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103화 (103/300)

< 예상과 다른 일. - (3) >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말은 진리다.

성윤은 가볍게 말 한마디를 던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강상원 의원은 고민에 휩싸이고 있었다.

강상원 의원이 마른 입술을 핥는다.

‘젠장......’

눈이 벌겠다.

‘도대체......’

일본 정치인에게 부탁했다.

채정학 의원에게 망신을 주라고......

그런데, 강상원 의원 자신이 일본에 가야 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자신이 준비한 함정에 스스로가 빠지는 병신이 될 수도 있다.

‘어쩌지? 지금 당장 전화해? 계획을 변경해?’

예상했던 것과 다른 상황이 벌어지자 강상원 의원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머릿속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계속해서 찾는다.

‘아니지, 내가 갈 필요는 없잖아? 소문의 근원을 찾아내면 되는 거야. 퍼뜨리는 새끼의 입을 틀어막으면 되는 끝이야.’

강상원 의원은 여의도의 호랑이라 불렸다.

그를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몇 되지 않는다.

어디서 들었는지 몰라도 소문을 퍼뜨리는 새끼의 입을 막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강상원 의원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다행히 성윤과 채정학 대표를 엿 먹일 계획이 계속 진행될 수 있었다.

강상원 의원의 눈동자가 성윤을 향했다.

“어떤 놈이 그런 헛소리를 하고 다니지?”

그의 표정에 인자한 할아버지는 없었다.

욕심이 덕지덕지 붙은 추한 늙은이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가 분노하면 할수록 성윤의 머릿속은 차갑게 식었다.

가슴은 지나칠 정도로 냉랭해진다.

하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한껏 안타까운 표정으로 입을 연다.

“...죄송합니다. 확실하지 않은 이야기라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아니야, 직접 만나서 오해를 풀고 싶을 뿐이야. 이런 것을 놔두면 걷잡을 수 없어.”

강상원 의원은 성윤을 어르고 달래고 있다.

소문의 근원을 찾기 위해서다.

그는 이 바닥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이무기였다.

사람을 잘 다룬다고 생각했다.

특히 성윤처럼 어린놈을 가지고 노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험악했던 인상을 지우며 최대한 부드럽게 말을 잇는다.

“자네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없을 거야. 아니, 오히려 일이 잘되면 감사를 표해야지. 감사는 뭐가 좋을까? 원하는 게 있나? 알겠지만... 난 많은 것을 줄 수 있어.”

성윤은 대답이 없었다.

강상원 의원의 말이 이어진다.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뭐든 첫 단추가 중요하지만, 정치는 더 중요하다는 것.

그러니까 자신이 좋은 라인을 만들어 주겠다.

앞으로는 성윤 같은 정치인이 어쩌고저쩌고.

침도 안 바른 거짓말이 계속됐다.

강상원 의원은 거짓말을 참 잘한다.

언젠가 군 장병들을 모아 놓고 남자는 군대에 가야 남자가 된다며 감동적인 말을 내뱉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의 아들은 국적을 포기하고 군대에 가지 않았었다. 어쨌든, 그의 혓바닥은 자신과 일본의 커넥션이 떠도는 근원지를 궁금해한다.

그런데, 그런 근원 따위는 없다.

모두 성윤이 꿈속에서 본 일이니까.

대한민국 전체를 뒤져도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을 거다.

강상원 의원이 다시 말한다.

“이 의원, 한국에서 퍼지는 루머일 뿐이야. 그런 루머를 해명하기 위해 일본까지 가면 더 우스워지는 거야. 그 사람을 만나서 오해였다고 해명하면 될 일이지.”

말을 멈춘 강상원 의원이 성윤을 살핀다.

성윤은 멋쩍게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그리고 누가 봐도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일본에서 들어온 소식이라서 출처는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떠도는 소문 중 하나였거든요. 의원님이 아니라고 하시니 저도 마음이 놓이네요. 일본에 가면 최대한 근원지를 알아보겠습니다.”

강상원 의원의 턱에 힘이 꾹 들어갔다.

욕심 가득한 볼 살이 꿈틀댄다.

‘이 놈이......’

강상원 의원의 눈빛을 본 성윤은 몰아세우는 것을 멈췄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그런데, 상대는 쥐가 아니라 호랑이다.

도망칠 곳을 마련해 주고 스스로 고민할 시간을 줘야 했다.

같이 굴욕 외교를 당할지, 아니면 성공적인 외교를 수행할지.

성윤은 손목시계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소문의 근원은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강상원 의원은 잘 가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성윤이 떠났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다.

부릅뜬 눈은 허공을 응시한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일본을 활용했다.

국민의 눈을 돌리기 가장 쉬운 것이 공공의 적을 만들어 욕받이로 쓰는 거니까.

그건 내통하는 일본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서로의 비밀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강상원 의원의 머릿속에 일본의 정치인들이 스친다.

이놈 저놈 모두가 범인인 것 같다.

의심은 의심을 낳는다.

꼬리를 물며 이어진다.

근거 없는 확신이 되어 개연성 있는 소설을 만들기도 한다.

그가 주먹을 꽉 쥐었다.

“...설마 그놈이?”

성윤은 문밖에 있었다.

문에 등을 기대고 서서 안에서 들리는 강상원 의원의 속마음을 듣는 중이다.

성윤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걸렸다.

***

팡!

순대 썰리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렸다.

성윤은 의원 회관으로 가는 길에 간식거리를 사고 있었다.

보좌진들이 좋아하는 커피와 케이크, 지금은 떡볶이와 순대를 포장하는 중이다.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다.

“어, 정우야.”

-먼저 출근하라고 하더니 소식이 없어서요.

“10분이면 도착할 거야.”

오늘은 정우와 따로 움직였다.

정우도 개인적으로 할 일이 많았기에 오전 시간을 뺏을 수 없었다. 사무실에 들어가자 보좌진들의 눈이 반짝인다.

성윤이 반가워서가 아니다.

바리바리 들린 음식을 본 거다.

정우가 물었다.

“뭐예요?”

“케이크, 커피 그리고 떡볶이, 순대, 튀김.”

회계를 맡은 서진화 비서관이 엄지손가락을 척 내민다.

“의원님이 최고예요!”

성윤이 어깨를 으쓱했다.

“드시고 하세요.”

음식을 테이블에 놓자 보좌진들이 몰려들었다.

“당 떨어졌는데 진짜 최고예요.”

“아싸! 라떼!”

성윤은 보좌진들을 바라봤다.

김현석 보좌관과 송주현, 서진화 비서관......

다들 웃고 있다.

평소보다 사무실 분위기가 힘차고 밝다.

항상 존재하던 다크서클도 희미한 것 같고.

보좌진이 힘을 내면 덩달아 의원도 힘이 나는 법이다.

“다들 기분 좋은 일이 있나 봐요?”

성윤의 질문에 정책을 맡은 김현성 보좌관이 이쑤시개로 떡볶이를 쿡 찍으며 활짝 웃는다.

“그거요. 그거. 그거 있잖아요.”

“그거?”

“일본 가는 거요. 당대표님이 단장으로 결정됐다면서요? 의원님은 빠지셨고.”

그 말을 송주현 비서관이 받았다.

“얼마나 살 떨렸는데요. 국민 여론 안 좋죠. 일본도 강경하죠. 가는 순간 욕을 바가지로 먹을 게 뻔했잖아요. 국민이 눈을 뜨고 지켜보면 아무리 잘해도 만족시키기 어려우니까요.”

김현성 보좌관이 떡볶이를 우물거리며 답한다.

“바가지가 뭐야? 대야에 담아도 모자랐을 거야. 흐흐흐.”

“욕조도 모자랐을 걸요?”

“그럼, 난 수영장. 하하하.”

서진화 비서관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손에 쥐며 말했다.

“어제까지 위염이 있었는데 오늘 싹 사라졌어요.”

그녀는 기분 좋게 웃으며 자신의 배를 슥슥 문질러 보였다.

보좌진들은 다들 입이 귀에 걸렸다.

명치에 얹혀 있던 답답함이 쑥 내려간 것 같은 표정이다.

그만큼 시원해 보인다.

성윤은 난처했다.

하지만 말을 안 할 수는 없다.

“...가기로 했는데요.”

떠들썩했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정지화면을 보는 줄 알았다.

젓가락으로 순대를 들던 김현성 보좌관.

스트로우를 물고 있는 서진화 비서관.

케이크로 손을 가져가던 송주현 비서관.

마지막으로 정우까지.

모든 사람이 석고처럼 굳은 상태로 눈동자만 돌려 성윤을 본다.

농담하지 말라는 눈빛으로...... “오전에 대표님 만나고 와서 단원으로 넣어 달라고 했어요. 지금까지 여러분이 고생해서 자료도 찾고 했는데 그걸 그냥 놔두면 안 되잖아요. 그리고 또......”

성윤의 입에서 횡설수설 변명이 흘렀다.

서진화 비서관은 다시 위염이 도졌는지 침울한 표정으로 배를 문지른다.

김현성 보좌관은 현실 파악이 안 되는지 눈동자를 굴리다가 묻는다.

“정말로요?”

“네.”

“진짜 가신다고요? 일본을?”

성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힘찼던 분위기에 찬물을 쏟아 버렸다.

그때......

“으핫핫핫핫!”

정우가 배를 잡고 웃는다.

정우도 성윤의 일본행은 모르고 있었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그런데, 진짜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다.

다른 보좌진들이 황당한 표정으로 정우를 본다.

정우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 죄송해요. 그런데, 이래야 우리 의원님이시죠. 보신 정치 안 하시잖아요? 왜 다들 몰랐던 것처럼 그러는 거예요? 푸하하하!”

다른 보좌진들도 웃기 시작한다.

하하하, 호호호. 웃음꽃이 끊이지 않는다.

서진화 비서관이 눈물을 닦으며 말한다.

“그러게요. 제가 미쳤었나 봐요. 우리 의원님은 우리를 편하게 두실 분이 아닌데요.”

“그러니까요. 튼튼한 다리가 있어도 굳이 외나무다리를 건너서 원수를 만나야 직성이 풀리시는 분인데. 제가 착각했네요. 하하하하.”

“전 좋은 소식을 들었는데 괜히 찝찝하더라고요. 이제야 찝찝함이 풀렸어요. 아, 개운해라.”

욕인지 칭찬인지 알 수 없었다.

성윤은 미안한 마음에 창밖을 볼 뿐이다.

그때, 성윤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네, 대표님.”

-뭘 한 거야? 마법을 부린 거야?

“...마법이라뇨?”

-강상원 의원에게 연락이 왔어.

“간다고 하나요?”

-애매하게 말을 하더라고. 갈지 안 갈지 모르겠지만 일단 특사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달라고. 혹시 못 가게 되면 다른 사람 하나는 붙여주겠다고.

성윤은 엷게 웃었다.

“갈 겁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강상원 의원은 끝까지 간 보고 있다.

한국에서 근원지를 찾다가 못 찾으면 어쩔 수 없이 일본행을 선택하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하지만 강상원 의원은 일본을 가게 될 거다.

근원지는 성윤의 꿈속이었으니까.

휴대폰을 쥔 성윤의 손에 힘이 콱 들어갔다.

호랑이가 미끼를 물었다.

사냥 시작이다.

***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갔다.

국정 감사가 끝났다.

성윤과 손을 잡은 초선 의원들은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세금 낭비를 지적하며 존재감을 알렸다.

이번 국정 감사는 세금에 대한 국민의 경각심을 일깨웠다는 평이 컸다.

그리고 바람이 불고 낙엽이 졌다.

성윤의 보좌진은 일본 정치인의 관계에 대해 분석하고 또 분석했다. 자료는 성종 건설의 자회사 중 성종 엔진 일본 법인이 보내줬다.

그리고 일본 특사에 관한 소식이 언론에 떴다.

[채정학 단장 등 대한당 대일 특사단.

대한당 대일 특사단은 채정학 당대표(단장), 강상원 의원, 이성윤 의원으로 구성되어 일본을 방문할 계획이다.

대한당은 외교부를 비롯해 주일한국대사관, 주한일본대사관과 일정을 협의했다.

채정학 당대표는 “이번 방문으로 한일 관계가 정상화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후략)]

댓글은 난리였다.

-뜬금없이 일본을 왜 가지? 대통령 집권 초기도 아니잖아?

ㄴ관광 가는 것임. 세금 낭비 할 곳이 없어서.

-정상화 필요 없다. 가지 마라.

-대한당은 왜 일본을 붙잡는 거냐?

-다들 기사 안 읽었나? 장판교 장비 이성윤도 감.

ㄴ헐! 이성윤?

ㄴ그러고 보니 이성윤이 있었네.

ㄴ대한당에게 미안하다. 오해했어. 싸우러 가는 거였네.

ㄴ소리 한번 제대로 질러 주기를......

ㄴ총리 면전에서 소리 지르는 것 아니냐?

ㄴ이성윤이라면 가능. 전쟁 나겠네.

ㄴ한일전 꿀잼.

성윤이 휴대폰을 덮었다.

그리고 고개를 틀어 정우를 봤다.

“내 이미지가 왜 이래?”

정우가 낄낄 웃는다.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시죠?”

“모르겠는데?”

정우는 황당한 표정으로 성윤을 본다.

그가 휴대폰의 화면을 보이며 말한다.

“의원님 팬 카페 한번 들어가 보실래요? 이미지가 왜 그런지 바로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요즘에 새로 올라온 사진도 많고요.”

“됐다.”

성윤은 손을 저었다.

다른 정치인의 카페를 들어가 보면 정책이나 정치에 관한 게시글이 많다.

하지만 성윤의 팬 카페는 다르다.

우스꽝스러운 사진만 잔뜩 있다.

그때, 정우의 휴대폰이 부르르 울렸다.

메시지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선다.

“대표님 도착하셨대요. 슬슬 가죠.”

이곳은 공항이었다.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중이다.

두 사람은 출국장을 지나 비행기에 오른다.

< 예상과 다른 일. -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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