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96화 (96/300)

< 용 꼬리 보다 뱀 머리. - (2) >

강정기 시장이 떨리는 손으로 건네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느릿하게 흐른다.

-날세... 몇 번 본적이 있지?

강정기 시장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 목소리는......

“안, 안재열 대통령님?”

강정기 시장의 떨리는 눈동자가 성윤을 향했다.

‘이성윤이 안재열 대통령과 연락한다고?’

말도 안 된다.

성윤은 대한당이고 안재열 전 대통령은 민국당이다.

게다가 성윤이 정계에 뛰어들었을 때......

안재열 전 대통령은 속세에 묻혀 있었다.

두 사람이 연락할 일은 없다.

‘그런데... 뭐지?’

머릿속이 복잡하게 흔들렸다.

이런저런 생각이 스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안재열 전 대통령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다 들었어. 공유지를 팔고 재산을 불리려 했다고?

강정기 시장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지금은 두 사람이 연락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

일단 살아야 했다.

피를 토하는 목소리가 터진다.

“오해입니다!”

-오해?

“대한당의 음해입니다. 공유지를 팔아 재산을 불리다니... 전 그럴 능력도 없고 생각도 없습니다.”

강정기 시장의 간절한 목소리가 횡설수설 흘러나왔다.

앞뒤 맞지 않는 내용.

요약하자면 성윤이 만들어 낸 정치 공작이라는 거다.

“전 그런 짓을 한 적이 없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안재열 전 대통령은 바보가 아니다.

-자네는 변명이 아니라 사과를 해야 했어. 시민의 재산을 건드리려 한 죄. 국민을 속이려 한 죄. 공직자가 자기 배를 불리려 한 죄!

강정기 시장의 몸은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심장은 싸늘하게 식어간다.

안재열 전 대통령의 서늘한 음성이 계속되었다.

-쳐 죽여 마땅하지만 참고 있는 거야. 공유지 매각 문제는 이성윤에게 넘겨. 공유지 문제가 마무리되면 그 자리에서 내려와.

강정기 시장은 다시 설득하려 했다.

“대... 대통령님. 이성윤 의원에게 공유지 매각을 넘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고 또 제가 지금 사퇴하면 재보궐까지 시정의 공백기가......”

안재열 전 대통령은 단호하다.

-자리 지키려 하다가 나를 만나게 될 거야. 전화가 뚝 끊겼다.

강정기 시장의 입술이 달싹거렸고 데구루루 구르는 눈동자는 현실을 파악하는 중이다.

한 참 후에야 그의 눈동자가 성윤을 향했다.

“뭐... 뭐죠?”

성윤이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퇴임식 연설은 제가 써드리죠.”

“이, 이......!”

강정기 시장의 꽉 다문 치아에서 분노가 흘렀다.

하지만 말은 없다.

꽉 쥐어진 주먹만 부들부들할 뿐이다.

성윤은 찬바람을 날리며 복도로 나갔다.

정우가 옆에 붙는다.

“내년 보궐선거에 서안시 시장이 나올 거야.”

정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인재를 찾아야겠네요.”

“적임자는 있어. 그런데, 대한당으로 영입하지 않을 거야.”

“네?”

정우가 눈을 깜빡인다.

“대한당으로 영입하지 않는다고요?”

“무소속으로 당선되게 하고 싶은데... 가능할까?”

“아뇨.”

정우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대답했다.

서안시 시장 자리는 대한당과 민국당이 먹고 먹는 곳이다.

단 한 번도 무소속에게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성윤이 정우의 등을 툭툭 친다.

“가능하게 만들어 봐.”

“아니, 적임자가 누구인지부터 말씀해 주셔야죠.”

“곧 만나러 갈 거야.”

성윤은 어깨를 으쓱하며 앞서 걸었다.

정우는 한숨을 푹 내쉬며 성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무소속?’

성윤은 왜 무소속을 시장으로 만들려는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우는 성윤이 그릴 그림이 보이는 것 같았다.

희미한 미소가 나타났다.

‘또 고행길이네......’

***

며칠 후, 성윤은 안재열 전 대통령을 찾았다.

안재열 전 대통령의 낚싯배였다.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올 때 안재열 전 대통령이 성윤의 앞으로 접시를 밀었다.

“먹어 봐. 눈먼 낚싯대에 걸려든 농어야.”

성윤이 젓가락을 들어 농어를 한 점 들었다.

“신선하지?”

“네, 맛있습니다.”

“그럼, 자연산인데. 하하하.”

안재열 전 대통령은 자신이 잡은 것을 맛있게 먹는 걸 보는 게 어부의 낙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번엔 광어가 아니네요.”

“내 입맛에는 광어가 좋은데 찾아오는 사람들이 이제 다른 것을 먹고 싶대.”

안재열 전 대통령의 표정이 씁쓸하다.

그가 말을 잇는다.

“강정기도 똑같아. 그놈이 원래 그러지는 않았어. 다 떨어진 공장 점퍼를 입고 다니며 노동자를 위하는 놈이었지. 그런데, 변했어. 시장이 되더니 주린 배를 채우려 했지. 광어를 먹던 놈이 복어를 처먹으려 하니 독을 집어삼킨 거야.”

안재열 전 대통령이 젓가락으로 성윤을 가리킨다.

“복어 요리사는 자네였고.”

“죄송합니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 술병을 든다.

성윤은 공손히 잔을 받았다.

“정치인으로 태어나는 인간은 없어. 정치인이 되어가는 것이지. 난 운동권으로 시작해 정치에 입문했어. 군부와 싸우며 성장했고 대통령에 올랐지. 하지만 난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했어.”

안재열 전 대통령은 좋은 대통령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다.

기득권에 막혀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 성윤을 본다.

“그래도 난 치욕을 받지는 않았어. 이유가 뭔지 아나?”

“처음의 생각 그대로 있었으니까요.”

안재열 전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인다.

“자네도 그랬으면 좋겠네.”

안재열 전 대통령은 성윤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 정의할 수 없었다.

성윤에게 쓰러진 강정기 시장, 차진중 의원, 김대성 의원......

그들의 처음도 그랬다.

변하지 않았다면 더러운 꼴은 보지 않았을 거다.

정치라는 똥통에서 뒹굴며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술잔이 한잔 두잔,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그렇게 조촐한 술자리가 끝났다.

성윤과 안재열 전 대통령은 배에서 내렸다.

정우가 경호원과 대화를 나누며 낄낄대고 있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 정우를 본다.

“뭐가 즐거워서 그렇게 웃지?”

“아... 아닙니다.”

정우의 입꼬리가 씰룩대고 있다.

경호원이 정우에게 말하지 말라는 듯 헛기침하며 시선을 피한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 정우를 채근한다.

“말해 봐.”

“아... 별 것 아닙니다. 경호원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재밌는 이야기?”

정우는 난처한 표정이다.

경호원은 먼 바다를 보며 헛기침을 쉬지 않는다.

제발 말하지 말아 달라는 표정이 간절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궁금한 거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 닦달했다.

“해 봐.”

“농어... 사 오셨다고. 안 잡혀서......”

안재열 전 대통령의 이맛살이 콱 구겨졌다.

성윤은 배를 잡고 웃었다.

자연산이라고 강조했던 게 사 왔던 것이라니.

안재열 전 대통령은 민망한 표정으로 경호원을 흘겨본다. 그리고 궁색하게 변명한다.

“자연산은 맞아......”

경호원이 재빨리 허리를 굽혔다.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됐어. 이 사람아.”

성윤은 안재열 전 대통령의 배웅을 받으며 차에 올랐다.

정우가 성윤에게 숙취해소 음료를 건넨다.

“드세요.”

“많이 안 마셨어.”

“일단 마시세요. 올라가면 또 드셔야 해요.”

“그러네.”

성윤은 숙취해소 음료를 입에 댔다.

정우가 입을 연다.

“그런데, 그거 정말 건드실 거예요?”

“어떤 거?”

“...다문화, 다자녀 예산이요.”

“어.”

성윤의 대답은 단호했다.

정우는 한숨을 내뱉는다.

“위험해요. 단순히 예산 문제가 아니잖아요. 어쩌면 쉬쉬하던 것을 끄집어내는 것일 수도 있어요.”

“쉬쉬했던 것? 뭐?”

“강상원 의원의 아들이 미국 국적이에요. 그리고 성 장관의 딸도 미국인이고 구 장관의......”

많은 공직자의 자식이 외국인이다.

그중에 강상원...

그는 대한당의 원로급 의원으로 지난번 주진만 원내대표가 병원에 갔을 때 구원투수로 등판해 비대위를 맡기도 했다.

가늘고 길게 가는 인생이 좋다며 대선은 꿈도 꾸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90년대에 원정출산으로 막둥이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은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인이 되었다.

그런데, 그 아들은 영어를 못 한다.

미국은 여행으로만 다녀왔을 뿐 한국에서 한국 여성을 만나 뿌리박고 잘살고 있다.

다문화 가정이다.

“다문화 정책을 건들면 강상원 의원과 정면으로 부딪칠 수도 있어요. 자식 사랑이 끔찍해요.”

“어려운 다문화 가정을 손보자는 게 아니고 싸우자는 게 아니야. 공평하게 가자는 것이지. 국민이 낸 세금, 국민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야지. 한국 국적을 포기한 채 의무는 지지 않고 떵떵거리며 권리만 행사하는 자들. 그러면서 SNS에 나라 욕은 신나게 하는 사람들. 국

내에 체류하지 않고 외국에 살며 부당한 방법으로 육아 지원을 받는 자들. 그자들의 혜택을 건들자는 거지.”

성윤은 확고하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편하게 살자고 배지 단 것 아니잖아? 쉽게 살 생각이었으면 내 몸보신이나 했겠지. 뇌물 받고. 청탁받고. 강남에 집 사고.”

정우의 시선이 바다로 틀어졌다.

밀려온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며 물방울이 되어 흩날리는 게 보인다.

성윤의 하루는 언제나 위태롭다.

열여덟 명 의원의 힘을 얻어 어깨를 펼 때가 되었는데 더 큰 싸움을 시작한다.

언젠가 저 파도처럼 거대한 바위에 막혀 부서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성윤의 목소리가 들린다.

“도와줘.”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차는 서울을 향해 달려갔다.

하늘이 컴컴해지며 빗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도착한 곳은 강남의 일식집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여덟 명의 의원이 앉아 있다.

0% 대출을 받은 의원, 벤처 자금을 빼돌린 의원 등등.....

실컷 떠들고 있던 그들은 성윤이 들어오자 합죽이가 되었다.

모두 눈을 깜빡이며 성윤을 주시한다.

성윤이 상석에 앉았다.

아무도 뭐라 하지 못한다.

“어쩐 일인가.....?”

0% 대출 의원이 불안한 표정으로 묻는다.

성윤은 표정의 변화 없이 손짓한다.

정우가 의원들의 앞에 서류를 착착 내려놓았다.

“읽어 보세요.”

의원들의 시선이 서류로 향했다.

“이...이건!”

“다문화 가정의 혜택이에요. 공무원 채용 확대. 특별 전형을 시행하는 대학은 현재 약 70곳. 그중에는 일류 대학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죠. 대학등록금도 일부 지원하네요. 그리고 ATM 수수료 면제......”

공공임대주택, 국공립어린이집, 병설 유치원은 당연히 0순위.

출산하면 0세는 월 41만 8천 원을 받을 수 있고 만 5세는 22만 원까지 보육료를 받을 수 있다.

“직장인들 0.1%라도 이자 더 받겠다고 위험한 금융권을 찾아다니는데 다문화 가정 결혼 이민 여성은 최고 연 6%가 넘는 고금리 우대를 받을 수 있네요.”

끝이 아니다.

공공분양 특별공급 그리고 3년 거주했을 때는 지방 선거권을 얻을 수 있다.

현 외국인 유권자가 10만 명에 이른다.

각 지방 단체장인 시장에게 10만 명의 유권자는 크게 다가온다.

4년 계약직인 이들은 한 표가 소중하다.

10만 명의 외국인 유권자를 홀대할 수 없다.

그래서 지역에 따라 다문화 가정에 혜택을 주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 자녀 학원비, 운전면허 학원비의 50%를 감면해 준다.

취업 스쿨을 무료로 운영하며 국제전화 통신비를 지원하기도 한다.

자국 방문 항공권을 지원하고 고향 부모님 방문 왕복항공권과 비자 발급 비용까지......

의원들의 시선이 성윤에게 향했다.

표정이 어둡다.

벤처 회사 자금을 빼돌린 의원이 입을 연다.

“이 의원... 이건 아니야. 정치는 감성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해. 지금도 우리 텃밭이 하나씩 사라지고......”

성윤은 그의 말을 끊어 버렸다.

“그런데, 다자녀 가정은 어떤 혜택을 받는지 아십니까? 전기, 수도, 가스 요금 할인. 받아야 최대 2만 원. 치킨을 시켜 먹을 수 있겠네요.”

“......”

“그리고 주택구입 및 전세 자금 대출 지원. 자동차 취,등록세 감면. KTX 할인. 기차 타고 부산 가서 회 먹고 오면... 그것도 좋겠네요.”

“......”

“다자녀하면 엄청나게 퍼주는 것처럼 떠들지만 실상은 없어요. 출산율 떨어진다고 징징거리지 말고 이런 것이라도 해야죠.”

의원들이 마른 침을 삼킨다.

성윤이 말을 이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다자녀와 다문화. 모든 것을 바꾸자는 게 아니에요. 다문화 혜택 중에 소득을 상관하지 않고 무조건 지원하는 게 있어요. 그걸 빼서 다자녀로 넘기자는 겁니다.”

0% 대출 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조심스레 말한다.

“이 의원, 강상원 의원님의 아들이 다문화 가정이야.”

강상원 의원은 조용한 사람이다.

하지만 한때는 여의도 호랑이라 불렸다.

그가 화를 내면 대한당 전체가 들썩인다.

민국당도 몸을 사린다.

당대표가 나서도 막기 힘들다. 성윤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 아드님 강남에 빌딩 가지고 있다던데요. 월세만 이천만 원 정도 나온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혜택은 다 받고 있네. 제가 아는 사람은 아들 넷을 등골 빠지게 키우며 땅 파먹고 있습니다.”

성윤이 의원들의 얼굴을 한 명 한 명 살피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제노포비아... 우리나라는 외국인 혐오증이 심해지고 있어요. 이유를 아십니까? 자국민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서죠. 외국인에게 혜택을 주면 줄수록 국민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낍니다. 혜택을 줄이자는 게 아니에요. 우리 국민도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만들자

는 거죠.”

“싸우게 될 거야.”

“겁납니까?”

< 용 꼬리 보다 뱀 머리.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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