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관. - (2) >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모두 마른 침을 삼키며 눈치만 본다.
강정기 시장이 부정을 저지를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차마 입에 담을 수는 없다.
성윤의 성격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거론되는 순간 어떻게 날뛸지 예상하기 힘들었다.
성윤의 입가에 걸렸던 부드러운 미소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살기 어린 눈빛을 굴리며 시의원들의 얼굴을 향했다.
“...그 돈 우리가 가져옵시다.”
시의원들의 눈이 번쩍 떠졌다.
지금 성윤이 한 말을 뚝 자르고 들으면 비리를 저지르자는 것 같다.
‘뭐지?’
시의원들은 힐끗힐끗 눈을 마주친다.
‘이성윤은 투자해서 번 돈을 모두 기부한 사람이야!’
‘그건 고작 몇 십억이지. 이건 1조야. 1%만 슈킹해도 백억이 떨어지는 게임이라고!’
‘씨발, 돈 앞에 장사 없다더니......’
그들의 시선이 천천히 성윤에게 옮겨졌다.
실망 어린 눈빛이다.
이들 역시 십만 원, 백만 원 해 먹긴 했다.
하지만 바라고 있었다..
성윤 같은 정치인은 개똥밭에 굴러도 변하지 않기를...
그래서 이들 역시 최근에는 성윤을 따라 비리와 갑질을 저지르지 않고 있었는데......
의장이 더듬더듬 묻는다.
“의원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말이 1조예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시민이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 돈이에요. 당연히 시민을 위해 써야죠. 직장에 나가는 엄마를 위해 공단에 어린이집, 유치원을 만드세요. 그 엄마들이 만족할 시설과 선생을 고용하세요.”
시의원들의 입가에는 자신들도 모르게 미소가 걸렸다.
잠시나마 성윤을 의심했던 게 민망했다.
성윤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아직 어둡고 으스스한 골목길이 많아요. 여자고 남자고 밤중에는 무섭다고 들었어요. 그런 곳을 찾아 가로등과 CCTV를 추가로 설치하세요! 독거노인에게 연탄 주며 생색내지 말고 가스보일러를 만들어 주세요. 이것저것 다 해도 남을 겁니다. 공무원과 우리가 이득
을 취하지만 않으면요.”
사람 하나가 바뀌어도 분위기가 변한다.
이들은 보육원 땅을 꿀꺽하려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금 이들의 눈빛은 빛나고 있다.
“네!”
한목소리로 크게 대답한다.
성윤이 잔을 들었다.
“우리가 얻을 이득은 국민의 칭찬이에요.”
그 시각, 서안 시청 시장실.
“쓰레기통을 90만 원에 구입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강정기 시장이 눈살을 찌푸린다.
“쓰레기통이 90만 원?”
보고하던 부시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님, 우리 장부를 확인하는 국민은 없어요. 본다고 해도 그 많은 항목 중에 쓰레기통을 고를 것 같습니까? 그리고 공무원들은 알아도 눈을 감을 거예요. 보신하기에 급급한 놈들이니까요. 기자도 마찬가집니다. 다음 대선에서 우리 당이 집권할 것이 확실해지는데
입을 다물겠죠.”
이들은 성종 건설에서 받을 리베이트를 어떻게 국민 모르게 꿀꺽할지 계획하는 중이었다.
준비는 빨리할수록 탄탄해지고 좋은 거니까.
강정기 시장이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다음은?”
부시장이 수첩을 넘기며 말한다.
“직원들의 책상과 식당 테이블 그리고 주민 휴게실을 교체할 겁니다. 구청과 주민 센터도 교체 시기가 된 것을 찾는 중이고요.”
5년은 더 써도 될 멀쩡한 물건들이다.
하지만 이번에 교체될 거다.
부시장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오토바이를 구입할 거예요.”
이미 서안 시청과 구청에는 전기 오토바이가 있다.
하지만 배터리 등이 고장 나며 쓰지 않고 있다.
아니, 처음부터 사용한 적이 몇 번 되지 않는다.
“오토바이 보험금이 총 이천만 원 정도 될 겁니다.”
강정기 시장은 수더분한 외모로 희미한 미소를 그린다.
“시민들을 위한 것도 해야지?”
“풍진동에 보도블록을 교체하고 중앙로에 가로수를 정비하겠습니다. 졸부들이 많이 사는 로얄 아파트에는 공원을 만들어 줄 생각입니다. 나무 몇 개 사다가 심어주고 놀이터 만들어주면 만족할 겁니다. 그리고 노인들을 위해서......”
부시장의 개소리가 계속됐다.
1조라는 돈의 사용처가 제대로 된 계획 없이 아니 회의조차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정해지는 중이다.
다 쓰고 뒷돈을 꿀꺽하기 위해서다.
지정된 업체는 차액만큼 돌려줄 거다.
그 차액은 시장과 부시장의 뒷주머니에 고스란히 쑤셔 박힌다.
그리고 업체 역시 이득을 뽑아내야 한다.
그들은 질 낮은 제품을 쓰고 공사 기간을 질질 끌며 주머니를 채울 거다.
손해는 국민만 본다.
자기 돈이면 최저가 정신을 발휘하여 악착같이 100원이라도 더 싸게 사려는 인간들.
하지만 세금은 펑펑 쓰고 있다.
***
시청 공무원 박강중은 햄버거를 손에 들었다.
그는 성윤이 국회의원이 되기 전 시의원들의 보육원 토지 문제 비리를 도왔던 공무원이다.
자신의 과장 휴대폰을 몰래 확인한 후 메신저 단체 채팅방을 스캔해 성윤에게 건넸었다.
햄버거를 한 입 크게 베어 물더니 기계적으로 씹는다.
눈에는 피곤이 가득했고 처진 어깨는 무기력했다.
그의 입에서 한숨이 흐른다.
공무원에 합격했을 때만 해도 인생의 승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람쥐 쳇바퀴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퇴직 후 나올 연금만 보고 사는 인생이다.
‘씨발, 이게 뭐냐......’
늙어서 편하면 뭐할까.
젊은 지금이 고되다.
결혼도 못 하고 연애도 못 하고.
반복적인 일상, 출근하고 퇴근한다.
집에 누워 보는 텔레비전이 유일한 낙이다.
휴대폰을 들어 기사를 검색했다.
실업자 100만 명 시대라는 제목이 보인다.
‘그래, 내가 낫지...’ 이번엔 공무원 경쟁률을 검색했다.
9급 공무원이 서울대 급의 수준이라는 댓글이 보인다.
박강중은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그래, 내가 배부를 소리 하는 거지!’
스스로 위안을 가졌다.
그리고 고개를 틀어 창밖을 보는데 벤츠 한 대가 주차한다.
어린놈이 내린다.
옆에는 예쁜 여자.
‘카푸어일 거야. 분명해.’
잠시 어린놈을 째려보던 그는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파묻었다.
그는 지금 힘든 사람들을 보며 위안을 갖는 못난 짓을 하고 있다.
그렇게 기사를 훑어보던 그의 눈동자가 곳에서 멎었다.
[이성윤 의원, 진정한 킹 메이커.]
성윤의 지시를 받았을 때가 떠올랐다.
윗사람의 휴대폰을 털었고 이런저런 정보를 제공했다.
그때는 성윤이 싫었는데, 쳇바퀴 인생을 살다 보니 그날이 살 떨리 게 즐거웠다.
긴장된 삶은 지금과 달랐다.
사람 사는 것 같았다.
똑똑똑.
앞에서 테이블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박강중이 햄버거를 씹으며 고개를 들었다.
‘어?’
성윤이 의자를 빼내 앉고 있다.
박강중은 눈을 깜빡인다.
휴대폰을 봤다가 다시 성윤을 본다.
현실 파악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입에 문 햄버거 부스러기가 뚝뚝 흘러내렸다.
그러다가 벌떡 일어나 허리를 구십 도로 굽혔다.
“안녕하십니까!”
“편히 드세요. 지나가다가 여기 계시는 걸 봐서요. 인사나 하러 왔죠.”
성윤은 팔짱을 끼고 다리를 외로 꼬며 조용히 박강중을 바라봤다.
지나가다 우연히 봤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박강중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시청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상대를 공격하기 전에 선택해야 할 것이 있다.
지휘탑을 부수느냐 아래를 부수느냐.
이번에 선택한 것은 아래다.
아무도 모르게 스물스물 기어올라 머리를 잠식할 수 있는 곳.
박강중은 제격이었다.
그는 적당히 계산적이며 말단이기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면서 시청의 모든 곳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다.
성윤이 입을 열었다.
“얼굴 본 김에 부탁을 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네? 부, 부탁이요?”
“아직 도시계획과에 있죠?”
“아... 그렇긴 한데요.”
성윤의 시선이 박강중의 왼쪽 손목으로 향했다.
“시계는 아직도 잘 차고 다니시네.”
광고회사의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받았던 시계.
이걸 빌미로 성윤이 질질 끌고 다녔다. 박강중은 재빨리 손목을 가렸다.
그리고 울 것 같은 얼굴로 성윤을 바라본다.
성윤은 부탁이라 말했지만 박강중에겐 명령으로 들리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다시 한번 성윤의 지시를 받았을 때가 떠올랐다.
살 떨리고 초조했던 날.
성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시절이 그리웠다.
하지만 지금은 취소다.
편한 게 좋은 거다.
그가 더듬거리며 묻는다.
“...어떤 거요?”
“일 한 번 더 같이 합시다.”
***
서안시 시의회.
로비에서부터 흉흉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대한당 시의원들이 노골적으로 민국당 시의원들을 노려본다.
민국당 시의원 중 부의장을 맡은 사람이 의장에게 다가왔다.
“의장님, 혹시 언짢으신 일이 있나요?”
비록 당은 다르지만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이다.
불편한 눈빛에 의문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의장은 답 대신 냉기가 풀풀 흐르는 목소리로 묻는다.
“강정기 시장님은 참석한답니까?”
시의회에 시장도 참석하는 게 의무다.
하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참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갑자기 무슨......”
부의장은 눈동자를 굴린다.
시장과 대한당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는 거다.
하지만 없다.
최근 서안시는 평화가 지속되고 있었으니까.
의장의 벼락같은 목소리가 내리쳤다.
“참석하라고 하세요! 안 그러면 시청 앞에서 천막을 칠 수도 있으니까! 씨발, 도둑놈도 아니고.”
부의장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뭐요? 도, 도둑놈?”
“그래! 도둑놈!”
의장과 부의장이 몸싸움을 시작했다.
서로 멱살을 쥐고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우스운 몸짓을 멈추지 않는다.
대한당과 민국당 시의원들이 다급히 달려가 서로를 떼어 놓았다.
하지만 의장은 삿대질을 멈추지 않는다.
목에 피가 터져라 외치고 있다.
“강정기 오라고 해! 공유지를 팔아 돈 챙기려는 도둑놈 새끼 얼굴 좀 보자!”
민국당 시의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맞받아 싸우던 그들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어디서 들은 거야?’
상황을 파악한 부의장이 한 시의원의 어깨를 툭 쳤다.
“연락드려.”
시의원은 재빨리 자리를 벗어나 시장 비서실로 전화를 건다.
그가 초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시장님 계셔? 바꿔. 빨리! 손님이 있어도 바꾸라고!”
잠시 후, 시의회 본회의가 시작됐다.
시의원들은 물론이고 지방 신문사 기자들이 지루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는다.
의장이 입을 열었다.
“본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5분 자유 발언 신청이 있습니다. 신청자는 본인입니다.”
의장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자리에 앉은 민국당 시의원들을 쏘아봤다.
‘어?’
기자들은 평소와 다른 공기를 느꼈다.
그들이 손에 쥔 카메라를 만지작댄다.
그때......
“시장님 오십니다!”
문이 열렸다.
강정기 시장이 뚜벅뚜벅 들어온다.
그 뒤로 간부급 공무원들이 보였다.
안전행정국장, 기획경제국장, 복지문화국장, 도시주택국장, 환경에너지 교통국장.
그들의 눈빛은 전투에 나가는 사람들처럼 기세가 등등하다.
모두 의장과 대한당 시의원을 노려보고 있다.
강정기 시장의 눈빛 역시 살벌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가 들어서자 민국당 시의원들이 엉거주춤 일어나 인사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던데요. 듣기 위해 왔습니다.”
의장의 입술이 뒤틀어진다.
그는 대한당이다.
지금껏 시장의 자리에 앉은 사람이 민국당이라는 게 정말 꼴 보기 싫었다.
이번 기회로 시장의 발목을 끊어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비꼬며 말한다.
“본회의 참석은 의무 아닙니까? 시장이 의무를 지지 않으면서 시민들에게 의무를 다하라고 말하는 게 웃긴 거죠.”
부의장이 벌떡 일어섰다.
“말조심하세요!”
하지만 의장은 더 강하게 치고 들어갔다.
“강정기 시장! 성종 건설에 공유지를 매각하겠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사실입니까? 말 좀 해봐요!”
“검토는 하고 있습니다.”
“공유지는 시의 재산이에요! 마음대로 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정당한 절차를 두고 움직여야죠! 비리를 저지르려 한 겁니까!”
민국당 시의원이 벌떡 일어섰다.
“검토하는 중이라고 하셨잖아! 비리라니! 사실을 왜곡하지 마!”
이번엔 대한당 의원이 핏대를 올렸다.
“어디서 반말이야! 기본은 지켜야지!”
“의장 먼저 사과해! 어디서 소리를 꽥꽥 질러! 감히 시장님께 지랄을 해!”
“지랄? 씨발, 지금 지랄이라고 했냐? 시장이 잘못된 짓을 하면 막아야지!”
개판이 되어가는 중이다.
여기저기 욕설이 터져 나온다.
의장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가 강정기 시장을 보며 외친다.
“강정기 시장! 검토하고 있다면 검토 중인 서류를 가져와요! 도시주택국장, 당신은 알고 있었지! 갖고 와!”
강정기 시장이 슬며시 웃는다.
그리고 손을 저었다.
한순간에 시의회는 조용해진다.
“소리 지르지 마세요. 아무리 의장이라도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죠. 최소한의 예의는 갖췄으면 합니다.” 그는 여유 있게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에 민국당 의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여유라면 뒷정리는 끝났다는 거다.
대한당이 파고들 여력은 없다.
반대로 의장의 입술은 바짝 말라갔다.
성윤의 지시에 따라 일단 개판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강정기 시장이 지나치게 여유롭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강정기 시장이 손가락으로 의장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의장님, 검토 중인 서류를 보이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비리나 문제가 없다면 그 자리 내려와야 할 겁니다.”
“강, 강정기 시장!”
의장의 목소리는 컸다.
궁지에 몰린 개가 크게 짓는 법이다.
시장은 여전히 느긋하다.
“들으세요. 난 수십만 시민이 뽑아 준 사람이에요. 의장님은 몇천 표를 받은 시의원이고요. 그리고 저는 의장님이 대한당이라 해도 싫어한 적 없어요. 하지만 단지 당이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을 하면 저도 사람인 이상... 화가 나지요.”
의장을 가리키던 강정기 시장의 손가락이 스르륵 단상으로 내려왔다.
강정기 시장이 비웃듯 말한다.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의장의 손은 가늘게 떨렸다.
준비해 온 발언 문서를 허겁지겁 넘겨보지만 나오는 것은 없다.
하이에나 같은 기자들은 의장의 행동을 카메라에 담는다.
기사가 나갈 거다.
이유 없이 시장을 발목 잡는 의장이라고......
의장은 눈동자만 올려 시장을 향했다.
시장은 의장보다 치열한 정치 인생을 살아왔다.
의장의 머리로 이기기 힘들었다.
그때......
문이 끼이익 으스스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모두의 시선이 문으로 향한다.
‘뭐지?’
그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성윤이 서 있었다.
구깃구깃 구겨진 불길한 문서로 부채질을 하면서......
성윤이 슬쩍 웃는다.
“참관하러 왔습니다. 계속하세요.”
< 참관. -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