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신. - (2) >
***
성윤은 찻잔을 쥐며 앞을 바라본다.
인상 좋은 사십 대 남자가 앉아 있다.
제종그룹 대관담당자다.
찻잔을 마시며 입을 축이던 그가 힐끗 방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도대체 몇 명이 온 거야?’
아직 비주류라 생각했는데 냄새를 맡은 기업은 다 달려든 것 같았다.
빨리 손을 잡지 않으면 하늘 위로 훨훨 나아갈 것 같은 조바심이 들었다.
‘젠장, 오늘은 이백만 원만 가져왔는데......’
그가 찻잔을 내려두며 성윤을 향했다.
“항상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희 제종에서는 의원님을 전폭적으로 후원하고 싶습니다.”
“저를요?”
성윤은 대수롭지 않게 반응한다.
대관 담당자는 마른 입술을 핥았다.
“개인적으로는 이성윤 의원님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불법 체류자 등 민감한 문제도 거침이 없으시고 그래서 훗날 대통령까지 오르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하하하하.”
어떻게든 친근하게 보이기 위해 입에 바른 소리를 하더니 어색한 웃음을 터뜨린다.
정우는 사무실에 앉아 성윤의 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걸려 있다.
그동안 대관 담당자가 안 찾아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번호표를 뽑아줘야 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온 것은 처음이다.
‘드디어 시작인가?’
권력은 지독한 냄새가 흐르는 똥이다.
당연히 똥파리가 꼬인다.
기업 똥파리, 깡패 똥파리, 졸부 똥파리 등등등...
그중 냄새를 가장 잘 찾는 곳을 꼽으라면 당연 기업이다.
권력자와 공생하지 않는 기업은 손에 꼽는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기업은 언제나 고민한다.
새로운 권력자는 누가 될지, 어떤 놈이 권력을 얻어 훼방을 놓을지......
권력은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다르다.
하루라도 살펴보지 않으면 정치판을 읽을 수 없다.
그래서 기업은 많은 인재를 투입해 계산기를 두들기고 시나리오를 적어 내려간다.
그렇게 정치인을 선택해 돈을 준다.
그럼 이권을 얻을 수 있다.
물론 기업이 얻는 이권은 국민의 세금이다.
지금의 성윤은 이권을 좌지우지할 권력자는 아니다.
하지만 기업은 기꺼이 투자하려 한다.
가까운 미래에 권력자가 될 것이란 계산을 끝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성윤과 인연 맺기를 원한다.
그리고 성윤이 권력자가 되었을 때 슬쩍 입을 열 계획이다.
“부탁이 있는데......”
예상하건데 씨도 안 먹힐 거다.
상대는 성윤이다.
후원금만 쏙 빼먹고 말 게 분명하다. 여기까지 생각한 정우는 슬쩍 웃었다.
기업이 접근했다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
그들은 이득이 있다면 골수까지 뽑아 먹으려는 집단이다.
성윤에게 그만큼의 이득이 보인다는 거다.
정우의 시선이 소파에 앉아 대기하는 대관 담당자들에게 향했다.
‘하지만 아직 모자라.’
성윤은 더 큰 것을 원하고 있었다.
모시는 국회의원이 거대한 것을 원하는데 보좌관이 그 그릇을 따라가지 못하면 그만둬야 한다.
여기서 만족할 수 없다.
‘우리 의원님을 만나려면 대관 담당자가 아니라 회장이 와야지.’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올 것이다.
엉덩이 무거운 회장이란 사람들이 손바닥을 비비며 굽실대는 순간이......
성윤을 그런 자리에 올려주고 싶었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대관담당자가 모두 돌아갔다.
성윤이 뒷목을 꾹꾹 주무르며 방에서 나온다.
“고생하셨어요. 오늘 들어온 후원금만 4천만 원이 넘어요.”
“영수증 처리했지?”
“당연하죠.”
성윤은 피곤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았다.
잠시 얼굴을 비비며 피곤을 날려버린 후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부재중 통화는 물론이고 문자도 수십 통이 보인다.
서안시 시의원과 대의원들의 축하 메시지.
그리고 주진만, 주진만, 주진만....
“원내대표님? 왜 이렇게 많이 전화하셨지?”
“아, 아까 사무실로 전화 왔었어요.”
“뭐라고 하셔?”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미국 대통령 시켜 달래요. 시켜만 주면 열심히 하겠다고...”
뜬금없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성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국 대통령?”
“몰라요. 그리고 당대표님이 전화를 바꾸더니 자기는 아랍 왕자를 시켜달라고 하셨어요.”
“아랍?”
“네, 그러더니 아랍 왕자가 되려면 아버지가 아랍 왕이어야 한다고. 자기가 아버지를 바꾸려 했다고 패륜아라고 하셨어.”
“무슨 소리야?”
“몰라요. 의원님이 진정한 킹메이커래요.”
뭐,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겠지만 칭찬인 것 같다.
전화해볼까 했지만 말았다.
이미 만취했을 시간이다.
성윤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퇴근하자. 전당대회 고생했어.”
“고생은 의원님이 했죠.”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또 바빠질 거야.”
정우가 눈을 깜빡이며 시계를 확인한다.
11시 40분이다.
“오늘 남은 20분을 푹 쉬고 내일부터 바빠진다고요?”
성윤은 피식 웃으며 정우의 등을 토닥였다.
“응.”
***
집에 돌아온 성윤은 창가에 몸을 기대고 오렌지 주스를 입에 댔다. 방금 대관 담당자들을 만나며 많은 속마음을 들었다.
돈과 권력이 지저분하게 얽혀 있는 마음.
‘그 속에 나도 들어가겠네.’
똥 밭에 굴러다니는 놈과 싸우려면 그 안에 들어가야 한다.
멱살 잡고 뒹굴다 보면 같이 똥이 묻을 거다.
밖으로 나와 샤워를 해도 똥 밭에 구른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서안 시장이?’
서안 시장이 성종 건설에 공유지를 매각하려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흠......’
지금 서안시는 성종 쇼핑 본사 사옥을 짓기 위해 한창 공사 중이다.
‘서안시를 성종에서 먹으려 하는 건가?’
그럴 수 있다.
각 지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곳을 차지한 기업이 존재한다.
백화점에서부터 쇼핑몰 그리고 아파트까지 해당 기업의 브랜드로 도배되어 있다.
성윤의 머릿속에 서안시의 지도가 그려졌다.
몇 곳의 공유지가 떠오른다.
유력한 곳은 전철역의 뒤에 있는 공터다.
공유지를 기업에 파는 건 법적인 문제가 없다.
하지만 전철역은 국민의 혈세로 만들어졌다.
전철역이 들어오며 공유지의 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그런데 그 혜택은 정부와 기업만이 누린다.
세금을 낸 국민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기업이 세운 쇼핑몰에서 돈을 쓰는 거다.
여기까지는 참고 참아 이해할 수 있다.
쇼핑몰이 들어오면 편리하기도 하고 집값이 오른다며 좋아하는 사람도 많으니까.
문제는......
‘리베이트.’
얼마나 많은 돈이 시장의 주머니에 쑤셔 박힐지 예상하기도 힘들었다.
딩동.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가수 지망생...아니, 이제 가수가 된 전소희가 서 있다.
“밖에서 창문 보니까 불이 켜져 있어서요.”
성윤은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짙은 화장을 하고 있다.
“이제 퇴근하세요?”
“네. 라디오가 막 끝났거든요.”
잠시 우물쭈물하던 그녀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킨다.
“평상에서 맥주 어때요?”
“좋아요.”
성윤은 냉장고에서 맥주 두 캔을 꺼내 옥상으로 올라갔다.
전소희는 평상에 앉아 하늘을 보고 있다.
성윤이 옆에 앉아 캔 맥주를 건넸다.
그런데 그녀가 캔맥주를 만지작대며 망설이고 있다.
할 말이 있는데 못하는 얼굴.
“말씀하세요.”
“매니저끼리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데요. 오늘 국회의원들 술자리가 많았나 봐요.” 정치인의 술자리에 연예계 연습생을 꽂는 놈들이 있다.
“이 아이를 드라마에 넣어 줄 수 없을까요?”
이따위 부탁을 하려고......
하지만 효과는 좋다.
힘 있는 정치인은 PD에게 전화하지 않는다.
방송사 사장에게 다이렉트로 연락한다.
그들에게 방송 출연은 일도 아니다.
“그래서요?”
“제가 의원님을 지지해서 정치면을 많이 보거든요. 그래서 의원님과 함께 하는 다른 의원의 이름도 좀 알고 있는데, 주진만 원내대표 계파 내부에서 배신이 일어날 것 같다고 했어요.”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진만 원내대표의 계파는 모래성이다.
게다가 지금은 공신을 나누는 시간이다.
처음부터 함께했던 비주류는 불만이 있어도 참을 거다.
그들에게는 정이 있으니까.
하지만 중간에 들어온 김대성 계파는 다르다.
그들은 언제든 배신을 때릴 준비를 하고 있다.
“배신... 이름까지는 모르죠?”
전소희가 눈동자를 움직인다.
“차...차...뭐라고 했는데......”
“차진중 의원?”
전소희가 손뼉을 쳤다.
“맞아요! 차진중!”
차진중, 김대성 의원의 계파 중 한 명이다.
성윤이 비리로 협박하며 주무르는 여덟 명 중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
다음 날.
대한당 당사는 새로운 당대표에게 얼굴을 비추려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로비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의원들이 수군수군 거린다.
“이성윤이 오대민과 박상혜를 끌고 온 게 진짜야?”
“에이, 원내대표가 이성윤 키우려 하잖아. 영양제 좀 놔줬겠지. 오대민이나 박상혜하고 겸상할 급은 아니지.”
구겨진 서류로 부채질을 하던 의원이 낄낄 웃는다.
“그게 구라라면 굴뚝에서 연기 날 리가 없잖아? 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100% 구라지. 이성윤이 진짜 그렇게 난 놈이면 괜찮은 당직이나 짭짤한 상임위라도 하겠지. 그런데, 아무 소식도 없잖아?”
“하긴......”
대한당의 국회의원이 백 명이 넘는다.
그중엔 성윤과 대화 한 번 나눠보지 않은 의원도 상당수다.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그들은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성윤의 활약을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그들의 말은 계속된다.
“씨발, 부럽네. 누구는 라인 잘 타서 밥상에 숟가락도 얹어주는데, 난 주변에 아무도 없네.”
“자네도 비주류 의원 찾아서 손바닥 비벼봐. 혹시 알아? 비주류 계파에서 또 당대표나 원내대표가 나올지.”
“그건 로또지. 흐흐흐.”
성윤은 로비의 구석에 앉아 있었다.
‘이거 참...’
처음에는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려 했다.
하지만 저들의 떠드는 소리에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지금 나서서 ‘안녕하세요?’ 하는 것도 민망했다.
귓가가 간질거리지만 커피숍에서 옆 테이블 아주머니들의 잡담을 듣는 기분으로 앉아 있다.
정우의 입꼬리가 씰룩 씰룩거린다.
그가 성윤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의원님이 잘나기는 하나 봐요. 의원들이 모이기만 하면 의원님 이야기를 하네요. 원래, 잘 나가면 손가락질 받는 거잖아요.”
“좋은 거지?”
“그럼요.”
정우가 기분 좋게 말한다.
“손가락질 안 받고 잘 나갈 수는 없냐?”
“없죠. 인간은 시기의 동물인데.”
그때, 오대민 의원이 등장했다.
수다를 떨던 의원들이 일어나 고개를 숙인다.
“오셨습니까?”
오대민 의원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다.
일반 의원들과는 말도 잘 섞지 않는다.
그는 다른 의원들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구석에 앉은 성윤을 본다.
“거기서 뭐 해?”
의원들의 고개가 비틀어졌다.
그들의 눈에 성윤이 보였다.
‘젠장!’
의원들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성윤이 난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대표님 뵈려고 기다리는 중이에요.”
오대민 의원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왜 대기하고 있어? 이리 와. 나도 올라갈 참이니까.”
성윤은 다른 의원들의 따끔따끔한 시선을 받으며 오대민 의원과 계단을 올랐다.
의원들이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본다.
“...우리가 하는 말 다 들었겠지?”
그들은 성윤의 뒷말을 하며 요리조리 씹고 뜯고 맛봤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주진만 원내대표 계파의 실세는 성윤이라는 것을......
“들어와요.”
채정학 대표가 성윤과 오대민 의원을 반갑게 맞았다.
간밤에 많은 술을 마셨는지 참 피곤해 보인다.
테이블 아래 휴지통에는 다 마신 숙취해소 음료가 몇 병이나 들어 있다.
성윤이 앉으며 농담을 내뱉었다.
“아랍 왕자가 되고......”
채정학 대표가 손사래를 친다.
“취했어. 취해서 기억나지 않으니까 그만해줘.”
정말 난처해 보였다.
그래서 ‘패륜’이라는 말까지 하려다 참았다.
채정학 대표와 오대민 의원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공천권의 절반에 대한 확약이다.
성윤은 조용히 앉아 찻잔을 입에 댔다.
그리고 채정학 대표가 말한다. “당직에 공신을 올릴 생각이 없어요. 실력 있는 사람으로 채우고 싶습니다. 지금 대한당의 위기를 넘어가려면 꼼수보다는 실력이니까요. 계파에 상관없이 사람을 등용하고 싶은데, 추천할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오대민 의원은 실력만 보는 사람.
그게 과해서 욕을 먹는다.
그래서 물었는데 오대민 의원의 표정은 심각하다.
“대표님의 의중이 뭔지는 알겠어요. 적절한 자리를 주고 계파 갈등을 없애자는 거겠죠. 그런데, 오해를 살 수도 있어요.”
“오해요?”
오대민 의원이 시선을 틀어 성윤을 바라봤다.
“자네 생각을 들어보고 싶은데.”
오대민 의원은 성윤을 시험하려 하고 있다.
자기와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멍석을 깔아 주면 해야 한다.
성윤이 찻잔을 내려두며 입을 열었다.
“당직자는 대표님과 가장 밀접한 사람이잖아요. 일이 있으면 대표님께 빈번하게 연락하겠죠. 자연스레 인맥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어쩌면 각 계파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게 되겠죠. 그걸 원하는 계파의 수장은 없을 테고요.”
채정학 대표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골치 아프네.”
오대민 의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까지는 나와 생각이 같고. 해결 방법은?”
성윤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권력을 잡으면 해야 할 게 두 가지라고 배웠어요. 하나는 공신을 가리는 것. 또 하나는 숙청.”
숙청이라는 말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채정학 대표는 깍지 낀 손가락을 툭툭 흔든다.
오대민 의원은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성윤을 보고 있다.
“계속해봐.”
“내부의 적부터 정리해야 할 것 같아요. 한 배에 올려 침몰시켰으면 해요.”
“내부의 적? 누구?”
“차진중 의원과 주변 사람들이요.”
성윤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오대민 의원이 묻는다.
“한 배에 태울 수 있겠나?”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안시 시장이 공유지를 매각하려 한다는 첩보를 들었어요.”
< 공신. -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