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마리 토끼. - (1) >
성윤은 구석에 앉았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곳이다.
하지만 존재감은 중심에 있다.
모든 사람이 성윤을 신경 쓴다.
성윤은 느긋하게 앉아 서류를 부채 삼아 흔들고 있을 뿐인데, 서류의 펄럭이는 소리까지 사람들의 귓가에 쑤셔 박히는 중이었다.
특히 강정기 시장이 그랬다.
수더분했던 얼굴이 일그러진다.
자신도 모르게 드러난 감정이다.
‘...저 새끼는 대체 왜 온 거야?’
국회의원이나 되는 놈이 거들먹거리기 위해 참관할 리는 없다.
분명 의도가 존재할 거다.
강정기 시장은 성윤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고개를 틀었다.
눈빛을 보면 음흉함을 예상할 수 있으니까.
성윤은 느긋하게 앉아 웃고 있었다.
하지만 싸늘한 눈동자는 본회의장 전체를 씹어 먹을 것만 같다.
강정기 시장이 미간을 콱 찌푸렸다.
‘저 새끼도 공유지 매각 때문에 온 것인가?’
강정기 시장은 성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성윤은 언론에 노출이 많이 되는 국회의원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인기만 좋을 뿐 내실이 없다.
어떤 당직도 맡고 있지 않다.
‘언론에서는 스스로 당직을 거부했다고 하지만......’
강정기 시장이 픽 웃었다.
스스로 당직을 거부했다는 등의 언론 플레이를 믿는 사람이 많으니까 자신의 서민 코스프레가 통하는 거다.
‘어차피 대중은 개, 돼지라고 했어.’
강정기 시장은 계산을 끝냈다.
그가 내린 답은 ‘성윤은 힘이 없다.’였다.
비록 국회의원과 시장이 가진 본질적인 힘의 차이는 있지만 강정기 시장에게는 민국당 국회의원들이 있다.
그리고 그는 공유지에 관한 뒷정리를 이미 끝낸 상태다.
그때, 성윤의 눈동자가 움직여 강정기 시장과 마주쳤다.
성윤의 검은 눈동자에 강정기 시장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성윤은 여전히 웃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눈빛으로 쏘아보며 입을 연다.
“참관 온 것뿐이에요.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해 주세요.”
의장은 아직 단상에 있었다.
그의 표정은 의기소침하다.
‘강정기 시장은 자신만만했어. 이미 뒷정리를 끝냈다는 건데......’
증거를 지웠다면 성윤이 아니라 당대표가 온다고 해도 힘들다.
‘...어쩌지?’
성윤은 강정기 시장을 상대로 계속해서 치고받으라 했다.
하지만 상대는 시장이다.
의장은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다.
‘이성윤 의원이 날 커버해 줄까?’ 시장은 도시의 왕이지만 국회의원에 비하면 우물 안 개구리다.
국회의원이 마음먹으면 시장 따위야 얼마든지 조질 수 있다.
국회의원은 행정안전부와 국세청 등 국정 전반에 관여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순수 권력만 봤을 때 그렇다는 거다.
대한당과 민국당의 관계, 정치 선후배 등 모든 역학 관계를 따지면 복잡해진다.
성윤이 정치적 위험성을 무릅쓰면서 일개 시의원을 막아 줄지는 모르겠다.
의장이 봐왔던 국회의원은 시의원이란 존재를 소포 품으로만 여겼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소모품...
‘씨발, 어쩌지?’
의장의 갈등이 깊어졌다.
그의 시선이 다시 성윤에게 향한다.
그의 속마음을 듣고 있던 성윤은 고개를 끄덕인다.
‘믿고 하세요.’
의미를 알았나 보다.
의장이 결의에 가득 찬 눈빛과 함께 입을 연다.
“계속하겠습니다. 공유지는 시장 개인의 것이 아니라 시의 재산입니다.”
의장은 조목조목 강정기 시장의 치부를 들추기 시작했다.
오래된 비리까지 끄집어 신경을 긁는다.
“이런 일을 강정기 시장께서 혼자 검토하고 계시니 저로서는......”
“의장, 그만 하세요.”
의장의 시선이 강정기 시장에게 향했다.
“...그만하라뇨? 자유 발언은 제 시간입니다.”
“자유 발언이라 해도 사람을 음해하면 안 되죠.”
“방금 시장께서 검토 중이라고 말했잖습니까? 입찰해서 경쟁을 붙여도 모자랄 판에 특정 회사를 검토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특정 회사는 정해두지 않았어요. 공유지 매각을 검토했을 뿐입니다.”
의장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호통을 친다.
“도시주택국장!”
멍하니 앉아 있던 도시주택국장이 발딱 고개를 들었다.
“네?”
“지난주 목요일! 성종 건설 사람은 왜 만났습니까!”
“네?”
“모른척하지 말고!”
의장의 눈에는 분노가 이글거렸다.
시의원이라고 해도 시의회의 수장이다.
관록은 존재한다.
본회의장에는 다시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도시주택국장은 어쩔 줄 몰라 한다.
눈빛은 이미 넋이 나가 있다.
“시장께서 공유지를 검토한다는 말에 쪼르르 성종 건설 사람을 만나 정보를 제공하고!”
“......!”
“시장님의 검토는 대외비와 같은데 그걸 떠벌려 대한당과 민국당을 이간하고!”
“......!”
“감사원에 연락해 사실관계를 조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정기 시장은 턱살이 꿈틀댈 정도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의장이 쏘아붙이는 것은 도시주택국장을 향한 게 아니다.
자신에게 향하는 독설이다.
‘젠장.’ 성윤이 나타나면서부터 꼬였다.
아니, 의장의 헛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성윤을 우습게 보고 의장과 말을 섞은 게 잘못이다.
이미 판은 흔들리고 있었다.
여기서 물러나면 꼬리를 말고 도망친 개가 된다.
‘어차피 걸릴 것은 없어.’
강정기 시장의 안광이 서슬 퍼렇게 빛났다.
그가 손바닥으로 ‘탕! 탕! 탕!’ 테이블을 내리친다.
“의장!”
거센 호통에 의장의 입이 닫혔다.
강정기 시장이 의장을 불같이 노려보며 말한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의장의 말씀이 공무원들에게 얼마나 압박을 주는지 몰라서 그럽니까!”
의장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이게 압박이라고요? 잘잘 못을 따지......”
강정기 시장이 그의 말을 막아섰다.
“그만 하세요! 잘못이 있다면 내부 조사를 통해 확인하겠습니다. 이따위 일로 감사원을 입에 올리면 공무원들이 어떻게 일을 합니까!”
내부 조사,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겠다는 거다.
의장이 바로 반론하려 했다.
하지만 강정기 시장은 의장의 말을 듣지 않고 몸을 일으킨다.
찬바람을 풍기며 계단을 걸어 올랐다.
국장들과 민국당 시의원들이 그 뒤를 따랐다.
도망치듯 떠나는 자리.
기세등등해진 대한당 의원들이 그들을 향해 삿대질했다.
“내부 조사? 그걸 믿으라고! 찔리는 게 있기는 하나 보네.”
“어딜 가! 말 끝내고 가!”
소란스러운 가운데 부의장이 강정기 시장의 옆에 서서 속삭였다.
“대한당 새끼들... 저런 건방진 행동을 가만히 두실 겁니까?”
강정기 시장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지금 벌어진 일이 성윤에게서 나온 치밀한 각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주먹을 꽉 쥐며 입을 열었다.
“기자들 입부터 막아. 시의회에서 창피하게 무슨 짓이야.”
부의장이 옆에 있던 민국당 시의원의 어깨를 툭 쳤다.
민국당 시의원이 고개를 숙인 후 기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강정기 시장이 다시 말한다.
“대한당 시의원들하고 식사 자리 잡아. 빠르면 빠를수록 좋으니까.”
부의장이 힐끗 옆을 봤다.
대한당 시의원들은 여포가 빙의된 것처럼 기세등등하다.
삿대질하며 쌍욕을 이어가고 있다.
저들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성종 건설에 공유지를 팔고 뽀찌라도 받아먹으려면 저들을 설득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강정기 시장의 걸음이 뚝 멎었다.
그의 앞에 성윤이 서 있었다.
여전히 구겨진 서류로 부채질을 하면서......
강정기 시장이 어색하게 웃는다.
“이성윤 의원, 나중에 차나 한잔하죠. 모처럼 참관까지 오셨는데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 미안하네요. 그럼......” 강정기 시장은 성윤의 옆을 스치려 했다.
그런데 성윤이 팔을 들어 그의 앞길을 막는다.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나중에 물어봤으면 하는데......”
“성종 건설에서 얼마 받기로 되어 있습니까?”
강정기 시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윤은 픽 웃었다.
그의 속마음을 들어서다.
“2억이요?”
강정기 시장의 아래턱이 꽉 힘이 들어갔다.
성윤은 상관 않고 계속 묻는다.
“누구한테 받았습니까? 시장님 급이면 부문장이나 이사 정도가 왔을까요?”
“이성윤 의원......”
“2억 받고 나머지는 땅 판 돈에서 슈킹?”
강정기 시장의 서늘한 시선이 성윤에게 닿는다.
하지만 그 시선은 곧 부드럽게 변한다.
기자들이 나오고 있었다.
“이성윤 의원, 정치 입문은 내가 선배인 것 같은데... 말은 가려서 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성윤은 멈추지 않았다.
“정치에 발을 들인 것은 시장님보다 얼마 안 됐지만 그동안 배운 게 있죠. 이 바닥이 참 더럽다는 것. 권력이 인격이라는 것. 권력 많은 사람이 형이고 선배라는 것.”
성윤 자신이 강정기 시장보다 더 큰 힘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거다.
강정기 시장은 여전히 표정을 관리했다.
“지금 국회의원이 기초단체장을 찾아와 협박하는 겁니까?”
“협박이라니요.”
성윤은 웃고 있다.
그 웃음이 강정기 시장에게는 섬뜩하게 다가왔다.
강정기 시장은 마른 입술을 핥으며 다가오는 기자들과의 거리를 가늠했다.
가깝다.
조금만 큰 목소리를 내도 다 들릴 거다.
“이성윤 의원, 이건 갑질이고 여당이 야당을 압박하는 것입니다. 어떤 잘못도 나온 게 없는데 그걸 사실로 받아들인 채......”
성윤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뿌렸다.
강정기 시장의 머리 위에서 흩어 진 서류가 후드득 떨어진다.
강정기 시장의 입은 닫혔고 성윤이 입을 열었다.
“만 원짜리 쓰레기통이 90만 원으로 둔갑하고 100만 원짜리 오토바이가 200만으로 바뀌고. 멀쩡한 보도블록 뜯어내 교체하고! 사업하는 분들이 서안시 같은 호구를 만나면 참 좋아하겠네요. 강호구 시장님.”
강정기 시장은 어떤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굳었다.
표정 관리는 되지 않는다.
시뻘건 눈동자가 앞만 보고 있다.
앞에서 서류가 나풀나풀 떨어지고 있었다.
부시장과 상의한 후 국장들에게 지시를 내렸던 서류다.
성윤이 국장들을 보며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읽어 보세요.”
도시주택국장이 허리를 굽혀 땅에 떨어진 서류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귀신을 본 것처럼 창백해진다.
‘이...이게.’
도시주택국장이 고개를 들어 성윤을 봤다.
다른 국장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눈빛에 ‘좆됐다.’라는 감정이 뿌리 박혔다. 민국당 시의원들은 허겁지겁 서류를 챙겼다.
기자들이 보면 진짜 큰일 나니까.
대한당 시의원 한 명이 서류 한 장을 손에 들었다.
“이게 뭐야? 의자가 팔십만 원?”
“멀쩡한 가로수를 왜 뽑아!”
의장의 어깨에 꽉 힘이 실렸다.
그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본회의장 전체를 쩌렁 울렸다.
“씨발! 도둑놈 맞네! 이 개새끼들아!”
강정기 시장은 서류를 봤다가 성윤을 보다가 급하게 고개를 틀어 기자들을 향했다.
기자들은 눈을 반짝이며 이쪽을 주시한다.
강정기 시장이 더듬거렸다.
“이건 음해입니다.”
그리고 서울의 강남.
정우는 성종 건설 본사 4층의 소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에 놓인 커피를 입에 댄다.
뜨거웠던 커피는 미지근하다.
문이 열리고 단정한 차림의 남자가 들어왔다.
“보좌관님이라고요?”
정우가 커피를 내려두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쪽은 윤성필 부문장님?”
“아. 네.”
“서안시 동구 국회의원 이성윤 보좌관 박정우라고 합니다.”
서안시라는 말에 윤성필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
뭔가 알고 있다는 눈빛이다.
그가 의자를 빼고 정우의 맞은편에 앉았다.
물끄러미 정우를 보며 묻는다.
“그런데... 어쩐 일로?”
정우가 슬쩍 웃었다.
“국감이 다가오잖아요? 저희 의원님이 환경노동위원회에 계시거든요.”
“아, 네.”
윤성필 부문장은 정우가 용돈을 받기 위해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국감을 말했다.
그것도 환경노동위원회......
왜 건설 회사를 찾아왔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정우가 방긋방긋 웃으며 말한다.
“서면으로 말씀드려도 되지만 그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직접 찾아왔어요.”
“...환노위는 저희와 연관되는 게 없을 텐데요.”
“건설 현장 노동자도 다 우리 관리거든요. 그러니까 사람을 채용할 때 했던 회의록 모두 제출해 주세요. 그리고 1년간 산업재해, 명예퇴직자의 선정 기준......”
국정감사......
특정 기업을 지목해 트럭 몇 대의 자료를 제출하라며 생떼를 부리는 국회의원이 있다.
그런 의원들을 기업에서는 또라이라 부른다.
부문장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보좌관님......”
“맞아요. 시비 거는 거예요. 국회의원이 기업을 어떻게 조질 수 있는지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하......”
부문장이 휴대폰을 만지작댔다.
알고 있는 다른 국회의원에게 연락 하려는 거다. 이성윤은 아직 신인과 같다.
짓밟아 줄 수 있는 능력자 의원들이 존재했다.
부문장이 휴대폰을 뺀다.
그 순간.......
쾅!
정우가 두 손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며 일어섰다.
“강정기 시장에게 돈 뿌린 거 알아.”
< 두 마리 토끼. -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