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의. - (1) >
이번 법안 발의는 위험하다.
시민 단체에서 눈을 치켜뜬 채 지켜보고 있다.
비난받을 것은 물론이고 시위가 일어날 가능성도 컸다.
그런데, 오대민 의원이라니......
그는 불 속에 뛰어드는 스타일이 아니다.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다.
게다가 성윤을 싫어한다.
‘그런데, 왜?’
사람의 마음을 들으며 얻게 된 단점이 있다.
바로 인간 불신이다.
세상에는 믿던 도끼를 들고 남의 발등을 사정없이 찍는 인간이 무수히 많으니까.
더군다나 이곳은 뒤통수를 잘 칠수록 성공하는 바닥.
배신자들의 콜로세움이다.
성윤이 통화를 종료하자 정우가 입을 연다.
“법안... 오대민 의원에게 가져갈까요?”
“아니, 내가 직접 갈게.”
“직접이요?”
“어.”
오대민 의원의 속을 알아야했다.
어떤 꿍꿍이를 가졌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이용할 것은 이용하고 버릴 것은 버릴 수 있다.
생각은 여기까지.
일단 오늘 하루를 보내야 했다.
성윤이 사무실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입을 열었다.
“오늘 스케줄은?”
“점심에 로얄 아파트 시니어 하우스 개소식 참석하셔야 하고요.”
“시니어 하우스?”
“아파트 노인정이요.”
노인정이 시니어 하우스라니 누구를 위한 명칭인지...
“계속해.”
“개소식 선물로 어깨 마사지기 준비했어요. 그리고......”
정우의 입에서 오늘 스케줄이 흘러나왔다.
성윤이 손을 살짝 들었다.
“저녁 일정은 빼줘. 의원님들 만나야 하니까.”
“의원님이요?”
“김대성의 친구분들.”
“아.”
정우는 성윤의 지시를 수첩에 끄적거린 후 바로 휴대폰을 귀에 댔다.
“네, 이성윤 의원 보좌관 박정우입니다.”
그리고 그날 밤.
한정식 집에는 8명의 의원이 앉아 있었다.
지난번 삼계탕집에서 성윤에게 협박당한 의원들이다.
심각한 표정으로 있던 그들이 수군댄다.
“무슨 일로 우릴 부른 거지?”
“몰라, 애새끼 비위 맞추기 진짜 힘드네.”
“시간 없어 죽겠는데, 벌써 삼십 분이나 지났...”
드르륵, 문이 열렸다.
성윤과 정우가 들어왔다. 구시렁대던 의원들이 입을 싹 닫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성윤은 가볍게 목례하고 거침없이 상석에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옮기며 의원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상대의 눈빛은 물론이고 미세한 표정의 변화까지.
시선이 맞닿은 의원은 ‘큼.’ 헛기침을 내뱉는다.
하지만 그뿐이다.
성격 같았다면 ‘건방진 놈!’이라며 윽박질렀겠지만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지금은 눈치만 보고 있다.
0% 대출받은 의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무슨 일로 보자고 했나?”
성윤이 정우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정우가 의원들의 앞에 서류를 둔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일부 개정안]
의원들의 표정이 확 찌푸려졌다.
다급히 서류를 넘긴다.
눈을 꽉 감는 의원도 있다.
성윤이 찻잔을 손에 쥐며 느긋하게 말했다.
“소문 들으셨죠? 도장 찍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들의 표정은 모래를 퍼먹은 것처럼 불편했다.
수염이 간사해 보이는 의원이 한숨을 내쉰다.
“이 의원... 이거 위험해. 혹시 인터넷 댓글 보고 법안 만드는 거라면 그만둬. 인터넷 여론이 민심의 전부가 아니야. 그건 빙산의 일각도 되지 않아. 바닥 민심을 생각해야지. 이런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도 많아.”
이번엔 메기 입술을 가진 의원이 말했다.
“지금까지 이런 법안이 몇 번 올라갔는지 아나? 통과된 적이 없어. 계류되고 부결되고 흐지부지 사라졌지.”
성윤이 정말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사라진 이유가 뭔가요?”
벤처 자금을 횡령한 의원이 답답한지 물을 마신 후 입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시민단체를 적으로 둬서는 안 돼.”
성윤이 눈살을 찌푸렸다.
“시민단체요?”
“그래, 정말 피곤해지는 일이야. 지금 법안을 바꾸면 일반 사람들은 잘했다고 칭찬하겠지. 그런데, 그 기억이 얼마나 갈 것 같아? 한 달? 두 달? 아니, 일주일도 못 가.”
“그래서요?”
“하지만 시민단체는 우리가 뭘 했는지 기억하지. 그리고 4년 후 선거에서 복수할 거야. 그때, 우리를 일주일씩이나 칭찬해줬던 국민이 도와줄 것 같아? 전혀, 국민은 그 일주일을 기억하지 못해.”
5:5 가르마 의원이 말을 덧붙인다.
“연말에 있는 연예인 시상식을 기억해봐. 하반기에 방영했던 드라마가 좋은 상 받지? 1월, 2월에 아무리 좋은 드라마 찍어도 기억 못 하잖아. 우리도 똑같아. 지금 하는 일은 위험하기만 해. 이득이 없어.”
성윤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졌다.
“이득이요?”
“그래, 이득.”
잠깐 착각했다.
범인의 가족이 받을 연좌제를 우려하는 줄 알았다.
범인이 출소 후 살아갈 비참한 날을 걱정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딴 생각 따위는 없었다.
오로지 자신의 안위다.
성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며 싸늘한 눈빛만 남았다.
“이득 보고 싶으면 배지 반납하고 장사하세요.” “어?”
“그게 싫으면 도장 찍으시고요.”
의원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누구도 도장을 꺼내지 않고 눈치를 보며 망설이고 있다.
성윤이 젓가락을 들며 말했다.
“내일 뉴스에 나오고 싶지 않은 분은 현명한 선택을 해주세요.”
가벼운 협박이 들려오고 나서야 그들은 주춤, 주춤 도장을 꺼낸다.
참 간사하다.
***
다음 날, 의원 회관.
성윤은 커피와 케이크를 포장해 오대민 의원의 사무실로 올라갔다.
가는 길에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어제 만난 의원들은 이 법안을 망설였다.
계약직 인생은 다음 계약을 걱정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오대민 의원이 왜?’
궁금증은 만나보면 풀릴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4명의 보좌진이 보인다.
오대민 의원의 사무실답게 보좌진 역시 엘리트 느낌이 줄줄 흐른다.
얼굴만 악마처럼 생긴 정우와는 전혀 딴 세상 인물들.
굳이 같은 점을 찾자면 잠을 자지 못해 피곤해 보인다는 것이다.
성윤을 본 보좌진들이 눈을 깜빡였다.
일이 안 풀리는지 머리를 벅벅 긁던 보좌관이 다급히 일어섰다.
“오신다는 말은 들었는데... 의원님이 직접 오셨네요?”
“네, 인사한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인사드리려고 왔어요. 바쁜데 커피 한 잔씩 드세요.”
성윤은 포장된 커피와 케이크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보좌진들의 눈이 반짝인다.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커피 내기로 사다리 타고 있었는데!”
“당 떨어졌는데 잘 됐다! 잘 마시겠습니다.”
보좌진들은 싱글벙글 커피를 손에 들었다.
포크를 가지고 와 케이크를 쿡 찔러 입에 넣는다.
바쁜 일정에 잠깐의 티타임은 즐거운 법이다.
보좌관이 다가왔다.
“그냥 오셨어도 됐는데요. 이런 것 사 오시면 나중에 저희가 도장 받으러 갈 때 빈손으로 갈 수 없잖아요.”
앓는 소리를 내고 있다.
성윤이 손을 저었다.
“부담 갖지 마세요. 그런데, 의원님은요?”
“화장실에 가셨어요. 금방 오실 거예요. 잠깐 앉아 계세요.”
성윤이 소파에 앉았다.
보좌진들은 성윤이 사 온 커피와 케이크를 먹으며 떠든다.
왁자지껄 분위기가 아주 좋다.
“예상했던 사무실 분위기가 아니에요? 군대 같은 계급 문화를 생각했거든요.”
“네?”
커피를 입에 대던 보좌관이 성윤에게 고개를 틀었다.
성윤이 어깨를 으쓱했다.
“오대민 의원님 분위기가 그렇잖아요. 가까이 가기 어렵고.”
“아.”
모두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구석에 앉아 케이크를 쿡쿡 찌르던 비서가 입을 열었다.
“그렇죠. 우리 의원님은 경기고, 서울대, 하버드. 말 그대로 엘리트 라인을 밟았으니까요. 천상천하유아독존이죠. 일을 지시만 받아서 하니까 뭘 하는지 모를 때가 많아요. 물어보면 멍청해서 이해 못할 거라 하시고.”
보좌관이 비서의 어깨를 툭 쳤다.
“그만.”
비서가 두 손으로 황급히 입을 가린다.
가벼운 분위기에 말실수했다는 것을 안 거다.
보좌관이 성윤에게 고개를 틀었다.
“의원님이 군기를 잡으시는 편이라 전 편하게 하거든요. 숨 쉴 구멍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그러니까 지금 들은 이야기는 비밀로 해주세요. 티타임 중에 저희끼리 하는 이야기니까요.”
“그럼요.”
성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달칵’ 문이 열렸다.
오대민 의원이 들어왔다.
방금까지 화기애애했던 사무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비서는 바닥에 떨어진 케이크 조각을 주워 담고 있다.
보좌관이 변명한다.
“이성윤 의원이 커피와 케이크를 사 와서요.”
오대민 의원이 자신의 책상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앉지.”
성윤과 오대민 의원이 마주 앉았다.
오대민 의원은 다리를 외로 꼰 채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그가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은 보좌진이 테이블의 정리를 마쳤을 때다.
“다들 나가 있어.”
보좌진들은 조용히 사무실을 떠났다.
이곳엔 성윤과 오대민 의원 두 사람만 남았다.
오대민 의원이 책상 서랍을 열더니 도장을 꺼낸다.
“법안 줘봐.”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오대민 의원의 행동이 멈칫거렸다.
그가 천천히 성윤을 본다.
날카로운 시선은 성윤을 업신여기고 있다.
“이유?”
“네, 다른 의원님들은 이 법안을 반대하셔서요.”
“난 범죄자가 인권 뒤에 숨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됐나?”
하지만 그의 속마음은 달랐다.
-법안의 오류를 낱낱이 파헤쳐 주지.
싸늘한 음성.
성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장을 찍어 준다면서 왜 오류를 파헤친다는 거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
조용히 오대민 의원의 행동을 지켜봤다.
그가 차가운 시선으로 서류를 슥슥 넘기며 내용을 확인한다.
눈빛에는 어떤 감흥도 기대도 없어 보였다.
그러더니 툭, 도장을 옆으로 치웠다.
“난 자세히 읽지 않고 도장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읽어보고 보좌관 통해 보내도록 하지. 괜찮나?”
오대민 의원이 슬쩍 웃는다. 너 따위는 자신의 손바닥에 있다는 자신만만한 미소다.
그의 속마음은 성윤을 ‘멍청이’라고 부르는 중이다.
하지만 성윤은 알고 있다.
그는 도장을 찍을 마음이 없다.
법안을 읽어보고 분석하며 어떻게든 반대할 생각이다.
‘윤채아의 복수인가? 치졸하네.’
성윤은 책상에 놓인 법안을 손에 들었다.
오대민 의원의 눈살이 확 찌푸려진다.
“아뇨, 괜찮습니다.”
“읽어보고 동의한다니까. 첨삭할 것이 있다면 해야지.”
“그동안 이런 법안이 많이 실패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빠르게 넣고 발버둥 쳐야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서요. 도장은 다른 의원에게 받겠습니다.”
상대가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꿍꿍이가 있어도 얻을 것이 있다면 함께 할 거다.
하지만 이곳에 얻을 것은 없다.
치울 것만 존재한다.
성윤이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그럼,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이 의원. 놓고 가. 내가 확인해주지.”
오대민 의원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들렸다.
그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다.
자신의 의도가 고스란히 노출되었다는 것을 예감해서다.
무시하던 새끼를 휘어잡지 못한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다.
두 사람의 마주 본 눈빛에서 불꽃이 튄다.
하지만 성윤은 가차 없이 몸을 돌렸다.
꿈속에서는 친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현실은 바뀌고 있다.
오대민 의원과의 관계도 틀어질 것만 같다.
복도로 나온 성윤은 휴대폰을 귀에 댔다.
“정우야, 김미선 기자 연락해. 법안 기사 낼 거니까. 그리고 삼십 분 후에 이동할 거야. 차 준비해.”
-차요? 어디 가시게요?
***
새 사랑 인권협회 협회장 실.
협회장과 부회장 그리고 각 간부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테이블에 놓인 태블릿 PC 화면에는 기사가 보인다.
[이성윤 의원 강력 범죄자의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 법안 발의.]
“결국......”
협회장 최명중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입에서 한숨이 나온다.
부회장이 입술을 만지며 말했다.
“불법체류자도 그렇고 이 범죄자들도 그렇고 다 사회가 이렇게 만든 어려운 사람인데...... 이성윤은 인류애가 없나?”
경기지부장이 턱수염을 만지며 말했다.
“오대민 의원이 실패한 모양이네요. 어떻게 할까요?”
협회장 최명중이 다리를 꼬며 소파에 몸을 기댄다.
“어떻게 하긴... 국회의원이라는 놈이 어려운 사람을 돌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민심을 보여줘야지. 배지 달고 잘 먹고 잘사니까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몰라.”
그렇게 말하는 협회장의 정장은 명품이다.
손목에는 롤렉스가 착 감겨 있고.
부회장이 경기지부장을 심각하게 본다. “신중하게 움직여. 상대는 많은 사람이 지지하는 국회의원이니까.”
경기 지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연합된 단체에 연락할게요.”
그는 대답과 동시에 휴대폰을 손에 들고 메시지를 적는다.
-오늘 오후 7시 정각. 이성윤 검색어 1위 만들어 줄 거예요. 회원들에게 연락해서 7시에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라고 전해주세요.
그때, 문이 벌컥 열리고 비서가 다급히 들어왔다.
머리를 질끈 묶은 비서의 표정이 매우 초조하다.
협회장 최명중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인데?”
“이성윤 의원이...”
“이성윤? 이성윤 의원은 왜?”
비서가 고개를 튼다.
그녀의 뒤에서 슥, 두 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성윤과 정우였다.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일그러진다.
-이 새끼가 여기는 왜 온 거야?
성윤이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성윤이라고 합니다.”
성윤은 오대민 의원의 속마음에서 ‘새 사랑 인권협회’라는 단어를 들었다.
계속해서 태클을 거는 단체, 얼굴 한번 직접 보고 싶었다.
< 발의. -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