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당대회. - (1) >
***
전당대회는 당헌, 당규의 개정이나 정책 소개 등 다양한 목적으로 치러진다.
그중 가장 이목을 끄는 것은 대통령 후보자와 지도부를 선출하는 것이다.
대한당은 당대표와 지도부를 선출하기 위한 전당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주진만 원내대표가 복귀하며 멈춰 있던 대한당의 시간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전당대회의 신호탄이 본격적으로 쏘아진 거다.
의원 회관, 성윤의 사무실.
정우가 서류를 덮었다.
그리고 귀를 후비며 말한다.
“이놈의 전당대회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뒷말 듣느라 귀 따가워서......”
보좌진들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책을 맡은 김현석 보좌관이 툴툴거렸다.
“맞아요. 다른 의원 보좌관들이 우릴 미친놈 취급한다니까요.”
회계를 담당하는 서진화 비서관도 합세했다.
“맞아요. 시작도 안 했는데 정치 예언가가 된 것처럼 나불거리는 것들 보면....... 진짜 확! 때려주고 싶어요.”
그녀는 주먹까지 쥐어 보였다.
보좌진이 뒷말을 듣는 것은 성윤이 채정학 의원을 지지해서다.
안 될 사람에게 힘 쏟는다며 비웃는 사람이 많다.
스치듯 만난 사람도 성윤의 미래를 예언한다.
전당대회가 끝나면 새로운 당대표에게 찍혀 나가리 될 거라나 뭐라나 하면서......
보좌진들의 말이 많아졌다.
의원 회관에 있으며 서러움 당한 게 많은가 보다.
보좌관의 힘은 의원에게서 나온다.
모시는 국회의원의 힘이 거대하면 보좌관의 어깨는 쫙 펴진다.
정부 부처의 고위 공무원도 손가락 하나로 불러낼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의원의 힘이 약하면 고개를 숙인다.
땅만 보고 걷는다.
요즘 성윤의 보좌진이 그랬다.
뒷말을 듣고 손가락질을 받고......
전당대회로 인해 계파의 선이 분명해지며 그런 경향이 더 커졌다.
하지만 성윤은 담담하다.
“이기면 되죠.”
그 한마디에 보좌진들은 서로 눈치를 본다.
그 시선이 김현석 보좌관에게 모였다.
김현석 보좌관이 마른 입술을 핥았다.
그리고 총대를 멘 것처럼 조심스레 묻는다.
“의원님, 말이 나와서 그런데, 이길 방법이 있나요?”
성윤의 보좌진들이 보기에도 채정학 의원은 당선권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성윤에게 꽂혔다.
성윤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고개를 끄덕인다.
“네, 있어요.”
이해시키기 위한 설명은 없었다.
하지만 가끔은 확고하고 짧은 대답이 긴 설명보다 신뢰를 주는 법이다.
게다가 성윤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 선거에서 이겨온 사람.
보좌진들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이번엔 정우가 성윤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그런데, 최고위원 정도는 나가볼 만 하지 않아요? 초선들도 나오잖아요?”
최고위원, 각 당의 최고 의사 결정에 참여하며 당대표를 견제하는 사람들이다.
다선 의원들이 대부분이지만 초선이나 국회 경험이 없는 평당원도 도전할 수 있다.
성윤은 고개를 저었다.
“됐어.”
최고위원에 도전한다면 가능성은 클 거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지금은 아래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
천천히 올라야 했다.
단번에 세울 수 있는 모래성은 바람에도 흩날린다.
하지만 차곡차곡 쌓아진 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언젠가 나타날 악귀 이준대를 상대로 싸울 수 있는 성벽을 준비해야 했다.
성윤의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다.
메시지를 확인한 성윤이 입을 연다.
“나갔다 올게.”
“어디 가세요?”
“채정학 의원님 뵙고 오려고.”
성윤은 재킷을 걸쳤다.
사무실에서 나와 복도를 걷는다.
지나는 사람들이 곁눈질로 성윤을 본다.
수군대는 말은 똑같다.
지겹도록 듣는 말이다.
-왜 채정학을 지지하지?
성윤은 슬쩍 웃었다.
험난한 길인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길을 뚫고 성공했을 때 저들의 눈빛이 어떻게 바뀔지 궁금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스르륵 열렸다.
오대민 의원이 보인다.
서로의 눈빛이 강하게 마주친다.
“타.”
오대민 의원의 말에 성윤이 엘리베이터에 올라섰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올라간다.
오대민 의원의 목소리가 차갑게 흘렀다.
“바보 같은 선택을 했어. 채정학은 수더분하고 겸손한 친구지. 하지만 당을 이끌어 갈 재목은 아니야.”
“패를 까보기 전에는 모른다고 생각하는데요.”
오대민 의원의 입꼬리가 휘어졌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정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
한없이 꼬인 말투.
성윤이 시선을 틀어 오대민 의원을 향했다.
그는 진작부터 성윤을 쏘아보고 있었다.
성윤의 눈빛 역시 차가워진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냐고요?”
“넌... 아니, 채정학은 이길 수 없어.”
“글쎄요. 전 아직 져 본 적이 없어서요.”
정치는 기세 싸움이다.
같은 당원으로서 함께 할 때는 예의를 갖춰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같은 당이지만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다.
서로 다른 배를 탄 적이다. 기세에서 밀리면 병신이다.
오대민 의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는 성윤의 이런 모습이 싫었다.
단순히 건방지다는 말이 아니다.
져 본 적 없는 사람의 거만함이 오대민 의원을 자극한다.
그 역시 지금껏 패배한 적이 없이 살아왔다.
하지만 무패했던 사람끼리 맞붙으면......
둘 중 하나는 패배의 기록을 갖게 된다.
오대민 의원이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 표를 갉아먹지 마. 채정학과 같은 무대에 선다는 것만 해도 기분 나쁘니까.”
엘리베이터의 문이 스르륵 열렸다.
살얼음판 같았던 공기가 밖으로 흐른다.
오대민 의원이 찬바람을 날리며 성윤의 옆을 스쳤다.
성윤은 오대민 의원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적대적인 눈빛보다는 씁쓸함이 강하다.
‘오대민......’
꿈속에서는 꽤 친하게 지냈다.
그때도 오대민 의원이 재수 없기는 했다.
엘리트 의식이 강한 그는 잘난 척이 심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남을 업신여기지는 않았다.
성윤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오대민 의원과 친했던 것은 십여 년 후.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저 성격이 세월에 깎인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일이 있었던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참 재수 없다.
성윤도 잠시 후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커피숍에 들러 커피와 케이크를 포장했다.
커피는 최고의 뇌물이다.
채정학 의원의 사무실로 향했다.
성윤이 들어가자 채정학 의원이 반갑게 맞는다.
“어서 와.”
성윤은 머리를 박박 긁으며 일하는 보좌진들의 옆에 커피를 조용히 내려뒀다.
“들면서 하세요.”
카페인의 향기를 맡은 보좌진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감사합니다! 의원님밖에 없어요.”
“앗싸! 커피!”
보좌진들은 커피를 들고 성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채정학 의원이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이성윤 의원밖에 없다고? 그럼, 나는?”
보좌관이 채정학 의원을 본다. 그러다가 푹 한숨을 내뱉었다.
“...당대표 후보자님이시죠.”
그 말에 보좌진들의 시선이 성윤에게 향했다.
방금만 해도 카페인 냄새에 환호했던 그들이다.
그런데 지금은 ‘왜 우리 의원님을 떠밀어요!’라는 장난스러운 원망이 서려 있다.
성윤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기면 돼요.”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이것이 전부다.
채정학 의원의 보좌관이 주먹을 꽉 쥔다. “그럼요 이기면 되죠. 그런데, 의원님 사무실 분위기는 괜찮아요?”
“우리 분위기요?”
“저희야 항상 비주류였으니까 이런 시선에 익숙하지만 의원님은 아니잖아요.”
성윤이 가볍게 웃었다.
“우리도 항상 손가락질받았어요. 얼마 전에는 실검도 올랐었잖아요. 3일 동안이나.”
“아... 생각해보면 우리보다 더 힘들었겠네요. 하하.”
성윤은 항상 언론에 노출되어 있었다.
게다가 위태위태한 길을 걷는다.
따가운 시선은 언제나 함께였다.
채정학 의원이 손뼉을 치며 상황을 정리했다.
이대로 두면 잡담만 하다 끝날 것 같아서다.
“그만, 이제 각자 일하지.”
“넵!”
보좌진들은 다시 모니터를 향해 시선을 파묻었다.
성윤과 채정학 의원은 소파에 앉았다.
채정학 의원이 검은 뿔테 안경을 빼서 테이블에 내려두며 말한다.
“난 진흙탕 싸움을 해 본 적이 없어. 그런데, 이번 전당대회는 진흙탕이 아니라 똥 밭이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채정학 의원은 당대표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 역시 대한당의 위기는 체감하는 중이다.
그래서 성윤과 주진만 원내대표가 등 떠민 김에 팔 걷어붙이고 나왔다.
채정학 의원이 물끄러미 성윤을 본다.
복안을 듣고 싶어 한다.
성윤은 품에서 수첩을 꺼냈다.
“지난번, 한 언론사에서 발표되었던 잠룡 10인. 이중 서용우 전 총리, 박상혜 의원, 조진성 지사 그리고 오대민 의원은 출마할 게 분명해요.”
“그렇겠지.”
“하지만 그 아래 순위는 아닐 거예요. 이분들을 만나 주세요.”
“내 옆으로 끌어와라?”
“네.”
채정학 의원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저었다.
“내 옆에 오려고 할까?”
“주는 게 있다면 올 겁니다.”
채정학 의원의 눈이 가늘어졌다.
“다른 후보들은 각자의 계파가 있어요. 인기 좋은 당직은 그 계파 사람들에게 돌아가겠죠. 하지만......”
주진만 원내대표의 계파는 그렇지 않다.
핵심 권력에서 벗어난 아웃사이더이며 반골이다.
지난번 주진만이 원내대표가 당선되었을 때도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은 적었다.
그래서 채정학 의원은 순위에서 밀려난 잠룡들에게 좋은 당직을 권할 수 있다.
최대의 장점이다.
잠룡이 손을 잡아 준다면 지지율은 올라갈 거다.
채정학 의원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릎을 꿇어서라도 데리고 오지.”
“그리고......”
성윤은 꺼낸 수첩을 북 뜯었다.
그리고 이름을 적어 내려갔다.
꿈속에서 봤던 사람들이다.
미래가 바뀌지 않았다면 괜찮은 당직을 차지하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한직으로 밀려 나 있다.
불만이 있을 게 분명하다. “이분들도 만나주세요.”
채정학 의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 당대표의 사람들 아닌가? 지금은 박상혜 의원의 옆에 있고......”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올 겁니다.”
전 당대표의 계파는 신뢰로 뭉친 집단이 아니다.
힘의 논리에 따라 이득으로 만들어졌다.
이득으로 만들어진 집단은 힘이 사라지면 허상처럼 사라진다.
채정학 의원은 성윤이 권한 인물의 이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자리를 보장하면서까지 포섭할 인물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 주진만 의원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하자는 대로 해.
채정학 의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성윤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그리고......”
***
전당대회의 출마 소식이 속속 나오고 있었다.
서용우 전 총리를 시작으로 오대민 의원 그리고 채정학 의원까지.
그리고 박상혜 의원의 사무실.
그녀는 초조한 표정으로 구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비비 꼬고 있었다.
보좌관이 다급히 다가온다.
“...성제준 의원이 채정학 의원을 지지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성제준이?”
“네.”
그녀는 전화기를 들어 성제준 의원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가지만 받지 않는다.
곧...
-전화를 받지 않아 소리...
붉은 입술을 꾹 깨문 그녀가 수화기를 내려두며 보좌관을 본다.
“지금까지 넘어간 사람이 몇이지? 아니, 채정학의 지지율이 어때?”
“채정학은 5위로 올라섰습니다.”
“나...나는?”
보좌관은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태블릿 PC를 그녀의 앞에 내려둔다.
1위는 여전히 서용우 전 총리다.
하지만 2위였던 그녀는 4위로 밀려났다.
그녀의 계파가 채정학 의원에게 붙는 중이다.
집안 단속을 못 한 것이 패착이었다.
박상혜 의원이 작은 주먹을 꽉 쥔다.
“밀리면 안 돼. 여기서 밀리면....... 세상을 바꿀 수 없잖아.”
고개를 저은 그녀가 보좌관을 향했다.
“방법이 없을까?” “이성윤 의원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첩보를 통해 들었는데 모두 이성윤 의원의 전략이라고 합니다.”
“이성윤?”
보좌관이 한숨을 내뱉었다.
“이성윤은 우리 계파를 손바닥 보듯 꿰뚫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불만이 있는 사람,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 타깃으로 찍어 포섭하는 걸 보면......”
박상혜 의원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한다.
“우리 중에 스파이가 있다는 거야?”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스파이를 잡겠다고 나서는 것은 빈대 한 마리 잡기 위해 집을 태우는 것과 같다.
방법은.......
“스파이 그리고 이성윤이 예측할 수 없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거네?”
보좌관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는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스파이가 있을지 모른다는 말에 박상혜 의원의 눈빛은 차분해졌다.
그녀는 머리끈을 입에 물더니 구불거리는 머리를 하나로 동여맨다.
그녀의 눈빛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예측할 수 없는 전략이라.......”
< 전당대회. -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