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소 호흡기. - (3) >
김대성 의원은 차량이 준비될 때까지 사무실을 서성거렸다.
‘알고 갔을까? 아니면 그냥 얼굴 한번 보러 간 걸까? 이성윤 이 새끼는 도대체 왜 나대는 거야!’
그러다가 뚝 걸음을 멈춘다.
초조했던 입술에 미소가 걸린다.
‘모를 거야. 모를 수밖에 없지. 그놈은 돈이 필요하니까, 이성윤은 돈이 필요한 놈의 입을 열 수는 없어. 이성윤은 가난하니까.’
알고 있어도 증거가 없다.
증거가 없다면 성윤이 어떤 해괴한 짓을 해도 정치 음모로 밀어붙일 수 있다.
그럼, 이긴다.
정치 싸움은 쪽수 많은 쪽이 승리한다.
김대성 의원은 경직된 어깨를 풀며 주먹을 꽉 쥐었다.
‘침착하게 생각해 보면 이성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김대성 의원의 시선이 거울로 향했다.
권력에 미친 악마가 보였다.
핏기가 죽죽 그어진 눈동자는 흉악했다.
‘이성윤, 예쁜 적토마라 생각해서 가만히 놔뒀어. 하지만 여기까지야. 가만히 놔뒀더니 불안해. 이제 치워야겠어.’
성윤과 김대성 의원은 며칠 전만 해도 함께 담배를 피우던 사이였다.
하지만 오늘, 김대성 의원은 성윤을 철천지원수처럼 생각하기로 했다.
성윤은 권력으로 가는 길에 걸림돌이었다.
이 바닥에 등을 맡길 수 있는 친구는 없다.
김대성 의원은 차에 올랐다.
하늘은 비가 쏟아질 것처럼 우중충하다.
“어디로 갈까요?”
“막걸리 먹기 좋은 날씨지? 사람들 모이라고 해. 술 한잔하면서 비가 그친 뒤에 무엇을 해야 할지 회의해야겠어.”
보좌관이 휴대폰을 손에 든다.
수행비서는 액셀을 밟았다.
김대성 의원의 차가 먹구름을 향해 들어갔다.
그 시각, 성윤은 구치소에서 나와 하늘을 보고 있었다.
대한민국을 집어삼킬 것 같은 하늘이다.
“비 오려나? 요즘 비가 자주 오는 것 같아.”
“아침에 일기 예보 봤는데 비 소식은 없었어요.”
씁쓸한 얼굴로 하늘을 보던 성윤과 정우의 옆으로 구치소장이 다가왔다.
“일은 잘 보셨습니까?”
“덕분에 잘 끝났어요.”
구치소장이 생활인의 미소를 지으며 작게 말한다.
“말씀하신 대로 김대성 의원에게 연락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성윤은 이곳에 도착해서 구치소장의 마음을 읽었었다.
그가 김대성 의원에게 연락하려 한다는 것을.
그래서 더 부추겼다.
반드시 연락하라고.
구치소장에게 나쁠 것은 없었다.
그는 성윤과 김대성 의원, 양쪽에 발을 걸치며 자신의 안위는 지킬 수 있었다. 구치소장의 인사를 받으며 성윤과 정우는 차를 향해 걸었다.
시동을 걸던 정우가 휴대폰을 꺼내 귀에 댄다.
“네, 박정우입니다. 네? 아, 저희는 연락 못 받았어요.”
정우가 통화를 종료하자 성윤이 물었다.
“뭔데?”
“성 의원 보좌관인데요. 지금 김대성 의원이 계파를 소집했나 봐요.”
“아.”
성윤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하겠네. 나를 어떻게 죽여야 할까.”
정우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바로 기사 뿌릴까요?”
“아니, 얻을 것은 얻어야지. 잠깐 기다려. 어쨌든, 어디서 모인데?”
“남한산성에 있는 삼계탕집이요. 그쪽으로 갈까요?”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우는 곧장 남한산성으로 핸들을 튼다.
차가 이동할 때 성윤은 휴대폰에서 박무혁 의원의 연락처를 찾았다.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쩐 일인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부탁? 말해.
“검찰을 움직이고 싶습니다.”
-상대는?
“김대성 의원입니다.”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불체포특권이 있어. 검찰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을 텐데.
박무혁 의원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는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전화했습니다.”
-아.
성윤의 계획과 생각을 이해했다는 목소리.
-연락해 두지. 내 이름 팔고 싶으면 얼마든지 팔아.
***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
누룽지 삼계탕이라고 적힌 음식점이 보였다.
2층 건물, 장사가 잘되는지 주차장은 넓다.
식사하러 온 차량이 주차장에 들어온다.
그러자 주차요원이 손을 흔들며 다가갔다.
운전석 창문이 열리자 주차 요원이 입을 연다.
“죄송합니다. 오늘 영업 끝났습니다. 예약 손님이 있어서요.”
“전부요?”
“네, 죄송합니다.”
차는 아쉬움을 남기며 주차장을 떠났다.
주차요원의 시선이 가게로 향한다.
눈빛이 불편하다.
“도대체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가게 안. 김대성 의원을 포함해 여덟 명의 국회의원이 있었다.
그의 계파 중에서도 충성파다.
그리고 다섯 명의 남녀도 보였다.
김대성 의원과 손을 잡은 메이저 언론사의 기자들이다.
그중에는 한동일보의 김미선 기자도 있었다.
보좌관이 기자들의 앞에 종이 한 장을 놓는다.
기자들의 시선이 종이로 향했다.
[젊은 국회의원 A 씨. 대선 후보를 꺾으며 당선이 되었는데요. 철이 없어서 그런지 갑질이 심하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수십 억대의 뇌물까지 챙겼다고......]
모두 성윤을 지칭하는 말이다.
기자들이 눈을 깜빡인다.
“이, 이게......”
김대성 의원이 입을 열었다.
“전 개인적으로 이성윤 의원과 친해요. 하지만 계속 두면 국가적으로 큰 위기가 올 것 같아요. 이념이 없는 정치인은 앙금 없는 팥빵이죠.”
김대성 의원은 잠시 말을 멈추고 기자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 말을 잇는다.
“그리고 나이가 어려서 큰 그림을 그릴 줄 몰라요. 눈앞에 닥친 문제 해결에만 급급하죠. 그런데, 국민은 또 그걸 좋아해. 이런 것이 계속되면 어떻게 될지 뻔하지 않습니까?”
기자들은 조용하다.
김대성 의원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계속 말한다.
“선거 때만 되면 펼쳐지는 포퓰리즘 공약, 앞으로 더 심해질 겁니다.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인기를 얻는 것에 목적을 둘 거예요. 얼마 전에 이성윤 의원과 이런 일이 있었어요.......”
김대성 의원의 이성윤 씹기는 이어졌다.
그리고 그가 힘 있게 말했다.
“기자님들이 불만 지펴 주십시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동시에 보좌관이 일어섰다.
그는 기자들의 앞에 준비한 흰 봉투를 탁탁 놓는다.
정치 싸움이 벌어지면 진실은 뒷전이 된다.
1%의 진실이 99%의 거짓을 진실처럼 만들어낼 수 있다.
기자들은 그런 분야의 전문가였다.
봉투 안을 슬쩍 확인한 기자가 크게 웃었다.
“우린 의원님을 믿습니다. 흐흐흐.”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나라를 위해서입니다. 기자님들은 저와 함께 애국을 위한 길을 걷게 될 겁니다.”
김대성 의원이 고개를 숙였다.
충성파 의원들이 짝짝짝 손뼉을 친다.
성윤을 궁지로 몰기 위한 계략이 시작되고 있었다.
다시 허리를 편 김대성 의원이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식사하죠. 비가 와서 날씨가 쌀쌀하지만 술이 들어가면 괜찮을 겁니다. 게다가 이 집의 삼계탕이 정말 맛있거든요. 마음껏 드세요. 하하하하.”
분명 삼계탕이라 말했다.
하지만 김대성 의원이 들어 올린 것은 참치 회다.
삼계탕집에서 먹는 참치 회, 김영란 법을 걱정해서다.
인원수에 맞게 카드로 결제하고 나머지는 현금으로 계산할 게 분명하다.
김대성 의원은 기자들을 움직이기 위해 돈을 푸는 중이었다.
이탈리아의 속담에 그런 말이 있다.
황금의 대포를 쏘아 대면 정의는 힘이 빠진다.
돈은 기자들을 움직였다.
“그럼, 삼계탕 잘 먹겠습니다. 닭인데 수영 잘하게 생겼네요. 하하하.”
모두 화기애애하게 젓가락을 들었다.
그런데, 탁!
“전 빠질게요.”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했다.
김미선 기자였다.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건 아닌 것 같아요.”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더 말하지는 못한다.
앞에는 괴물들이 앉아 있었으니까.
김대성 의원은 그녀를 노려봤다.
“아닌 것 같다고?”
그녀가 작은 가방을 손에 쥐고 일어선다.
김대성 의원의 위협적인 목소리가 흘렀다.
“김 기자.”
김미선 기자가 멈칫댄다.
김대성 의원이 말을 잇는다.
“봄이 오니까 미세 먼지가 심하지? 지방에 가면 좀 괜찮을까? 난 김 기자의 건강이 걱정되는데.”
권력을 이용해 지방으로 옮겨버리겠다는 뜻.
김미선 기자가 한숨을 내뱉는다.
“지방도 괜찮겠네요.”
“펜대가 꺾일 수도 있어.”
상대는 김대성 의원이다.
대한당에서도 꽤 큰 권력을 쥐고 있다.
김미선 기자는 입술을 꾹 깨문다.
하지만 기자의 자존심은 있었다.
“...못 본척 하겠습니다. 하지만 뜻을 함께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김 기자!”
김미선 기자는 몸을 돌려 미닫이문 앞에 섰다.
문을 열려고 손을 내미는데......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렸다.
“어?”
김미선 기자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 앞에는 성윤이 서 있었다.
“기자님,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밖에 비오니까 우산 쓰시고요. 우산 없으면 제 보좌관에게 말하세요. 줄 겁니다.”
김미선 기자는 성윤의 눈을 봤다.
싸늘한 눈빛에 움찔한다.
“그럼.”
성윤은 김미선 기자의 옆을 스쳐 안으로 들어갔다.
시선을 돌려 앉아 있는 의원들의 얼굴을 눈에 담는다.
의원들은 똥파리를 보듯 성윤과 마주했다.
기자들은 봉투와 종이를 허겁지겁 가방에 담았다.
김대성 의원이 여유로운 눈길을 보내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이성윤 의원, 식사하러 왔으면 앉아서 먹어.”
“식당에서는 금연 아닌가요?”
“그건 일반인들 이야기지.” 성윤이 김대성 의원의 맞은편에 앉았다.
“삼계탕집인 줄 알았는데, 회는 뭐야?”
모두 ‘저 새끼는 여기 왜 왔지?’하는 눈빛으로 성윤을 본다.
하지만 성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요즘에는 회가 삼계탕처럼 나오나 봐요? 신메뉴? 그럼, 이건 소고기 삼계탕?”
그 말과 동시에 성윤은 손으로 회를 집어 게걸스럽게 먹었다.
모인 사람들의 눈이 모두 찌푸려지는 사이 김대성 의원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터졌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성윤은 김대성 의원을 신경 쓰지 않았다.
스테이크를 손으로 콱 집어 입에 넣으며 말한다.
“혹시 암행어사가 출두한 춘향전 압니까?”
“뭐?”
“이몽룡이 변 사또의 앞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이 스테이크는 백성의 살이다. 그래서 그런지 개같이 맛있네.”
성윤의 손은 스테이크를 만져서 기름과 양념이 번질번질 묻어 있었다.
그 손으로 와인잔을 거칠게 쥐었다.
“이 와인은 백성의 피고! 그래서 그런지 더럽게 맛있네!”
성윤은 와인을 물을 먹듯 단번에 마신 후 잔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공간은 한 순간에 얼어붙었다.
모두 몸이 찌릿할 정도로 무서운 눈빛으로 성윤을 노려본다.
하지만 성윤은 장난스럽게 웃는다.
“농담입니다. 농담. 여기 계신 분들이 변 사또는 아니잖아요? 여기 춘향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그렇게 인상 쓰지 마세요.”
성윤의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다.
여전히 쏘아볼 뿐이다.
성윤이 참치 회를 손에 들며 말했다.
“여기 누룽지 삼계탕이 유명한 이유가 삼계탕을 소, 거위, 참치로 삼계탕을 만들어서 그런가 봐요? 참신한 레시피네요. 아니면 국회의원에게만 대접하는 특별 요린가요? 가격은 김영란법이 있으니까 3만원? 가성비 최고네요.”
김대성 의원의 도깨비처럼 미간은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정치인이다.
찌푸려진 표정을 지우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왜 나쁜지는 모르겠지만, 예의를 갖춰야지. 여기 어른들이 있어.”
“지금 먹는 것 세금이죠? 이런 곳에 쓰라는 세금이 아닌 것 같은데, 반성은 하지 않고 예의를 따지면 어린 제가 죄송하다고 말해야 하나요?”
“기자들도 와 있어.”
“기자요?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해야 할 긍지 높은 기자는 안 보이는 것 같은데요?”
성윤은 어떤 사람도 없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기자들이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지만 성윤은 신경 쓰지 않았다.
티슈를 뽑아 기름진 손을 닦는다.
“제가 아까 뭐라고 했죠? 암행어사 출두라고 했나?”
“이성윤 의원...... 나가. 나중에 이야기하지.”
“현실에서는 검찰 출두네. 김대성 의원님. 저는요. 피해자가 되기 전에 가해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김대성 의원의 눈썹이 꿈틀댔다.
“그게 무슨 소리지?”
“국민을 피지배자로 보는 국회의원. 돈 몇 푼 주고 감옥에 가라는 국회의원은 사라져야죠.”
다른 사람들은 성윤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김대성 의원의 얼굴이 허옇게 질려가고 있다.
“서, 설마.......”
“네.”
성윤은 원내대표를 교통사고 낸 사람을 만났다. 속마음을 들으며 그의 약점을 찔러 들어갔고 진실을 자백할 것을 약속받았다.
성윤이 차갑고 느릿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김대성 의원님, 체포동의요구서가 제출되었어요.”
김대성 의원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이 개새끼가!”
그가 접시를 콱 집는다.
바로 성윤에게 집어 던질 태세다.
그때, 미닫이문이 드르륵 열린다.
그 앞으로 한 남자가 섰다.
“중앙지검 박철우 검사입니다. 체포동의요구서 전에 주진만 원내대표님의 교통사고 참고인 조사를 부탁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김대성 의원은 접시를 든 채 딱딱한 돌덩이처럼 굳어갔다.
공간은 적막했다.
성윤의 낮은 목소리만이 공간을 채운다.
“금연 구역 흡연과 김영란법 위반도 넣어 주세요.”
< 산소 호흡기. -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