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85화 (85/300)

< 전당대회. - (2) >

박상혜 의원이 다시 수화기를 들어 귀에 댄다.

“박상혜 의원이에요. 뵙고 싶은데요. 네, 그럼 그쪽으로 가죠.”

수화기를 내려둔 그녀가 보좌관을 향했다.

“택시 좀 준비해줘.”

“차가 아니라 택시요? 어디를 가시려고...”

보좌관은 그녀의 목적지가 궁금한 눈치다.

그녀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한다.

“미안, 스파이가 있을지 모른다며. 우 보좌관이 아닐 거란 것은 알아. 하지만 조심하고 싶어.”

박상혜 의원이 흰색 재킷을 걸치며 말을 잇는다.

“아나운서로 있으며 알리지 못했던 게 많아. 압박이 들어오면 입을 다물어야 했으니까. 눈을 감아야 했지. 그래서 그런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정치에 입문했고 전 당대표의 옆에 있으며 정치를 배웠어. 그리고 기회가 다가왔어. 놓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이해해줘.”

“알겠습니다. 바로 택시 부르겠습니다.”

보좌관이 고개를 숙였다.

그의 시선에 박상혜 의원의 책상이 들어왔다.

박살 난 그녀의 휴대폰이 보인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해해줘서 고마워.”

잠시 후, 성종 호텔 앞.

택시에서 내린 박상혜 의원이 한식당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VIP실에 조진성 전 지사가 앉아 있다.

박상혜 의원과 조진성 전 지사가 마주 본다.

가벼운 인사만 흘렀을 뿐 대화는 없다.

음식이 테이블에 놓였다.

조진성 전 지사가 젓가락을 들며 입을 열었다.

“당대표 지지율, 난 2위로 올라섰고 박 의원은 4위로 내려갔고. 어쩐 일로 보자고 했을까요?”

박상혜 의원이 살짝 웃는다.

“그런 말이 있죠?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선거에 1위 말고 나머지가 의미 있나요?”

출마자가 속속 등장하며 당대표 지지율은 하루가 다르게 요동치는 중이다.

서용우 전 총리의 지지율은 10%가량 크게 올라 27.8%가 됐다.

조진성 전 지사의 지지율도 마찬가지다. 약 8%가 상승하며 18.6%를 기록했다.

그리고 박상혜 의원의 지지율은 14.2%.

고작 1% 상승했다.

박상혜 의원이 계속 말한다.

“산수 한 번 해볼까 하는데요. 제 지지율이 14.2%. 지사님은 18.6%. 합치면 32.8%가 되네요.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기억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진성 의원의 눈이 반짝였다.

“후보를 포기하고 나를 지지하겠다는 건가요?”

“아뇨, 그 반대요. 지사님이 저를 지지해주셨으면 해요.”

조진성 전 지사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박 의원, 약한 쪽이 강한 쪽에 붙는 거예요. 그게 선거 논리죠.”

“논리로 따져서 이기는 선거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리고 지사님께 당대표는 통과 점이잖아요. 노리는 것은 2년 후 대선. 맞죠?”

젓가락을 움직이던 조진성 전 지사의 행동이 멎었다.

그가 눈동자만 움직여 박상혜 의원을 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죠?”

“우리는 같은 배를 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목적지가 다르니까요. 전 다음 대선은 관심 없어요. 다음, 다음이면 모를까... 제가 아직 어리잖아요. 그래서 제가 당대표가 되면 대선 레이스에 세울 사람으로......”

박상혜 의원이 술병을 들어 조진성 전 지사의 잔을 채웠다.

“드세요.”

조진성 전 지사의 시선이 술잔으로 향한다.

1위와 지지율 차는 9%.

오랜 시간 현실 정치를 떠나 있었기에 조진성 전 지사의 계파는 두텁지 않다.

하지만 서용우 전 총리는 대통령이 밀어준다.

대한당에는 대통령의 골수 지지자가 존재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는 벌어질 거다.

지금 상태로 전당대회에서 이기기 힘들다.

박상혜 의원이 계속 말했다.

“서용우 전 총리는 대통령의 오른팔이에요. 오른팔이 당대표가 되면 우리는 대통령의 나팔수가 되겠죠. 전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아요.”

“......”

“진정한 여당은 대통령이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곳은 아니잖아요.”

“......”

“그리고 서용우 전 총리가 당대표가 되면 모든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대선 레이스에 박차를 가할 거예요. 그럼, 지사님은 대권에 도전하기 어려워지죠.”

조진성 전 지사는 마른 입술을 핥았다.

박상혜가 당대표가 되고 조진성 전 지사가 대선 주자가 되는 것.

서로의 이득이 맞아떨어진다.

그가 손을 뻗어 술잔을 만지작대며 입을 열었다.

“화장실 들어올 때와 나갈 때가 다른 법이에요. 특히 이 바닥이 더 그렇죠. 그래서 사람을 믿을 수는 없고......”

박상혜 의원이 활짝 웃었다.

“그럼요. 사람 말을 어떻게 믿어요.”

그녀가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조진성 전 지사의 앞에 뒀다.

“이 서류면 믿을 수 있을까요?”

조진성 전 지사는 서류를 펼쳤다.

한 장, 한 장 넘기던 손이 빨라졌다.

박상혜 의원과 함께 하는 사람들의 비리가 담겨 있다.

그녀가 말한다.

“그 사람들이 무너지면 제힘은 반 토막 나요. 그게 싫어서라도 반드시 약속을 지키겠죠.”

조진성 전 지사가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뭡니까?”

박상혜 의원은 당선을 위해 자신의 사람들을 거래의 도구로 썼다.

그 행동에 망설임은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답한다.

“이유는 하나죠.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거물이 나오지 않은 전당대회잖아요. 이번에 해야겠어요. 앞으로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을까요.”

조진성 전 지사는 술잔을 콱 쥐더니 단번에 술을 털어 마셨다.

그리고 ‘탁’ 잔을 내려두며 입을 연다.

“믿죠. 같이 가 봅시다.”

“감사해요.”

서로의 이득에 따른 결과였지만 2위가 4위를 지지하는 것은 파격이다.

바람의 방향이 바뀔 거다.

세상은 어둑해지고 있었다.

호텔에서 나온 그녀는 다시 택시에 올랐다.

그리고 곧바로 박무혁 의원의 사무실을 찾았다. 박무혁 의원은 전 당대표가 있을 때 사무총장을 맡고 있었다.

전 당대표의 부탁을 곧잘 들어주기도 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것.

박상혜 의원은 전 당대표의 이름을 팔아 박무혁 의원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다.

“무슨 일이지?”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찾아왔어요.”

“말해.”

“우리 계파 중에 스파이가 있는 것 같아요.”

박무혁 의원은 흥미로운 눈으로 박상혜 의원을 바라본다.

“계속해봐.”

“그러니까 지금 당대표에 입후보한 사람이......”

박무혁 의원이 손을 저었다.

“본론만.”

박상혜 의원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이성윤 의원이 우리 계파의 일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불만을 가진 사람, 중심에서 밀려난 사람을 찾아 영입하고 있어요. 스파이가 없이는 어려운 일이에요.”

“증거는?”

“그러니까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것이......”

박상혜 의원은 입을 다물었다.

박무혁 의원의 표정은 처음과 같다.

하지만 그 눈빛은 그녀를 한심하게 보고 있다.

“그래서?”

“도와주셨으면 해요. 이성윤의 뒤를 캐서 비리를 찾아내고 싶어요. 아니, 만들어서라도......”

박무혁 의원은 이번에도 그녀의 말을 중간에 자른다.

“비리 정도야 자네가 직접 찾아도 되잖아? 아니면, 이성윤의 비리는 핑계고 자네 손을 잡아 달라는 것인가?”

박무혁 의원의 눈빛에 그녀는 속옷조차 발가벗겨지는 느낌이었다.

모든 걸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녀는 박무혁 의원을 혓바닥으로 움직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고개를 끄덕인다.

“네, 도와주셨으면 해요.”

“미안, 난 전당대회에 관심 없어.”

박상혜 의원이 작은 주먹을 꽉 쥐었다.

박무혁 의원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그리고 박 의원... 전당대회에서 복마전이나 협잡질을 해도 상관없어. 박 의원이 당대표가 되면 축하할 생각이야. 똑똑하고 야망이 있으니까 잘하겠지. 하지만 거기까지만 해. 이성윤을 건들면... 안 돼.”

박무혁 의원은 여전히 미소 짓고 있다.

하지만 그 ‘안 돼’라는 말이 꼭 ‘너 죽어.’라는 말처럼 들려왔다.

박상혜 의원은 마른 침을 삼킨다.

***

며칠 후, 의원회관 성윤의 사무실.

전당대회의 후보 등록이 끝났다.

이제 2주 후에 새로운 당대표가 결정된다.

당대표 출마자는 서용우 전 총리.

박상혜 의원.

오대민 의원.

그리고 채정학 의원이다.

조진성 전 충북지사는 최고위원 선거에 이름을 올렸다.

당대표에 출마하지 않았다.

성윤이 조진성 전 지사의 이름을 가리키며 물었다. “들은 것 있어요?”

성윤의 보좌진들이 다급히 휴대폰을 손에 든다.

그리고 조진성 전 지사의 이름을 검색한다.

혹시 나온 것이 있는지 찾는 거다.

정책 보좌관 김현석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후보 마감 2시간 전에 올라온 기사가 있어요.”

김현석 보좌관이 휴대폰을 건넸다.

성윤은 기사를 확인했다.

조진성 전 지사와 박상혜 의원이 함께 손을 잡고 만세를 부르는 사진이 있다.

사진이 의미하는 것은 명확하다.

정우를 제외한 보좌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여러 명이 엎치락뒤치락 경쟁하는 선거가 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조진성 전 지사가 박상혜 의원의 손을 들어주며 양강 체제가 되었다.

이럴 경우 ‘안 될 놈에게 표를 주느니 될 놈을 밀어주자.’는 의식이 유권자 사이에 팽배해진다.

그럼, 다른 후보들은 쩌리가 된다.

선거에서 쩌리가 이기기는 쉽지 않다.

“아오!”

김현석 보좌관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여기저기 한숨이 쏟아진다.

“다른 의원의 보좌진들이 또 나불거릴 텐데, 이젠 진짜 싸워야 하나요?”

“조진성은 끝까지 갈 줄 알았는데......”

하지만 성윤은 느긋하다.

휴대폰을 내려두며 정우에게 고개를 틀었다.

“어떻게 생각해?”

“고맙죠.”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에 모든 보좌진의 시선이 정우에게 향했다.

위기가 분명한테 고맙다니......

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시작부터 한 방 맞은 게 아프긴 하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중간에 알렸어 봐요. 사람들의 시선은 그쪽으로 쏠렸을 테고 우리는 손가락만 빨았을걸요. 하지만 고맙게도 샴페인을 일찍 터뜨려줬네요.”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 보좌관 말대로 중간에 터뜨렸다면 힘들어졌겠지만 2주라는 시간은 길어요. 두 사람이 손을 잡은 사실은 유권자들의 기억 속에 흐릿해질 거예요.”

성윤이 의자에서 일어나 화이트보드로 향했다.

거기에는 각 후보의 이름과 연관된 사람들의 이름이 복잡하게 적혀 있었다.

성윤이 보드마카를 손에 들고 조진성 전 지사의 이름에 엑스를 그었다.

“다섯이라고 예상했던 후보가 네 명이 되었을 뿐입니다. 동요할 필요는 없어요.”

리더의 여유로움은 보좌진에게 안정감을 준다.

김현석 보좌관이 낮게 웃으며 말한다.

“그렇게 들으니까 오히려 확률이 높아진 것 같네요? 5:1보다는 4:1이 좋죠.”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업무에 돌입했다.

성윤은 계속 화이트보드를 보고 있다.

머릿속에서 순위를 뒤집기 위한 수많은 계획이 그려졌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오대민 의원의 이름에서 멎었다.

잠시 그 이름을 본다.

성윤이 손가락으로 그의 이름을 툭 쳤다.

그 시각. 고속도로.

오대민 의원은 경남 지역을 돌았다.

각 지역의 대의원과 당협 위원장을 만나고 서울로 올라오는 중이다. 스케줄을 분 단위로 쪼개가며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려 한다.

뒷좌석에 앉아 휴대폰을 보는 오대민 의원의 미간이 찌푸려져 있다.

화면에는 조진성과 박상혜가 손을 맞잡은 기사가 보였다.

‘조진성...’

오대민 의원도 다수가 경쟁하는 선거 구도를 원했다.

양강 체제는 원하지 않았다.

비주류가 치고 나갈 수 없다.

이런 식으로 판이 바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멍청한 놈이 욕심만 많아서......’

조진성이 여러 사람에게 똥을 뿌렸다.

각 후보와 유권자들은 혼란하다.

오대민 의원은 대한당 전당대회에 관한 기사를 찾아봤다.

당선에 가장 가까운 서용우 전 총리에 관한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박상혜 의원에 관한 기사가 치고 나오기 시작한다.

‘판을 다시 뒤집으려면......’

그는 채정학 의원의 기사를 찾기 시작했다.

그때, 지이이잉.

기사가 떠 있던 휴대폰 화면에 발신번호가 떴다.

이성윤이다.

오대민 의원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이성윤? 이놈이 왜?’

그는 통화 버튼을 누르지 않고 휴대폰을 물끄러미 본다.

찌푸려졌던 눈살이 점차 펴졌다.

그러더니 빙긋이 웃는다.

‘같은 생각을 했구나.’

그가 통화 버튼을 누르며 귀에 댔다.

성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성윤입니다. 뵙고 싶은데요.

< 전당대회.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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