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마리 토끼. - (2) >
윤성필 부문장의 얼굴이 구깃구깃 구겨졌다.
그가 억지로 웃으며 말한다.
“돈...이라니요?”
정우가 몸을 기울여 그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다 알고 왔으니까 입씨름하면서 질질 시간 끌지 말았으면 하는데요.”
윤성필 부문장은 정우의 위아래를 살핀다.
“외람되지만 서른은 됐습니까?”
“장유유서 따지러 온 것도 아닌데 나이는 왜 묻는지 모르겠네.”
윤성필 부문장의 눈동자는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하지만 눈빛은 싸늘하다.
“보좌관님, 여기는 공사판이에요. 뻘에 들어가 공구리치고 사막 똥 바람맞으며 기둥 세운 사람들이 있는 곳이죠. 어설픈 협박은 먹히지 않습니다.”
부문장의 자신감은 ‘성종’이라는 이름에서 나온다.
성종의 정상에는 각 당의 주요 국회의원, 국회 의장, 장관, 검찰을 손아귀에 주무르는 거인이 있으니까.
‘나만 해도 국회에 가져다준 돈이 수십억이야. 그 사람들이 돈 값하기 시작하면 이성윤 따위는 죽어.’
부문장은 거만한 시선으로 정우를 바라봤다.
그런데, 이쯤 하면 꼬리를 내려야 하는데......
정우는 오히려 눈을 가늘게 해서 웃고 있다.
“재밌네요.”
“뭐요?”
“재밌어요. 진짜로.”
이어서 손바닥으로 탕탕탕! 테이블을 두들기며 크게 웃는다.
“재밌네! 으핫핫핫!”
정우의 웃음이 짙어질수록 윤성필 부문장의 표정은 썩어 들어갔다.
“보좌관님!”
정우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웃음은 사라진 지 오래다.
살기 담긴 눈빛만 남아 있다.
“다 갖고 와요. 내가 말했던 것 싹 다. 채용 정보, 퇴직 정보, 산재 정보, 각 회의록. 트럭 몇 대를 불러도 상관없어요.”
“뭐, 뭐요?”
정우의 시선이 천천히 윤성필 부문장에게 향했다.
서늘하다 못해 시리도록 차갑다.
“배가 고파 편의점에 들어가 빵 하나 훔친 장발장은 발발 떨며 파리 손바닥처럼 빌고 또 비는데...... 억 단위를 훔치고 배달하는 너희들은 참 당당해요.”
윤성필 부문장의 입술이 뒤틀어졌다.
“말씀이 심하십니다. 끝까지 해보자는 겁니까?”
“가봅시다. 끝에 뭐가 있는지 진짜 궁금하네요.”
정우는 할 말을 끝냈다는 듯 회의실의 문으로 향했다.
문고리를 잡은 정우가 고개를 틀어 윤성필 부문장을 향한다.
“그런데, 부문장님... 국회의원이나 성종 사장단이 부문장님을 지켜줄 거로 착각하는 것은 아니죠?”
“......!” “그런 착각을 했다면 꿈 깨세요.”
그 시각, 강정기 시장은 모니터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눈동자는 쉴 새 없이 굴러다닌다.
기사가 뜨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는 중이다.
곧 고개를 뒤로 젖히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다.
“...어떻게 할까요?”
소파에 앉아 있던 부시장이 물었다.
강정기 시장이 천장을 바라본 채로 입을 연다.
“찾았어?”
서류를 훔쳐 이성윤에게 건넨 새끼...
찢어 죽이지 않으면 속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원하는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국장들이 허술하게 관리한 것 같습니다. 파쇄기에 돌리지 않고 쓰레기통에 버렸답니다. 그럼, 직원들이 알아서 처리하니까요.”
강정기 시장은 손으로 이마를 덮었다.
평소 사람 좋은 인상이 아니다.
가면을 벗은 그의 얼굴은 흉악하고 흉측했다.
“씨발......”
부시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기자들은 막았지만 터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이성윤의 입에 돈이라도 쑤셔 박는 게......”
강정기 시장이 고개를 저었다.
“돈을 쑤셔 박는다고? 그 새끼는 수십억이 들어와도 기부하는 새끼야. 1,2 억 꽂아서 막을 수 없어.”
“그럼... 대한당 의원을 만나보는 게 어떠실까요?”
강정기 시장이 몸을 바로 했다.
“대한당?”
부시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이제이라고 했습니다.”
“이이제이.....”
강정기 시장이 입술을 쓸었다.
그의 머릿속에 대한당의 계보가 빠르게 펼쳐지고 있었다.
성윤과 손을 잡은 사람, 적대적인 사람......
그때, 그의 휴대폰이 진동한다.
발신번호는 성종 건설이다.
강정기 시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강정기입니다.”
-성종 건설 윤성필 부문장입니다.
***
“민국당 놈들 표정 봤어? 크하하하하!”
의장이 술잔을 들고 크게 웃었다.
다른 시의원들도 배를 잡고 웃는다.
한정식집은 시끌벅적했다.
“아... 느글느글했던 강정기 면상이 박살 나는 게, 3년 만에 김치 먹은 기분이었어요. 그동안 느끼해서 뒈질 뻔했네.”
“그러게요. 강정기의 가식적인 모습에 박수치는 시민들 보면서 위가 아팠는데, 오늘 싹 완치된 것 같아요. 흐흐흐.”
시의원들의 말에 의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의원님 계신데, ‘뒈질 뻔’이 뭐야? 말 가려서 해.”
시의원이 황당한 눈으로 바라본다.
“본회의장에서 마이크에 대고 ‘씨발! 도둑놈 맞네! 이 개새끼들아!’ 했던 게 누구시더라? 본회의장이 쩌렁쩌렁 울리던데......”
의장이 헛기침한다.
“그건 좀 흥분해서......”
오늘 의장은 강정기 시장과 정면으로 대치했다.
말 그대로 오금이 저렸고 똥줄이 탔었다.
그러다가 팽팽했던 긴장의 줄이 끊기자 자신도 모르게 쌍욕을 지껄였다.
마이크가 켜져 있는 것도 모르고......
의장이 콜라를 한 컵 마신 후 성윤에게 고개를 틀었다.
성윤은 조용히 앉아 젓가락질하고 있었다.
“의원님... 그런데, 기자들은 왜 가만히 두신 거예요?”
다른 시의원들의 시선도 모두 성윤에게 향한다.
궁금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도 있다.
아는 기자들을 모두 갈아 넣어 기사를 뿌려대도 시원찮을 판이다.
그런데, 성윤은 강정기 시장이 기자들의 입을 막는 걸 지켜만 보고 있었다.
성윤은 흐릿하게 웃는다.
대답은 애매했다.
“글쎄요.”
시의원들은 더 묻지 않았다.
궁금해도 참아야 한다.
그게 정치판의 관계다.
하지만 불안한 것은 사실이었다.
강정기 시장도 정치판에서 굴러먹던 사람.
시간을 두면 어떤 꿍꿍이를 만들어낼지 예상하기 힘들었다.
즐겁게 웃고 마시던 시의원들이 눈동자를 굴려 서로 눈을 마주치기 시작했다.
‘우리 의원님이 이길 수 있을까?’
‘강정기도 뭔가 준비할 텐데?’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그때, 미닫이문이 드르륵 열렸다.
정우가 들어왔다.
“늦었습니다.”
시의원들의 시선은 모두 정우에게 집중됐다.
정우는 성윤의 그림자이며 영혼의 동반자라 불릴 정도다.
그런데, 정우가 오늘 온종일 보이지 않았다.
‘뭐지?’
동시에 시의원들의 머릿속에 오늘 일이 정리됐다.
본회의장에서의 깽판, 강정기 시장이 기자들의 입을 막는 것을 지켜보던 성윤......
‘뭔가 있구나!’
정우가 성윤의 옆에 앉았다.
시의원의 시선은 여전히 정우를 따라간다.
성윤이 나물을 앞 접시에 올리며 묻는다.
“일은?”
“잘 됐죠.”
시의원들은 뭐가 잘 됐는지 몰랐다.
하지만 정우의 시원한 대답에 그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잠시 후, 성윤과 정우는 먼저 돌아갔다.
의장은 멀리 떠나는 성윤의 차를 보며 조용히 웃는다.
그가 지켜 본 성윤은 다른 국회의원과 달랐다.
다른 의원들과 밥을 먹으면 2차에 3차, 룸살롱까지 가야했다.
하지만 성윤은 술값까지 계산하고 떠났다.
의장은 다시 가게로 들어갔다.
시의원들이 떠들썩하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의장이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연다.
“난 솔직히 이성윤 의원이 싫었어.”
시의원들이 낄낄댄다.
“여기 이 의원 좋아했던 사람 없어요.”
성윤이 보육원 토지 문제로 이들의 목에 개목걸이를 채운 것을 제쳐두고라도 일단 나이가 어렸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위에 서 있다는 걸 인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의장이 입을 연다.
“오늘도 그랬어. 이 의원이 시장과 붙으라고 지시했을 때, 고민했거든. 이성윤이 날 끝까지 지켜줄까? 아니면 중간에 버릴까.”
시의원들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표정 봤어요. 죽느냐 사느냐 고민하는 햄릿인 줄 알았네.”
“...그러니까.”
이들도 시에서는 갑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에게는 사냥개일 뿐이다.
쓰임이 다하면 삶아져 잡아먹히는......
그래서 이들은 본회의장에서 시시각각 변하던 의장의 표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의장이 술잔을 들며 말한다.
“난 이제 이성윤 의원 믿고 갈 거야. 오늘 그런 생각을 했어. 어느 국회의원이 시장의 비리를 털려 할까! 어려서 앞뒤 분간 못하는 하룻강아지나 가능한 일이야! 대한민국에 저런 국회의원 하나쯤은 있어야지!”
시의원들도 술잔을 들었다.
“혼자만 믿고 따르는 줄 아네. 나도 따를 겁니다.”
“하룻강아지가 보신주의보다 훨씬 낫지. 하하하하!”
“보신주의? 하룻강아지 따르다가 보신탕 될 수도 있어요. 크크크.”
“그럼, 뭐... 검찰청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도 해보는 거지.”
시의원들은 잔을 부딪쳤다.
국회의원과 시의원의 관계, 앞에서는 달콤한 커피를 내밀지만 뱃속에서는 칼을 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 진심으로 성윤을 따르기로 하는 중이었다.
성윤의 세력이 풀뿌리 민심부터 생기고 있다.
화이트보드에 성윤이 쥔 보드마카가 닿았다.
강정기 시장의 이름에서부터 선이 죽 그어져 내린다.
선이 닿은 곳에 차진중 의원의 이름이 보인다.
차진중 의원은 당대표를 향한 불만이 터지기 직전인 사람이다.
성윤이 차진중 의원의 이름을 동그라미 치며 말했다.
“강정기는 차진중에게 연락할 거야.”
표면적으로 볼 때 성윤과 차진중 의원은 주진만 원내대표의 계파다.
차진중 의원은 성윤을 막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
성윤이 차진중 의원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차진중 의원은 강정기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지. 돈이 필요하니까.”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주가 될 성종 건설 윤성필 부문장도 벼랑 끝에 몰았어요.”
사람의 행동을 예측하는 방법은 쉽다.
벼랑 끝으로 밀어 버리는 거다. 그럼, 두 가지 결정만 남는다.
떨어져 죽을지, 앞으로 달려들지.
성윤이 정우의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리스크는?”
어떤 계획이든 마찬가지다.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리스크를 제거하는 게 우선이다.
곳곳에 깔린 지뢰를 치우면 복병만 조심하면 되니까.
“최악부터 말씀드리면 성종 그룹 윤 회장...... 그 사람이 움직이면 끝장이에요.”
성윤은 이제 주목받는 신인이다.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성윤을 정의하자면 초식동물에게도 물어뜯기는 잡초.
그중에서 조금 눈에 띄는 잡초일 뿐이다.
성종 그룹의 회장이 움직이면 언제든 씹어 먹힐 수 있고 짓밟아 죽을 수 있다.
밟혀서 꿈틀대기도 전에 숨부터 끊어질 거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 회장이 움직일 가능성은?”
정우가 고개를 저었다.
“윤 회장이 건설까지 신경 쓸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봐요. 지금 전자 때문에 미국이랑 실랑이 중이니까요.”
“다른 리스크는?”
“그리고......”
정우의 입에서 서로의 뒤통수를 오함마로 후려치는 시나리오가 내뱉어졌다.
배신과 배신, 통수에 통수......
그리고 모든 말이 끝났다.
성윤이 지금껏 들고 있던 보드마카를 테이블에 툭 내려두며 입을 열었다.
“움직일만하네?”
실컷 위험을 언급했는데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
정우는 슬쩍 웃었다.
성윤이 가는 길은 낭떠러지와 낭떠러지를 잇는 얼음다리다.
미끄러운 것은 둘째 치고 골짜기에서부터 불어오는 거센 바람은 만만치 않다.
언제 발을 헛디뎌 떨어져 죽을지 모른다.
그런데, 움직일만하다니...
정우가 보는 성윤은 위험을 생각하지 않는다.
되느냐 안 되느냐를 고민한다.
되기만 하면.....
정우가 주먹을 말아 쥘 때, 성윤이 말을 이었다.
“강정기 시장, 차진중 의원 그리고 윤성필 부문장... 그 세 사람 만나게 만들어.”
“네.”
성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그리고 한배에 태워.”
***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길게 이어졌다.
멈춰선 곳은 경기도 광주의 한정식집이다.
그곳에 강정기 시장과 차진중 의원, 그리고 윤성필 부문장이 마주 앉았다.
윤성필 부문장이 컵에 소주와 맥주를 따르며 말한다.
“우리 회사에서 제가 술 잘 섞기로 유명합니다. 대한당과 민국당도 이 술처럼 슬슬 섞였으면 좋겠습니다.”
윤성필 부문장이 술이 채워진 컵을 강정기 시장과 차진중 의원의 앞에 각각 놓았다.
강정기 시장과 차진중 의원이 단번에 마신다.
그리고 두 사람이 악수했다.
이들은 서로 다른 당이다. 언론에서 보면 죽어라 싸우는 사람들.
그런데, 이득에 눈이 먼 사악한 눈빛이 허공에서 교차한다.
강정기 시장이 입을 열었다.
“이성윤만 막아 주십시오.”
< 두 마리 토끼. -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