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룡들. - (2) >
성윤은 다시 실검 순위에 올랐다.
수익 대부분을 기부한다는 기사에 사람들은 칭찬을 이어갔다.
-멋진 국회의원!
-최고!
-강남 아파트부터 정리하고 기부해라. 그럼 믿을게.
ㄴ이성윤 집 없어요. 월세 살고 있음. 원룸임.
ㄴ진짜? 국회의원이 월세? 월 200만 원이겠지.
ㄴ그쪽 동네 월세 시세가 30에서 50.
ㄴ확인해 봤더니 진짜네. 인정할 수밖에 없네.
-봉사도 많이 해서 좋더라.
-이런 국회의원이 많아져야 하는데.
-우리 동네로 오세요! 뽑아 줄게요!
-이성윤을 청와대로.
그 덕에 사무실 분위기는 밝았다.
며칠간 악플에 시달렸던 정효순 주임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 있다.
“의원님, 댓글 좀 읽어 드릴까요? 칭찬 일색인데요?”
정효순 주임의 말에 성윤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당연한 일로 칭찬받으면 민망해요.”
“당연한 일을 안 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니까 의원님이 특별한 거죠. 하나 읽어 볼게요. 댓글 많은 기사가......”
정효순 주임은 이성윤을 검색한 후 스크롤을 내리며 기사를 찾았다.
그러다가......
“어? 이게 뭐야?”
심상치 않은 목소리에 뭔가를 작성하던 정우가 고개를 틀었다.
“왜요?”
정효순 주임이 더듬더듬 입을 연다.
“여론조사기관이 지난 일주일 전국 성인 남녀 2,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성윤도 그녀의 뒤로 이동해 기사를 확인했다.
기사가 보인다.
[대한당 전당대회 시동 걸다.
대한당의 전당대회 레이스가 준비되고 있다.
주진만 비상대책 위원장이 병원에 있어서 큰 움직임은 보이지 않지만 잠룡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몸을 푸는 중이다.
전 당대표 계파에서는 대변인이었던 박상혜 의원이 등판을 준비한다.
전 당대표를 만나 전당대회에 관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충북지사였던 조진성 전 지사도 어깨를 풀고 있다.
지지자 모임과 낚시를 하며 이번 전당대회를 이야기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서용우 전 총리는 대한당 의원 아홉 명과 저녁을 같이 하며 당내 지분을 넓혀가는 중이다.
소식통은 서용우 전 총리가 현실 정치로의 복귀를 서두른다고 전했다.
(중략)
전체 응답자를 대상으로 한 차기 대한당 당대표 선호도 순위다.
1위. 서용우 전 총리 17.6%.
2위. 박상혜 의원 13.2%.
3위. 조진성 전 충북지사 10.5%. 4위. 오대민 의원 9.3%.
.
.
10위. 이성윤 의원 5.1%
(중략)
이성윤 의원은 한 매체에서 실시한 정치영역 차세대 리더 1위에 올랐다.
비록 재선 의원이지만 정치인으로서는 신입생과 같다. 하지만 이미 정치의 중심에 들어와 있다.
최근 국회의원의 스캔들에 따른 국민의 피로도가 젊고 새로운 인물을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성윤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뗐다.
전 지도부는 이번 전당대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그래서 박무혁 의원 등 거물들의 이름은 순위에 보이지 않는다.
주진만 원내대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도 잠룡들과 이름을 나란히 했다는 것은 기념비적이다.
정우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주임님, 기자 연락처 찾아서 기프티콘이라도 하나 보내주세요. 마음에 드네요.”
“네!”
정효순 주임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녀는 언론사와 기자 이름을 찾는다.
정우가 성윤에게 고개를 틀었다.
능글맞은 눈빛이다.
“의원님, 진지하게 당대표 출마 고민해 보시겠어요? 백 명이 넘는 국회의원을 흔들 수 있는 자리. 당론을 만들어 원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힘. 대통령과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안 해.”
성윤은 단호히 답했다.
“왜요? 10위잖아요. 지지율도 5.1%면 해볼만한데요. 다 뒤집고 최연소 당대표. 마음에 드네요.”
“응, 안 해.”
정우도 농담이었다.
전당대회에 나간다 해도 당선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튼튼한 계파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니까.
그리고 덜컥 돼도 문제다.
성윤은 나이가 어리고 계파가 없다.
이무기 같은 의원들의 혓바닥이 성윤을 가만두지 않을 거다.
요리조리 사탕처럼 혓바닥 안에서 굴리다가 단물만 쪽 빼 먹고 버릴 게 분명하다.
게다가 지금 대한당 당대표가 되는 것은 말 그대로 독이 든 성배다.
전 당대표가 싸질러 놓은 똥이 많다.
똥을 치우다가 욕만 처먹을 게 뻔했다.
정우가 소파에 앉는다.
다시 휴대폰으로 기사를 보며 중얼댄다.
“아까운데......”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성윤을 향했다.
“의원님. 당대표 말고 킹메이커는 어때요?”
***
“이성윤은 킹메이커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주진만 원내대표가 휴대폰을 덮으며 시선을 틀었다.
침대 옆에 앉은 조진성 전 충북지사가 보인다.
그는 당대표를 노리고 있다.
그래서 주진만 원내대표의 힘을 얻기 위해 몇 번이나 병원을 찾아왔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얼굴을 자주 보는 것이 인간관계의 첫 번째니까.
주진만 원내대표가 슬쩍 웃는다. “이성윤 의원이 누구를 지지할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손을 잡는다면 대단한 능력을 보여줄 거예요. 숫자로만 봐도 이성윤 의원의 지지율이 5.1%. 순위를 바꿀 힘이 있어요. 그리고 제가 원내대표를 할 수 있던 것도 이성윤 의원이 도와줬기 때문이에요.”
조진성 전 충북지사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충북지사를 그만두고 몇 년간 현실 정치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래서 최근 돌아가는 판도는 잘 몰랐다.
“이성윤이 그 정도인가요? 전 이성윤이 이미지 정치를 하는 줄 알았거든요.”
주진만 원내대표가 고개를 저었다.
“내 앞에 김대성의 계파를 끌고 온 것이 이성윤 의원이에요.”
조진성 전 충북지사는 마른 입술을 핥았다.
그는 주진만 원내대표의 모든 말을 믿기 힘들었다.
그가 볼 때 성윤은 이 바닥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풋내기다.
경험 없는 풋내기가 그만한 역량이 있다는 것을 믿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원내대표쯤 되는 사람이 헛소리를 찍찍할 리는 없다.
“킹메이커라......”
주진만 원내대표가 희미한 미소를 그렸다.
“괜찮은 당직을 권해보세요. 주는 게 있다면 손을 잡을지도 모르죠.”
“한번 만나봐야겠군요.”
조진성 전 충북지사가 떠났다.
오후가 되자 서용우 전 총리가 병실을 찾았다.
그 역시 조진성 전 충북지사와 똑같은 목적이 있다.
주진만 원내대표는 서용우 전 총리에게도 똑같은 말을 전한다.
“이성윤은 킹메이커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잠시 후, 서용우 전 총리도 떠났다.
주진만 원내대표의 아내가 옆에 앉는다.
그녀가 사과를 깎으며 말한다.
“오늘 이성윤 의원의 이름을 많이 말하네요?”
“그랬나?”
“네, 계속 이성윤, 이성윤, 킹메이커...”
주진만 원내대표가 재미있다는 듯 웃는다.
사과를 깎던 아내가 고개를 들어 그를 향한다.
“왜 그렇게 웃어요?”
“이성윤은 킹메이커가 아니야.”
“네?”
“왕이 될 놈이야.”
아내가 이해 못 할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진만 원내대표가 접시에 놓인 사과 한 조각을 들어 씹는다.
“안 그런 척하지만 이성윤은 왕의 길을 탐욕스럽게 걷고 있어. 보통은 모르지. 자세히 안 보니까. 그런데, 난 이성윤을 자세히 보거든. 그래서 알지.”
“......”
“왕이 될 놈이 킹메이커를 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주변이 난리가 나지. 그놈이 걷는 길은 혼돈이거든. 원래 왕의 길은 그런 법이니까.”
아내가 고개를 저었다.
“정치판 이야기는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이성윤이 더 클 거란 이야기야. 내가 그 기틀을 만들어 주고 싶고. 으핫핫핫!”
주진만 원내대표는 뭐가 재밌는지 한참을 웃는다.
그가 사과를 들어 아삭 씹었다.
그리고 시선을 틀어 창밖을 바라본다.
세상은 깜깜하다.
해가 저물고 어두워졌다.
조금 있으면 다시 해가 뜰 거다.
그러면 주진만 원내대표는 병실을 떠난다. 언론의 카메라는 주진만 원내대표를 주목할 거다.
국민의 시선이 비껴가기를 기다리던 잠룡들의 움직임이 거침없이 시작된다.
그 안에서 이성윤이 어떤 일을 할지 궁금했다.
“그런데, 당신은요?”
주진만 원내대표가 고개를 틀어 아내를 바라봤다.
그녀가 다시 묻는다.
“당신은요?”
“뭐가?”
“대통령이요.”
주진만 원내대표는 차기 대권 주자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교통사고로 인한 동정표까지 더해져 꽤 높은 지지를 받는 중이다.
주진만 원내대표가 가볍게 웃는다.
“왜? 영부인 되고 싶어?”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히 사과만 깎는다.
주진만 원내대표가 미간을 찌푸렸다.
“꿈 깨 이 사람아. 난 이 자리도 벅차.”
***
다음 날, 중앙 당사.
국회의원들이 가득 몰려 있었다.
당직자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대기한다.
성윤도 그 안에 있었다.
“오십니다!”
그 말에 약 이백여 명의 사람들이 복도로 나섰다.
우르르 몰린 그들은 입구에서부터 계단까지 쭉 늘어선다.
그뿐만 아니라 기자들도 구름같이 몰렸다.
그들은 카메라를 들고 대기한다.
주진만 원내대표가 탄 차가 멈춰 섰다.
그가 차에서 내린다.
그러자 사람들이 허리를 굽혔다.
“고생하셨습니다!”
카메라 셔터는 주진만 원내대표를 향해 눌러졌다.
플래시와 함께 주진만 원내대표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누가 보면 죽을 병 걸렸다가 살아난 줄 알겠어요. 염려해주신 덕에 건강히 돌아왔습니다.”
주진만 원내대표는 한 사람, 한 사람 악수했다.
웃는 얼굴로 가볍게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성윤의 차례가 되었다.
“올라가서 얘기 좀 하지.”
주진만 원내대표는 성윤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자리에서 끌어낸다.
그리고 함께 계단을 올랐다.
그 뒷모습이 기자들의 카메라에 담겼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악수.
성윤은 함께 계단을 오른다.
의미는 컸다.
이성윤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권력이 준비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며 기사화됐다.
성윤은 주진만 의원의 마음을 느꼈다.
거부하지 않고 그 옆을 걷는다. 그리고 의원들, 특히 잠룡들은 성윤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원내대표 사무실에 들어왔다.
주진만 의원이 재킷을 벗으며 소파에 앉는다.
사람들과의 인사가 힘들었는지 넥타이를 풀어헤쳤다.
그리고 물끄러미 성윤을 보다가 말한다.
“앞으로 바빠질 거야. 나 말고 자네.”
“그럴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물었던 것. 또 묻지. 누구를 지지하겠나?”
“글쎄요.”
성윤은 이번에도 답을 피했다.
주진만 의원이 테이블 위에 신문을 놓아 펼쳤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기사를 가리킨다.
순위가 나온 기사다.
“정치인의 힘은 선거야. 한 명을 밀어 당선시키면 지금보다 당내 입지가 탄탄해질 거야.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더라도 입지를 위해 고민해 봐. 자네를 원하는 사람은 많으니까.”
유력한 인물은 서용우 전 총리, 박상혜 의원, 조진성 전 충북지사다.
정치 전문가들은 삼파전이 될 것이라 분석한다.
엘리트 오대민 의원도 당대표를 노리지만 그는 비주류다.
지지율은 높지만 계파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당선 가능성은 적다.
물론 탁월한 머리로 권모술수를 부려 올라갈 수도 있지만 한계가 명확했다.
“자네가 지지할 의원을 선택하면 나 역시 암암리에 도움을 주지.”
세 사람의 지지율은 각각 17.6%, 13.2%, 10.5%.
숫자로만 따지면 성윤의 지지율 5.1%가 포함되는 순간 당선 가시권에 들어온다.
물론 여러 변수가 있기 때문에 숫자로만 따질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주진만 원내대표까지 움직여 준다면 가능성은 더 커진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독이 든 성배다.
세 명 중 누가 되든 상관없다.
성윤이 얻을 이득은 당내 입지니까.
주진만 원내대표가 말한다.
“이번 전당대회로 자네는 선거에서 중요한 카드가 될 거야. 앞으로 많은 의원이 자네에게 손을 뻗겠지.”
성윤이 손으로 입술을 훑었다.
“혹시라도 패배하면요?”
주진만 원내대표가 픽 웃는다.
“당선된 당대표 계파한테 미운털 좀 박히겠지.”
성윤의 시선이 다시 신문으로 향했다.
당선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서용우 전 총리가 보인다.
이미 17.6%의 지지율.
전당대회가 시작되면 지지율은 더 높아질 거다.
하지만 그를 당선 시키면 얻을 것이 크지 않다.
사람들은 당선될 사람이 당선됐다고 생각할 테니까.
성윤의 노력은 흐려진다.
성윤이 신문에서 시선을 떼고 주진만 원내대표를 바라봤다.
“정치적으로 크려면 도전을 해야 하죠?”
< 잠룡들. -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