사람은 없다.

게다가 성윤은 국회의원이다.

‘민간인 사찰’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녀의 생각을 들은 성윤이 손을 저었다.

“사찰은 아니고요. 변호사님에 관한 인터뷰를 많이 읽었습니다. 그리고 굳이 변호사님과 함께하고 싶은 이유를 말씀드리면, 서안시에는 공단이 있어요. 대부분 시민이 공단 근로자죠.”

“......”

“하지만 저는 직장 생활을 해 본 적이 없어요. 그분들의 마음을 잘 몰라요. 고민은 하지만 어떤 것이 불편할지, 무엇이 더 필요할지. 경험이 부족하니 생각의 한계가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장은 시민의 마음을 아는 분이셨으면 합니다.”

“제가 공장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으니까요?”

“네.”

성윤은 가볍게 웃으며 커피잔을 손에 쥐었다.

임인희 변호사가 다시 묻는다.

“그럼, 대한당이 아니라 무소속을 권하는 이유가 뭐죠?”

“그건 변호사님의 결정이 확정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성윤의 말은 단호했다.

하지만 임인희 변호사는 물러서지 않는다.

“결정은 들은 후에 하고 싶은데요. 남의 꼭두각시로 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이건 확실히 말씀드릴게요. 꼭두각시는 아닐 겁니다.”

대화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임인희 변호사는 질문했다.

성윤은 때론 모호하게 가끔은 확실하게 대답했다.

임인희 변호사가 어디 가서 떠들 사람은 아니다.

그녀는 신중했고 비밀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럼, 고민해 보시고 연락 주십시오.”

성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이제 그녀에게 선택의 시간을 남겨 줄 때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며 성윤이 정우에게 물었다.

“내기할래? 임인희 변호사가 어떤 선택을 할지?”

“내기가 안 될 것 같은데요. 저도 출마할 것 같거든요.” “이유는?”

“질문을 들어봤을 때, 싫은 내색은 없었잖아요. 의원님이 왜 무소속을 권유하는지에 대한 의문만 있었죠.”

“그리고?”

“출신 성분과 나이에 대한 콤플렉스요.”

성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임인희 변호사는 인생 역전의 성공 신화를 썼다.

하지만 겉으로만 화려하다.

그녀가 근무하는 에스 로펌은 초일류 대학 출신자의 집합소.

삼류 대학 출신인 그녀가 비벼 대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그녀는 늦은 나이에 변호사가 됐다.

엘리트로 커온 사람을 짓밟고 올라가기는 무리였다.

그녀의 변호사로서의 성공은 여기까지다.

성윤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고 싶었을 거야. 그런데, 세상은 변호사 자격증 하나로 바뀌는 곳이 아니잖아. 그런 것은 영화나 만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

세상을 바꾸려면 세상을 움직이는 곳에 있어야 한다.

임인희 변호사의 선택은 이미 예상됐다.

성윤과 정우는 차를 타고 당사로 향했다.

정우가 운전을 하며 입을 연다.

“그런데, 무소속으로 나오면 서포트는 어떻게 할까요? 대놓고 할 수는 없잖아요?”

“일단 방송국에 연락해서 임인희 변호사의 인생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잡아야지. 그리고 나머지는 출전 선수 명단을 보고 고민하자. 체급에 맞게 준비해야 하니까.”

“예능은 어때요? 토크쇼 같은 곳 많이 이용하잖아요.”

“괜찮네.”

이런저런 전략을 세웠다.

정우는 슬쩍 성윤의 표정을 살핀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였다.

“말해.”

“...그런데요. 대충 예상은 하는데 확실히 듣고 싶어서요.”

“뭘?”

“무소속을 만들려는 이유요. 설마 대한당에서.......”

그때, 성윤의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다.

“잠깐, 미안.”

성윤은 발신 번호를 확인했다.

‘어?’

안기부 출신 오강민이다.

지금은 전공을 살려 성종 그룹에서 정보를 취급하고 있다.

‘왜? 전화했지?’

성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기부 오강민은 말했었다.

-제가 먼저 연락드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정보라는 것은 필요한 게 아니면 쓰레기나 마찬가지거든요. 전 원치 않는 쓰레기를 전해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먼저 전화가 걸려왔다니.

이유가 궁금했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성윤입니다.”

-오강민입니다. 찾아뵙고 싶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시간이 언제 괜찮으십니까? 제가 맞추겠습니다.

안기부 오강민은 이득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것을 보면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성윤의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이 오갔다.

얼마 전 만났던 성종 그룹 윤 회장의 비서실장 정기화.

최근 국회의 일.

성윤의 주변으로 모이는 국회의원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없다.

생각만으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다.

직접 발로 뛰고 부딪혀야 알 수 있다.

“내일 저녁 어떠세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통화를 종료했다.

정우가 묻는다.

“안기부 오강민이요?”

“어.”

“뭐래요?”

“보자네.”

“왜요?”

정우도 이상했나 보다.

눈빛에 의문이 가득하다.

성윤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안기부 오강민 실장은 어둠 속에서 살아온 음흉한 자다.

꿍꿍이를 숨기고 접근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하지만 성윤은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존재한다.

상대의 목적을 알아내고 활용할 수 있다.

꿍꿍이가 깊으면 깊을수록 성윤이 얻는 것도 많았다.

“만나보면 알겠지.”

잠시 후, 당사에 도착했다.

건물 내부에 들어서자 뜨거운 기운이 확 느껴진다.

평소보다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며칠 전, 국회 예산 문제가 끝났다.

대한당은 서둘러 재보궐 선거에 돌입했다.

이번 재보궐 선거에 나온 자리는 총 14개.

각 계파는 자신의 사람을 유리한 공천에 넣기 위해 물밑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있어야 목소리를 높일 수 있어서다.

문제는 대한당이 지금 좋은 상황이 아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얼마 전 총선에서 비참하게 패배했다.

다음 재보궐 선거에서도 깨지면 대선은 위태하다.

어쩌면 청와대의 주인이 바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원들은 자신의 계파만 생각한다.

위기감은 채정학 대표와 주진만 원내대표만 느끼는 것 같았다.

채정학 대표는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각 계파는 채정학 대표를 압박하고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힘 있는 정치인이 들어와 입을 열었다.

“전략 공천해야 합니다! 이런 인물이 있는데 힘 빠지게 경선을 왜 합니까? 경선하면 치부만 공개됩니다. 그러니까 단수 공천으로 가야죠! 당대표 힘으로 할 수 있잖아요!”

이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공천 심사가 들어가기도 전에 난리를 핀다.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비서가 들어와 입을 연다.

“이성윤 의원이 왔습니다.”

“들어오라고 해요.” 성윤이 들어왔다.

채정학 대표가 초췌한 표정으로 성윤을 본다.

“자네도 공천에 넣을 사람이 있나?”

“농담이시죠?”

“미안, 요즘은 누가 찾아와도 다 공천 때문인 것 같아.”

채정학 대표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두 사람은 소파에 앉았다.

채정학 대표가 한숨을 내뱉으며 말한다.

“민국당은 타도 대한당을 외치며 똘똘 뭉쳤다는데......”

채정학 대표는 성격이 유하다.

모두를 만족하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그 틈을 파고들어 채정학 대표를 압박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만족하게 해줘!”

모두가 만족하는 정치인은 존재할 수 없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였다.

그가 성윤을 보며 입을 연다.

“그래, 찾아온 이유는?”

“서안시 시장 후보... 혹시 내부적으로 결정된 사항이 있나요?”

“넣고 싶은 사람 있어?”

“아뇨. 그냥 궁금해서요.”

진심이었다.

임인희 변호사의 상대가 될 사람이 궁금했다.

채정학 대표는 ‘끔’ 소리를 내며 책상으로 걸어가 서류 하나를 가지고 왔다.

성윤의 앞에 둔다.

“현재는 두 사람. 경선이 있을지 아니면 단수 공천으로 갈지는 결정되지 않았어. 개인적으로는 공천 심사를 거쳤으면 하는데, 이놈의 의원들이......”

채정학 대표의 얼굴을 보면 얼마나 시달렸는지 알 수 있었다.

눈빛부터 지긋지긋해 보였다.

“봐도 될까요?”

“보라고 준 거야.”

성윤은 파일을 펼쳤다.

알고 있던 이름이 보인다.

꿈속의 미래에서 성윤은 아직 박대철 의원의 아래에 있었다.

당시 박대철 의원은 룸살롱 중독자였다.

지금 보이는 이름은 박대철 의원과 룸살롱에서 함께 어울리던 인물이다.

그러니까 쓰레기다.

채정학 대표가 입을 열었다.

“그 두 사람은 걸러내고 걸러낸 거야. 서안시 시장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꽤 많아. 자네 덕에 서안시의 대한당 지지율이 꽤 높잖아?”

가벼운 칭찬이었다.

하지만 성윤의 시선은 여전히 쓰레기 같은 이름에 가 있었다.

꿈속의 미래가 똑같이 진행되었다면 이 인물은 다음 지방 선거에서 서안시의 시장이 된다.

그리고 더러운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멀쩡한 건물을 부숴서 재건축하고 뒷돈 받고.

폭넓은 복지를 하겠다며 복지비용을 슈킹하고.

그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강남의 빌딩을 세 채나 사고.

게다가 갑질의 상징으로 불리기까지 했다.

성윤은 입술을 쓸었다.

‘이 사람이 공천될 가능성이 높겠지?’

경선의 상대가 딱 봐도 약하다.

커리어에서부터 쭉쭉 밀린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임인희의 경쟁자다.

채정학 대표가 말한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이 의원의 말은 들을 거니까. 자네가 개인 이득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잖아.”

“아뇨, 괜찮습니다.”

임인희 변호사의 상대가 누가 될지 확인하러 왔을 뿐이다.괜히 ‘이 사람은 공천에서 빼주세요!’라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성윤의 의견이 들어가면 채정학 대표의 다크서클은 더 짙어질 테니까.

그리고 누가 출마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성윤은 대한당 출신의 서안시 시장을 원하지 않았다.

성윤은 복도로 나왔다.

정우를 향해 조용하지만 빠르게 입을 열었다.

“이름은 정청호. 경찰 출신이고 은퇴 후 건물주인 놀이를 하고 있어. 조사해봐. 그런데, 조심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사람이니까.”

“옙.”

대한당의 후보는 알았다.

이제 민국당의 후보를 알아내면 된다.

성윤은 휴대폰을 귀에 댔다.

전화는 안기부 오강민에게 향하고 있었다.

“내일 오실 때 선물 하나만 주셨으면 좋겠네요.”

-어떤 게 필요하시죠?

“민국당의 서안시 시장 후보요.”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성윤은 서안시의 한정식집에서 안기부 요원이었던 오강민을 만났다.

그는 두툼한 가죽점퍼를 입고 나왔다.

언제 봐도 깡패 같은 인상이다.

그가 성윤의 잔에 술을 따르며 입을 열었다.

“윤 회장의 비서실장 정기화를 만났다고요?”

“네.”

“어떤 대화를 하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성윤은 술병을 넘겨받아 그의 잔을 채우며 물었다.

“별 대화는 없었는데요. 왜 그러시죠?”

안기부 오강민이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정기화 실장의 행동이 조금 이상해서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제 눈을 피할 수는 없거든요. 부회장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성윤이 정기화 실장을 만났던 날.

성윤은 넌지시, 지나가는 투로 말했었다.

성종 그룹에서 왕자의 싸움이 일어나면 스스로 그 자리에 앉으라고.

부회장이 있으면 정기화 실장은 쫓겨날 거라고.

정기화 실장은 아닌 척했었다.

하지만 무척 동요했었나 보다.

안기부 오강민의 눈에 보일 정도로......

성윤은 고개를 저었다.

“별 이야기 없었습니다. 서안시 공유지 매각 문제를 말했을 뿐이에요.”

안기부 오강민은 성윤을 물끄러미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물어봤자 대답하지 않을 것을 알아서다.

“그럼, 됐고요.”

“그래서, 선물은 가지고 오셨습니까? 민국당의 서안시 시장 후보가 누구죠?”

“아, 진기성 변호사라고 아시나요? 인권 변호사인데......”

성윤의 행동이 멈췄다.

‘진기성?’

꿈속에서 봤던 미래.

성윤은 진기성과 상당히 가까웠다.

박대철 의원의 보좌관이었던 성윤을 민국당에 영입해 정치에 입문시켜줬던 사람이 진기성이다. 오랜 정치 생활에서 진기성은 아군이며 적군이었다.

술을 마시며 인생을 나눴고 서로 죽일 듯이 싸웠다.

손을 잡는 척했다가 꺾어 버리는 게 일상이었다.

그리고 성윤의 마지막.......

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던 날 진기성이 찾아왔었다.

그는 전 대통령 이준대를 쏘라며 총을 건네줬었다.

꿈속을 기억하며 성윤은 온몸에 전율이 찌릿찌릿 오는 것 같았다.

꿈속에서는 친했다.

적으로 있었을 때도 서로는 안부를 걱정했던 사이다.

하지만, 지금은 꿈이 아니다.

현실이다.

미안하지만 짓밟을 거다.

성윤의 주먹에 꽉 힘이 들어갔다.

‘드디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구렁텅이에 밀어 넣었던 악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진기성이 시작이다.

조만간 이준대까지 나타날 거다.

멈춰 있던 시계가 째깍째깍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윤이 차갑게 웃었다.

임인희 변호사를 당선시켜야 할 목적이 더 선명해졌다.

< 사람이 많으면. -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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