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98화 (98/300)

< 폭탄. - (1) >

김재형 검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성윤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낸 것처럼 속속들이 들키는 중이다.

그는 이제 사나운 눈빛을 숨기지 않는다.

사나운 이빨까지 드러낸다.

“어디까지 알고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정치 검사를 원한다면 그냥 가세요. 말 잘 듣는 개새끼는 주변에 많이 있잖아요. 그중에 하나 잡아 키우십시오. 정치인의 가마꾼이 될 생각은 없습니다.”

“......”

“국민을 위한다는 가증스러운 말로 세상을 속이고 진실을 짓밟아 거짓으로 만드는 사람들... 평등과 공평이라는 가식적인 혓바닥을 놀리며 위선 떠는 자들... 그 사람들이 정치인입니다. 전 그 사람들이 싫습니다. 함께 할 수는 없겠네요.”

성윤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김재형 검사의 입술이 비틀어진다.

“기분 나쁘면 멀리 보내세요. 강원도로 모자라면 외딴 섬에 보내면 되겠네요.”

성윤은 커피 잔을 손에 쥐고 조용히 입에 댄다.

김재형 검사의 속마음이 들려왔다.

그는 지금 성윤을 시험하고 있다.

성윤의 힘은 미약했고 나이마저 어리다.

힘이야 앞으로 키울 수 있지만 어리다는 것이 문제다.

시간이 많은 만큼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굳은 신념이 없다면 손을 잡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독설을 퍼붓는다.

면전에서 정치인을 싸잡아 욕하면 어떤 반응을 할지......

그 반응에 따라 다음 시험을 할 생각이었다.

성윤이 입을 연다.

“정치 검사는 이쪽에서도 사절입니다. 그리고 제가 잘 못 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쑤시세요. 그러자고 손을 내민 거니까.”

김재형 검사의 눈이 찌푸려졌다.

성윤이 화를 내거나 변명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다.

성윤은 지나치게 침착했다.

성윤이 김재형 검사를 향해 천천히 몸을 기울였다.

“이번에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와 함께 가는 길은 편하지 않을 겁니다. 죽을 수도 있어요. 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리고 검사님이 사망해도 전 그 장례식장에 가지 못할 수 있습니다. 주변 상황이 그렇게 만들 수도 있고 제가 먼저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성윤의 눈빛은 얼음장 같다.

김재형 검사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성윤이 말을 잇는다.

“전 정치검사 따위를 찾자고 검사님을 찾은 게 아니에요. 전쟁터에 나갈 전우를 찾아온 거죠. 자, 이제 선택하세요. 제 손을 잡겠습니까? 아니면 거절하겠습니까?”

성윤이 다시 손을 내밀었다.

김재형 검사가 어금니를 씹으며 묻는다.

“...타깃이 누구입니까?”

“타깃은 검사님이 정하세요. 정 골라드리자면.......”

성윤이 정우를 본다.

그러자 정우가 휴대폰을 테이블에 놓았다.

김재형 검사의 시선이 휴대폰으로 향한다.

화면을 본 그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강, 강상원 의원?”

“검사님을 이쪽으로 유배 보낸 의원님. 별명은 여의도 호랑이. 호랑이 한번 잡아 보겠습니까?”

밖에는 무더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김재형 검사의 등에는 소름이 돋아난다.

“...진짜 죽을 수도 있겠네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장례식장... 못 갈 수도 있습니다.” 김재형 검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눈빛은 잔인할 정도로 강하게 빛나고 있었다.

성윤이 커피를 입에 대며 정우에게 말했다.

“커피가 밍밍하네. 이런 분위기에서는 술 한잔해야 할 것 같지 않아?”

***

성윤과 정우는 모래사장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 앞에는 빈 맥주 캔이 널브러져 있다.

김재형 검사는 모자란 술을 사러 갔다.

성윤과 정우가 서로 사 오겠다고 했지만 손님을 대접해야 한다며 편의점으로 향했다.

성윤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별은 보이지 않는다.

정우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한다.

“의원님과 함께 바다에 올 줄은 몰랐어요. 휴가네요. 와, 신난다.”

“어, 휴가다.”

성윤은 캔맥주를 입에 댔다.

정우가 몸을 움츠렸다.

“그런데, 조금 쌀쌀해요. 저 사람들은 멀쩡해 보이는데 전 왜 추울까요. 옆에 여자가 아니라 의원님이 있어서 그런가?”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며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밤이 되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하지만 해변에는 수영복만 입은 사람들이 뛰어놀고 있다.

정우가 맥주를 홀짝이며 말을 잇는다.

“겨울이 오면.... 의원님은 삼공.”

“삼공?”

“서른이요. 기다렸어요. 아재 개그를 이해할 수 있을 나이......”

“영원히 이해 못 할 거다.”

정우가 ‘아저씨가 되면 이해할 텐데....’ 중얼댄다.

그러다가 문뜩 뭔가 떠올랐는지 빠르게 묻는다.

“그런데, 군 생활 강원도에서 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어디였어요?”

“펀치볼.”

정우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펀치볼? 카투사? 아닌데, 죽어라 걷는 알 보병이었던 것으로 들었는데......”

“그런데, 있어. 시래기하고 더덕 많이 나는 곳.”

“저는 인천에 있었어요. 꿈의 사단이라 불렸죠. 그런데, 강원도에 오니까 군 생활이 기억나네요. 훈련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너 취사병이었다며?”

“지금 취사병 무시하세요? 새벽에 일어나서 밥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술 먹은 남자들의 이야기는 뻔하다.

축구에서 정치 그리고 군대......

2년 동안 뺑뺑이 돌았던 시간이 이제는 술안주가 되어간다.

그때......

“여기 앉으시려면 2만 원 내야 해요.”

고개를 틀어보니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건들건들 다가오고 있었다.

정우가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2만 원?”

“여기 파라솔 놓는 자리거든요. 다른 곳 보면 다 파라솔 치고 있잖아요.”

“허가받은 겁니까?”

지자체에서 파라솔 임대를 허가해 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관광객이 버린 쓰레기를 청소하는 등의 경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업권을 갖고 있어도 개인 파라솔 설치를 제지하거나 그 자리에 앉는 사람을 쫓는 것은 불법이다.

“허가가 궁금하면 민원실 가서 이야기하던가요. 일단 2만 원 내세요.”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남자의 우격다짐에 화는 났지만 참는 중이다.

주변에 기분 좋게 놀러 온 사람들이 보였다.

괜히 실랑이를 벌여 모처럼 휴가를 온 사람들의 기분까지 상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

“다른 곳 앉으면 되죠? 일행이 있으니까 오면 다른 곳으로 옮길게요.”

늘어진 티셔츠가 짜증 섞인 말투를 내뱉었다.

“아저씨, 영업하는 땅이에요. 1분만 앉아 있어도 돈 내야 해요.”

“내쫓는 것은 불법이잖아요? 10분만 있다 간다니까요?”

정우와 남자가 다툼을 벌일 때 성윤은 주변을 둘러봤다.

못 보고 지나친 현수막이 보인다.

-불법 파라솔 영업을 금지합니다.

이들은 허가를 받지 않았다.

즉, 불법.

그런데, 바로 앞에는 파출소도 보인다.

성윤이 한숨을 내뱉는다.

“깡패인가?”

늘어진 티셔츠의 얼굴이 험상궂게 변했다.

“.....깡패? 지금 깡패라고 그랬어?”

“아니면 동네 양아치?”

밤이었지만 주변은 밝았다.

늘어진 티셔츠의 구겨진 표정은 잘 보였다.

그가 팔을 걷어붙인다.

어설픈 문신이 보였다.

“너 어디서 온 놈이냐? 뒈지고 싶냐?”

문신과 상투적인 협박으로 성윤을 위협할 수는 없었다.

“지금부터 딱 삼십 분 줄게. 불법으로 돈 받고 설치한 파라솔 정리해.”

“미친 새끼가.”

“협상결렬?”

성윤은 휴대폰을 귀에 댔다.

“불법 파라솔을 강매하고 있는데, 계도 활동만 벌이지 단속은 하지 않네요. 봐주기씩 행정인 것 같은데...”

늘어진 티셔츠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비웃음이 가득하다.

“아, 요 새끼 진짜 신고하고 있네? 그럼 누가 올 것 같아? 오면 겁먹을 것 같아? 이 새끼야 내가 누군지 알아?”

싸움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힐끗힐끗 주목된다.

그때.......

“의원님!”

헐레벌떡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늘어진 티셔츠가 고개를 돌린다.

김재형 검사가 양손에 술과 안주를 가득 사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그가 묻는다.

“무슨 일이에요?”

성윤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김재형 검사의 시선이 늘어진 티셔츠를 향했다.

상황을 이해한 김재형 검사의 눈빛이 어둡게 변한다.

늘어진 티셔츠도 이상하게 돌아가는 분위기를 느꼈다. 눈만 껌뻑댄다.

김재형 검사가 늘어진 티셔츠의 앞으로 다가섰다.

“이런 또라이 같은 놈이...... 이분이 누군 줄 알고.”

김재형 검사는 이런 놈들이 있는지도 몰랐다.

강원도 해변에서 파라솔 영업을 하는 작은 조직이다.

이런 놈들은 진짜 강자를 만나면 한 없이 몸을 사린다.

경찰을 건드리면 쓸려 버리고 검사가 움직이면 뿌리 채 뽑힌다.

하물며 국회의원이다.

해안 도로에 경찰차가 빼곡히 들어서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테러범을 잡으러 온 줄 안 것처럼 경찰 병력이 우르르 내리고 있었다.

인상을 쓰던 늘어진 티셔츠는 툭 건들면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죄, 죄송해요.”

잠시 후......

성윤과 정우는 근처 호프집에 앉아 있었다.

딸랑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김재형 검사가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끝났어요. 파라솔 압수했고 놈들 조직은 오늘 밤 안으로 쓸릴 겁니다. 그리고 공무원이나 경찰 중에 놈들에게 뒷돈 받은 사람은 없는지 내일부터 조사 들어갈 겁니다.”

“고생하셨어요.”

김재형 검사의 앞으로 맥주가 놓였다.

그가 맥주를 쥐며 말한다.

“그런데, 국회의원 파워 대단하네요. 파출소장에 경찰서장 그리고 군수가 그렇게 공손한 자세로 있는 것은 처음 봤어요.”

작은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 있던 일이다.

하지만 그 작은 해프닝이 양아치 조직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군수에게 다시는 불법 영업으로 관광객이 불편하지 않게 하겠다는 확답까지 받았다.

국회의원의 힘이다.

성윤의 시선이 김재형 검사에게 향했다.

“...곧 서울에서 뵙겠습니다. 며칠 걸릴 거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

김재형 검사가 슬쩍 웃는다.

“10년을 기다렸는데 며칠을 못 기다릴까요.”

두 사람의 잔이 부딪쳤다.

다음 날.

서안시로 올라가는 길.

정우가 입을 연다.

“터뜨릴 거예요?”

“어.”

“우리는 각 장관과 모든 부처의 적이 되겠네요.”

“아마도.”

성윤의 손에는 두툼한 서류가 들려 있었다.

전년도와 이번 연도 예산 낭비 사례다.

“...새는 바가지를 막을 뿐이야. 이것을 막으면 조금의 예산은 확보되는 거고.”

성윤이 서류를 툭툭 손바닥에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기자들에게 연락해.”

***

며칠 후.

언제 여름이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완연한 가을이 찾아왔다.

의원 회관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국감이 다가와서가 아니다.

보좌진들과 직원들은 모이기만 하면 똑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또 이성윤이?”

“그쪽 상임위도 아니잖아?”

“아이고, 그쪽 보좌진들은 진짜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국감 준비도 벅찰 텐데, 말도 안 되는 일까지......”

성윤이 다문화, 다자녀 정책과 예산 문제를 건든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한 보좌관이 담배를 털며 입을 연다.

“그런데... 난 응원해 주고 싶어. 가끔은 이성윤 의원의 보좌진이 부럽기도 하고. 진짜 일을 하는 느낌일 것 같지 않아?”

“뭐가 부러워? 그쪽 의원님 아들이 호주 사람이라?”

“모시고는 있지만 가끔 짜증 날 때도 있으니까.”

보좌진들은 낄낄대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들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의원들의 일상을 지켜보는 사람들이다.

잘못된 것을 알지만 눈 감고 모른 척하는 경우가 많다.

보좌진이라는 직업은 의원 한 마디에 책상을 빼야 한다.

직업을 잃으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남 눈치 보지 않는 성윤의 보좌진이 부러울 때도 있었다.

“그런데, 다자녀까지 챙겨줄 예산이 되나?”

“아니. 안 될걸.”

“그럼, 어떻게 한다는 거지?”

보좌진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담배 연기만 내뿜는다.

그러다 한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 무슨 기자회견 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리고 성윤의 사무실은 비장했다.

폭탄을 던질 기자회견을 앞두고 있어서다.

마치 전투에 나가는 사람들 같았다.

정우가 성윤의 앞에 앉는다.

“질문이 들어오면 단어 하나까지 잘 생각하셔야 해요. 피 보는 것은 우리니까요.”

기자들은 전체의 문맥을 상관하지 않고 내뱉어진 단어에 집중한다.

자극적인 단어를 이어 붙여 제목을 만든다.

사람들은 제목만 보고 평가한다.

정책을 맡은 보좌관이 서류를 가져와 책상에 놓았다.

“질문지 추가해봤어요. 한 번에 다수의 질문이 들어올 수도 있으니까 연습하셔야 할 거예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기자회견보다는 국회의장과 다른 의원들을 만나 설득하는 게 우선 아닐까요? 뒷일을 생각하면......”

성윤이 어깨를 으쓱했다.

“설득하는 데 3년은 걸릴 거예요. 3년 후에는 또 선거가 있죠. 선거가 끝나면 새로운 의원들을 설득해야 하고요. 설득에 설득... 다람쥐 쳇바퀴예요. 하지만 국감 전에 폭탄을 던지면 국민 여론이 일어날 겁니다. 그럼, 알아서 움직이겠죠.”

보좌관은 목덜미를 긁적였다.

성윤이 질문지를 넘기며 말을 잇는다.

“그러니까 뒷일은 뒤에 생각하죠. 일단 앞에 놓인 국민만 생각합시다.”

보좌진들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성윤과 일을 하면 지옥처럼 힘들다.

하지만 다가올 희망이 보이기에 참을 수 있었다.

이들도 국민이기에 조금은 나아질 이 나라를 기대한다.

이번엔 비서관이 다가왔다.

“의원님 단독 기자회견은 처음이시죠? 표정이 상당히 공격적이거든요? 부드럽게 미소.”

“제가 웃으면 살인 미소인데.....”

정우가 배를 잡고 웃는다.

“그건 살인자의 미소고요.”

“너한테 들을 소리는 아니야. 거울 좀 봐.” 정우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전 미남이죠.”

“내기할래?”

“내기는 좀......”

두 사람의 헛소리에 긴장이 풀렸다.

정우가 시계를 보며 일어선다.

“시간 됐어요. 이제 가시죠.”

< 폭탄.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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