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91화 (91/300)

< 참관. - (1) >

오대민 의원이 중얼댄다.

“...서안시 공유지 매각?”

서안시는 서울과 인접해있다.

게다가 예상하는 지역은 전철역 뒤쪽의 8만 평.

말 그대로 알짜배기 땅이다.

‘조’에 가까운 돈이 움직일 것으로 예상된다.

오대민 의원은 휴대폰을 검색해봤다.

하지만 나오는 소식은 없다.

그의 시선이 다시 성윤에게 틀어졌다.

“첩보라고 했지? 출처를 말해줄 수 있나?”

‘속마음을 들었어요.’라고 할 수는 없다.

미친놈 취급을 안 받으면 다행이다.

“아뇨, 출처까지는......”

“확실성은?”

“신뢰도는 높습니다.”

오대민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발표되지 않은 서안시 공유지 매각... 그곳에 모두 태운다... 가능성은 있겠어.”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오대민 의원의 시선이 채정학 대표에게 옮겨졌다.

결정을 내리라는 눈빛을 보낸다.

숙청이든 뭐든 결정은 대표가 하는 거니까.

채정학 대표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는 대한당을 개혁하는 부푼 꿈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첫 업무를 펼치지도 전에 ‘숙청’이라는 잔인한 단어가 불쑥 들어왔다.

“...결정을 해야겠지요?”

오대민 의원의 고개를 끄덕였다.

“아름다운 권력은 허상입니다.”

채정학 대표는 무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차진중이라......”

백형욱에 이어 김대성까지 구속되며 그 계파는 사공을 잃고 갈라섰다.

한쪽은 산으로 향하고 다른 쪽은 사막을 횡단하는 등 우왕좌왕하고 있다.

지금껏 권력의 단물을 쫙쫙 빨던 그들이다.

하지만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되자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권력은 마약과 같다.

권력을 잃은 자의 금단증상은 심각하다.

그 중심에 차진중 의원이 있었다.

그는 갈라선 의원들을 포섭하며 불만을 한 곳으로 모았다.

불만의 표출은 바로 당대표 채정학이다.

“우리 계파 때문에 원내대표가 됐어. 우리 때문에 당대표가 됐고. 그런데, 어떤 당직도 권하지 않아. 우리는 이용만 당한 채 밀려나는 중이지. 이래서 검은 머리 동물을 도와주면 안 되는 거야. 언제부터 지들이 주류였다고. 개새끼들.”

불만이 생기면 사람들은 하나로 모인다.

그리고 언제 어떤 짓을 벌일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된다.

그들을 어떻게든 정리해야 한다는 것을 채정학 대표도 알고 있었다. 채정학 대표가 시선을 들어 성윤과 오대민 의원의 표정을 살핀다.

뭐라도 더 말해줬으면 하는 눈빛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입을 열지 않는다.

모든 의견은 전했다.

최종 결정은 당대표가 하는 거다.

채정학 대표가 머리를 헝큰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결심이 선 눈빛이 번뜩였다.

“이 의원, 그림을 그려봐.”

“알겠습니다.”

그 시각, 여의도의 소고기 전문점.

아홉 명의 국회의원이 모여 앉아 식사하고 있었다.

불판에 한우가 지글지글 익어간다.

차진중 의원이 입을 열었다.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하는 공평한 스포츠. 전 야구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정치는 아니에요. 상대는 당대표와 원내대표. 선공을 내주는 순간 우리의 공격 순서는 없을 겁니다. 처절하게 깨지겠죠. 누구는 검찰에 끌려가 치욕을 받고 누구는 말 잘 듣는 거수기가 될 겁

니다. 주인이 오면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고 차량의 문을 닫아주며 고개를 숙이고......”

차진중 의원은 불만을 터뜨리듯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탕탕 두드리고 있었다.

의원들은 마른 입술을 핥는다.

차진중 의원의 말을 들으며 거지같이 살아갈 앞날을 생각하는 중이다.

차진중 의원의 손바닥이 탕! 하고 강하게 내리려졌다.

의원들은 정신을 번쩍 차리며 차진중 의원의 얼굴을 향한다.

“뭘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살자고 국회의원 된 것 아니잖아요? 말 한마디로 정부 부처를 오라 가라 하고 기업 사장들이 고개를 숙이고 어디서든 가슴 펴고 살기 위해 된 것 아닙니까! 그런데, 고개를 숙여야겠습니까? 그것도 우리 아래 있던 비주류 의원에게?”

의원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차진중 의원이 물티슈로 입을 슥 닦으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공격받기 전에 공격했으면 좋겠어요.”

무거운 말이었다.

헛기침하는 의원도 있었다.

그때, 구석에 있던 의원이 입을 열었다.

“어느 권력이나 가장 무서울 때는 처음이에요. 당원들이 ‘한 번 믿어보자!’라는 마음을 갖고 있으니까요. 말씀은 알겠지만, 시간을 좀 두는 게 어떨까 합니다. 아직 우리 계파가 모두 뭉친 것도 아니잖아요. 여기저기 갈라진 사람을 다시 모아서......”

권력의 처음은 살벌할 정도로 큰 힘을 갖고 있다.

녹슬지 않은 칼날은 시퍼렇게 빛난다.

그래서 상대는 세월의 풍파에 권력의 칼날이 무뎌지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차진중 의원은 고개를 저었다.

“전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해요. 대표는 당을 장악하지 못했어요. 당에 뿌리를 내리기 전에 기둥을 쳐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 대한당은 다시 우리 것이 될 겁니다.”

또 다른 의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의원님... 그런데, 우리는 돈이 없어요.”

전쟁에는 돈이 필요하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만나 밥을 먹고 돈을 챙겨줘야 한다.

돈을 뿌려대면 정의와 의리는 무너진다.

배반이 춤추고 부패한 사람이 날뛴다.

그럼, 신뢰 관계 따위 없어도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돈이 없다.

김대성 의원이 구속되며 스폰서는 발을 뺐다.

당대표와 전쟁을 치를 자금이 부족하다.

차진중 의원이 희미하게 미소를 그렸다.

“돈은 생길 겁니다.”

***

성윤은 서안시로 향하는 중이었다. “흘렸어?”

“네.”

“받아먹은 것 같아?”

성윤이 당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정우는 보좌관들과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리고 서안시 공유지 매각에 대한 사실을 차진중 의원 측 보좌관에게 슬쩍 흘렸다.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실수로 말했다는 듯이......

정우가 핸들을 틀며 힐끗 성윤을 본다.

“그런데... 차진중하고 붙는 거예요?”

“아마도.”

정우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어젯밤, 대관 담당자들이 찾아왔을 때만 해도 고생 끝 행복 시작! 지금부터 권력을 향해 달려가 보자! 라는 단꿈을 꿨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나자 그것은 꿈이었다.

다시 살얼음판이다.

정우가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기습한 거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저쪽도 대비하고 있을걸요.”

칼을 휘두를 땐 자신도 칼에 베일 수 있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성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꿈속을 통해 봤기 때문이다.

패배했을 때의 비참함은 차라리 죽었으면 할 정도였다.

“그러니까... 잘해야지. 패배는 생각하지 말고.”

이번 싸움에 승리하면 한 발 더 도약할 수 있다.

차진중 의원과 그 밖의 의원을 합하면 열 명.

현재 성윤의 손에는 김대성 의원의 계파 중 비리로 얼룩졌던 여덟 명이 있다.

이번에 열 명의 머리채를 잡으면 쥐락펴락할 수 있는 숫자가 총 열여덟 명이 된다.

두 명만 더 있으면 원내교섭단체 급.

웬만한 정당보다 큰 힘을 갖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성윤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국회 장악력이 아무도 모르게 커지는 중이다.

이런 사실은 정우만 안다.

정계의 보이지 않는 손......

성윤은 일정한 속도로 손을 쥐었다 펴기를 쉬지 않았다.

하늘을 가리기엔 작은 손.

하지만 움켜쥐기엔 충분하다.

“대한당 시의원들 연락해줘. 민국당 모르게 좀 보자고.”

“네.”

이왕 칼을 휘둘러야 한다면 거침없어야 한다.

망설이다가 칼을 뺏기고 만다.

“시장과도 약속 잡아.”

서안시 시장은 민국당이다.

이름은 강정기.

이미지 정치에 능하다.

수수하고 소탈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진정으로 서민을 위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기를 얻기 위한 서민 코스프레일 뿐이다.

그날 저녁.

서안시의 한정식집.

성윤은 대한당 소속의 시의원들과 마주 앉았다.

“민국당 측에 연락하지 않으셨죠?”

“그럼요.”

시의원들은 고개를 당당히 끄덕였다.

성윤이 슬쩍 웃으며 잔을 들었다. “일단 배고픈데, 먹고 이야기하죠.”

이들의 속마음을 듣는 게 우선이다.

오랜만에 보는 만큼 민국당의 프락치로 돌아선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왁자지껄 식사 자리가 시작됐다.

의장이 성윤의 옆에 붙어 용비어천가를 지껄인다.

성윤이 있어서 공단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돌아간다는 말.

불법체류자가 사라져서 여성들의 밤길이 안전하다는 등.

성윤이 초선 때 공약으로 내걸었던 서안 쇼핑 본사가 한창 건설 중이라 일용직 노동자들의 일거리도 많다는 이야기.

마지막으로......

“의원님 보고 있으면 꼭 제 젊었을 때 모습 같아요. 아, 어리다고 하는 게 아니라 멋진 모습이......”

옆에 있던 시의원이 배를 잡고 웃는다.

“의장님, 제가 의장님이랑 이십 년을 알았는데 몸무게가 100kg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잖아요? 멋진 모습 한 번도 못 봤어요. 푸하하하!”

의장이 둥그런 배를 쓰다듬으며 인상을 썼다.

“인격 말고 얼굴!”

“의장님이 의원님 같았으면 전 영화배우였습니다.”

“영화배우 다 얼어 죽었네. 술이나 마셔.”

시의원들의 분위기는 좋았다.

성윤의 인지도가 커지며 이들 역시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들의 윗사람은 성윤이니까.

여기서 성윤이 말을 끊었다.

이곳에 있는 시의원들의 속마음은 충분히 들었고 이제는 본론으로 들어갈 때였다.

“서안 쇼핑에 대한 말이 나와서 그런데요. 들은 이야기가 있어요.”

“어떤 거요?”

의장이 눈을 말똥말똥 뜨고 성윤을 바라본다.

떠들던 시의원들의 시선도 성윤에게 향했다.

성윤이 느릿하게 말했다.

“시에서 공유지를 매각한다고 하던데......”

의장이 펄쩍 뛰었다.

“저희는 그런 짓 안 합니다! 안 해요!”

의장의 말이 시작이었다.

시의원들이 쉬지 않고 억울한 표정으로 말을 토해낸다.

“의원님, 그때 당한 게 있는데 또 그러겠어요?”

“이제 땅은 쳐다보기도 싫어요. 투자는 아파트만 해요. 믿어 주세요.”

이 사람들은 보육원 부지를 꿀꺽하려다가 성윤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그때 달달 볶인 게 아직까지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성윤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해가 있는 것 같네요. 의원님들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런 소문을 들었다는 거예요. 전철역 뒤에 8만 평의 부지. 거기 꽤 괜찮은 자리잖아요.”

시의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못 들어봤어요.”

“...저도.”

성윤은 입술을 쓸었다.

‘시의원도 모르게 진행...... 뒷주머니에 얼마를 챙기려고.’

의장이 가볍게 입을 연다. “혹시 그 소문이요. 상대가 성종인가요?”

“네.”

의장이 목을 긁적인다.

“그럼, 좀 이상한 게 있기는 했어요. 그런데, 이게 확실한 게 아니라......”

“뭐든 말해주세요.”

“성종 쇼핑 본사가 공사 중이잖아요?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의원님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까 좀 이상해요. 성종 건설 사람들이 시청을 부지런히 오가고 있거든요. 허가 문제는 다 끝났을 텐데, 왜.....”

옆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던 여성 시의원이 손뼉을 짝 친다.

“정말로 공유지를 팔아먹으려 하는 거 아녜요?”

멀리 상추를 손에 들던 시의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우리가 왜 몰랐지?”

“기습적으로 발표하고 추진하려 했던 것 아냐? 우리가 태클 걸까 봐?”

시의원은 시장을 견제할 수 있다.

집요하게 붙잡고 늘어지면 시장은 참 피곤해진다.

“민국당 애들도 조용하던데......”

“걔들이 이런 일을 알리겠어?”

시의원들의 표정은 점차 변한다.

어떻게 시장을 괴롭혀야 할까 고민 중이다.

성윤은 조용히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강정기 시장......’

악취가 나는 것 같다.

앞에서는 서민 코스프레를 하며 시장에서 국밥을 처먹고 뒤에서는 돈을 씹어 먹고.

시장이란 놈이 시민에게 돌아갈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놓고 땅을 팔고 건물이 올라가면 자기 업적이라고 침이 튀게 자랑할 거다.

“거기 얼마쯤 할까요?”

성윤의 말에 시의원들의 젓가락질이 멎었다.

시장을 괴롭힐 생각만 했지 본질을 놓쳤다.

의장이 고개를 비스듬히 세운다.

“...한 1조?”

식사자리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서안시 1년 세입 예산이 약 2조다.

그런데, 땅 판 돈이 1조.

그 돈의 전부는 힘들지만 일부는... 조금만 머리를 쓰면 시민들 모르게 물거품처럼 만들어 주머니에 쑤셔 박을 수 있다.

성윤은 눈동자만 움직여 의원들의 표정을 살폈다.

모두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다.

이들도 강정기 시장의 의도를 예상한 거다.

이럴 때 쐐기를 박아줘야 한다.

부드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시장은 땅 판 돈을 어디에 쓸까요?”

< 참관.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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