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11화 (111/300)

< 사람이 많으면. - (2) >

외신에서 터진 기사는 곧 국내로 이어졌다.

인터넷 게시판은 난리가 났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뜨겁게 타오른다.

이유는 대선이다.

이제 연말, 조금 있으면 새해가 돌아온다.

그럼, 대선 주자들이 본격적으로 용트림을 할 거다.

대선은 내후년에 있지만 지금부터 존재감을 부각하기 위해서다.

민국당과 그 지지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팔을 걷어붙이고 욕설을 내뱉었다.

그들은 뒷방 늙은이로 전락했던 한상국 대통령이 특사를 기회로 꾸물꾸물 기어 나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번 일로 한상국 대통령의 숨구멍을 막아 버리려 했다.

그럼, 대선 고지에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대한당 지지자들은 어떻게든 무마하려 했다.

이번 사건은 백형욱이나 김대성 때와 다르다.

강상원 의원은 대한당의 상징 중 하나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보자면 청렴하고 결백하며 권력에 욕심 없는 깨끗한 이미지다.

오랜 시간 대한당의 원로로 존재하며 대한당이 어려워질 때마다 구원 투수로 등장했었다.

정치에서 상징성은 크다.

상징성이 무너지면 기둥의 뿌리가 흔들리게 된다.

대한당 지지자들은 이번 일이 다음 대선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쉴드를 쳤다.

-겁대가리를 상실했나. 수준 보소. ㄷㄷㄷ

-이거 가짜 뉴스입니다.

ㄴ지랄 ㅋㅋㅋ

-팩트. 이 기자 블로그 들어가 보니까 일본에 있는 외신 기자였음. 즉, 일본에서 돈을 받고 쓴 것.

ㄴ대한당 병신들 믿고 싶은 것만 믿지?

ㄴ민국당은 팩트없이 선동질하는 것이 특기.

ㄴ근거도 없고 의혹만 있고. 선동 인정.

-해명 기사조차 나오지 않았는데 설레발치면 뭐하냐? 헬조선 수준.

ㄴ인정. 의혹일 뿐이다. 밝혀진 게 아니다. 그런데, 바퀴벌레처럼 달려드는 민국당 수준 보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나? 정황 좀 보고 말해라! 이러니까 대한당과는 대화가 안 통해.

-나 홀로 귀국했을 때부터 미심쩍었음.

ㄴ머리가 장식이냐? 성폭행이면 바로 체포됐을 텐데, 귀국을 할 수 있나?

-짜증나네. 사실이건 뭐건 일본 특사 흠집 났다. 분위기 좋았는데 찬물을 뿌리네.

-아닐 거야. 말이 안 되잖아? 회식 자리도 아니고 특사로 간 자리에서 강상원이??? 그것도 외교관에게??? 생각이 있으면 이런 기사 안 믿지.

성윤이 휴대폰을 내려두며 시선을 옮겼다.

정우가 보인다.

“지금 경호원 잡을 수 있어? 외교관님 주변으로 몇 명 붙여.”

이제 개싸움이 시작될 거다.

강상원 의원은 살기 위해 바동거릴 게 분명하다.

물에 떠내려가는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어떤 짓을 할지 모른다.

물리력이 동원될 것도 예상에 넣어야 했다.

정우가 대답한다.

“바로 준비할게요.”

“그리고 호텔도 잡아. 방은 두 개. 경호원이 지낼 곳과 외교관님이 지낼 곳. 그리고 예약은 다른 사람 이름으로.”

“네.”

성윤의 시선이 서지유에게 틀어졌다.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하다.

겁에 질려 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욕을 처먹는 중이다.

그녀를 향해 성윤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당분간 호텔에서 지내세요. 휴대폰은 전화로만 사용하시고 연락은 저희하고만 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텔레비전도 보지 않았으면 하고요. 길지는 않을 거예요. 하루, 또는 이틀...... 그 이상은 되지 않게 할 게요.”

“...네.”

“그리고 다음만 생각하세요.” “네? 다음이요?”

“진실이 밝혀지면 지금껏 외교관님을 욕했던 사람들,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성윤은 지금의 일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했다.

뒤에 올 즐거운 일만 떠올리고 있다.

그녀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진다.

지금과 달리 힘차게 대답한다.

“네.”

정우가 서지유와 함께 나갔다.

그리고 성윤은 사무실 옥상에 올라 담배를 입에 물었다.

흐릿한 연기가 내뱉어졌다.

연기는 허상처럼 흩어진다.

마치 강상원 의원이 쥐고 있던 권력처럼 보인다.

그가 쥐고 있던 권력은 연기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강상원 의원에게 이번 겨울은 정말 춥겠어.”

강상원 의원이 사라지면 권력 구도는 또 한 번 개편될 거다.

성윤은 옥상 난간에 팔을 걸치고 혼란 속에서 얻을 이득을 떠올렸다.

생각에 빠졌던 성윤은 휴대폰의 진동을 느꼈다.

발신 번호는 김미선 기자다.

“네, 기자님.”

-의원님,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그런데, 강상원 의원 성추행이요. 이거 진짜예요? 전화해서 여쭤보고 싶었는데 실례일 것 같아서 연락 못 했거든요. 그런데, 정보통 탈탈 털어도 나오는 게 없어서 답답했는데.....

그녀는 늦은 시간에 전화한 게 미안했는지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는다.

“지금 시간 되세요? 제가 여의도로 넘어갈게요.”

-아, 정말요?

성윤은 휴대폰을 종료하고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가 몸을 돌린다.

***

다음 날, 대한당 당사 기자회견실.

기자들이 가득 모여 있다.

방송국 카메라도 돌아가는 중이다.

노트북과 녹음기를 준비하던 기자들이 수군댄다.

“이거 진짜래?”

“바로 해명하는 거 보면 루머겠지. 강상원 의원이 나이가 몇 살인데, 그리고 딸도 있고 손녀도 있잖아. 그런데, 딸보다 어린 외교관에게 그랬다고? 루머야. 루머.”

“하긴......”

강상원 의원은 그동안 이미지를 잘 만들었다.

기자들도 믿지 않는다.

“왔다.”

기자들의 잡담이 끊겼다.

강상원 의원이 나와 단상에 오른다.

기자들은 숨을 죽이고 강상원 의원에게 집중한다.

단상에 선 강상원 의원이 느긋하게 웃으며 입을 연다.

“어젯밤, 외신에서 저에 관한 스캔들이 있었죠? 다들 아시겠지만 제가 이팔청춘도 아니고 성추행이라니요. 모든 것은 근거 없는 낭설입니다.”

한 기자가 손을 든다.

“의원님, 이른 귀국을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몇 번 말씀드렸습니다. 건강상의 문제였습니다. 나이가 이렇게 먹으니 몸이 망가지고 있어요. 진단서라도 보여드려야 하나요?”

강상원 의원의 거짓말은 완벽했다.

느긋한 태도와 여유로운 말투.

벼랑 끝에 몰린 것 같은 느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가 입을 연다. “이런 루머가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지 알아보고 강경 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네티즌 역시 엄중한 법의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수십 년을 국회에 있었습니다. 이 나라를 위해 봉사했어요. 전 명예롭고 싶습니다. 단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습니다.”

강한 어조였다.

강상원 의원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는다.

잠시 후, 사무실로 들어간 강상원 의원이 몸을 돌려 보좌관을 노려본다.

여유롭던 그의 표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악마처럼 보였다.

목소리도 신경질적이다.

“그년 찾았어?”

“아, 아직 못 찾았습니다.”

“당장 찾아!”

지금 기자 회견은 언 발에 오줌 누기였다.

일단 고비는 넘겼지만 언제 또 시끄러워질지 모른다.

자신에게 추행당한 외교관이 나타나 ‘모든 것은 루머였어요.’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된다.

“그년을 찾아서 입에 돈을 쑤셔 넣어. 돈이 안 되면 원하는 자리를 준다고 해! 그리고 찾을 때까지 연예인 찌라시 터뜨려.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

“알겠습니다.”

“대답은 넙죽넙죽!”

강상원 의원의 분노는 풀리지 않는 것 같았다.

보좌관은 눈을 피한다.

“...죄송합니다.”

“내가 없어지면 네 자리도 없어지는 거야. 내가 사라지면 네가 누리는 권력도 사라지는 거야. 알고 있으면 빨리 움직......”

두 사람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지이이잉.

휴대폰이 불길하게 진동한다.

보좌관은 서둘러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강상원 의원은 눈을 찌푸린 채 보좌관의 표정을 살핀다.

보좌관의 표정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보좌관이 더듬더듬 말한다.

“의, 의원님......”

“왜! 또 뭐야!”

보좌관은 리모컨을 찾아 텔레비전을 틀었다.

단아한 모습의 아나운서가 보였다.

-강상원 의원은 성추행 사건은 사실과 다르다며 기자회견까지 열며 적극 해명했습니다. 그런데, 묵었던 호텔의 복도 CCTV가 공개됐습니다. 대한민국 원로 국회의원의 추악한 민낯입니다.

화면이 바뀌고 호텔의 CCTV가 나타났다.

문 앞에 선 외교관 서지유의 모습이 나온다.

그녀가 초인종을 누르자 문이 활짝 열린다.

강상원 의원이 모습이 나타났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

전부 모자이크 처리되어 있는데 그게 더 흉측해 보였다.

강상원 의원이 외교관 서지유의 팔을 잡는다.

그리고 그녀를 방으로 끌어당긴다.

서지유는 가지 않으려 반항했지만 노인의 힘은 강했다.

그녀의 구두는 벗겨졌고 그대로 질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저... 저게......”

화면을 보던 강상원 의원의 눈동자에 영혼이 빠져나갔다.

그가 비틀거린다.

보좌관이 잡지 않았다면 쓰러졌을 거다.

강상원 의원의 시선은 화면에 집중된다.

그는 지금 보는 화면이 현실이 아니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텔레비전 화면은 감정이 없다.

계속해서 그날의 영상을 보여준다.

문이 스르륵 닫히고 있다.

방으로 끌려간 서지유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CCTV는 휑한 복도만 비추고 있다.

그때, 성윤이 나타났다.

다급하게 달려와 닫히는 문을 잡는다.

그리고 문을 열어 서지유를 끌어낸다.

성윤이 강상원 의원을 노려보며 뚜벅뚜벅 앞으로 다가간다.

문이 닫히며 영상이 끝났다.

강상원 의원은 허물어지듯 의자에 앉았다.

그가 머리를 감싸 쥔다.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권력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기사의 댓글과 SNS에는 강상원 의원에 관한 욕이 도배됐다.

-개새끼.

-노모 품번 구합니다.

ㄴ그걸 봐서 뭐해 ㅋㅋㅋㅋ

-강상원 의원 그럴 줄 알았다. 관상부터 음흉하더니.

-외교관 욕하던 분들 어디 가셨나? 무릎 꿇고 반성해라.

***

“강상원 그거 봤어?”

“봤지. 그런데, 멍청하게 CCTV에 찍혔을 걸 몰랐나?”

“바보지. 바보.”

서안시 커피숍이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모인 직장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특사로 간 사람이 성추행했다는 사건은 유명 연예인의 음주운전 사건보다 충격적이었다.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강상원 의원의 일로 입방아를 찧는다.

“검찰에서 바로 조사한다고 했지? 그런데, 국회의원은 안 잡혀가지 않아? 방탄 국회잖아.”

“에이, 청와대에서 성역 없는 수사 촉구했어. 대통령이 대한당이잖아. 이제 끝난 거야. 감옥에서 여생을 보낼걸?”

“아니, 휠체어 타고 나올 거야. 환자 코스프레.”

남자 직원들이 낄낄댔다.

그들의 말을 듣던 여직원이 커피잔을 내려두며 말한다.

“그런데, 이성윤 멋있지 않아요? 드라마나 영화처럼 딱 구해주는 거.”

“어! 어!”

다른 여직원이 손뼉을 친다.

두 사람의 화제는 자연스레 성윤으로 이어졌다.

그런 백마 탄 왕자가 자기들 앞에도 나왔으면 하는 말......

어린 나이에 국회의원이고 어쩌고.

성윤의 칭찬이 이어지자 같은 남자로서 배가 아팠나 보다.

남자 직원이 눈을 흘긴다.

“이성윤도 남자야. 그 외교관이 예뻐서 도와준 거야.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 봤지? 보정했겠지만 진짜 예쁘던데?”

여직원은 인상을 팍 썼다.

“이성윤이 똑같은 줄 아나?”

그때, 구석에 앉아 조용히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사람이 입을 열었다.

“어? 이성윤 뉴스 또 나왔다.”

직원들의 시선이 그를 향해 홱 옮겨갔다.

‘뭔데? 뭔데?’ 하는 눈빛이 강렬하다.

시선을 받은 사람이 조용히 입을 연다.

“서안시 공유지를 성종 건설에 매각하는 데 그게 2조래......”

“2조?”

2조, 일반 사람에게는 감도 오지 않는 숫자다.

여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그게 왜 이성윤 뉴스에요?”

휴대폰을 보던 사람이 답한다.

“처음에 성종에서 9800억을 제안했고 서안 시장은 오케이 했는데, 이성윤이 반대해서 2조까지 끌어 올렸대. 그리고 그 돈은 다 서안시의 복지를 위해 쓸 거래. 공단 앞에 지하 차도도 만들고. 사용한 돈은 모두 정확히 공개할 거고.”

“진짜 대박.”

그 시각, 성윤은 서안시 시청 시장실에 있었다.

맞은편에는 강정기 시장이 보인다.

“퇴임식 연설문입니다.”

성윤은 그의 앞으로 서류 봉투를 내려뒀다.

강정기 시장이 미간을 찌푸린다.

뇌물을 받다 걸리며 민국당의 대부로 있는 안재열 전 대통령에게 퇴임을 종용받았다.

그의 정치 생명은 끝났다.

그나마 명예롭게 은퇴하려면 지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강정기 시장이 한숨을 내뱉으며 성윤을 본다.

“퇴임사까지 써주시고...... 명예도 지켜주시고...... 고맙다고 해야 합니까?”

“그건 생각하기 나름이죠.”

강정기 시장은 봉투를 열어 퇴임사를 확인한다.

건강상의 이유로 어쩌고저쩌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 없었다.

성윤이 소파에 등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성종 건설에서 받은 2조, 제가 쓰겠습니다. 시민을 위해.”

< 사람이 많으면.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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