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75화 (75/300)

< 산소 호흡기. - (2) >

새벽이다.

청와대에서 걸려온 느닷없는 전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성윤은 전화를 넘겨받았다.

“이성윤입니다.”

-이성윤 의원? 나야.

텔레비전에서 듣던 대통령의 목소리다.

-얼굴 한번 보고 싶었는데 첫인사를 전화로 해서 유감이야.

당대표 급이라면 모를까 아무리 국회의원이라고 대통령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성윤은 재선의원.

심지어 어떤 당직도 맡지 않았다.

피라미일 뿐이다.

‘그런데, 이 시간에 왜?’

운전석에 앉은 정우는 휴대폰을 들고 기사를 확인한다.

대통령에 관한 모든 기사를 빠르게 훑는 중이다.

하지만 기사는 쉽게 찾기 어렵다.

언론은 잔인했다.

시든 권력의 기사는 쓰지 않는다.

조만간 아프리카 한 국가의 대통령이 방한한다는 기사만 작게 보인다.

정우가 고개를 저으며 속삭이듯 말한다.

“특별한 일은 없어요.”

성윤은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술 한잔하던 중이야. 자네 이야기가 참 많이 나와. 그래서 한번 만나보고 싶어졌어. 조만간 비서실 통해 연락이 갈 테니 시간 비울 수 있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요원이 알아낸 이야기 한 번 들어보겠나?

요원이면 국정원이다.

성윤은 휴대폰을 귀에 바짝 가져다 댔다.

대통령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원내대표 교통사고를 낸 트럭 운전자, 김대성을 만났다는 말이 있어.

“김대성 의원이요?”

-그래.

동시에 성윤의 머릿속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성종 건설 부장이 했던 말이 기억됐다.

-멍청한 놈이, 자기가 하겠다고 설치다가 일만 크게 벌여서......

이어서 수술실을 뒤에 두고 권력을 탐하던 김대성 의원의 혓바닥이 떠올랐다.

조각조각 흩어졌던 퍼즐이 확 맞춰진다.

‘김대성, 이 미친 새끼가...’

주진만 원내대표는 성종에 친화적인 사람이 아니다.

성종 그룹은 주진만 원내대표가 당권을 잡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래서 성종 그룹은 김대성을 만났다.

원내대표를 누르고 당권에 도전하라고 말했다.

대선까지 꽃길이 펼쳐질 거라고 바람을 넣었다.

그 말이 테러를 뜻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김대성 의원은 이미 청와대 주인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테러를 사주했다.

성윤은 턱을 쓸어 만졌다. ‘성종 건설 부장이 찾아온 것은 단순 확인이었나? 그럼, 김대성과 손을 잡은 것은 성종 건설?’

성종 건설 부장의 속마음을 해석해봤다.

성종도 김대성의 돌발 행동을 부담스러워 했다.

돈을 탐하는 장사꾼이 정치인의 권력욕을 예상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성윤의 생각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김대성 의원은 원래 백형욱의 계파였다.

그때 그는 가짜 사채업자를 만들면서까지 백형욱을 치려고 했었다.

그리고 이번엔 주진만 의원을 테러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 아니다.

배신을 꿈꿨던 놈은 또 배신한다.

그렇게 생겨 먹었으니까.

김대성 의원과 함께 있을 때 성윤은 속마음을 들었다.

하지만 사건의 배후를 알지 못했었다.

김대성 의원이 테러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권력만 바라봤다.

권력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죄책감은 없다.

국회에 있는 300명의 권력자.

별별 놈이 다 존재한다.

살인 청부를 했던 국회의원이 있었고 한 도시의 시장을 세워 놓고 노래 한 곡 하라며 마이크를 던졌던 국회의원도 있었다.

‘미친 새끼들...’

통화가 종료됐다.

정우가 묻는다.

“뭐래요? 장관하래요?”

“아니.”

“그럼요?”

“나중에 만나자네.”

“장관하라고요?”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레임덕 상황에 장관해서 뭐해? 일주일 하다가 짤릴 수도 있는데.”

“이력서에 한 줄 넣을 수 있잖아요.”

“인사청문회에서 탈탈 털릴 수도 있어.”

성윤은 고개를 틀어 창밖을 바라봤다.

그러자 정우는 엑셀을 밟으며 차를 움직인다.

창밖을 보는 성윤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왜 나에게 알렸을까. 왜 하필 나일까. 얼굴 한번 못 본 대통령이 왜 나를.....’

고민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부딪쳐 경험해야 한다.

생각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김대성?’

권력만을 바라보는 정치인 김대성.

언젠가 치우려고 마음먹었지만 그 시간이 빨라졌다.

문제는 증거다.

지금 가지고 있는 김대성의 비리로 골치 아프게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성윤이 원하는 것은 골치 아픈 정도가 아니다.

지옥을 보여주고 싶었다.

성윤이 입을 열었다.

“정우야.”

“네, 말씀하세요.”

“내일부터 적극적으로 움직여야겠어.”

성윤의 시선은 다시 창밖으로 향했다. 이제는 김대성이 박살 난 이후의 권력 판세를 생각해야 한다.

그의 아래에 깔린 의원들.

‘내 쪽으로 끌어 올 수 있을까?’

김대성의 위치를 온전히 받기는 힘들 거다.

아직 재선이며 어리기 때문에......

하지만 조금은 가능할 것 같다.

성윤의 머릿속에서는 복잡한 생각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

며칠 후, 서안시 사무실.

성윤의 앞에 선 정우가 얇은 서류 뭉치를 건넸다.

“여기요.”

“이 사람이야?”

“네.”

음주운전으로 원내대표의 차를 치고 구속된 사람.

그 남자의 모든 것을 조사한 서류다.

성윤은 한 장을 넘겼다.

재산 사항과 대략적인 가족 관계가 나왔다.

재산은 마이너스, 빚만 존재한다.

가족으로는 아내와 아들 하나가 있다.

또 한 장 넘겼다.

‘어?’

성윤의 손이 점점 빨라진다.

남자의 여덟 살 난 아들은 지금 병원에 있다.

술에 취한 미친 새끼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던 아들에게 칼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아들은 내장이 망가졌고 의식을 찾지 못했다.

치료비가 모자랐다.

하지만 국가는 도와주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병원에서 살았고 남자는 밤낮없이 일했다.

하지만 돈은 모자랐다.

‘여기서 김대성이 나타난 건가?’

성윤의 생각대로 김대성 의원이 돈을 흔들며 남자에게 접근했다.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밥을 사주며 혓바닥을 놀렸다.

“음주운전 교통사고. 상대가 식물인간이 되어도 길어야 3년이야. 좋은 변호사를 쓰면 1년 이하지. 그리고 원내대표는 자네를 선처할 거야. 걱정할 것은 없어. 그게 우리나라 법이니까. 잠깐 감옥에 다녀오면 3억. 요즘 세상에 연봉 3억짜리 직업은 없지.”

성윤은 서류를 덮으며 고개를 저었다.

권력이 뭔지 돈이 뭔지 한숨만 나온다.

휴대폰을 들어 남자의 아들 사건을 검색해봤다.

끔찍한 사건이었지만 기사는 보이지 않는다.

요즘은 훨씬 더 잔인해야 언론에 오를 수 있다.

한참 페이지를 넘겨서야 짤막한 기사 몇 개를 찾을 수 있었다.

남자의 아들에게 칼을 휘두른 범인은 재판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 범인은 사건 당일 술에 취했었고 자신은 조현병을 앓고 있다고 변명한다.

얼굴 한번 보고 싶었지만 그놈의 인권이 무엇인지 모자이크되어 있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때문이다.

법은 범인의 사진을 ‘공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성윤이 정우에게 시선을 틀었다.

“법안 하나 준비해.”

“어떤 거요?”

성윤이 휴대폰 화면을 보였다. “이런 것은 ‘공개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공개해야 한다.’로 바뀌어야지.”

‘공개할 수 있다.’와 ‘공개해야 한다.’는 몇 글자 차이다.

하지만 속에 품은 차이는 크다.

정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바로 준비할게요. 그리고 이거......”

정우가 또 다른 서류를 내민다.

“뭔데?”

“그 시민단체 있잖아요? 불법체류자 인권을 생각하라고 탄원서 왔어요. 의원님만 시대에 역행하냐면서......”

“그냥 버리라니까. 합법체류자면 몰라도 내가 불법체류자를 왜......”

“그럼, 버릴게요.”

정우가 서류를 다시 품에 넣을 때 성윤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잠깐. 줘봐.”

성윤은 서류를 받아들고 시민단체의 이름으로 시선을 옮겼다.

지금껏 신경도 쓰지 않았던 시민단체다.

그런데 이름이 익숙하다.

‘새 사랑 인권 협회?’

성윤은 휴대폰을 들고 읽던 기사를 다시 훑었다.

마지막에 짤막한 한 줄이 보인다.

[새 사랑 인권 협회 소속 정혜선 변호사는 정신 감정을 요구하며......]

새 사랑 인권 협회에서 범인의 변호를 맡고 있었다.

정신 감정을 통해 형량을 줄이려 한다.

성윤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렀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돈 때문에 감옥에 간다.

가해자는 변호사를 얻어 형량을 줄인다.

누구를 위한 인권일까?

세상 참......

‘죽어야 할 놈, 바꿔야 할 것. 참 많네.’

성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서류를 가리켰다.

“만나봐야겠는데.”

“지금 바로 연락할까요?”

“어, 준비해줘.”

잠시 후, 성윤은 구치소로 향했다.

구치소장과 직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한 줄로 섰다.

가운데 있던 구치소장이 가장 먼저 허리를 굽힌다.

그러자 다른 직원들도 뒤이어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성윤도 그들을 향해 예의 있게 인사했다.

“들어가시죠.”

성윤이 앞장서자 구치소장이 바짝 옆에 선다.

바로 브리핑이 시작된다.

“저희 구치소는 면회객과 재소자들의 편의와.......”

성윤이 손을 저었다.

“부담 가지실 필요 없어요. 면회를 왔을 뿐이니까요. 그리고 생각보다 참 안락해 보이네요. 면회객들이 불편하지 않겠어요.” “아, 네. 신경 쓰고 있습니다.”

입에 바른 칭찬에 구치소장이 멋쩍게 웃었다.

성윤은 성큼성큼 구치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투명 아크릴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한 남자와 마주 앉았다.

음주운전으로 원내대표의 차를 치고 구속된 남자다.

표정은 초췌하다.

구치소 생활이 쉽지 않은지 지금 당장 쓰러져도 이상할 것 같지 않다.

남자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원내대표님 일은 죄송합니다. 제가 그날 미쳤었는지......”

남자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성윤의 목소리는 높낮이 없이 흐른다.

“저기... 알고 왔는데요. 누가 시켰는지. 뒤에 누가 있는지.”

“네?”

“알고 왔어요.”

남자의 눈동자는 태풍 속 바다처럼 흔들렸다.

잠시 말을 못 했다.

하지만 이어진 목소리는 담담하게 책 읽듯이 흐른다.

마치 외운 것처럼.

“음주였습니다. 아들 일로 마음이 아파서 점심부터 술을 마셨거든요. 누가 시키고 지시하고 그런 것 없어요. 누가 감히 대한당의 원내대표님을......”

성윤은 그의 속마음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는 불안에 떨고 있다.

걸릴까 봐.

그럼, 돈을 못 받을까 봐.

그 시각, 김대성 의원은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천장을 보고 있었다.

‘몇 명만 더 끌어오면 정말 당대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백 명이 넘는 국회의원을 손에 쥔 갑 중의 갑 당대표.

손을 뻗으면 권력이 닿을 듯했다.

그가 히죽히죽 웃는다.

백형욱 사건에서부터 지금까지 위기는 있었지만 모두 기회로 삼았다.

그리고 이제 거의 다 왔다.

어쩌면 대선을 거쳐 정권을 손에 쥘 수도 있다.

‘이성윤 그놈은 참 고마운 놈이야.’

권력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만들어주는 느낌이다.

‘당권을 손에 쥐면 이성윤부터 치워야지.’

성윤은 그의 비리를 두 개나 갖고 있다.

당권으로 향하는 길을 만들어준 것은 고마웠지만 비리를 갖고 있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권력을 손에 쥐면 다 필요 없다.

그깟 비리는 땅속에 파묻어 버릴 수 있었다.

어린 재선 의원의 목은 가볍게 비틀 힘이 생긴다.

김대성 의원의 번들거리는 입술이 미소를 그렸다.

‘좋네, 좋아.’

지이이잉.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다.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던 김대성 의원이 휴대폰을 들어 귀에 댄다.

“김대성입니다.”

-구치소장입니다.

“아, 무슨 일이에요?”

-이성윤 의원이 그놈의 면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때, 국회의원이 찾아오면 연락 달라고 하셔서...... 김대성 의원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이성윤이?”

-아, 네.

김대성 의원은 허겁지겁 재킷을 걸쳤다.

그가 생각하는 이성윤은 눈치가 빠르다.

젊은 놈이 유도리가 없다.

좋은 게 좋은 걸 모른다.

그놈은 하나에 꽂히면 철저히 박살 낸다.

“보좌관!”

문이 열리고 보좌관이 들어온다.

“네, 의원님!”

“지금 당장 차 준비해! 어서!”

김대성 의원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는지 보좌관은 재빨리 방을 벗어난다.

김대성 의원은 입술을 잘근 씹었다.

“이성윤, 이 새끼가......”

< 산소 호흡기.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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