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과. - (1) >
강상원 의원의 표정이 험악해진다.
술에 취했어도 성윤의 얼굴은 알아봤다.
날카로운 눈빛이 쏘아졌다.
하지만 성윤은 상관하지 않는다.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강상원 의원은 힘없이 그녀의 손을 놓친다.
“뭐하는 짓이야!”
강상원 의원이 호통을 쳤다.
성윤이 그를 한심하게 본다.
“옷부터 입으시고.”
“뭐!”
“외교관님은 그만 가세요.”
외교관은 멍한 눈빛으로 성윤을 바라봤다.
“...괜찮으시겠어요?”
성윤과 강상원 의원의 권력 차는 크다.
무려 여의도의 호랑이라 불리던 사람이다.
증거와 증인이 없으면 성윤이 짓밟힐 수 있다.
그 걱정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성윤은 담담하다.
“정우야, 많이 놀라셨을 거야. 집까지 모셔다드려.”
복도에 서 있던 정우가 앞으로 나섰다.
“가시죠.”
외교관이 말한다.
“증언이 필요하면 숨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면 법정 증언을 피하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의리가 있었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스르륵 문을 닫았다.
성윤과 강상원 의원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외교관이 울 것 같은 얼굴로 정우를 본다.
“어, 어떻게 해요.”
정우의 표정은 차갑다.
“일단 가죠.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집까지는 어려울 것 같은데......”
“전 괜찮아요. 갈 수 있어요.”
“택시는 잡아 드리죠.”
정우는 그녀를 보냈다.
그리고 담배를 입에 물며 고개를 틀어 호텔을 바라본다.
‘도대체 쉬운 일이 없어......’
몇 시간 전만 해도 침대에서 굴러다녔다.
성윤의 기사를 보며 웃고 난리가 났었다.
하지만 지금은 또 정반대다.
온탕과 냉탕을 몇 번이나 오가는지 모르겠다.
정우가 담배를 비벼 끈 후 로비의 카운터로 향했다.
“CCTV 확보하고 싶은데, 보안실이 어디죠?”
그 시각, 성윤과 강상원 의원은 마주 앉아 있었다.
가운만 걸친 강상원 의원이 비열하게 웃는다.
“기고만장하지 마.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건 지켜보면 될 일이고.”
강상원 의원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흐릿한 연기 속에서 그의 눈이 잔인하게 빛난다.
성윤을 찢어버릴 듯 노려본다.
“내가 외교관을 성추행하려 했다고?”
“말은 정확히 하죠. 추행이 아니라 성폭행.”
“누가 믿을 것 같아?”
말 그대로 현행범이다.
하지만 강상원 의원은 당당하다.
담뱃재를 툭툭 털며 말을 잇는다.
“난 술을 많이 마셨어. 숙소까지 가기 힘들었지. 근처 호텔을 잡았어. 씻고 자려 했지. 다급히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에 밖으로 나갔어. 그런데 외교관이 서 있었을 뿐이야.”
성윤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강상원 의원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내가 그렇게 말하면 그렇게 되는 거야. 언론도 국민도 내가 말하는 것을 진실로 믿어. 난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그러니까 본 것, 들은 것 다 잊고 사라져. 내가 자네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아량이야.”
“......”
“내 나이가 일흔이 넘었어. 손녀까지 있어. 내 이미지는 깨끗해. 그런데, 삼류 찌라시보다 못한 이야기를 누가 믿을 것 같아?”
성윤이 희미하게 웃는다.
“아량...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강상원 의원님.”
“알았으면 그만 가.”
“그런데요. 궁금한 것이 생겼어요. 제가 또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스타일이라.....”
강상원 의원의 표정이 찌푸려진다.
“...궁금한 것?”
“의원님의 말대로 세상이 움직일까요? 과연? 확인해 보고 싶네요.”
성윤은 휴대폰을 들었다.
강상원 의원의 표정이 다급해진다.
머릿속에서 많은 생각이 오간다.
하지만 확실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은 술이 덜 깬 상태다.
‘술이 깨고 생각해야 해. 지금은 시간을 끌어야 해.’
최대한 달랜다.
그리고 맨정신이 되었을 때 보좌관을 불러 상의할 생각이다.
그럼, 해결 방법이 나올 거다.
언론의 펜대를 꺾고 외교부에 압력을 넣고 외교관에게 돈을 찔러 입을 막아버릴 방법.
강상원 의원은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러면 되는 거야. 내일 아침까지만 버티면 되는 거야.’
강상원 의원은 그만큼의 힘이 존재했다.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만들 수 있다.
있는 사실을 흔적도 없이 지울 수 있다.
연기를 내뿜으며 최대한 간절한 눈빛으로 성윤을 바라봤다.
“이 의원... 생각해보니까, 내가 술에 취해 실수한 모양이야. 미안하네. 사소한 오해였을지라도 내가 책임져야지. 내일 그 외교관을 찾아 사죄하겠네. 그렇게 하지.”
“사과는 당연히 해야죠.”
“그래, 그래.”
강상원 의원은 최대한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성윤을 본다.
성윤은 소파에 등을 기대고 있다.
표정을 보면 혓바닥에 넘어간 것 같다.
강상원 의원은 긴장된 한숨을 내뱉었다.
조금은 긴장이 풀어지고 있었다.
‘됐어.’
그런데, 성윤이 휴대폰을 귀에 댄다.
느긋한 표정으로 강상원 의원을 쏘아보면서......
“대표님, 이성윤입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강상원 의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 이 의원?”
성윤은 상관 않고 계속 말한다.
“차로 10분 거리 호텔입니다. 네, 기다리겠습니다.”
성윤은 통화를 종료했다.
강상원 의원은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성윤을 쏘아본다.
꽉 다문 입에서 그의 목소리가 살벌하게 흘렀다.
“이성윤......”
“미안한 게 있으면 사과를 해야 하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벌을 받아야 하고. 그게 세상의 이치잖아요.”
급기야 강상원 의원은 테이블을 세차게 내려치며 일어섰다.
“이 새끼야!”
동시에 성윤의 손바닥이 테이블을 쾅! 내리찍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타국에 와서 추태를 부렸어. 그것도 일본. 끔찍할 정도로 부끄러워. 내가 감정적인 사람이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몰라. 꾹 참는 중이야. 그런데, 계속 새끼, 새끼......”
강상원 의원은 욕을 씹어 뱉었다.
성윤은 손을 저었다.
“법대로 합시다.”
잠시 후, 채정학 대표와 보좌관이 호텔 로비에 들어섰다.
새벽녘, 호텔 복도에는 두 사람만 있었다.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복도를 울린다.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내릴 동안 채정학 대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보좌관은 슬금슬금 채정학 대표의 눈치를 본다.
평소에 시골 총각처럼 인상 좋던 채정학 대표다.
그런데, 오늘은 잘 벼려진 칼날처럼 날카롭다.
두 사람은 성윤과 강상원 의원이 있는 방 앞에 섰다.
“들어가지.”
채정학 대표의 말에 보좌관이 벨을 누른다.
문이 달칵 열렸다.
“오셨어요?”
성윤이었다.
채정학 대표는 성윤을 스쳐 방으로 들어갔다.
강상원 의원은 소파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처참한 표정이다.
채정학 대표가 그의 앞에 마주 앉는다.
“채 대표. 이게 어떻게 된 일......”
채정학 대표는 강상원 의원의 말을 끊어 버렸다. “대통령님께 보고했습니다. 가장 빠른 비행기로 귀국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말 좀 들어봐! 난 아무것도 몰라! 갑자기 외교관이 찾아왔어. 급한 일인 줄 알고 문을 열어줬어. 그뿐이야!”
채정학 대표의 시선이 벽에 등을 기대고 있는 성윤에게 향했다.
대한민국 성범죄 사건은 여성의 증언에 무게를 둔다.
하지만 상대는 강상원 의원이다.
여성의 증언은 모함 또는 정치적 음모로 만들 힘이 있다.
그를 박살내려면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
그때......
“아... 다 모여 계셨네요?”
정우가 들어왔다.
성윤이 고개를 틀어 정우를 향했다.
“모셔 드렸어?”
“택시 타는 것까지 봤습니다. 그리고 이거.”
정우가 성윤의 손에 USB를 건넸다.
“뭐야?”
“강상원 의원님이 호텔 주차장에서 룸까지 들어온 행적. 그리고 외교관과 실랑이하던 복도의 CCTV 영상이요.”
강상원 의원의 눈에 콱 힘이 들어갔다.
‘CCTV?’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복도에서 외교관의 손을 잡아 방으로 끌던 모습이 잡혔을 거다.
‘먼저 확보했어야 했어.’
강상원 의원의 눈동자가 데구루루 굴렀다.
‘호텔 로비에 술집 여자도 있었잖아? 게다가 아쓰씨 의원까지!’
아쓰씨 의원은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 중 하나.
그와 함께 있던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
성범죄가 문제가 아니다.
‘어쩌지?’
동요 가득한 눈동자는 흔들렸고 관자놀이에는 핏줄이 불거졌다.
하지만 곧 바람 빠진 풍선처럼 한숨을 내뱉는다.
그리고 더듬더듬 입을 연다.
“이 일이 언론에 노출되면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어 질 거야. 자네들은 감당할 수 없어. 여기는 일본이니까... 그리고 난 살기 위해 온 힘을 다할 거야. 나와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이길 수야 있겠지. 하지만 자네들도 많이 다칠 거야. 그리고 채 대표, 이제 막 당대
표가 되었잖아. 가뜩이나 대한당 이미지가 안 좋은데 내가 기름을 붓기는 좀 그래. 그러니까... 모른 척해주면 안 되겠나?”
채정학 대표의 표정은 무심하다.
강상원 의원이 패배한 개처럼 고개를 숙인다.
그의 목소리가 계속되었다.
“일본에서 특사단의 일을 해결한 뒤에... 한국에 입국하면 이 바닥을 떠나지. 그게 좋을 거야. 일본에 망신당하는 일도 없을 테고. 그 외교관에게는 무릎 꿇고 손이라도 빌게. 그러니까 명예롭게 은퇴할 수 있게 해주게. 이십 년 넘게 있던 정치 생활이야. 제발......”
강상원 의원의 항복 선언은 빨랐다.
하지만 그가 노리는 것은 시간을 벌기 위함이다.
채정학 대표가 대통령에게 전화해 헤프닝이었다 말하면 그래서 이 밤만 무사히 넘기면.......
‘다 죽여 버리겠어.’
강상원 의원의 눈빛이 시퍼렇게 빛났다.
성윤이나 채정학 대표나 앞으로의 인생이 편하지 못할 거다.
채정학 대표가 턱을 쓸었다.
‘어떻게 하지?’
강상원 의원의 말도 일리가 있다. 이 사건은 국가 망신이다.
그것도 장소가 일본이다.
사과를 받으러 왔다가 조롱만 받고 떠날 수 있다.
“일단 한국으로 가고. 검찰이나 청와대에 앉아 있다가 특사 일정 끝난 후에 본격적으로 조사 받으면 되겠네요. 굳이 여기 계신다고 일이 될까요? 마음만 싱숭생숭할 것 같은데.”
성윤의 목소리에 강상원 의원의 시선이 홱 돌아갔다.
‘저 새끼가......’
성윤은 계속해서 찬물을 끼얹고 있다.
강상원 의원이 다시 채정학 대표를 본다.
“채 대표......”
간절한 눈빛.
하지만 채정학 대표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성윤 의원의 말대로 하면 되겠네요. 마음이 불편하실 텐데 계속 일정을 소화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말을 남기고 채정학 대표는 몸을 일으켰다.
강상원 의원이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는다.
“채 대표!”
강상원 의원은 채정학 대표의 보좌관이 지켜보기로 했다.
성윤과 채정학 대표는 복도로 나왔다.
채정학 대표가 손목시계를 본다.
새벽 3시다.
“내일 공동 연설이 있어. 강 의원 부분을 수정하려면 잠잘 시간은 없겠어.”
“아, 저도 빼주시면 안 될까요?”
채정학 대표가 물끄러미 성윤을 본다.
“이유는?”
“전 연설이 잡혀 있지도 않았고 가서 악수하는 역할이었잖아요?”
“그래서?”
“그 시간에 이번 특사단의 목적을 달성해 보겠습니다.”
채정학 대표의 눈에 의문이 든다.
“목적?”
“망언을 했던 아쓰씨 의원에게 직접 받는 사과... 가능할 것 같습니다.”
채정학 대표는 성윤의 눈에 든 확신을 봤다.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바쁘겠어.”
***
다음 날.
공동 연설이 진행되는 일본 국회.
아쓰씨 의원은 자리에 앉아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강상원 의원이 보이지 않는다.
‘술 처먹고 아직도 자는 거야?’
아쓰씨 의원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술 하나 못 이기는 놈이 국회의원이라니, 그러니까 조센징이지.’
그가 다리를 꼰다.
그리고 등을 의자에 기대는데 비서가 다급히 다가왔다.
“의원님?” 아쓰씨 의원은 물끄러미 비서를 봤다.
어쩐지 표정이 찝찝하다.
“왜?”
“사무실에... 이성윤 의원이 와 있다고 합니다.”
아쓰씨 의원의 안색이 흐려진다.
“이성윤이 왜?”
“당장 오지 않으면 어떤 비리를 공개하겠다고 하는데......”
“비리? 무슨 비리?”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방적으로 끊어 버려서......”
아쓰씨 의원이 벌떡 일어섰다.
평소라면 우습게 들었을 말이다.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을 거다.
하지만 강상원 의원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강상원 의원은 ‘이성윤’을 상당히 경계하고 있었다.
그의 본능이 알린다.
어쩐지 불안하다.
그는 서둘러 국회를 벗어났다.
그 시각, 성윤은 정우, 자신의 담당 외교관 그리고 여덟 명의 경호원과 함께 아쓰씨 의원의 사무실에 들어왔다.
사무실에는 두 명의 비서만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검은 양복을 입은 성윤과 사내들...
비서는 당황한다.
성윤이 비서 앞에 서서 친절히 입을 열었다.
“강상원 의원님이 오늘 일이 있어서 급히 돌아가셨거든요. 맡겨둔 물건이 있어서 그것 좀 가지고 갈게요.”
비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맡겨둔 거요?”
“네, 어제 술자리에서 맡겼다고 하던데... 금방 찾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비서는 아쓰씨 의원과 강상원 의원이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어제 두 사람이 만났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씀해주시면 제가 찾아오겠습니다.”
함부로 의원의 방에 사람을 들여놓을 수는 없다.
성윤이 빙긋이 웃는다.
“의원님께 전화해 보세요. 들어가도 된다고 허락 받았으니까요.”
비서는 휴대폰을 든다.
그 사이 성윤은 아쓰씨 의원의 방으로 향했다.
화들짝 놀란 비서가 외친다.
“의, 의원님!”
“전화해 보세요.”
성윤은 그 말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정우와 외교관이 들어오자 문을 딸칵 잠갔다.
밖에서 비서가 콩콩콩 문을 두들긴다.
“의원님! 의원님!”
성윤은 비서의 목소리는 상관하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블라인드가 가려져 있어 사무실에서는 이 안이 보이지 않는다.
시선을 틀자 책상 위에 노트북이 떡 보인다.
전원을 눌렀다.
화면이 보인다.
아무도 만지지 않을 것을 확신했는지 흔한 비밀번호도 설정해 두지 않았다.
“정우야, 동영상 파일 좀 찾아봐.” “동영상 파일 찾는 것은 또 제가 전문이죠.”
정우는 노트북을 두들긴다.
곧 화면에 동영상이 쫙 뜨기 시작했다.
“외장 하드에 담아.”
“옙!”
정우는 노트북에 외장 하드를 연결했다.
그동안 성윤은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대고 주변을 둘러봤다.
오랜만에 적진에 온 기분이다.
다가올 폭풍을 기다리며 성윤이 말했다.
“정우야, 우리도 소파 좀 좋은 것으로 바꿀까?”
“넓은 것으로 바꿨으면 좋겠어요.”
“넓은 것? 왜?”
“폭이 좁으니까 잘 때 불편해요.”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집에 가서 자라니까.”
“집에 갈 시간이 있으면 되게 행복할 것 같네요.”
“누가 보면 내가 악덕업주인 줄 알겠네.”
“맞아요. 악덕 업주.”
정우가 낄낄댄다.
분명 긴장으로 가득해야 할 분위기다.
그런데, 농담이나 따먹고 있다니.
외교관은 긴장된 표정으로 묻는다.
“그런데, 이래도 되는 거예요?”
정우가 뒷목을 주무르며 답했다.
“안 되죠. 하지만 절대 신고 못 해요. 신고했다가 오히려 박살 날 테니까.”
외장하드에 들어가는 동영상엔 각국의 유력 정치인의 모습이 보였다.
정치인이 오면 아쓰씨는 여자를 붙여준다.
그리고 그 동영상을 몰래 촬영한다.
악취미도 이런 악취미가 없다.
외교관은 두근대는 심장을 느끼며 마른 침을 삼킨다.
그때, 꽝! 꽝! 꽝!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쓰씨 의원이 돌아온 거다.
성윤이 정우에게 물었다.
“얼마 남았어?”
“10초.”
성윤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문을 열어 준다.
아쓰씨 의원이 재킷을 펄럭이며 들어왔다.
상당히 불편한 표정이다.
“뭐하는 짓입니까!”
시작부터 성질을 낸다.
분위기에 압도된 외교관이 더듬더듬 통역을 시작했다.
성윤이 다시 소파에 앉으며 다리를 외로 꼬았다.
“앉으세요.”
“됐습니다. 이유나 말하세요.”
아쓰씨 의원은 여전히 문 앞에 서 있다.
성윤이 슬쩍 웃으며 말했다.
“사과 받으러 왔어요.” 아쓰씨 의원의 입꼬리가 휘어진다.
“사과? 강상원 의원을 불러요. 급이 맞는 사람과 대화해야지.”
아쓰씨 의원은 성윤이 어떤 비리를 가졌다고 들었다.
하지만 강상원 의원의 힘이면 그 정도의 비리는 가볍게 뺏어 줄 거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성윤이 뒷목을 긁적였다.
“저기... 노트북에 있는 동영상 확보했는데.”
아쓰씨 의원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가 빠르게 고개를 틀어 정우를 본다.
정우가 실실 웃으며 외장 하드를 흔들고 있다.
“클라우드에도 보내뒀어요.”
“이런 미친......”
“원하는 것은 사과.”
“강 의원 어디 있어. 당장 불러!”
주먹이라도 내지를 기세다.
성윤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정말 웃기네, 강 의원님을 얼마나 좋아하기에 그런 동영상을 저장해 뒀을까?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아니고 그걸 왜 봐?”
아쓰씨 의원의 인상이 더욱 험악해진다.
“강 의원만 오면 너는!”
“강 의원님 한국 가셨어요. 안 올 겁니다.”
아쓰씨 의원의 표정이 가관이다.
그는 생각에 빠져 있다.
그러더니 웃는다.
“병신 같은 조센징 노인네. 결국 뭐가 걸렸구만? 내 그럴 줄 알았어. 조센징이 다 똑같지. 그런데, 그 영상이 있으면 뭐? 넌 폭로할 수 있어? 절대 못 하지. 강상원 그 조센징이 없어도 난 네 말을 들을 이유가 없어.”
외교관의 통역을 들으며 성윤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의 속마음.
정말 더러웠다.
하지만 그뿐이다.
성윤의 표정은 변화가 없다.
사무적으로 말한다.
“아쓰씨 의원, 내가 저 동영상을 어떻게 쓰는지 보여줄까?”
아쓰씨 의원은 여전히 능글능글 웃는다.
“폭로하게? 넌 못 해. 조센징은 다 똑같잖아? 너희 민족성이 그래. 겁은 많지만 이득에는 침을 질질 흘리고. 그래서 친일이 생겼고 나라도 뺏겼던 거야. 강상원 그 새끼도 한국에서 호랑이니 뭐니 불리지만 발정난 개새끼지. 한국에 사형 제도가 사라지고 있는 게 아쉽
네. 강상원 그 새끼는 뒈져야......”
순간, 아쓰씨 의원을 보던 성윤의 눈동자가 크게 커졌다.
아쓰씨 의원의 막말 때문이 아니다.
그 뒤에 서 있는 사람.
강상원 의원이었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아쓰씨 의원을 만나고 싶었다.
성윤의 처분과 자신의 스캔들을 상의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의 귀에 들려온 말은 악담도 그런 악담이 없었다.
강상원 의원은 아쓰씨 의원을 좋게 생각했다.
서로의 이득으로 뭉쳤지만 오랜 시간 함께하며 친구인 줄 알았다.
하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
강상원 의원의 얼굴이 도깨비처럼 변한다.
눈에서는 분노가 치솟는다.
“씨발놈이!”
순간이었다. 강상원 의원이 손바닥으로 아쓰씨 의원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둔탁한 소리가 ‘뻑!’ 하고 들려온다.
< 사과. -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