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04화 (104/300)

< 일본 특사. - (1) (부분 수정) >

***

의자가 푹신했다.

자리도 넓다.

이래서 비즈니스석을 타는구나 싶었다.

“해외 출장은 몇 번이나 가봤어?”

옆에 앉은 채정학 대표가 물었다.

일본까지의 비행시간은 짧았지만 무료했다.

가벼운 잡담으로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처음입니다.”

“처음?”

채정학 대표는 묘한 눈빛으로 성윤을 본다.

지난 국회의 해외 출장 자료 조사를 보면 1인당 평균 3400만 원의 출장비를 사용했다.

세부적인 내역을 확인하면 비행기에 가장 많은 돈을 썼다.

이코노미석이 아니라 비즈니스석을 타기 때문이다.

거기에 특급 호텔에서 묵고 값비싼 음식을 먹는다.

세금으로 재벌 부럽지 않은 출장을 하는 거다.

그 돈이 서민의 연봉에 가깝다.

아, 이번은 다르다.

국회의원의 자격이 아니라 대통령의 특사다.

채정학 대표가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처음.......”

“대표님은요?”

“나도 처음이야.”

“네?”

“몇몇이 동남아에 골프나 치러 가자고 했는데, 굳이 갈 필요가 없잖아. 골프를 즐기는 것도 아니고.”

성윤은 이제 2년 차다.

하지만 채정학 대표는 십 년 이상 이 바닥에 있었다.

그런데, 한 번도 안 갔다니......

나름의 철학과 고집이 있어서다.

이 사람도 편안히 살기는 글러 보였다.

채정학 대표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퍼스트 클래스가 있는 곳이다.

거기엔 강상원 대표가 있다.

비즈니스석은 좁아서 답답하다며 굳이 퍼스트클래스로 승급했다.

여기만 해도 다리를 쭉 펼 수 있을 정도로 넓은데......

채정학 대표가 속삭였다.

“강상원 의원이 조용히 있을까?”

“글쎄요.”

성윤은 비행기에 오르면서부터 강상원 의원의 속마음을 듣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음모 같은 것은 들리지 않는다.

속마음이라는 게 그렇다.

지금 생각하는 것 외의 생각을 알 수 없다.

‘꿍꿍이가 있을 텐데......’

꿍꿍이만 막아내면 강상원 의원도 어쩔 수 없을 거다.

자신의 이름도 오르내릴 테니 성공적인 특사를 위해 온 힘을 다할 게 분명하다.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도착 시각이 가까워졌다.

스튜어디스가 다가온다.

“공항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용한 인터뷰를 위해 VIP 통로를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기자들도 그쪽으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경호원들과 차량도 그쪽으로 배치 중이라고 했습니다.” 반대편에 앉아 과자를 먹던 정우가 고개를 홱 돌렸다.

“우리 의원님 보려고 몰려온 거예요?”

정우의 눈빛은 진심이다.

사람들이 성윤을 보기 위해 몰려왔다고 생각한다.

성윤은 부끄러웠다.

대체 성윤이 뭐라고 사람들이 기다릴까......

‘제발.’

다행히 스튜어디스는 농담으로 알아들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다음 비행기에 한류 스타가 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우가 다시 과자를 집어 씹는다.

“진짜 연예인을 기다리고 그러는구나. 이상하네, 우리 의원님이 훨씬 웃기는데.”

성윤이 정우를 노려봤다.

훨씬 웃긴 것은 뭔데......

스튜어디스가 정우를 보며 가볍게 웃는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도 이성윤 의원님의 팬클럽 카페에 가입......”

성윤은 뒷이야기를 듣지 않고 귀를 막아 버렸다.

이제 부끄러운 것을 넘었다.

쪽팔렸다.

비행기에서 내렸다.

성윤의 옆으로 정우가 붙는다.

“의원님 보러 온 사람도 한 명은 있지 않을까요? 제가 오기 전에 검색해 보니까 의원님 사진이 일본에서도 많이 떠돈다고 들었는데요. 나가서 손이라도 한번 흔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에요?”

“응, 아니야.”

강상원 의원이 불쑥 말했다.

“놀러 온 것 아니잖아. 잡담 그만하고 어서 가.”

강상원 의원은 출국부터 시종일관 불편해 보였다.

그의 얼굴에 인자한 할아버지는 없다.

이곳에 온 것 자체가 짜증이 나는 모양이다.

채정학 대표가 성윤의 등을 가볍게 토닥인다.

“인터뷰는 교과서에 적힌 것으로 해.”

VIP 통로를 벗어나면 가벼운 인터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특사 임무를 해야 한다.

주는 단장인 채정학 대표지만 성윤과 강상원 의원 역시 각개 전투의 스케줄이 계획되어 있다.

앞서 걷던 강상원 의원이 말한다.

“이 의원의 첫 일정은 간담회지?”

성윤은 일본 청년들과의 간담회가 잡혀 있다.

“네.”

강상원 의원의 입술에 기름이 낀다.

순간, 그의 속마음이 들려왔다.

-일단은 이성윤. 간담회에 혐한들만 모아놨어. 한번 까불어봐. 너희는 수모를 당하고 나는 당당할 거야.

성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혐한?’

대한민국을 혐오한다는 뜻이다.

성윤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강상원 의원은 일본의 정치인과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일본의 정치인은 극우 혐한 단체를 움직인다.

성윤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정치인과 손을 잡았다는 것은 혐한 세력 역시 정치적 굴레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도가 지나칠 정도로 행동하지만 그 이상은 할 수 없을 거다.

성윤의 머릿속에 앞으로의 상황이 빠르게 그려졌다.

앞으로 있을 일과 그에 대한 대처......

그러면서도 강상원 의원의 속마음을 듣는다.

강상원 의원은 성윤과 채정학 대표가 결례에 가까운 무시를 당할 때 자신은 격상된 접대를 받을 계획이다.

그럼, 언론은 말할 거다.

일본에서도 통하는 강상원이라고......

성윤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그 계획을 모두 부숴버릴 거다.

VIP 통로의 끝에 가까워졌다.

채정학 대표가 성윤에게 말한다.

“알겠지만 상황이 좋지 않아. 일본 정치인들도 정치적 위치 때문에 국민의 눈치를 보고 있어. 공식적인 자리에서 헛소리해도 이성적으로 대응해.”

안내하던 직원이 끼어들었다.

말끔한 남자였는데 일본인이다.

“특사 방문으로 인해 곳곳에서 극우 단체의 시위가 열린다고 들었습니다. 최근 양국 간의 정치 힘겨루기가 시작됐으니까요. 하지만 일본 전체의 생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요.”

성윤은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 통로의 끝에 섰다.

문이 열리는 순간......

“와!”

어마한 함성이 귀를 때렸다.

비명에 가깝다.

소리를 지르다가 실신할 정도다.

피켓을 든 사람이 보인다.

-요정 전소희!

안내했던 직원이 멋쩍은 표정으로 의원들을 본다.

“한국 가수가 VIP실로 온다는 소문이 돌았나 봐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몰려왔다.

덕분에 조용한 인터뷰는 물 건너갔다.

하지만 성윤은 기분 좋은 눈빛이다.

피켓에는 분명 ‘전소희’라고 적혀 있다.

앞집에 사는 가수 이름.

한동안 얼굴을 못 봐서 아직도 거기에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성공했네.’

전소희의 운명은 성윤 때문에 뒤바뀌었다.

음울한 인생이 아니라 화려하게, 타국에도 팬이 있을 정도로.

성윤은 가끔 고민했다.

‘내가 바꾼 미래가 과연 좋을 것일까?’

그래서 전소희의 성공은 더 기분 좋게 다가온다.

성윤이 만들 미래가 좋을 것이라는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전소희의 일본 팬들은 눈을 깜빡이며 성윤과 한국의 국회의원들을 본다.

처음에는 ‘경호원인가?’하는 눈빛으로 계속 전소희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녀는 끝끝내 보이지 않는다.

문이 닫혀버리자 그녀를 기다리던 팬들의 눈은 실망으로 가득했다.

바로 조용해진다. 특사단의 앞으로 일본 기자들이 섰다.

일상적인 인터뷰 질문이었다.

채정학 대표는 준비했던 교과서적인 답을 내놓았다.

성윤도 마찬가지다.

“환영에 감사합니다. 일본은 처음 방문하지만 가까운 나라라 정겹게 느껴집니다.”

입에 발린 소리를 했다.

그렇게 간단한 인터뷰가 끝났다.

차량 앞에 서며 채정학 대표가 말한다.

“저녁에 호텔에서 보지.”

이제 각개 전투의 시간이다.

앞으로 험한 일이 벌어져도 스스로 해결해서 나가야 한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채정학 대표의 시선이 강상원 의원에게 향했다.

강상원 의원이 손을 젓는다.

“난 알아서 할 테니 자네나 잘할 수 있도록 해.”

퉁명스러운 말에 채정학 대표가 허리를 굽혔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강상원 의원은 찬바람을 날리며 먼저 차에 올랐다.

문이 탁하고 닫히자 그가 휴대폰을 귀에 댄다.

그리고 능숙한 일본어로......

“준비는 끝났습니까?”

-그럼요. 일단 어린 정치인부터 곤란하게 만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녁에 술 한잔하죠.”

전화를 끊었다.

강상원 의원의 얼굴이 비열해진다.

‘감히 나를......’

그의 첫 번째 계획은 자신과 일본이 결탁했다는 소문의 근원지를 찾는 거다.

그리고 다음으로 성윤과 채정학 대표를 시궁창에 빠뜨리고 자신만 고고한 정치인이 될 생각이다.

그 시각, 성윤과 정우는 첫 번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간담회 장소로 향하는 중이었다.

조수석에 통역을 맡은 외교관이 앉았고 성윤과 정우는 뒷자리에 앉았다.

성윤이 타고 가는 자동차 뒤에는 또 다른 차 몇 대가 쫓아오고 있다.

경호원 그리고 일본 기자들이다.

성윤은 창밖으로 시선을 틀었다.

일본 청년과의 간담회.

모인 사람은 이십 대 후반에서 중반까지의 청년들, 일본 정치에 꿈을 둔 100여 명이라고 한다.

여기까지가 겉으로 드러난 사실이고 그 안으로 보면 성윤을 난처하게 만들기 위한 혐한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성윤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정우야.”

“네, 의원님.”

“상대의 전략을 박살내면 어떻게 될까?”

“네? 무슨 말씀이세요?”

“네가 좋아하는 게임만 해도 그렇지 않아? 큰 괴물을 잡으면 따라오는 부산물이 많잖아. 그러니까 침착해야 해.”

정우는 아직 강상원 의원의 계획을 모른다.

하지만 성윤이 저렇게 말하면 이유가 있는 거다.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침착할게요.” 성윤은 휴대폰을 손에 들고 채정학 대표의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첩보를 들었습니다. 외교 결례를 할지도 모릅니다. 아마 굴욕 외교로 포장하려는 것이겠죠?”

강상원 의원은 성윤뿐만 아니라 채정학 대표도 낭떠러지에 밀어 넣으려 한다.

각개 전투 일정이라 도와줄 수 없지만 언급만 해주면 잘 해결할 거다.

채정학 대표는 국회라는 똥통에서 십 년이 넘게 구른 짬밥이 있다.

그 정도 능력은 있다.

“자리의 배치, 의자의 구성을 잘 챙겨 주시기 바랍니다.”

-아, 감사합니다.

통화를 종료했다.

정우가 성윤에게 자료를 건넨다.

“간담회 전에 한 번 읽어 보세요.”

자료의 가장 앞장에 정우가 쓴 글씨가 보인다.

-강상원 의원의 통역을 섭외했어요. 일거수일투족 보고할 거예요.

앞에 앉은 외교관에게도 들어갈 수 없는 말이다.

그래서 비밀리에 전한 거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런데, 정우야. 일본말 할 줄 알아?”

“일본어요? 전 제2외국어가 불어였어요. 꼬몽딸레브.”

“일본어는 못 한다는 거지?”

“음...기모띠, 야매때. 이에?”

“그게 뭐야?”

정우가 황당한 눈으로 성윤을 본다.

조수석에 앉은 외교관은 웃음을 참느라 애쓰고 있다.

“모르세요?”

“어.”

“헐... 매일 보는 줄 알았는데......”

“무슨 말이야?”

“그런 게 있어요.”

정우는 ‘서양을 좋아하시나?’ 중얼대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성윤은 간담회 자료로 고개를 튼다.

이곳에 오며 외국인의 속마음도 들을 수 있는지 확인해 봤다.

그런데, 들린다.

번역이 된 것처럼 자연스레 느껴진다.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생각을 하는데, 정우가 성윤에게 휴대폰을 쑥 내민다.

“의원님, 기사 떴어요.”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

일본에서 기사가 올라갔다.

그걸 성윤의 팬 카페에서 받아 번역했다.

기사는 통상적인 것이다.

그런데, 댓글이......

-특사를 보낸다더니 야쿠자 오야붕이 왔다.

-보좌관 얼굴 봤음? 한국의 유명한 야쿠자 돌격대장임.

-저 국회의원 유명함. 눈에서 레이저 쏜다고.

-일단 소리부터 지르고 본다던데?

ㄴ저 얼굴에 소리 지르면 오줌 싸겠네. 우리 정치인들 불쌍하냐.

성윤의 팬 카페는 낄낄대고 좋아한다.

그들의 댓글도 가관이다.

-일본에서도 통하는 얼굴.

-상 남자.

-일본에서도 재밌는 사진 만들어 오기를...... 성윤은 정우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이번에는 웃기만 할 거야. 이상한 합성으로 놀림 받기 싫어.”

“그럼, 팬 카페 애들이 실망할 거예요.”

“실망하라고 해.”

성윤은 손목시계를 봤다.

간담회 장소에 도착할 시각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멀리서 마이크 소리가 들린다.

말은 못 알아듣지만 거친 말을 한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조수석에 앉은 외교관에게 물었다.

“무슨 시위죠?”

“극우 단체의 혐한 시위입니다. 일본인들도 도를 지나쳤다고 욕할 정도니까 신경 쓸 필요 없으세요.”

간담회가 열리는 문화회관 앞은 시위대로 둘러싸여 있었다.

현장에 가까워지며 마이크 소리와 사람들의 목소리는 더 또렷이 들려온다.

격하다는 말로 모자랄 정도로 거세다.

외교관의 표정이 난처해진다.

“정말 신경 쓸 필요는......”

순간, 한국의 한상국 대통령을 본뜬 인형에 죄수복을 입히고 밧줄을 들어 목을 묶는다.

서서히 들어 올리자 인형이 교수형에 처해진 것처럼 흔들흔들 거린다.

극우 단체의 일본인들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다.

자동차 안의 분위기가 서늘해졌다.

성윤과 정우는 한상국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의 대통령이다.

다른 나라 사람이 저런 식으로 조롱해서는 안 된다.

‘도가 지나치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을 보며 강상원 의원이 기획한 계획이 모두 드러났다.

성윤과 채정학 대표가 병신 취급을 받을 때, ‘짠’ 하고 나타나 구원해 주는 슈퍼맨 증후군.

국민은 환호할 거다.

하지만 성윤은 강상원 의원의 계획대로 갈 생각이 없다.

혐한 단체를 놔둘 생각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강상원 의원의 계획은 만신창이가 될 예정이다.

성윤이 입을 열었다.

“저놈들이 말하는 게 무슨 뜻인지 말해주세요.”

속마음은 들려서 해석이 되는데 입밖으로 내뱉어진 말은 해석이 안 됐다.

성윤의 목소리에 외교관이 간절히 말한다.

“정말 신경 쓸 필요 없다니까요. 일본에서도......”

“말하세요.”

이제는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다.

외교관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입을 연다.

“한국인들을 모두 죽이고 싶다. 한국인들은 일본을 떠나라. 그렇지 않으면 대학살이 일어날 거다.”

“그리고?”

“한국 여성은 강간해도 좋아.”

문이 벌컥 열렸다.

성윤이 내린다.

외교관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린다.

“의원님!”

정우 역시 마찬가지다.

“의원님?” 하지만 성윤은 이미 시위대를 마주 보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성윤의 눈빛은 극우 단체 모두를 씹어 먹을 것만 같다.

뒤에 쫓아오던 기자들이 다급히 차에서 내려 카메라를 들이댄다.

기자들 중에는 한국 언론사 기자도 있었다.

한국 기자들은 마른 침을 삼킨다.

그들의 눈빛에는 기대감이 가득하다.

‘이성윤이 또 한 건 터뜨리나?’

< 일본 특사. - (1) (부분 수정)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