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특사. - (3) >
***
[이성윤 의원, 일본에서 극우 단체와 한판!]
[이성윤 의원의 패기! 외신도 놀랐다.]
[이성윤 의원 일본 참교육 동영상 100만 뷰 돌파!]
“이건 또 뭐야?”
“진짜 몰라서 그러시는 것은 아니죠?”
“몰라.”
일본에서의 첫 밤.
성윤과 정우는 방에 있었다.
성윤은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입에 댔고 정우는 침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휴대폰을 본다.
“팬 카페도 난리 났어요. 보실래요? 새로운 사진이 쉬지 않고 올라오는데......”
성윤은 고개를 저었다.
어떤 사진이 올라왔는지 안 봐도 뻔하다.
분명 이상한 합성으로 도배질을 해놨겠지.
그래도 궁금해서 힐끗 시선을 옮겼는데 정우는 뭘 봤는지 배를 잡고 웃고 있다.
자신이 모시는 의원이 인터넷에서 치욕을 당하는데 저렇게 웃는 걸 보면 확실히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미치겠어요. 각시탈 이성윤에 학익진 이성윤 그리고 AV 배우 이성윤,”
“AV는 뭐야?”
“보실래요?”
성윤은 손을 저었다.
“안 봐.”
정우는 더 크게 웃는다.
얄미울 정도로......
“미국 애들 댓글 써 놓은 것 보면 가관이에요. 역사 문제부터 해서. 흐흐흐.”
한참 웃는 정우의 휴대폰에 전화번호가 떴다.
외교관이다.
정우는 휴대폰을 귀에 댔다.
“네, 말씀하세요.”
-전화만 백 통은 받은 것 같아요. 특히 일본 극우 성향 쪽에서 쉬지 않고 들이대는데......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었다.
한국은 물론 일본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일본 극우 성향 언론사의 반응은 예상했다.
어떻게든 성윤에게 엿을 먹이고 싶은 거다.
그들은 망신당했다고 생각한다.
일본 언론은 이번 일을 기사화하지 않았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
이번 일은 외신과 인터넷에 동영상까지 올라가버렸다.
어떻게든 만회하려 할 게 분명하다.
“적당히 끊어 주세요.”
정우는 단칼에 거절했다.
그런데......
-미국에서도 인터뷰 요청이 오거든요?
“미국이요?”
정치는 싸움이다. 큰 적과 싸울수록 얻는 부산물이 많아진다.
그런데, 미국이라니.....
정우의 손에 힘이 콱 들어갔다.
성윤은 점점 커진다.
그게 느껴질 정도다.
“일단 킵해 놓으세요. 전화번호 받아 주시고요. 제가 연락해 볼게요.”
정우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앞을 보는데 성윤이 재킷을 입고 있다.
“의원님, 미국에서......”
“들었어. 그건 알아서 해. 일단 나가자. 경호원은 빼고.”
“밖에서 술 드시려고요? 경호원을 빼고요? 위험해요. 혐한 단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약속이 있어. 모자도 있고.”
모자를 흔들어 보이더니 꾹 눌러 썼다.
정우가 황당한 표정으로 본다.
“약속이요?”
“성종 엔진.”
“아.”
성종 건설의 자회사 성종 엔진의 일본 법인.
성윤은 그들을 통해 일본의 정보를 수집해 왔다.
그리고 오늘 밤 만나기로 했다.
복도로 나갔다.
멀리 채정학 대표의 보좌관이 보인다.
술을 좀 마셨는지 걸음걸이가 정상은 아니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휘청대는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도 매일 술을 마셔야 했지만 일본에 와서도 술을 마셔야 했다.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을 선택한 업보다.
“아, 이성윤 의원님.”
보좌관이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사실 그가 이렇게까지 정중하지는 않았다.
대한당에서의 짬밥이 성윤보다 더 높았고 정치 입문은 물론 나이도 훨씬 많았으니까.
그동안 적당한 예의만 차렸을 뿐이다.
그런데, 오늘은 상당히 정중하다.
“감사합니다.”
“네?”
“낮에 외무상과 만찬이 있었잖아요.”
채정학 대표 일정은 일본 외무상과 회담 후 식사였다.
“이 의원님이 외교 결례를 할지 모른다고 했잖아요? 그 말이 계속 생각나는 거예요. 그래서 몰래 빠져나가 만찬 장소를 확인해 봤죠.”
그런데, 만찬 장소에 준비된 의자가 형편없었다.
그 자리에 앉았다면 외무상이 황제, 채정학 당대표는 신하의 자리에 앉은 것 같은 모습이 되었을 거다.
이야기를 듣던 성윤이 물었다.
“그래서요?”
“제대로 준비해 달라고 요구했죠. 그때, 딱 걸린 일본 애들 얼굴 기억하면...... 흐흐.”
보좌관은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기분 좋게 웃는다.
표정이 밝은 것을 보니 나름 잘 넘어갔나 보다.
“채정학 대표님께도 말씀드렸어요. 정말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다행이네요.”
보좌관이 씩 웃는다. “그런데, 오늘 제대로 한 건 하셨던데요? 기사 보니까 우리 대표님 기사는 거의 없고 이 의원님 기사로 도배되어 있던데... 한국에 가면 금의환향하시겠어요.”
이번 특사의 주는 채정학 대표다.
보조해야 할 성윤이 난리를 쳤으니 괜히 미안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대표님도 상당히 좋아하셨어요. 이런 미친놈이... 아, 죄송합니다. 이런 사람이 어디 있겠냐면서.”
보좌관은 술이 좀 올랐다.
말실수했지만 너스레를 떨고 있다.
그가 복도의 좌우를 살피며 말한다.
“그런데, 강 상원 의원님은 아직 안 오신 것 같던데...... 전화 한 번 해봐야겠네요. 빨리 오셔야 하는데......”
내일은 일본 정치인과 합동 연설회가 있다.
술을 마시고 있다면 수소문해서라도 데리고 와야 한다.
게다가 성윤의 사건으로 혐한 단체가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었다.
밖은 위험하다.
보좌관은 휴대폰을 손에 든다.
그런데, 강상원 의원은 물론이고 그 보좌진도 받지 않는다.
보좌관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아, 진짜.”
그는 다시 번호를 꾹꾹 눌렀다.
강상원 의원의 통역을 맡은 외교관이다.
수화기 너머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강상원 의원님이랑 같이 있어요?”
-아뇨? 전 먼저 가라고 해서......
***
강상원 의원은 아직 술집에 있었다.
얼굴은 붉었다.
많이 취해 보였다.
그는 지금까지 극우 정치인 아쓰시와 술을 마시는 중이다.
특사로 와서 내일 일정이 잡혀 있었다.
그것도 일본과의 합동 연설회.
하지만 그는 상관 않고 술을 마신다.
“아쓰씨 의원, 제대로 좀 해주세요. 이게 뭡니까?”
강상원 의원은 기사를 샅샅이 뒤져봤다.
하지만 강상원 의원의 이름은 토막 뉴스로 짧게 나와 있었다.
성윤과 채정학 대표에 관한 기사만 있을 뿐이었다.
두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고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계획은 처음부터 어긋나는 중이다.
“...이성윤, 어떤 정치인입니까?”
아쓰씨 의원이 술잔을 꽉 집으며 눈동자만 들어 강상원 의원을 본다.
자신이 휘하에 두고 있던 단체가 성윤의 손에 망가지며 분노가 끓고 있었다.
강상원 의원과 아쓰씨 의원은 반일과 반한을 내세우는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하지만 현미경으로 보면 두 사람에게 이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이념은 성공을 향한 수단일 뿐이다.
입 한번 뻥끗하면 신념에 찬 국민이 알아서 움직였다.
살짝 움직이면 행동력 있는 정치인이라며 국민이 응원했다.
그들은 이념을 이용할 줄 안다.
그렇게 국민을 주무르며 남들은 힘들게 사는 인생 즐기고 있었다.
국민을 개돼지로 보면서......
그런데, 진짜 행동력 있고 뒷일을 생각 않는 극단적인 놈이 앞에 나타났다.
“적과 원한이 무서운 줄 모르는 피라미. 전 그렇게 정의하고 싶네요.”
아쓰씨 의원이 차갑게 말한다. “피라미는 한입에 삼켜 먹어야 하는 법이에요.”
“기대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말이 끝났다.
그러자 양옆에 앉아 있던 미모의 여인들이 두 사람의 잔에 술을 채운다.
강상원 의원의 시선이 옆자리에 앉은 여인에게 향했다.
“나이가 어떻게 되지?”
야쓰오 의원이 손뼉을 치며 강상원 의원 앞으로 몸을 숙였다.
“마음에 드십니까? 의원님 취향을 고르느라 힘들었어요.”
강상원 의원이 여성을 바라본다.
여성은 생긋 웃으며 강상원 의원에게 고개를 숙인다.
“나츠코라고 합니다.”
강상원 의원은 거의 만취 상태다.
여성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저 좋다.
기분 좋게 웃는다.
“마음에 듭니다.”
네 사람은 밖으로 나와 차를 타고 호텔에 도착했다.
“저... 갑자기 연락이 왔는데, 집에 일이 있어서.”
강상원 의원과 함께 온 여성이 난처한 표정으로 아쓰씨 의원을 바라봤다.
아쓰씨 의원의 얼굴이 도깨비처럼 변한다.
하지만 강상원 의원을 향해서는 부드럽게 웃는다.
“강 의원, 먼저 들어가 계세요. 금방 보내겠습니다.”
강상원 의원은 알았다는 표시로 손을 들고 비틀비틀 객실로 향했다.
아쓰씨 의원의 시선이 다시 여성에게 향한다.
“너 미쳤어?”
“죄송해요. 집에 일이 생겨서요. 다음에 불러주시면 안 될까요? 정말 죄송해요.”
무슨 일이 있는지 여성은 울기까지 한다.
아쓰씨 의원은 혀를 차며 시선을 호텔로 돌렸다.
‘이성윤이라는 놈 때문에 평소보다 많이 취했지? 어차피 필름이 끊겨서 기억 못 할 거야. 내일 더 예쁜 여자를 불러주면......’
아쓰씨 의원이 한숨을 내뱉으며 여성을 바라봤다.
“가.”
눈물을 흘리던 여성이 꾸벅 허리를 굽혔다.
“감사합니다.”
***
성윤과 정우는 성종 엔진의 부장과 만나고 있었다.
일본 생활 3년 차라고 한다.
“이런 곳으로 모셔서 죄송합니다. 여기가 한국에는 알려지지 않은 초밥 맛집이거든요. 꼭 이곳에서 이 초밥을 대접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2차는 비싼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아, 2차는 괜찮습니다. 초밥으로 충분합니다. 좋아하기도 하고요.”
부장이 멋쩍게 웃는다.
“이런 말씀 드리면 부끄럽지만 저도 이성윤 의원님 팬 카페에 가입했어요.”
성윤이 더 부끄러웠다.
시선을 피하는데 그가 계속 말한다. “그래서 이성윤 의원님을 모시라는 지시를 받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뭘 대접할까 고민하다가 이곳으로 결정했습니다. 비싸고 좋은 음식보다도 더 맛있거든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의원님은 저를 처음 보지만 전 아니에요. 팬 카페에서 사진을 봐서 그런지 의원님이 친근합니다. 하하하.”
부장의 말은 계속됐다.
정치인을 앞에 둬서 그런지 한국과 일본에 대한 비교가 이어진다.
주로 한국에 대한 걱정이다.
“여기는 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어요. 빠찡꼬에 들어가야 젊은 사람을 볼 수 있어요. 많은 사람이 일확천금을 꿈꿔요. 직장보다는 알바를 선택하고요. 결혼보다는 혼자 사는 길을 걷죠. 우리도 그렇게 될까 걱정입니다.”
부장은 이제 3년 살았을 뿐이다.
전부를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의 걱정은 또렷했다.
한국도 그가 보는 일본처럼 될 수 있다는 것.
성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죠.”
부장의 말은 한참 더 이어졌다.
성윤을 본 것이 정말 기뻤나 보다.
싸인까지 해 달란다.
결제 외에는 싸인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바른 글씨로 이름을 써줬다.
가보로 간직하겠단다.
그리고 가방에서 두꺼운 서류 봉투를 꺼내 건넸다.
“이걸 조사하려고 TF까지 구성했어요. 이 기획을 아는 사람은 다섯. 의원님께 넘어가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일본 법인에서는 저까지 둘이 전부입니다. 모두 믿을만한 사람들이고요.”
상당히 신중하고 비밀스럽게 조사했다는 뜻이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 봉투를 펼쳤다.
부장이 혀를 차며 말한다.
“그걸 조사하면서 참 많이 씁쓸했습니다.”
강상원 의원과 일본의 커넥션 정황이다.
강상원 의원이 일본 극우 정치인과 손을 잡았고 일본 대부업체의 뒤를 봐주는 내용.
물론 정황이다.
정황만으로 강상원 의원을 구겨 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큰 도움은 될 거다.
성윤이 서류를 정우에게 건네며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어요.”
“뭘요.”
부장은 쓰게 웃으며 술잔을 쥔다.
외국에 있으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 정치인의 뒷조사를 했다는 게 마음 편하지 않았다.
부장이 술잔을 돌리며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의원님을 뵙고 부탁을 드리고 싶었던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일본에서 3년 산 사람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한국을 바라볼 수 있다.
성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장이 입을 연다.
“...소리 한 번만 질러 주세요.”
“네?”
“소리......”
정우는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의원님하면 소리죠! 소리 지르는 남자! 푸하하하하!”
성윤은 이 세상에서 정우가 가장 얄미웠다.
잠시 후, 밖으로 나왔다. 부장은 떠났고 성윤과 정우는 택시에 올랐다.
성윤은 부장에게 받은 서류를 다시 넘겨본다.
보면 볼수록 욕 나오는 내용.
그러다가 한 지점에서 손이 탁 멎었다.
‘아쓰씨 의원이 자주 가는 호텔?’
혐한 단체장인 마사후사는 속마음으로 말했었다.
-아쓰씨 의원은 외국의 정치인이 오면 여자를 붙여 준다. 그리고 의원 사무실의 개인 노트북에 동영상으로 보관한다.
성윤의 시선은 다시 서류로 향했다.
꽤 상세하게 적혀 있다.
[아쓰씨 의원이 외국의 정치인을 만나면 항상 가는 술집과 호텔이 있다.
아쓰씨 의원은 외국의 정치인을 호텔 방에 넣어두고 자신은 빠져나온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아쓰씨 의원의 비서가 호텔의 대표를 찾는다.
비서가 호텔의 대표를 찾는 이유는 확실히 모른다.
소문에 따르면 아쓰씨 의원의 성적 취향이 관음증이라고 한다.]
성윤은 입술을 쓸었다.
마사후사의 속마음과 서류의 내용이 일치한다.
서로를 연결하면 쓰레기 같은 내용이 만들어진다.
‘아쓰씨는 오늘 강상원 의원을 만났어.’
성윤은 두 사람의 행동을 예측해봤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강상원 의원도 여자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위인이다.
두 사람은 호텔로 갔을 거다.
그리고 그 호텔은......
여기까지 생각한 성윤은 휴대폰을 귀에 댔다.
채정학 대표의 보좌관이다.
“혹시 강상원 의원님 소재지 파악됐나요?”
-아, 지금 외교관이 가보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의원님은 어디세요?
“호텔 앞 호프집이에요.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성윤은 전화를 끊었다.
‘아쓰씨, 강상원......’
성윤의 손가락이 규칙적으로 움직인다.
이번 특사단의 목표를 보면 겉으로는 외교 정상화다.
하지만 그 속에 든 가장 큰 목적은 사과를 받아 내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을 향해 망언을 쏟아낸 아쓰씨가 직접 무릎 꿇고 사과한다면?
거기에 더 큰 것을 받아낼 수 있다면?
성윤의 머릿속에 이런저런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자고로 국내 정치는 착하게 해야 하지만 외교는 비열하게 해야 하는 법이다.
그렇게 잠시 생각하던 성윤이 정우에게 물었다.
“강상원 의원 옆에 붙은 외교관, 섭외했다고 했지?”
“아, 네.”
“연락해봐.”
“지금요?”
시간은 밤 11시가 넘어가는 중이다.
“해봐.”
정우는 전화를 건다.
하지만 외교관은 받지 않는다.
“안 받는데요?”
성윤은 얼굴을 매만졌다.
머릿속으로 여러 상황이 그려진다.
하지만 정확히 보이는 것은 없다. 이럴 땐 직접 눈으로 봐야 직성이 풀린다.
“정우야, 호텔 좀 가자.”
***
강상원 의원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술을 마시고 뜨거운 물이 몸에 닿으면 더 취하는 법이다.
널찍한 호텔의 거실을 비척비척 걷는다.
목이 탔다.
테이블에 놓인 음료를 집어 벌컥벌컥 마신다.
소파에 널브러졌다.
“왜 이렇게 안 와?”
천장이 빙글빙글 돈다.
잠이 슬슬 온다.
강상원 의원의 손에 들렸던 휴대폰이 툭 바닥에 떨어졌다.
그때......
딩동.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왔나?’
눈이 반짝인다.
하지만 세상은 어지럽다.
술이 깨지 않는다.
젊은 시절엔 몇 병씩 마셨던 술이지만 이젠 조금만 마셔도 힘들다.
가늘어진 다리에 힘을 꾹 주고 문으로 걸어갔다.
짧은 거리인데 휘청거리는 걸음은 힘들기만 하다.
벌컥 문을 열었다.
긴 머리의 여성이 보였다.
술집 여성이 아니라 외교관이다.
강상원 의원은 그녀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봤다.
외교관이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
채정학 대표의 보좌관은 강상원 의원을 찾고 있었다.
전화했지만 강상원 의원은 받지 않았다.
곧장 통역을 맡은 외교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그녀는 강상원 의원이 아쓰씨 의원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그녀가 강상원 의원의 위아래를 살폈다.
속옷 한 장 걸치지 않은 나체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서둘러 허리를 굽혔다.
강상원 의원은 희미하게 웃는다.
“괜찮아, 늦을 수도 있지. 들어와.”
“지금 채정학 단장이 의원님을 찾고 있습니다.”
“일본어로 다리가 뭐지?”
“네?”
“일본어로 예쁘다는 말은 뭐야?”
“의, 의원님?”
“너는 다리가 예뻐서 좋아.”
강상원 의원이 탐욕에 젖은 눈빛으로 그녀를 향해 저벅저벅 다가왔다.
그녀는 멍한 눈으로 강상원 의원을 바라본다.
성추행, 성폭행......
피해 여성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른다.
악을 쓰고 소리칠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그저 멍할 뿐이다.
딸과 손녀가 있는 강상원 의원이 히죽 웃는다. “예쁘네.”
“의, 의원님......”
강상원 의원이 그녀의 팔을 잡아 방으로 끌었다.
가지 않으려 했지만 힘들다.
질질 끌려간다.
그리고 문이 스르륵 닫힌다.
그녀의 눈은 공포에 질린다.
하지만......
누군가의 손이 불쑥 들어와 닫히는 문을 턱! 잡았다.
강상원 의원이 당겨봤지만 노인의 힘으로는 무리다.
문이 천천히 열린다.
그리고 문틈 사이로 악마의 모습이 드러났다.
사나운 이빨을 드러낸 성윤이었다.
< 일본 특사. -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