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87화 (87/300)

< 전당대회. - (4) >

카메라가 찍는 중이다.

하지만 얼마나 당황했는지 표정 관리를 못 한다.

눈동자마저 흔들렸다.

박상혜 의원은 작게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몰랐어요. 아쉽네요. 오대민 의원님은 꽤 괜찮은 분이라 배울 점도 많았거든요. 하지만 채정학 의원님 역시 훌륭한 분이니까 앞으로 선의의 경쟁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녀의 말은 바로 기사가 되어 세상에 뿌려졌다.

그리고 기자들이 떠났다.

박상혜 의원은 분노를 참는 눈빛으로 성윤을 노려봤다.

머리끝까지 짜증이 치솟은 것 같다.

“구경하러 왔니?”

말이 반 토막이 됐다.

그럼, 똑같이 해줘야 한다.

성윤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입을 연다.

“겸사, 겸사.”

“오대민 의원이 채정학 의원을 지지한다고 해서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이 게임은 내가 이기는 게임이야. 헛수고하지 말고 발 빼.”

“그건 지켜봐야지.”

성윤은 그녀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

그녀가 살벌한 눈빛으로 하지만 차분하게 입을 연다.

“왜 이러는 거지? 너도 세상을 바꾸고 싶잖아.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세상, 착한 사람들이 잘살 수 있는 세상... 만들고 싶잖아? 지금 후보 중에 그런 세상을 목표로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성윤은 어이없다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말없이 몸을 돌렸다.

밖으로 나가는 성윤의 뒷모습에 박상혜의 눈빛이 꽂혀 있다.

따끔따끔할 정도다.

성윤이 떠나고 박상혜는 큰 숨을 내뱉었다.

“물.”

보좌관이 재빨리 다가와 물을 건넸다.

“몇 분 남았지?”

“이제 나가셔야 합니다.”

“3분만...사회자한테 3분만 기다려 달라고 해.”

“알겠습니다.”

보좌관이 대기실을 떠났다.

박상혜는 허겁지겁 핸드백을 뒤진다.

작은 휴대폰이 손에 쥐어졌다.

‘손을 잡았다고?’

핸드폰 화면에 기사가 보였다.

오대민 의원과 채정학 의원이 활짝 웃으며 손을 잡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며 박상혜는 아랫입술을 꽉 깨문다.

피가 나올 것 같다.

‘대체... 왜 지금!’

채정학 의원은 성격 좋을 것 같은 수더분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새로운 인물을 원하는 분위기와 그 외모가 합쳐지면 새로운 바람을 만들어 낼지 모른다.

‘서용우 하나로도 골치가 아픈데......’

어지럽게 흔들리던 그녀의 눈동자가 테이블에 놓인 신문에서 멎었다.

식사를 시킬 때 그릇을 보호하기 위해 가져온 신문이다. 타이틀이 보였다.

-‘변태 행각’ 백형욱 의원 결국 실형.

‘백형욱?’

그때, 문이 열리고 보좌관이 들어왔다.

박상혜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오늘이라고 했지?”

“네?”

“서용우......”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인다.

박상혜가 거울로 걸어가 섰다.

거울에는 다시 단아한 미녀가 비친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서용우나 채정학이 당대표가 되어서는 대한민국을 바꿀 수 없어. 한 번만 더 오물을 만져야겠어.”

“어떻게 할까요?”

“여자를 구해.”

“여자요?”

“대한당 남자 의원들, 성욕에 미친 사람들로 알려져 있잖아. 그 이미지 한번 사용하자. 이런 일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거야.”

거울에 비친 단아한 미녀는 머리를 만진다.

성윤은 여의도로 향하는 길이다.

정우가 입을 열었다.

“의원님도 참 변태 같아요. 꼭 찾아가서 얼굴 뒤집어지는 꼴을 구경하는 걸 보면...”

낄낄 대던 정우가 다시 묻는다.

“그런데, 박상혜 의원도 괜찮지 않아요? 지금이야 전당대회 때문에 갈려 있지만 이후에는 친하게 지내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안 괜찮아.”

“왜요?”

“위선이야.”

성윤은 딱 잘라 말했다.

그리고 손목을 틀어 시간을 확인한다.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지?”

“지금 김포 당협 위원장 만나서 차 마실 거고요. 여섯 시에는 일산 넘어가서 식사하셔야 해요.”

성윤은 시계만 바라봤다.

“6시... 6시...”

“왜요?”

“식사가 끝나면 9시는 되겠지?”

“그렇겠죠?”

“그 시간에 올림픽대로 안 막히겠지?”

“사고만 없다면 안 막힐걸요?”

성윤은 박상혜 의원의 속마음을 들었다.

그녀는 서용우 전 총리를 위기에 빠뜨릴 계획을 짜고 있다.

성윤은 입술을 쓸어 만졌다.

서용우 전 총리는 현재 1위의 지지율을 달리고 있다.

그가 없어진다면 보다 쉬운 레이스가 될 거다.

채정학 의원에게도 이득이다.

오대민 의원의 지지 선언이 일어난 후 당원의 민심이 꿈틀대고 있다.

이럴 때 박상혜 의원의 계략이 성공해 서용우 전 총리의 사건이 터지면......

‘당원은 지금보다 더 새로운 사람을 원하게 될 거야. 올드보이는 권력에 취해 썩었다고 생각할 테니까.’

여기까지 생각하던 성윤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무슨 생각하는 거야? 이득만 따지면 장사꾼이지.’

장사하려면 이득을 얻어야 한다.

하지만 정치를 하려면 사람을 얻어야 한다.

“정우야. 적당히 핑계 좀 만들어 봐. 8시에는 일어날 수 있게.”

***

그날 밤.

서용우 전 총리는 강남의 한정식집에 있었다.

자신의 지지자 열 명과 앉아 술을 마시는 중이다.

모인 지지자는 모두 국회의원이다.

배가 올챙이처럼 볼록 나온 의원이 말했다.

“이제 다 왔어요. 조금만 뛰면 우리가 이깁니다.”

메부리 코를 가진 의원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낮에 오대민과 채정학이 합친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바로 연구소에 전화해서 지지율 추이를 알아봤더니 박상혜와 치고받는 형국이더라고요. 총리님은 여유롭게 당선될 것 같습니다.”

서용우 전 총리의 잔에 술이 채워졌다.

그가 찰랑거리는 술을 보며 입을 연다.

“오늘 낮에 청와대를 다녀왔어요. 대통령님께서 집무실 의자를 자랑하시더라고요. 이번에 새로 샀는데 앞으로 십 년은 쓸 수 있을 것 같다면서요. 그리고 뭐라고 하셨는지 아십니까?”

모두들 눈을 반짝이며 그의 입술에 주목했다.

서용우 전 총리가 슬며시 웃으며 말한다.

“그 의자... 제게 주신답니다.”

대권에 관한 이야기다.

약속한 것처럼 모두 마른 침을 삼켰다.

분위기마저 뜨겁게 달궈진다.

이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 역시 권력자다.

대권이란 말에 가슴이 설레지 않으면 이상한 거다.

서용우 전 총리가 잔을 들며 말을 이었다.

“당대표 자리는 관심 없어요. 잠깐 앉았다 가는 곳입니다. 목표는 한 곳이에요. 대통령님의 의지를 이어받는 것! 그래서 여기 계신 열 분께 미안한 말을 해야겠어요. 앞으로도 고생해 주시기 바랍니다. 힘든 시간이 될 겁니다. 손가락질도 받고 다칠 수도 있겠죠. 누구

하나는 치욕을 받으며 구치소에 갈지도 몰라요.”

대권으로 향하는 길은 험난하다.

몸에 묻은 먼지 하나까지 치부가 된다.

멀쩡한 팔을 뜯어내야 할 때도 있다.

서용우 전 총리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끝은 아름다울 겁니다.”

사람들이 마른 침을 삼켰다.

저마다의 머릿속엔 아름다울 미래가 상상되기 시작했다.

서용우 전 총리가 그들의 상상을 구체적으로 그려준다.

이것 역시 리더의 역할이다.

그가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세차게 두드리며 말한다.

“그때가 되면 자리는 알아서 고르세요. 정 의원은 비서실장! 조 의원은 장관, 강 의원은 총리, 유 의원은 뭐가 좋겠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유 의원에게 쏠렸다.

유 의원이 격의 없이 웃는다.

“전 조용히 있고 싶습니다. 다음 총선에 낙마하면 적당한 진흥원 원장 자리 하나만 주십시오.”

올챙이배를 한 국회의원이 그를 흘겨봤다.

“이런 놈이 제일 무서운 법입니다. 욕심 없다고 하다가 마지막에 금덩이를 챙겨 달라 할 놈이에요. 으핫핫핫!”

모두 크게 웃는다.

그렇게 즐거운 술자리가 이어졌다. 전당대회는 고행이다.

하지만 2년 후 대권에 성공할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면 견딜 수 있었다.

그 시각.

박상혜 의원은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사무실은 묵직한 공기가 채우고 있다.

그녀가 손목을 틀어 시간을 확인한다.

“지금쯤이면 술자리가 무르익었겠네?”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인다.

“네, 세 시간이 지났습니다. 지금 횟집에서 2차를 마시는 중이랍니다.”

“술은?”

“계속 먹이고 있답니다. 서용우 전 총리가 술을 거부하는 성격도 아니고요.”

박상혜 의원이 책상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다가섰다.

그녀가 블라인드를 내린다.

서울의 밤이 그녀의 눈동자에 들어왔다.

“서용우는 술만 마시면 착한 척을 하지. 그래서 운전기사를 잘 챙겨. 시간이 늦었으니까 기다리지 말고 집에 가라고 할 거야. 운전기사도 거부하지 않아. 오랜 시간 그런 관계였으니까.”

보좌관이 그녀의 뒤에 섰다.

“서용우 전 총리의 운전기사가 방금 떠났다고 합니다.”

박상혜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리 운전기사와 여자는?”

“대기하고 있습니다.”

“급하게 구했을 텐데......”

“우리와 연관성은 전혀 없습니다. 걱정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일이 끝나면 더 챙겨줘. 그 대리 운전기사도 여자도 우리 국민이야.”

“네.”

보좌관은 박상혜 의원을 향해 고개를 숙인 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박상혜 의원은 창밖을 바라본다.

“주는 대로 술을 마시며 남성적인 척. 운전기사와 보좌진을 집에 보내며 아랫사람을 생각하는 척. 그 위선이 오늘 서용우를 끝낼 거야.”

어두운 창으로 그녀의 모습이 비친다.

그녀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조용히 끝났으면 좋겠는데......”

***

“잘 모셔다드려. 성북동이야.”

올챙이배 의원이 운전기사의 품에 만원을 집어넣었다.

“이건 팁.”

대리 운전기사는 넙죽 허리를 굽힌다.

“감사합니다!”

다른 의원은 뒷좌석에 앉은 서용우 전 총리의 팔을 붙잡은 채 혀 꼬부라진 목소리를 내뱉고 있다.

“사장님! 제가 모셔다드릴게요!”

전 총리의 흐트러진 모습을 일반인에게 보일 수 없었다.

그래서 사장이라 부른다.

서용우 전 총리는 손을 휘저었다.

“유치원생도 아니고 집에 혼자 못 갈까? 됐으니까 집에 가서 쉬어.”

의원은 못 이긴 척 문을 닫는다. 운전석에 앉은 대리 운전기사가 안전벨트를 착용하며 힐끗 뒷좌석을 확인했다.

자동차의 뒷좌석에는 서용우 전 총리가 눈을 감고 있다.

술을 많이 마셨는지 숨소리가 거칠다.

곧 코 고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천하 호텔로 가면 될까요?”

서용우 전 총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리 운전기사는 블랙박스의 메모리를 뽑아낸다.

그리고 자동차는 천천히 출발했다.

그 뒤를 성윤과 정우가 탄 차가 쫓고 있었다.

“어? 강변북로를 타는데요?”

정우의 말에 성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지?’

성윤은 박상혜의 속마음을 들었다.

그녀는 서용우 전 총리가 대리기사에게 행패 부리는 사건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리기사가 먼저 시비를 걸고 술에 취한 서용우 총리가 ‘내가 누군 줄 알아!’라며 지랄한다는 치졸한 시나리오.

서용우 전 총리가 억울함을 토해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거다.

대리 운전기사가 약자니까.

세상은 정치인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대리기사는 시비를 걸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

순식간에 강변북로에 올라탔다.

갑질 사건은 사람이 많은 곳에서 해야 파괴력이 있는 법인데...

‘박상혜는 중간에 멈추는 성격이 아니야.’

성윤은 꿈을 통해 그녀의 성격과 미래를 알고 있다.

그녀는 세상을 자기 유리한 대로 해석하는 위선자다.

권력을 포기하지 않는 악녀이기도 하다.

‘계획이 바뀌었나?’

성윤이 그녀의 마음을 들었을 때는 그녀가 채정학 의원과 오대민 의원의 일을 몰랐을 때다.

일을 듣고 나서 계획을 틀었을 가능성이 크다.

“가까이 붙여.”

성윤의 말에 정우는 핸들을 확 튼다.

뒤를 쫓던 성윤의 차가 서용우 전 총리가 탄 차의 옆에 섰다.

그리고 나란히 달리기 시작했다.

성윤은 속마음을 듣는다.

특정인이 아닌 주변 전체의 속마음.

갖가지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온다.

-대리 셔틀을 어디서 잡아야 하나.

-김 부장 그 새끼...

-술값이 얼마가 나온 거야?

늦은 시각 강변 북로는 온통 술에 취한 취객과 대리 운전기사 그리고 택시 운전사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그중에 하나를 가려내야 한다.

그때, 한목소리가 훅! 하고 들려왔다.

-천하 호텔에 가면 여자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성윤의 시선이 옆으로 틀어졌다.

서용우 전 총리가 탄 차가 깜빡이를 켠다.

저 방향으로 빠져나가면 천하 호텔이 있다.

‘호텔, 여자, 대한당.......’ 성윤의 머릿속에 박상혜 의원이 세울 만한 계략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대한당은 박대철에서부터 백형욱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성 스캔들로 휘청휘청했다.

그런데, 또 스캔들이 터지면 여성 표는 모두 박상혜 의원에게 몰릴 거다.

서용우 전 총리가 쓰러져도 채정학 의원은 이길 수 없다.

***

“천하 호텔 주차장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지하 주차장에는 여자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박상혜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한 일... 난 평생 기억할 거야. 내가 지은 죄, 모두 국민을 위해 살고 희생하며 씻어낼 거야. 이 자리는 그러라고 서 있는 거니까.”

“삼십 분 뒤에 호텔 CCTV 확보해서 기자들 부르겠습니다.”

“서용우 전 총리의 아내, 몇 번 만나봤어. 여린 분이야. 이번 충격 이기기 힘들 거야. 더 다치지 않게 배려해 드려.”

“알겠습니다.”

보좌관은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지이이잉. 진동이 울린다.

발신번호는 서용우 전 총리의 오늘 하루를 관찰했던 비서관이다.

“서용우와 여자가 접촉했나?”

-그...그게.

“왜?”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보좌관의 얼굴이 콱 일그러졌다.

그가 다급히 박상혜 의원을 보며 말한다.

“의원님... 이, 이성윤이 나타났답니다.”

박상혜 의원은 대답도 하지 않는다.

눈동자가 위쪽 위로 올라갔다 내려올 뿐이다.

아직 상황파악이 안 되고 있었다.

그녀가 의문 가득한 눈동자를 보이며 묻는다.

“이성윤이 거길 왜 나타나?”

지이이잉.

이번엔 박상혜 의원의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다.

발신번호는 이성윤이다.

멍하니 휴대폰을 보던 그녀가 통화 버튼을 꾹 누른다.

“네, 박상혜입니다.”

-이성윤입니다. 이번 게임 승자는 제가 될 것 같은데요.

박상혜 의원의 얼굴은 혐오스러운 벌레가 손등을 타고 오르는 것처럼 창백해졌다.

< 전당대회. -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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