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78화 (78/300)

< 산소 호흡기. - (5) >

***

“어?”

누군가의 한 마디가 시작이었다.

터미널에 있던 사람들은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텔레비전 화면에 성윤과 발악하는 김대성 의원의 모습이 잡혔다.

비록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화면만 봐도 알 수 있다.

‘김대성이 좆됐구나.’

김대성 의원은 언론에 곧잘 나오는 힘 있는 의원이다.

그가 다른 의원들에게 사지가 잡힌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

권력자의 위엄은 사라졌고 패배한 쥐새끼처럼 비참한 모습이다.

성윤이 그 앞으로 다가간다.

화면은 성윤과 김대성 의원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성윤이 김대성 의원에게 얼굴을 가까이 대며 뭐라고 속삭인다.

그러자 김대성 의원의 눈빛에서 넋이 빠져나갔다.

이어서 그의 입술이 리얼하게 움직인다.

힘없이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표정으로......

“씨발...”

그게 뭐라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와!”

그들이 볼 때 김대성 의원은 강자였고 성윤은 약자였다.

그런데, 성윤의 한 마디에 김대성 의원이 쓰러졌다.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

그들은 검찰이 김대성이라는 거인을 체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국회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하지만 비리 척결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한 마디씩 던진다.

“뭐야? 김대성 끝난 거야? 진짜 청부했던 거야?”

“나라꼴이 아주 바람직하게 돌아간다.”

“그런데, 김대성 앞에 있는 사람 누구야? 젊은 애.”

머리가 허연 노인의 혼잣말이었다.

그런데, 터미널에서 처음 만난 대학생이 답한다.

“이성윤 몰라요? 이십 대에 재선 의원인데요.”

“이성윤?”

사람들은 ‘이성윤, 이성윤’을 중얼대며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표결이 시작됐다.

의장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투표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회장 밖에 계신 의원들께서는 회장으로 입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총 투표수 278표 중 가 259표. 부 11표. 기권 3표 무효 5표로서 국회의원 김대성 체포 동의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의사봉이 땅땅땅 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차갑다.

본회의장은 카메라 셔터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어떤 의원도 입을 열지 않았다.

카메라는 다시 김대성 의원을 향했다.

주변 의원들은 김대성 의원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자리를 피한다.

김대성 의원은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일어서지 못한다.

초조하게 입술과 다리를 떨고 있다.

손에 쥔 볼펜을 계속해서 만지작거릴 뿐, 어떤 말도 없고 행동도 없다.

그러다가 헛웃음을 짓는다.

“하하하.”

그게 끝이었다.

그는 ‘툭’ 실이 끊어진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텔레비전 화면 아래로 ‘김대성 의원 체포동의안 가결’이라는 글자가 쾅! 하고 떴다.

카메라는 김대성 의원을 지나 성윤을 찾는다.

문 앞에서 김대성 의원을 보던 성윤은 몸을 돌렸다.

그 모습 역시 카메라에 잡혔다.

***

산소 호흡기에 김이 서렸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작은 아이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호흡만 하고 있을 뿐이다.

아이는 교통사고를 낸 남자의 아들이다.

그 앞에 성윤이 서 있었다.

그가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아이의 손을 잡았다.

작은 손으로 꿈을 쥐기 위해 노력하던 아이는 잠만 자고 있다.

“미안하다.”

성윤의 옆에는 아이 엄마가 서 있었다.

잔뜩 긴장하고 겁을 먹은 얼굴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자신의 남편이 대한당 원내대표를 교통사고 냈다.

그런데, 그 당의 국회의원이 찾아왔다.

상대는 대한민국의 갑이다.

성윤이 그녀에게 고개를 틀었다.

그녀가 움찔한다.

작게 손을 떤다.

성윤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병원비 모자라죠?”

그녀의 남편이 자백하며 진실을 밝혔다.

진실의 대가는 참혹하다.

받았던 돈을 국가에 반납해야 한다.

그런데, 병원비가 없다.

남편은 구치소에 있고...

사람들은 이곳까지 신경 쓰지 않는다.

화면에 잡힌 김대성 의원을 욕하지만 화면 밖에 있는 슬픔은 외면한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게 이 바닥이다.

성윤이 정우를 향했다.

정우가 품에서 흰 봉투를 꺼내 침대 위에 놓았다.

성윤이 그녀에게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병원비입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저희가 죄송해요. 그래도 저 이 돈... 받을게요. 돈이 모자라서, 나중에 꼭 갚을게요.”

그녀는 흰 봉투를 손에 들고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펑펑 운다.

성윤과 정우의 입에서 한숨이 흘렀다.

그때, 문이 달칵 열렸다.

휠체어를 탄 주진만 원내대표가 들어왔다.

그가 성윤을 보고 뜻밖이라는 눈빛을 보낸다.

그리고 아이 엄마에게 시선을 돌렸다.

무너진 채 울고 있는 아이 엄마, 그녀의 손에 쥐어진 봉투. 주진만 원내대표는 그 봉투가 어디서 나왔을지 짐작했다.

딱딱해진 그의 얼굴에서 조금은 편안한 미소를 그려진다.

주진만 원내대표의 보좌관도 품에서 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아이 엄마에게 다가가 말했다.

“병원비는 계산했습니다.”

“네?”

아이 엄마의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보좌관이 말을 잇는다.

“그리고 이 돈은... 작지만 감사를 대신해서......”

아이 엄마는 주진만 원내대표가 건넨 봉투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서럽게 울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염치없지만 받을 수밖에 없어요.”

권력과 돈으로 움직인 세상에서 남은 것은 서러운 눈물뿐이었다.

성윤과 주진만 의원은 병원 밖으로 나왔다.

성윤이 자판기에서 뽑아 온 음료를 건넸다.

“이렇게 돌아다녀도 되나요? 아직 안정이 필요할 때 같은데요.”

“간호사한테 욕 한번 먹겠지. 성질이 정말 더럽더라고.”

대한당의 원내대표가 간호사에게 욕을 먹는 그림은 상상되지 않았다.

하지만 주진만 원내대표는 징글징글하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진짜 욕을 먹나보다.

“궁금하네요.”

“궁금하면 입원해봐. 보통이 아니야. 원내대표고 뭐고 자기한테는 그냥 환자래.”

주진만 원내대표가 헛웃음을 지으며 성윤에게 담배를 건넸다.

“얼마 넣었어?”

“네?”

“아까 봉투.”

“적당히 넣었습니다.”

“돈도 없는 사람이......”

주진만 원내대표의 입에서 흐린 연기가 흘러나왔다.

그가 재떨이에 재를 툭툭 털며 말한다.

“이 의원만큼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어. 진실을 밝힌 분, 나라를 위해 싸웠던 분... 우리는 외면했으니까.”

성윤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원내대표님이 나서면 금방 해결되지 않을까요?”

성윤과 주진만 원내대표는 가진 힘 자체가 다르다.

그가 움직이면 세상은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주진만 원내대표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내 행동에는 의미가 부여되지. 내 한마디에 대한당의 지지율이 왔다 갔다 해. 폐지 주워 하루 오천 원, 만 원 버는 참전 용사들. 진실을 외쳤다가 일터에서 쫓겨나 단칸방에 사는 사람들. 도와주고 싶어도 반대하는 사람이 많아. 난 그 사람들의 의견도 듣고 조율해야 하

는 입장이야.”

“어렵네요.”

“어렵지.”

두 사람의 입에서 씁쓸한 연기가 흘렀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래에서부터 시작된다.

주진만 원내대표가 담배를 비벼 끄며 입을 연다.

“앞으로 어떻게 할 텐가? 자네, 이번 일로 적이 많아졌어.”

김대성 사건 배후에 성윤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

소문은 확장된다.

게다가 성윤은 제대로 언론을 탔다.

의원들은 자라나는 새싹을 원하지 않는다.

새싹이 거목이 될 수 있어서다.

거목의 그늘에 갇혀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성윤이 슬쩍 웃으며 주진만 원내대표를 향했다.

“우산이 되어 주시겠죠.”

“누가? 내가?”

“비가 오면 비를 막아주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막아주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좋은 술을 가지고 와. 그럼, 우산이 되는 것을 생각해 보지.”

“소주... 빨간 뚜껑이면 되는 거죠?”

주진만 원내대표가 한참을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게 제일 좋은 술이지.”

잠시 후, 성윤은 차에 올랐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정우가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킨다.

“철물점 가서 삽하고 망치 준비해뒀어요. 곡괭이도 살까 했지만 무거워서 패스했고요.”

성윤은 뒷좌석으로 고개를 틀었다.

진짜 삽과 망치가 보인다.

그런데, 스케줄에 공사장은 없다.

“이건 왜?”

“김대성 의원이요. 교통사고를 청부했던 놈이 살인 청부는 못 할 까요? 아까 발광하는 모습 보고 식겁했거든요. 구속되기 전까지 긴장을 풀 수 없어요. 언제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요.”

성윤은 잠시 본회의장을 떠올렸다.

눈이 돌아간 채 달려들던 김대성 의원의 모습은 정말 살벌했다.

주변에 있던 의원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그는 성윤의 목을 졸랐을 거다.

정우가 엑셀을 밟으며 묻는다.

“그런데, 마지막에 김대성 의원이랑 무슨 이야기한 거예요? 김대성 의원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잖아요.”

“별거 아냐.”

성윤은 고개를 틀어 창밖을 향했다.

이렇게 행동하는 성윤은 몇 번을 물어도 답해주지 않는다.

정우는 성윤의 성격을 잘 안다.

더 묻지 않고 핸들을 틀었다.

***

며칠 후, 서안시 사무실.

정우가 낄낄거리고 있었다.

“왜 웃어?”

“네티즌 중에는 진짜 능력자가 많은 것 같아요.”

정우는 배를 잡고 웃는다.

웃다가 숨이 멎을 것 같다.

“뭔데?”

“본회의장에서 김대성이랑 눈싸움하던 것 있잖아요? 그걸 캡처해서 합성을 해놨거든요.”

정효순 주임이 몸을 기울여 정우의 모니터를 본다.

“주임님, 이게 재밌어요. 제목 ‘장비가 적장의 목을 벱니다.’ 그림판으로 낙서해 둔 건데 엄청 웃겨요. 으핫핫핫!”

정우와 정효순 주임은 같이 웃는다.

두 사람 다 참 얄밉다.

“국회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도 보여줘야겠네요. 힘들게 일하는 데 웃을 맛이라도 있어야죠.”

정우는 사진을 다운 받아 메일로 쏘기까지 했다. 보좌관인지 안티인지 가늠이 안 됐다.

“정우야? 민원 정리부터 해줄래?”

“아, 네.”

본회의장에서 카메라에 잡힌 후 수많은 민원과 요청이 들어왔다.

사소한 민원부터 시작해서 방송 출연까지.

그중에는 예능도 있었고 초등학교 학생 기자의 인터뷰 요청도 있었다.

그렇게 쌓인 민원과 요청이 수북했다.

이십대 재선이란 타이틀을 얻었을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젊은 놈이 감투 썼네.’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성윤은 강자를 꺾은 약자의 이미지를 얻었다.

‘이성윤이라면 다를 거야.’ 라는 작은 기대가 생기기 시작했다.

따르르릉.

전화벨이 시끄럽게 울렸다.

정우가 전화를 잡는다.

“국회의원 이성윤 사무실입니다.”

정우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웃고 있던 입술이 묘하게 굳어졌다.

그리고 버튼을 꾹 눌러 성윤에게 전화를 돌리며 입을 연다.

“오대민 의원인데요?”

오대민 의원은 엘리트 의식이 강한 사람으로 ‘내 말은 맞고 네 말은 틀렸다.’는 독선적인 태도의 아웃사이더다.

하지만 지식으로 완전 무장했기에 그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군 장성을 앞에 두고 군사 지식으로 찍어 눌렀던 장면은 지금도 회자된다.

그때부터 네티즌은 ‘오대민에게 걸리면 누구든 아작 이야.’라는 말과 함께 ‘청문회의 파괴자’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꿈속에서 그는 성윤과 꽤 친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성윤에게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유는 안다.

윤채아를 비례대표로 추천한 것이 오대민 의원이다.

그런데 윤채아를 감옥으로 안내해 준 게 성윤이었다.

성윤은 전화기에 손을 가져가며 정우와 정효순 주임에게 말했다.

“준비해 주세요.”

상대는 지식으로 무장된 사람이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 들어 올 수 있다.

정우와 정효순 주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두 사람은 모니터에 여러 개의 창을 띄워 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성윤이 스피커 버튼을 눌렀다.

“네, 이성윤입니다.”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전화했어.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

“네, 말씀하십시오.”

-법안을 준비한다고?

성윤은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일부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 법은 흉악범의 얼굴과 신상 공개를 언론의 자유에 맡기고 있다.

하지만 성윤은 ‘공개해야 한다.’로 바꿀 생각이다.

“네, 준비하고 있습니다.”

-거기 내 이름도 올리지.< 산소 호흡기. -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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