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80화 (80/300)

< 발의. - (2) >

성윤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모두 눈만 깜박였다.

어떤 말도 없었다.

-이 새끼가 여기는 왜...

협회장 최명진이 가장 먼저 표정을 관리했다.

“실물로 보니까 훤칠하시네요. 최명진입니다.”

“이성윤입니다.”

“앉으시죠.”

최명진이 자신의 맞은편 자리를 권했다.

성윤이 자리에 앉자 정우가 그 뒤에 섰다.

그러자 협회의 간부들이 최명진의 뒤로 이동했다.

성윤과 최명진이 대치하는 것 같은 배치다.

서로의 눈빛이 거칠게 부딪쳤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성윤의 시선이 움직였다.

테이블에 놓인 태블릿 PC에서 멎는다.

화면에 법안 발의 기사가 보였다.

“보고 계셨네요?”

“관심이 있으니까요.”

“반대의 입장이시죠?”

최명진은 부정하지 않는다.

담담히 고개를 끄덕인다.

“어차피 대화해도 평행선일 것 아시죠? 왜 오셨는지 모르지만 제가 드릴 말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의원님, 책상과 현실은 다릅니다. 책상 밖으로 나오세요. 세상은 넓으니까요.”

“그럼, 저도 이곳에 온 이유만 간단히 전하고 일어나죠.”

“그러시던지요.”

“돌아갈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최명진의 눈썹이 꿈틀댄다.

“기회?”

“정치권에서 손 떼세요. 영향력을 펼치려 하지 마세요. 사람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어요. 좋은 시민단체와 탐욕스러운 기업가, 둘 중 하나만 하셨으면 하네요. 개인적으로 좋은 시민단체를 권해드립니다.”

최명진이 거만하게 다리를 꼰다.

“두 마리 토끼... 잡고 못 잡고는 사람의 역량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 저는 모두 잡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우리는 많은 국회의원을 만나고 있어요. 후원금도 내고 받기도 하죠. 대한당에는 오대민 의원이 계시고 박상혜 의원도 계시네요. 그리고......”

열댓 명의 의원 이름이 줄줄줄 흘렀다.

모두 성윤보다 힘 있는 자들.

높낮이 없이 이어지는 목소리는 알아서 숙이라는 뜻이다.

그의 속마음도 거만했다.

-내 주변에는 많은 사람이 있어. 국회의원이라도 날 건들 수는 없어.

최명진이 비웃듯 말한다.

“저도 의원님께 기회를 드리죠. 법안을 밀어붙이고 우리와 대치하며 피곤하게 살겠습니까? 아니면......”

최명진이 주먹을 쥐었다 피며 말을 잇는다.

“손잡고 편하게 사시겠습니까? 개인적으로 편한 것을 권하고 싶군요.”

최명진이 음흉하게 웃었다.

하지만 성윤은 단호하다.

“피곤하게 살래요.” 그 말을 끝으로 성윤은 고개를 틀어 정우를 향했다.

그러자 정우가 가방을 넘긴다.

성윤은 지퍼를 열어 서류를 꺼냈다.

한 장, 두 장. 테이블에 서류가 착착착 놓인다.

모두 성윤의 행동을 조심스레 지켜봤다.

쌓인 서류는 20cm 정도로 두꺼웠다.

성윤이 서류를 한 장씩 들추며 말했다.

“국내외 아동 후원도 하시네요? 예전부터 궁금했어요. 한 달에 2만 원씩 후원하면 그 돈이 아동에게 쓰일까? 아니면 협회 간부들 소고기 사 먹는 데 쓰일까?”

최명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성윤이 서류에서 손을 떼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 돈이 잘 쓰이는지 알아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와 전쟁을 하겠다는 겁니까?”

“전쟁이요? 스케일 커서 좋네요.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런데, 그거 아세요? 청렴한 국회의원은 꽤 무서워요.”

성윤의 싸늘한 눈빛에 최명진의 입술이 비틀어졌다.

“아직 이 바닥을 잘 모르시나 보네요. 다시 말씀드리죠. 우리와 손을 잡으면 앞으로 편할 겁니다. 언론에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의원으로 기록될 것이고 사람들의 인식에는 정의로운 의원으로 남겠죠. 그런데, 우리와 손을 잡지 않으면 피곤해질 겁니다. 우리는 선량한

약자의.......”

지이이잉.

적막한 공간에 휴대폰의 진동 소리가 울렸다.

모든 시선이 소리를 따라 이동한다.

정우가 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네, 주임님. 검찰청 앞이라고요?”

말을 멈춘 정우가 시선을 틀어 성윤에게 향했다.

성윤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연다.

“기회는 끝났어.”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넣어주세요. 협상은 없을 것 같습니다.”

최명진의 눈동자가 감정적으로 변했다.

그가 벌떡 일어선다.

“지, 지금 뭘 하는 겁니까! 우리와 연합된 단체가 몇 개인지 알고 이러는 겁니까!”

최명진의 분기 가득한 목소리와 달리 성윤은 여유롭다.

“연합된 단체가 몇 개인지는 모르고요. 그냥 궁금해서요. 오늘 저녁 7시, 내 이름과 이 단체의 이름. 누가 실검 1위를 할까요?”

최명진의 뒤에 서 있던 간부들이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 어떻게...?

그들은 7시에 성윤을 실검에 올릴 작전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계획은 성윤이 오기 전 준비했던 거다.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알 수 없었다.

최명진의 목소리가 벼락같이 울렸다.

“이성윤 의원님!”

“최명진 회장님.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어려운 사람을 도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려운 사람을 도왔던 손에는 이제 롤렉스가 감겨 있네요. 며칠 후에는 수갑이 채워질 겁니다.”

최명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인심 좋게 보였던 두툼한 볼 살이 바르르 떨린다.

눈빛은 심각했다.

다가올 지옥이 눈앞에 보여서다.

성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검찰 조사를 받으며 되돌아보세요. 지금 회장님은 어려운 사람의 눈물을 먹고 사는 괴물이 되었어요.”

“후, 후회할 겁니다. 내가 아는 의원들에게 전화하면 검찰은......” 성윤이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향했다.

“영화나 드라마 안 보세요? 회장님이 아는 의원들, 전화 안 받을 겁니다.”

최명진의 주먹이 가늘게 떨렸다.

성윤의 말이 맞다.

권력과 재력으로 이어진 인연은 먼지처럼 사라진다.

성윤은 최명진과 협회 간부들의 시선을 받으며 몸을 돌렸다.

그가 복도로 나왔다.

그러자 사무실 안에서 더러운 욕설과 힘께 쾅! 쾅! 물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저들의 시작은 타인을 돕겠다는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회원이 늘며 권력을 탐하기 시작했다.

그 끝은 추악한 괴물이다.

“사무실로 갈까요?”

차에 오르며 정우가 물었다.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엄마 손’에 가자. 눈 버리고 귀 버렸어. 정화하고 가야지.”

모든 시민단체가 저들 같지는 않다.

성윤이 도시락 배달을 하는 ‘엄마 손’이 그랬다.

‘엄마 손’은 저들보다 더 많은 회원이 있어도 최초의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주차장을 빠져나온 차는 도심으로 진입했다.

창밖을 보던 성윤의 눈에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유모차에 탄 아이가 자기 발을 만져대며 깔깔 웃는다.

아이가 컸을 때도 웃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정우야, 우리가 가는 길은 험난할 거야. 하지만 끝에는 조금은 나아지겠지?”

“당연하죠. 그런데, 의원님. 기분 꿀꿀하신 것 같은데 재밌는 얘기해드릴까요?”

“아니.”

***

서안시 스마트 공업 단지.

흰색 간판이 붙은 곳으로 들어가면 숨이 막힐 정도로 바쁜 공기가 훅하고 들어온다.

서른 명 정도의 직원이 바쁘게 일하는 중이다.

벤처사업가 신중석의 회사였다.

이들의 스마트 시계는 미친 듯이 팔리고 있었다.

게다가 5월, 가정의 달이 되며 주문 숫자는 말 그대로 폭주했다.

게다가 해외에서도 주문이 들어온다.

공장은 24시간 가동했고 성윤이 소개했던 곳으로 모자라 몇 곳과 더 계약했다.

그래도 예약은 밀리기만 한다.

분명 기쁜 일이 이어지는 중이다.

그런데, 대표이사실에 앉은 신중석과 유하나는 굳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유하나가 고개를 저었다.

굵게 펌된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솔직해지자. 의원님 도움 없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잖아.”

신중석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렇지? 솔직해야겠지?”

“어. 생각해봐. 다른 투자자는 우릴 무시하면서 500만 원, 300만 원 넣었어. 그런데 의원님은 안 그러셨잖아. 직접 찾아오셨고 많은 지분도 요구 안 하셨고. 사무실 알선에 공장까지... 감사한 게 한두 개야? 의리 지켜야지.”

유하나의 단호한 말에 신중석의 눈동자에 결심이 올랐다.

그의 시선이 테이블로 향한다.

테이블에는 서류 두 장이 놓여 있었다.

하나는 기준을 넘겼기에 실적을 공시해야 한다는 서류.

또 하나는 기업 가치가 평가된 서류다.

기업 가치에 420억이라 적혀 있다. 이들은 비상장 기업이었고 개인적으로 알아본 거다.

그가 기업 가치 평가 서류를 손에 쥔다.

“그래, 의리는 지켜야지. 힘들 때 도와준 사람을 속이면 짐승보다 못한 거지.”

신중석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유하나를 보며 슬쩍 웃는다.

“다녀올게.”

유하나는 신중석의 어깨를 가볍게 쥐었다.

“의원님도 많이 기뻐하시겠다. 그 모습 같이 보고 싶었는데.”

“내가 현장감 있게 설명해 줄게. 입이 얼마나 찢어지는지 각도까지 재서.”

신중석은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국회의원 사무실에 가는 모습이 꼭 전쟁터에서 금의환향 돌아가는 전사 같았다.

잠시 후, 신중석은 성윤의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성윤은 보이지 않는다.

‘엄마 손’에 갔다가 돌아오는 중이었다.

정효순 주임이 신중석의 앞에 찻잔을 내려뒀다.

“차가 막힌대요. 십 분 정도 더 기다리셔야 할 것 같은데요.”

“괜찮습니다.”

신중석은 슬쩍 웃으며 찻잔을 입에 댔다.

성윤에게 처음 투자를 받았을 때가 기억났다.

다들 외면할 때 도와줬던 사람.

이제 갚을 때가 됐다.

조금의 시간이 지났다.

문이 열리고 성윤과 정우가 들어왔다.

“오래 기다렸죠?”

“아뇨, 저도 방금 왔어요.”

성윤이 신중석을 방으로 안내했다.

의자에 재킷을 벗어 걸며 물었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이에요? 라디오 CF도 나오고 잘 팔리는 것 같던데.”

“그 일 때문에 왔습니다.”

“그 일?”

“회사 일이요.”

문이 열리고 정우가 들어왔다.

그가 성윤과 신중석의 앞에 오렌지 주스를 둔 후 나가려고 했다.

신중석이 말한다.

“보좌관님도 계셨으면 하는데요.”

“저도요?”

“네.”

정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신중석이 말한다.

“저희가 투자 계약을 할 때 보좌관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실적을 공시하기 전에 지분을 정리하고 싶다고요.”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죠.”

“죄송해요. 눈 깜짝할 사이에 성장해서 저희도 모르게 대상 기업이 되어버렸어요.”

성윤이 슬쩍 웃었다.

앓는 소리를 하지만 성공했다는 말이다.

사실 조금은 겁났었다.

꿈을 통해 본 미래에 성윤이 개입하며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이들의 스마트 시계 역시 마찬가지다.

성윤이 투자했고 서안시로 왔다.

중국이 아닌 한국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었다.

꿈과 다른 현실이다.

그런데, 겨울에 대박이 났어야 할 상품이 소식이 없었다.

미래가 바뀐 것은 아닌지 초조하고 불안했다.

그런데 기쁜 소식이 왔다.

신중석이 말한다.

“기업 가치를 평가받았어요.”

“얼마래요?”

“420억이요.”

성윤은 엷게 웃었고 정우의 얼굴은 점점 딱딱해졌다.

정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어, 얼마?”

“420억이요. 의원님이 10% 투자하셨으니까 현 지분 가치는 42억이요. 계약서를 보면 저희에게 우선 매도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상의하려고 왔어요.”

그가 서류를 꺼내 테이블에 놓았다.

기업 가치 평가 서류다.

신중석은 성윤이 서류를 들고 읽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부터 이어질 성윤의 반응을 유하나에게 말하기 위해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성윤은 정우에게 손을 내민다.

“내가 이겼지? 30만 원.”

정우는 큰 한숨과 함께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오! 벼룩의 간!”

“30만 원.”

“...이체해드릴게요.”

성윤과 정우는 투자 금액을 놓고 내기했었다.

2억 이하면 정우의 승리였고 그 이상이면 성윤이 이기는 것.

그런데 2억은 한참 넘었다.

투자의 신은 성윤의 손을 들어줬다.

정우는 머리를 쥐어뜯었고 성윤은 좋아한다.

신중석이 황당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살폈다.

40억을 앞에 두고 30만 원을 기뻐하다니...

‘뭐지?’

성윤이 신중석에게 시선을 틀었다.

그는 진심으로 기쁘게 웃는다.

어려움을 딛고 성공한 신중석이 대견하고 고마웠다.

“신중석 대표님 덕분에 좋은 일 할 수 있겠어요.”

< 발의.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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