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08화 (108/300)

< 사과. - (2) >

아쓰씨 의원은 멍했다.

감히 누가 정치인의 뒤통수를 때릴 수 있을까?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통증도 느끼지 못했다.

눈동자를 굴리더니 그제야 손을 들어 뒤통수를 만진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것 같았다.

순간, 강상원 의원이 다시 달려든다.

“나보고 뒈지라고! 내가 발정 난 개새끼라고! 넌 죽어 이 새끼야!”

강상원 의원의 손바닥이 아쓰씨 의원의 뒤통수를 다시 갈겼다.

아쓰씨 의원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틀어 강상원 의원을 봤다.

눈동자가 커진다.

“강 의원?”

하지만 늦었다.

강상원 의원이 덮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엎어졌다.

데굴데굴 굴러다닌다.

여의도 호랑이라는 별명이 왜 붙었는지 알겠다.

가까운 과거, 대한민국 국회가 지금보다 더 개판이었던 적이 있다.

배웠다는 양반들이 재킷을 벗어 던지고 주먹질로 승부를 봤던 그 시절......

강상원 의원은 그 중심에 있었다.

호랑이처럼 달려들어 상대를 물고 뜯고 난리도 아니었다.

아쓰씨 의원은 반항해 봤지만 강상원 의원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경호원들이 두 사람을 떼 논다.

사지가 붙잡힌 강상원 의원이 발버둥 쳤다.

“죽으라고!”

아쓰씨 의원도 바닥에 엎어져 허공을 향해 발길질하고 있다.

“빠가야로!”

두 노인네의 싸움은 추하고 추했다.

성윤은 골치 아픈 표정으로 이마를 감쌌다.

‘하......’

예상하지 못했던 싸움.

수습은 성윤의 몫이다.

성윤의 시선이 강상원 의원에게 향했다.

눈을 마주친 강상원 의원의 얼굴에 ‘아차!’하는 감정이 스친다.

그는 밤부터 성윤에게 시달렸다.

게다가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히며 분노가 끓었다.

이성을 잃었다.

‘욱’하는 감정을 참지 못했다.

강상원 의원은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다.

하지만 바닥 밑에는 지하가 존재한다.

지하로 내려가면 도착할 끝을 예상할 수 없다.

이성이 돌아오고 나니 겁부터 났다.

“이, 이 의원......”

성윤이 손목을 틀어 시간을 확인했다.

무심한 목소리로 말한다. “비행기 시간 얼마 안 남았네요. 일단 서울로 가세요.”

“이 의원......”

“가세요.”

단호한 목소리에 강상원 의원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몸을 돌린다.

그때......

“어딜 가!”

아쓰씨 의원이 호통치며 몸을 일으켜 세운다.

손바닥으로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낸다.

느릿한 동작은 주변을 고요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눈빛은 살벌하다.

“감히... 조센징 따위가 일본의 정치인을 건들고 도망가려고?”

“가세요.”

성윤이 그의 앞을 막았다.

강상원 의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라진다.

아쓰씨 의원이 히죽였다.

“폭력... 외교 해법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야. 빈 사무실에 들어와 좀 도둑처럼 노트북을 뒤지고. 폭력을 행사하고! 배은망덕한 조센징의 폭력은 배로 갚아줘야지.”

통역을 맡은 외교관의 얼굴이 질려간다.

그도 이제 성윤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눈치를 본다.

성윤이 느긋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말씀해 주세요.”

“...배로 갚아주겠다고.”

성윤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칼자루는 내가 쥐고 있는데......”

성윤과 아쓰씨 의원의 목소리 톤은 나긋나긋했다.

하지만 들리는 내용은 거칠다.

어떤 파국을 몰고 올지 모른다.

외교관은 눈을 꾹 감고 성윤과 아쓰씨 의원의 말을 전하기 시작했다.

‘나도 이제 몰라!’

성윤의 말을 전해 들은 아쓰씨 의원이 기가 차다는 듯 웃는다.

“칼자루? 동영상을 말하는 것인가? 넌 쓸 수 없어. 미국, 중국, 러시아... 각국의 권력자들이 너를 죽이려 들 거야. 그런데, 그 사람들의 보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아. 한국의 경제를 제제하겠지. 한국은 다시 IMF가 올 거야. 그럼, 나는 좋아. 그 바람을 타고 일본은 다시 날

아오를 테니까. 그런데, 너 따위 겁많은 조센징이 판도라의 상자를 연다고? 넌 그럴 각오가 없어. 조센징들은 언제나 입만 살아 있어. 주둥이만 나불나불......”

“그럴 수도 있겠네요.”

성윤은 수긍했다.

아쓰씨 의원은 기세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눈빛이 확 살아난다.

하지만 성윤의 냉소적인 말투가 그의 귓가에 쑤셔 박혔다.

“아쓰씨 의원,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어?”

성윤이 느긋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그 시선이 아쓰씨 의원에게는 불길하게 보인다.

성윤의 시선이 사무실 현관에 있는 경호원에게 멈췄다.

“사무실 문 잠가 주세요. 아무도 못 나가게 해주시고요.”

경호원은 고개를 끄덕인 후 문을 잠근다.

아쓰씨 의원의 눈에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성윤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성윤의 시선이 다시 그에게 닿았다.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 중 당신의 편은 비서 세 명.”

아쓰씨 의원의 미간이 확 일그러졌다.

자신은 비서 세 명이 전부다.

하지만 성윤은 경호원 여덟 명을 데리고 왔다.

“무슨 짓을 하려고!”

“내가 물리력을 사용해서 당신을 붙잡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당신의 노트북을 이용해 신원이 필요 없는 이메일 계정을 만든 후......”

아쓰씨 의원은 마른 침을 삼켰다.

성윤의 악마 같은 음성이 이어진다.

“동영상의 주인공들에게 메일을 보내면 어떻게 될까요? 궁금해지네요.”

“뭐, 뭐?”

아쓰씨 의원은 표정은 참담해진다.

성윤이 책상으로 걸어갔다.

아쓰씨 의원의 노트북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툭 치며 계속 말한다.

“미국, 중국, 러시아... 각국의 권력자들이 아쓰씨 의원을 죽이려 할 겁니다. 그런데, 보복은 당신이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거예요. 일본의 경제를 제제하겠죠.”

“이, 이성윤!”

“궁금해지네요. 당신은 일본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까요? 외국 정치인의 잠자리를 소장한 관음증 환자? 아니면 변태? 확실한 것은 일본 정치인의 치욕이 될 겁니다.”

아쓰씨 의원의 눈앞에 앞으로의 상황이 그려졌다.

그의 눈동자가 무서울 정도로 떨리기 시작했다.

성윤이 부드럽게 웃는다.

“아쓰씨 의원, 각오는 되어 있습니까?”

***

그 시각, 한국.

강상원 의원의 귀국 소식이 알려졌다.

공항에는 기자들이 몰렸다.

기자들은 강상원 의원을 기다리며 휴대폰 화면에 집중한다.

이들 역시 강상원 의원의 귀국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른 귀국은 어떤 문제가 있다는 거다.

그래서 휴대폰을 통해 기사를 확인하는 중이다.

혹시 다른 소식은 없는지 알기 위해서......

하지만 나온 기사는 모두 뜬구름만 잡고 있다.

[강상원 의원 이른 귀국. 문제 있었나?]

[성과 없는 일본 특사! 사과받으러 갔다 무슨 일이?]

[준비되지 않은 외교, 세금 낭비일 뿐이다.]

[사과는커녕 아무것도 없었다.]

[0점 특사.]

일본과의 외교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한국은 사과를 요구하지만 일본은 외면한다.

언론에는 특사단이 만찬을 했다는 소식만 알려졌다.

국민이 원하는 해결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화면에 잠깐씩 잡히는 극우 정치인 아쓰씨는 실실 웃고 다닌다.

여론은 불만이 쌓였다.

사람들은 특사단을 향해 일본에서 뭘 하냐고 손가락질한다.

그나마 성윤이 극우 단체와 이슈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외교적 성과로 볼 수는 없었다.

그런 중에 강상원 의원이 이른 귀국을 하게 됐다.

시선은 모였다.

뿔태 안경 기자가 입을 열었다.

“이번 특사로 대한당 지지율이 더 떨어질 것 같지?”

“아무래도?”

“이성윤 의원도 영향이 있으려나?”

질문 받은 기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영향력 있는 위치는 아니었지만 비난을 피하기는 어렵겠지? 아무래도 가장 이슈였으니까.” 뿔테 안경 기자가 한숨을 내뱉는다.

“이성윤 의원이 한 건 더 만들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외교는 다르지.”

외교는 능구렁이들의 싸움이다.

아직 여물지 못한 성윤이 비비기는 힘들다고 판단했다.

뿔테 안경 기자가 묻는다.

“그런데, 강상원 의원은 왜 먼저 귀국하는 거야?”

“글쎄......”

그때, 강상원 의원이 탄 비행기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기자들은 카메라를 꺼내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잠시 후, 강상원 의원이 출국장에서 나온다.

굳은 표정으로 앞만 보고 걷는다.

이마에 ‘날 건들지 마.’라는 문장이 적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기자들이 아니다.

기자들이 우르르 달라붙는다.

강상원 의원의 앞에 마이크가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의원님, 왜 먼저 들어오신 겁니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몸이 좋지 않아 먼저 왔습니다.”

“의원님! 이번 일본 특사가 0점이란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대답할 일이 아닙니다.”

강상원 의원은 기자들을 밀치며 걸었다.

기자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의원님! 한 말씀만!”

“의원님!”

청와대 인물들이 강상원 의원의 앞에 섰다.

기자들은 걸음을 멈춘다.

‘청와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강상원 의원은 찝찝한 얼굴로 청와대 인물들을 따라 차량으로 향한다.

그 순간, 기자들의 휴대폰이 일제히 진동했다.

메시지가 오기도 하고 전화도 걸려온다.

그들의 시선이 모두 휴대폰으로 향했다.

...그리고 일본 국회.

합동 연설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합의점이 나오지 않아 연설 시간이 계속 미뤄지는 중이다.

채정학 대표는 커피를 손에 들며 앞을 바라봤다.

극우 정당의 간사장이자 일본 거물 정치인 중 하나인 다쿠야가 보인다.

옆에서는 서기가 두 사람의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채정학 대표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얼마 전 아쓰씨 의원이 막말했잖아요. 일단 그것에 대한 사과해주셨으면 합니다.”

채정학 대표는 ‘일단’이라 말했다.

그 뒤에 받아 낼 사과도 준비되어 있다는 뜻이다.

다쿠야 간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쓰씨 의원의 말은 개인의 일탈입니다. 우리는 발언의 자유가 있고요. 그걸 일일이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다쿠야 간사장은 뒷말을 끌며 힐끗 채정학 대표를 본다.

정치인은 혓바닥으로 싸우는 검투사다.

대화 중 상대의 반응을 읽는 것은 필수다.

하지만 채정학 대표의 표정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수더분한 시골 총각으로 보일 뿐이다.

채정학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편히 말씀하세요.”

“아쓰씨 의원이 사과하면 한국은 또 붙잡고 늘어질 것 아닙니까? 이미 돈을 다 지불한 위안부 문제만 봐도 그래요.”

“위안부요?”

“한국인 다수가 재협상을 원한다고 국제 관행을 무시한 채 다시 테이블로 끌고 나오는 경우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런 상황에 우리가 마음 편히 사과할 수 있겠습니까? 끝이 없는데?”

다쿠야 간사장은 다시 채정학 대표의 표정을 살폈다.

채정학 대표의 표정은 똑같다.

다쿠야 간사장이 이렇게 나올 것을 예상했었다.

채정학 대표가 찻잔을 만지며 입을 연다.

“제가 판사로 있을 때, 강간 사건을 몇 번 받은 적이 있어요. 한 사건이 떠오릅니다.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범인이었는데, 그놈이 피해자를 보며 말하더라고요. ‘사과는 한 번 했다. 언제까지 해야 하냐.’ ‘그리고 나만 잘못이냐. 한밤중에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닌 학생의 잘

못도 있다.’ ‘어차피 어른이 되면 알게 될 것. 미리 가르쳐 준 것을 고맙게 생각해라.’라고 말했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쿠야 간사장의 표정이 더러워진다.

“채정학 대표, 지금 그 말은 너무 나간 것 같습니다.”

채정학 대표가 슬며시 웃는다.

“그런가요? 미안합니다.”

두 사람은 ‘하하하’ 웃는다.

하지만 분위기는 서늘해지고 있다.

채정학 대표가 강하게 입을 열었다.

“다쿠야 간사, 우리는 아쓰씨 의원에게 사과를 받아야겠습니다.”

다쿠야 간사는 마른 입술을 핥는다.

그는 채정학 대표가 특사단 단장으로 정해지면서부터 많은 것을 조사했다.

성격에서부터 식습관까지.

채정학 대표의 성격은 분명 유약하다고 들었다.

그런데, 지금 보면 강성 중의 강성이다.

“채정학 대표, 미안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똑같아요. 그런 것은 아쓰씨 의원에게 직접 말하세요.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나라입니다. 개인의 일탈을 국가가 나서서 사과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다쿠야 간사가 말을 하다가 손목시계를 본다.

그리고 놀리듯 말을 잇는다.

“아쓰씨 의원은 극우 중의 극우예요. 그런 사람이 제가 시킨다고 사과를 하겠습니까? 총리의 지시에도 콧방귀를 뀔 사람이에요. 만약에 극단적 극우 성향의 아쓰씨 의원이 사과한다면... 전 이번 공동 연설에 다른 보상 문제도 포함 시키겠습니다.”

“포함 시킨다고요?”

“네, 아쓰씨 의원이 사과하면요.”

채정학 대표는 입술을 쓸었다.

다쿠야 간사는 즐겁게 웃는다.

그는 아쓰씨 의원이 절대 사과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극우 중의 극우니까.

게다가 공동 연설문 발표까지 10분도 남지 않았다.

남은 10분 안에 아쓰씨가 사과한다는 것은 열 번 이상 로또 1등에 당첨될 정도로 희박한 확률이다.

그래서 이런 빈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확률이 현실에서는 벌어진다.

영화나 소설, 만화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지이이이잉.

채정학 대표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그가 휴대폰을 귀에 댄다.

성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링크 보내겠습니다.

“고생했어.”

채정학 대표는 통화를 종료했다.

곧장 메시지가 왔다.

링크를 누르자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로 넘어간다.

채정학 대표는 물끄러미 화면을 바라봤다.

그의 시선이 조회 수로 향한다.

짧은 시간에 이미 많은 조회 수가 찍혀 있다. 채정학 대표는 플레이 버튼을 누른 뒤 휴대폰 화면을 다쿠야 간사장에게 돌렸다.

“이거 한번 보세요.”

다쿠야 간사장은 고상하게 찻잔을 들고 있었다.

이번 외교는 자신들의 승리라고 생각했다.

그의 시선이 천천히 채정학 대표의 휴대폰으로 향한다.

그리고 고상한 행동은 바로 사라진다.

화면에 초췌한 표정의 아쓰씨 의원이 보였다.

다쿠야 간사장의 얼굴이 노기로 가득해졌다.

얼굴의 모든 근육이 인상을 구기는데 사용되고 있다.

화면 속에서 극우 정치인 아쓰씨가 입을 열었다.

< 사과.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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