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10화 (110/300)

< 사람이 많으면. - (1) >

성윤이 꿈속의 일을 기억하고 있을 때, 정기화가 입을 열었다.

“2조... 성종 건설 대표가 결정할 사항이 아닙니다. 그룹의 안건으로 넘어왔고 우리는 고민했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투자할 수 있습니다.”

“감사해야 하나요?”

“감사할 필요는 없지만 생각은 해주셨으면 합니다. 2조를 투입했을 때 우리가 얻는 이득이 없습니다.”

이득이 없다는 것은 헛소리다.

서안시의 공유지는 약 8만 평, 산술적으로 따져도 4천 세대를 넘게 지을 수 있다.

거기에 상업 용지를 추가하면 분양가는 2조가 훌쩍 넘어갈 거다.

성윤이 입을 열었다.

“세상에 3대 거짓말이 있다고 해요. 그중 하나가 장사꾼이 하는 ‘밑지고 판다.’ 라는 말이죠.”

정기화가 와인 잔을 만지작거린다.

입술은 엷게 웃고 있다.

그가 조용히 입을 연다.

“건설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이득은 5%, 10%가 아니에요. 그 이상입니다. 그 이하는 손해 보는 장사입니다. 2조를 투입해서 손에 쥐는 것이 몇 푼 되지 않으면 시작할 이유가 없어요.”

“그래서요?”

정기화가 엷게 웃었다.

“이번 투자는 의원님에 대한 선물이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선물이요?”

“외람된 말씀을 드리면... 의원님에 관한 정보는 매일 산더미처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원님의 관심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돈, 여자... 어떤 것도 관심이 없어 보였거든요.”

성종 그룹은 성윤을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려 한다.

성윤에게 비리가 있다면 개목걸이를 채웠을 거다.

하지만 찾지 못했다.

그럼, 다음 방법은 회유다.

“성종 건설이 서안시 공유지를 2조에 매입했다는 것, 의원님의 공으로 돌리겠습니다. 그 돈이 시민들에게 돌아가면 지지도가 높아질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땅을 사면 주변 땅값도 많이 오를 거예요. 그럼, 땅 주인들이 좋아하겠네요.”

“......”

“그리고 아파트 입주 시기를 3년 후에 있을 총선에 맞추겠습니다. 그동안 공사 진행 과정에서 생기는 모든 문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모두 의원님이 될 겁니다. 입주민들이 좋아할 겁니다.”

“......”

“그 모든 것을 언론사를 통해 광고하겠습니다. 의원님의 이름은 한 달에 두 번 이상 언론에 오를 겁니다.”

아파트 공사는 3년 정도가 걸린다.

그 기간 동안 언론 플레이를 하며 성윤의 이름을 하나씩 넣어 주겠다는 거다.

성종 그룹은 분양을 통해 이득을 얻고 성윤은 지역 일꾼의 이미지를 얻는다.

그럼, 윈윈이다.

정기화가 조용히 말을 잇는다.

“돈이 오간 것이 없으니 걸릴 것이 없습니다. 의원님은 가만히 앉아 언론만 확인하시면 됩니다. 그럼, 3선도 무리 없이 당선될 겁니다.”

성윤이 슬쩍 웃었다.

“파트너가 되면 어떤 것을 요구하시려고 거창하게 말씀하실까요?”

정기화의 입술에 기름기 가득한 미소가 걸렸다.

“저희는 정치인에게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도움을 드리지요.”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속마음은 성윤의 귀에 박히고 있었다.

지금 성윤을 포섭하려는 이유는 하나다.

윤 회장의 나이가 일흔이 넘었다.

그는 이제야 승계를 준비한다.

그런데, 뒤늦게 승계를 하려면 무리가 따른다.

막대한 상속세를 피하며 분식회계 등의 꼼수를 부려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눈을 감아주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한 명이라도 더 포섭하기 위해 애를 쓰던 중이다.

그중에 걸리는 인물이 성윤이었다.

천방지축 날뛰는 인물.

첩보에 따르면 백형욱 의원 등이 감옥에 간 이유가 성윤이라고 알려져 있다.

승계 과정에서 성윤과 마찰이 생기면 타협하지 않고 찔러 들어올 게 분명했다.

그래서 성종 그룹은 고민하고 있었다.

‘어떻게 포섭하지?’

그 과정에서 서안시 공유지 매각이 터진 거다.

성종 그룹은 이 기회로 성윤과 손을 잡으려 한다.

그래서 그룹의 실세라 불리는 인물 중 정기화를 보낸 거다.

성윤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정기화는 성종 그룹 윤 회장의 사망 후 왕좌에 도전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런데, 훗날 적이 될 사람의 승계 작업을 열심히 돕고 있다니......

역시 사람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나 보다.

성윤은 의자에 느긋하게 등을 기댔다.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궁금한 게 생겼다.

정기화의 숨은 욕망을 끄집어내면 성종 그룹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꿈속에서 정기화는 패배했다.

덕분에 성윤도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었었다.

하지만 미리 준비한다면 역사는 바뀔지도 모른다.

이미 많은 역사가 뒤바뀌는 것을 성윤은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비서실장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정기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여유롭다.

지금껏 많은 정치인을 상대해서 그런지 단 한 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경영자가 바뀌면 세대교체가 일어나죠. 새로운 경영자는 기존 세력을 견제하고 싶어 하니까요. 제가 주류로 올라섰을 때 비서실장님은 계속 그 자리에 앉아 계실까요?”

정기화의 표정이 처음으로 불편해진다.

알고 있지만 모른 척 꺼내지 않았던 사실.

왕이 바뀌면 신하는 물러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혼돈이 온다.

역사가 말해 준다.

‘내가 계속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성윤이 깍지를 끼며 그의 앞으로 몸을 굽혔다.

“짧은 대화였지만 좋은 분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비서실장님과 오래 일하고 싶은데요.”

악마의 속삭임이 이어졌다.

속마음을 들으며 그의 간지러운 부분을 살살 달래준다.

결국, 정기화는 성윤의 눈을 피한다.

그의 심연에는 작은 파장이 일어났다.

‘내가 계속 있으려면?’

직접 왕위에 오르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과 밖을 잘 단속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걸리는 것이 승계를 돕는 국회의원들이다.

내부의 일은 알아서 할 수 있겠지만......

‘국회의원을 처리할 수 있을까?’

그들은 일명 성종 그룹의 장학생들이다.

성종 그룹에서 용돈을 받아 활동하고 있다.

쉽사리 정기화의 편에 서지 않을 거다.

아니 편에 서는 게 아니라 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 거리면서...... 정기화는 천천히 성윤을 본다.

성윤의 도움을 받으면 국회의원 처리 문제는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는 이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성종 그룹 장학생의 이름은 성윤의 귓가에 쑤셔 박히고 있었다.

그 이름 중에는 강상원 의원도 존재했다.

안 끼는 곳이 없다.

성윤은 정기화의 속마음에서 들려온 이름들을 머릿속에 새기는 중이다.

성윤은 다시 의자에 등을 기댔다.

정기화는 순간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성윤은 더 쑤시지 않았다.

작은 파장일 뿐이다.

정기화 실장이 충성을 다하는 성종 그룹 윤 회장은 아직 건강했으니까.

지금은 마음속에 불안감을 새겨두는 것으로 충분했다.

***

-어디세요? 아직 식사 안 끝나셨어요?

“아니야, 지금 끝났어.”

성윤은 호텔 밖으로 나와 정우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하늘은 어둑했다.

지나는 차량은 라이트를 켜고 달리는 중이다.

-사무실에 오시려면 멀었죠?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 차가 밀릴까요?

정우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왜?”

-문제가......

“전화로 말하기 어려워?”

-네.

“금방 갈게.”

통화가 종료됐다.

성윤은 택시를 잡아 올라탔다.

정기화와 대화하며 성종 그룹의 처분을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생각은 잠시 미뤄야 할 것 같다.

무슨 문제인지 모르지만 일단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서안시로 가주세요.”

그리고 잠시 후, 서안시 사무실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난처한 표정의 정우가 보인다.

그리고 소파에는......

강상원 의원에게 험한 꼴을 당할 뻔했던 외교관이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묶지 않은 긴 머리가 찰랑거린다.

“안녕하세요?”

조금은 힘없는 목소리다.

성윤도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정우에게 시선을 향했다.

왜 그녀가 이곳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정우가 고개를 저었다.

“압박이 들어 온 것 같아요.”

“압박?”

“이번 특사단 성과가 나쁘지 않았다고......”

“아.”

단번에 이해됐다.

일본 극우 정치인의 사과로 대통령은 잠시 레임덕에서 빠져나와 숨 쉴 구멍을 찾았다.

그런데, 강상원 의원의 사건이 터지면 숨 쉴 구멍이 다시 막혀 버린다.

온 국민이 강상원 의원과 대통령을 향해 손가락질할 거다.

대통령이 져야 할 책임은 광범위하다.

“청와대야?”

“아뇨, 외교부에서 알아서 기는 것 같아요. 강상원 의원이 열심히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중이고요.” “외교부? 장관이......”

“김현아요.”

성윤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김현아......’

방금 정기화 실장과 만나며 속마음에서 들려오던 이름이다.

그러니까 성종 그룹 장학생이며 강상원 의원의 라인 중 하나.

강상원 의원은 그녀를 찾아가 압박을 부탁했을 거다.

“이번 일을 해결해 주면 외교의 성과를 모두 넘기지. 그렇게 만들어주지.”

강상원 의원은 벼랑 끝에 서 있다.

그리고 외교부 장관 김현아는 업적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쓰는 중이다.

두 사람의 거래는 예상할 수 있었다.

성윤의 시선이 다시 외교관을 향했다.

외교관이 애써 밝게 웃는다.

“해결해 주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냥 한국 들어온 김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찾아온 거예요. 일본에서 인사를 못 드린 것 같아서......”

성윤이 외교관의 맞은편에 앉았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성함도 못 여쭤봤네요.”

“서지유입니다.”

성윤이 잠시 서지유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녀는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몰라도 마음고생이 심했나 보다.

눈이 붉었고 표정은 힘들었다.

“죄송합니다. 강상원 의원의 일은 조금 늦게 처리하려고 했어요. 시끄럽지 않은 편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이런 문제가 생겼을 줄은 몰랐네요.”

“아뇨, 아니에요. 정말 괜찮아요.”

그렇게 말했지만 서지유의 속마음은 달랐다.

-그만둘 거야.

그녀는 외교관을 그만두려 한다.

어릴 때부터 꿈이었다.

장래희망을 적는 란에 항상 ‘외교관’이라 적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외교부 장관 김현아가 그녀를 직접 호출했다.

그리고 말했다.

“당한 것도 아니잖아? 손목만 잡혔다며? 그런데, 그런 것도 못 참아? 넌 생각이 없니? 대통령님이 난처해져. 외교성과는 물거품 되는 거야. 몰라? 알면 그냥 조용히 있어.”

외교부 장관 김현아의 시선에 서지유는 모멸감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외교부 장관 김현아는 자신의 이득만 하고 있었다.

이기적인 윗선은 아랫사람의 의지를 꺾어 놓는다.

서지유가 다시 성윤을 바라봤다.

그녀는 성윤을 잠시 겪은 게 전부다.

하지만 성윤은 전혀 달랐다.

약자와 강자,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다.

잘못한 사람이면 상관 않고 혼을 낸다.

이런 사람이 위에 있었으면 생각해 봤다.

그녀가 살짝 웃는다.

“인사드렸으니까 이제 그만 가겠습니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네?”

성윤이 툭툭 휴대폰 화면을 만지작댔다.

화면에서 강상원 의원의 기사가 보인다.

가증스럽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가해자는 웃으며 돌아다니는데 피해자는 죄를 지은 것처럼 고개 숙이고 직장을 그만두고. 이상하지 않나요? 상식 밖인 것 같은데......”

“저는 정말 괜찮아요.”

서지유도 알고 있다.

겉으로 보는 힘의 크기에서 성윤은 강상원 의원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성윤은 물러서지 않는다.

성윤은 잠시 얼굴을 쓸었다.

성종 그룹 장학생 중 하나, 강상원 의원......

박살이 난다면 정기화의 갈등은 더 심해질 거다.

고름 같은 강상원 의원도 파내고 역사도 바꾸고.

‘마음에 드네.’

고름을 짜내는 것은 아프다.

하지만 놔둬서 더 큰 병이 되는 것은 막을 수 있다.

성윤의 시선이 다시 서지유를 향했다.

“여쭤보겠습니다. 얼굴이 팔려도 괜찮습니까?”

“네? 네.”

그 정도는 각오했다.

애초에 법정에 서서 증언까지 생각했었다.

그녀의 대답에 성윤이 고개를 끄덕인다.

“강상원 의원은 더 웃지 못할 겁니다.”

성윤의 시선이 정우에게 향했다.

“이번에 외신 기자 전화번호 받았지?”

“아, 네.”

“강상원 의원님 얼굴... 세상 사람 모두가 알게 해줘.”

정우는 고개를 끄덕인다.

성윤은 휴대폰에서 강상원 의원의 번호를 찾았다.

그리고 통화 버튼을 꾹 누른다.

“이성윤입니다.”

그 시각.

강상원 의원은 사무실에 있었다.

성윤의 전화를 받으며 재수 없게 쿡쿡쿡 웃고 있다.

그는 방탄 국회를 믿고 있다.

자신의 권력 앞에 고개 숙이고 따르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세상은 손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이 의원, 난 법 위에 있어. 법을 만드는 사람이니까. 난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 거야. 내가 말했지?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강상원 의원은 성윤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원님...... 다른 말씀을 드리려는 게 아니라......

성윤의 목소리가 무척 난처하게 느껴졌다.

강상원 의원의 미간을 찌푸린다.

어쩐지 불안하다.

그리고 그는 이런 불안감이 싫었다.

“답답하게 굴지 말고 말해. 무슨 일이야?”

-이번 일... 어디에서 샜는지 모르겠는데, 외신에서 알았나 봅니다.

“외, 외신?”

-네, 외신이요. 저도 국가 망신... 아니, 국가의 위상이 있어서 조용히 있었는데, 하......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강상원 의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간다.

머릿속이 다급히 굴러간다.

청와대 직원 등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빠르게 스친다.

조심조심 숨겼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이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는 법.

모두가 의심스러웠다.

성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일단 링크 보내드리겠습니다. 빨리 해결을 보셔야 할 것 같아서요. 저도 알아보겠습니다.

전화가 뚝 끊겼다.

바로 강상원 의원의 휴대폰 메시지에 링크가 들어왔다.

강상원 의원이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링크를 누른다.

그의 얼굴이 있는 대로 일그러졌다.

그리고 다시 서안시 사무실.

성윤이 테이블 위에 휴대폰을 내려두며 입을 열었다.

“폭탄 하나가 터졌네요.”

서지유는 눈을 깜빡인다.

현실이 이해되지 않는 거다.

정우가 낄낄거리며 입을 연다.

“붐!”

< 사람이 많으면.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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