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97화 (97/300)

< 용 꼬리 보다 뱀 머리. - (3) >

서늘한 눈빛이 오간다.

어떤 이도 입을 열지 않는다.

무거운 공기가 투박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성윤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불법적인 일을 하자는 게 아니잖아요. 혜택을 뺏자는 게 아니잖아요! 미국,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부정한 방법으로 노인 연금과 육아 수당을 챙기는 사람들! 월 수천만 원의 이익을 얻으면서 혜택은 다 보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혜택을 가져오자는 거잖아요!”

성윤의 목소리는 간절했다.

하지만 의원들의 눈빛은 싸늘하다.

“그런 것 하지 않아도 괜찮아. 우리는 일을 하면 할수록 욕을 먹어. 어쩌면 다음 공천에서 탈락할 수도 있고. 몰라서 그래?”

결국은 공천이다.

성윤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배지는 왜 달고 있는 겁니까? 돈 받아 땅 사려고? 아니면 이름 한 번 남겨 보려고?”

의원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말이 심해! 해야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어!”

성윤이 손바닥으로 쾅! 테이블을 내리찍었다.

“대체 뭘 겁내는 겁니까! 강상원 의원? 아니면 그 자리?”

이글거리는 눈빛이 의원들을 쏘아봤다.

그들은 마른 침을 삼킨다.

성윤의 목소리가 낮게 흘렀다.

“의원님들이 무서워해야 할 것은 강상원 의원이 아니에요. 의원님들의 주인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세요. 집 지키는 개도 주인을 위해 꼬리를 칩니다. 그런데......”

올챙이 배를 가진 의원이 ‘큼, 큼’ 헛기침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성윤은 이들의 흠집을 쥐고 있다.

감정이 격해지면 그 흠집을 세상에 공개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건 막아야 했다.

“이성윤 의원... 그런데, 이건 우리 담당이 아니야. 복지위와 이야기를 해야지. 그런데 우리 중에 복지위에 있는 사람이 없어.”

“의원님이 만나서 설득해 주세요.”

“나?”

“친하잖아요.”

올챙이 배 의원의 눈빛이 침울해진다.

괜히 나섰다가 일거리를 만들고 말았다.

성윤이 서류를 손에 들었다.

“대표 발의는 제가 하겠습니다. 하지만 앞장설 분이 있다면... 양보하죠.”

모두 시선을 피한다.

성윤의 입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은 갑 중의 갑이다.

하지만 갑을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처절할 정도로 눈치를 봐야 한다.

“의원님들, 자기 자리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주세요. 이건 부탁입니다. 그리고 이 법안에 도장 찍으세요. 이건 명령입니다.”

나태한 자들. 가만히 있으면 다음 총선에서 또 당선될 거다.

그리고 또 나태하게 눈치나 보며 살아갈 거다.

동의하지 않으면 머리채를 붙잡고 강제로 끌고 갈 수밖에 없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정우가 입을 열었다.

“한 명은 동의할 줄 알았는데, 의원님들 참 단호하네요.” “그러게......”

성윤과 정우는 그들이 스스로 움직여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세상은 혼자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만난 안재열 전 대통령이 그랬다.

그는 세상을 바꾸려 했었다.

하지만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

발버둥 칠 때 마다 기득권 정치와 재벌의 힘에 막혀 버렸다.

그때 안재열 전 대통령이 했던 말이 있다.

-좋은 일을 해보고 싶은데...... 대통령이 이렇게 힘없는 자리인지 몰랐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어떤 의원도 동의하지 않았다.

보신 정치, 괜히 나섰다가 돌을 맞을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이쪽에 관심 있는 사람 찾아볼게요. 요즘에 의원님 옆에 서고 싶어 하는 의원들이 꽤 많아요.”

“초선으로.”

“네, 똥오줌 가릴 줄 아는 사람은 이런 판에 안 들어오죠.”

“난 똥오줌 못 가린다는 거야?”

정우가 낄낄 웃는다.

“가릴 줄 아는 사람이 그래요?”

“됐다.”

“그리고 김미선 기자와 약속 잡을게요. 여론전에서 밀리면 끝이잖아요.”

복지 문제는 어렵다.

게다가 다문화 정책 그리고 다자녀 정책과 맞물린 일이다.

손에 쥔 의원 열여덟 명으로 해결 보기가 쉽지 않다.

자칫 인기를 위한 포퓰리즘이란 말을 들을 수 있다.

인종차별과 배척이라는 말을 들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여론이 보여주는 모습에 따라 성윤의 의도가 변질될 수 있다.

그 시각, 대한당 당사 당대표 사무실.

찻잔이 놓이는 소리가 들렸다.

채정학 대표는 고개를 들어 앞을 본다.

“제 말을 따르겠다고요?”

차진중 의원이 항복 선언을 하러 왔다.

그가 초췌한 눈빛으로 고개를 든다.

“앞으로 마음대로 하십시오. 저희는 군소리하지 않고 따르겠습니다.”

채정학 대표는 찻잔을 손에 들었다.

무심한 표정으로 차진중 의원을 본다.

“갑자기 마음이 변한 이유를 듣고 싶군요.”

차진중 의원이 ‘끌끌끌’ 웃는다.

“대표님의 사냥개가 일을 참 잘합니다. 태어난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은 새끼가 무섭더라고요. 뒷덜미를 움켜쥐고 흔드는 솜씨가 제법이에요. 이 바닥에서 십수 년 구른 저격수라 해도 믿겠어요.”

성윤을 말하는 거다.

채정학 대표는 찻잔을 입에 댄다.

차진중 의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런데, 대표님...... 제가 이 말만 하고 떠나겠습니다. 이성윤은 강아지가 아니에요. 꼬리 치는 개도 아니고요.”

“......”

“놈은 늑대입니다. 길들일 수 없어요.”

차진중 의원의 눈빛이 날카롭다.

채정학 대표는 여전히 무심했다.

“주의하죠.”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차진중 의원은 고개를 숙인 뒤 자리를 떠났다.

채정학 대표는 휴대폰을 손에 든다.

주진만 원내대표에게 전화하려다가......

‘늑대?’

늑대를 검색했다.

‘새끼 때부터 기르면 조금은 길들일 수 있다?’

하지만 야생성을 제거할 수는 없다.

아무리 개처럼 보여도 언제 늑대로 변할지 모른다.

생후 4개월 동안 30배 이상 커지며......

채정학 대표는 화면을 바라보며 턱을 문지른다.

‘늑대......’

***

그리고 서안시.

성윤은 서안시 사무실에 들어왔다.

정효순 주임이 말끔하게 정리한 깨끗한 책상이 보였다.

성윤이 자리에 앉았다.

시간은 밤 9시가 넘어갔지만 일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작년도 각 부처 예산 낭비 사례 정리해.”

“이미 했죠.”

정우가 성윤의 책상에 자료를 올렸다.

성윤이 자료를 착착착 넘겨본다.

“송년 파티로 1240만 원? 이건 뭐야?”

“와인 마셨나 보죠.”

“미친......”

더 넘겼다.

“직원 생일축하 행사 4800만 원은 뭐야?”

“소고기 먹었나 보죠.”

“상품권 2700만 원?”

“명품 샀나 보죠.”

정우는 어깨를 으쓱했고 성윤은 고개를 저었다.

욕이 나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성윤이 서류를 덮으며 말을 잇는다.

“지자체 낭비 사례는?”

“잠시만요.”

정우가 자신의 책상에서 서류를 뒤지고 있을 때 문이 달칵 열렸다.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고개를 돌려보자 0% 대출 의원이 들어온다.

얼굴이 벌건 것을 보니 술이 조금 된 모양이다.

뒤에는 험상궂은 인상의 수행비서가 서 있다.

성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원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어쩐 일로......”

정우는 잽싸게 휴대폰을 만져 동영상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카메라가 달린 노트북을 살짝 틀어 0% 대출 의원을 담는다.

‘방금 강제로 도장을 찍었고 술을 마셨어......’

이들도 사람이다.

강제로 하는 행동에 반감을 갖는다. 게다가 성윤의 나이가 어리다.

한국 사회에서 어린놈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것만큼 굴욕은 없다.

행패를 부릴 가능성이 존재한다.

어색한 공기가 사무실을 채우기 시작했다.

0% 대출 의원이 묘한 웃음과 함께 성윤의 앞으로 다가왔다.

의원의 뒤에 있던 험상궂은 수행비서가 바짝 따라붙는다.

정우 역시 조금씩 성윤의 옆으로 다가섰다.

행패를 부리면 잽싸게 막을 생각이다.

지금 시대에도 물리적 힘으로 일을 막으려는 권력자들이 존재했다.

아직까지도 정치판에 깡패가 얼굴을 기웃거린다.

교통사고, 자살 등의 일로 살인 사건을 조작하는 자들이다.

어차피 사람들은 거짓된 언론을 믿으니까.

정우는 마른 침을 삼키며 의원의 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검은 비닐봉지...’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른다.

‘벽돌? 둔기?’

그런데......

“먹으면서 해.”

0% 대출 의원이 손에 들고 있던 검은 비닐을 책상에 놓는다.

비닐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흘렀다.

“치킨이야. 허허.”

정우는 눈을 깜빡이며 비닐을 뒤졌다.

진짜... 치킨이다.

후라이드 반, 양념 반......

정우의 시선이 수행비서로 향했다.

소파에 앉아 게임을 하는 것 같다.

0% 대출 의원이 의자를 빼서 앉는다.

“난 이번만 하고 그만하려고. 국회의원...... 이제 나이도 있고 선거가 부담스러워. 다음 공천도 어렵고.”

성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속마음을 듣는 중이다.

0% 대출 의원이 말을 잇는다.

“아까는 분위기가 있어서 말을 못 했는데..... 난 자네 의견에 찬성이야. 일반 시민으로 돌아가서 내 세금이 강남 건물주에게 돌아간다면 배 아플 것 같아. 그것도 강상원 의원의 아들이라면 더더욱.”

속마음은 진심이다.

성윤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했다.

어떤 의원도 동조하지 않던 의견에 찬성표를 던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까.

의원이 손을 저었다.

“감사는 무슨...... 이미 개목걸이차고 도장 찍었구만.”

“...죄송합니다.”

“아니야, 어쩔 수 없다는 것 알아. 우리 같은 늙은이들 움직이려면 돈을 주거나 몽둥이를 휘두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니까.”

정우가 그의 앞에 찻잔을 내려뒀다.

0% 대출 의원이 찻잔을 들며 말한다.

“복지위는 내가 맡아보지. 하기 싫은 사람 시켜봐야 소용없어. 어차피 그만둘 거면 좋은 일 한번 해야지. 지금까지는 너무 나쁜 일만 했어.”

원해서 한 일도 있고 원치 않던 일도 있다.

하지만 했다는 게 중요하다.

0% 대출 의원은 주먹을 쥐었다 펴며 성윤을 향했다. “앞으로 3년 조금 남은 의원 생활... 박수 받으며 떠나고 싶은데 도와주겠나? 언젠가 손주에게 내가 이런 국회의원이었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럴 수 있도록 도와주겠나?”

“어쩌면... 손가락질이나 받으며 떠날 수도 있습니다.”

패배하면 욕을 먹는다.

여론이 만든 단두대에 목을 드리밀 수도 있다.

0% 대출 의원이 슬쩍 웃었다.

“나 자신에게 떳떳하면 된 거지.”

“그건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0% 대출 의원은 부드러운 시선으로 성윤을 바라본다.

똥물로 가득 찬 국회에 호랑이 무서운 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가 들어왔다.

세상은 조금씩 변화하는 중이다.

언제 가로막혀 부서질지 모르지만 일단 응원하고 싶었다.

어쨌거나 자신도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이었으니까.

0% 대출 의원이 입을 연다.

“앞으로 하는 일에 사람이 필요할 거야. 혹시 칼을 갖고 있나? 그때 보니까 중앙 지검에 한 명 두고 있던 것 같은데......”

0% 대출 의원이 말한 칼은 검찰을 의미한다.

성윤은 아직 검찰에 끈이 없었다.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0% 대출 의원이 말을 잇는다.

“사람 하나 소개하지. 국회의원들에게는 꽤 껄끄러운 인물이지만 자네는 비리가 없으니까 잘 닦아 쓸 거야. 칼은 쓰기에 따라 변하는 거지.”

칼은 주인에 따라 성질이 달라진다.

사람을 벨 수도 있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도 있다.

“누구죠?”

***

며칠 후, 성윤은 강원도의 한 커피숍에 있었다.

앞에는 단정한 차림의 검사가 보인다.

이름은 김재형, 나이는 서른아홉이다.

10년 전 정치인을 털었다가 강원도로 유배당했다.

정권이 바뀌고 총장이 바뀌었지만 그는 여전히 강원도에 있었다.

그를 거두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세상은 그를 잊었다.

“.....후회합니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하지 않을 겁니다.”

“권력이 손을 내밀면 잡을 겁니까?”

김재형 검사가 고개를 숙인다.

그의 입에서 한숨이 흘렀다.

“네. 돌아갈 수만 있다면......”

주말 부부로 산 게 십 년이다.

아이는 아빠를 아저씨 취급한다.

돈이나 벌어다 주는 현금자동지급기.

김재형 검사는 원치 않는 기러기 아빠가 되어 있었다.

그의 눈에는 힘이 없었다.

성윤과 정우가 눈을 마주쳤다.

정우가 고개를 저었다.

정의를 위해 싸웠던 검사는 이제 없다.

성윤과 함께 할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가죠. 서울로. 제가 내민 손 잡으세요.”

정우가 놀란 눈으로 성윤을 바라봤다.

성윤의 말이 이어진다.

“속으로 삭이고 있는 분노. 터뜨리세요. 도와드릴게요.”

김재형 검사가 고개를 들었다. “...분노를 터뜨리라고요?”

“네.”

김재형 검사가 어색하게 웃는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

“보통 유배를 당하면 옷을 벗고 변호사가 되죠. 검사였다는 명함 한 장만으로 잘 먹고 잘살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아직까지 입고 있는 검사의 옷. 왜 안 벗죠? 오히려 제가 이유를 듣고 싶은데.”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말투.

김재형 검사의 눈에 숨기고 있던 사나운 눈빛이 보인다.

“무슨 말을 듣고 오셨는지.......”

“들은 말 없어요. 지금 생각하셔야 할 것은... 제 손 잡겠습니까?”

김재형 검사의 시선이 성윤이 내민 손으로 향했다.

만나자는 연락이 온 후 나름 성윤에 대해 알아봤다.

어린 나이에 세상 무서운지 모르고 날뛰는 국회의원.

힘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아직 뱀 대가리.

언제든 짓밟힐 수 있다.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어. 시작도 해보기 전에 치어 죽을 수 있어.’

성윤이 그 마음을 읽었다.

“뱀은 권력자의 발목을 물 수 있어요.”

< 용 꼬리 보다 뱀 머리. -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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