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72화 (72/300)

< 배후. - (1) >

박무혁 의원이 커피를 다시 손에 쥐며 부드럽게 성윤을 본다.

“성종 회장님, 어릴 때부터 자주 봤던 아저씨야.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이성윤 의원이 국회에 모셨으면 좋겠어. 감옥 구경은 내가 시켜드리지.”

성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박무혁 의원이 성윤의 옆을 스치며 속삭인다.

“성종과의 싸움, 4년이라는 시간이 무료하지 않을 거야. 천천히 생각해 봐. 시간은 많아.”

성윤은 시선을 틀었다.

복도를 빠져나가는 박무혁 의원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는 지독할 정도로 지루한 세상에 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오후 2시, 본회의가 시작됐다.

똑같은 말을 계속 듣는 고행의 시간.

물리 수업을 듣는 기분이다.

잠깐 조는 의원도 있고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확인하는 의원도 있다.

그럼, 먹잇감을 기다리던 기자들은 셔터를 눌러댄다.

실시간으로 기사가 올라갔다.

[첫 국회, 시작부터 딴짓하는 의원들.]

댓글은 분노의 물결이다.

-역시 선거 때만 고개 숙이는 새끼들.

-세금 낭비.

-국회는 없애는 게 답!

하지만 그들은 힘없는 의원이다.

힘 있는 중진 이상은 카메라를 피해 사각지대에 앉는다.

그럼, 조금은 느슨하게 있을 수 있다.

김대성 의원이 그랬다.

그가 옆자리에 앉은 다른 중진 의원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저녁에 약속 있어요?”

“왜? 술 한잔하게?”

“아귀찜 맛있게 하는 집이 있다던데요. 가볼까요?”

“좋지.”

사각지대라고 하지만 기자는 전쟁터의 저격수처럼 두 사람의 잡담을 귀신같이 잡아낸다.

그리고 또 기사가 올라간다.

하지만 이번에는......

[심각한 표정으로 법안에 대해 의견 나누는 김대성 의원.]

분명 잡담을 했다.

하지만 김대성 의원은 힘이 있다.

기자 역시 김대성 의원에게 우호적인 언론사였고.

성윤은 재선 의원이다.

김대성 의원이나 중진 의원들처럼 명당을 차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적당한 자리에서 본회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본회의가 끝났다.

성윤의 옆으로 푸근한 인상의 중년이 다가왔다.

“한영배입니다.”

초선의원 한영배.

탤런트 출신이다.

재벌 회장부터 가난한 아버지까지, 배역을 넘나들며 시청자에게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은 순수한 마음에 총선에 출마해 배지를 달았다.

그가 공천을 받기까지 당 지도부를 향해 얼마나 비굴하게 고개 숙였을지는 보지 않아도 예상 가능했다.

연예인 출신이 정치를 잘하기는 어렵다.

정치인이 갖춰야 할 가장 큰 능력 중 하나가 순발력.

정치인은 혓바닥을 무기로 싸우는 검투사다.

언제 콜로세움에 세워져 난잡한 토론을 할지 모른다.

상대가 갑자기 공격을 들어오면 짧은 시간에 상대의 말을 이해하고 치고받아야 한다.

그리고 말실수를 할 수 있도록 함정까지 깔아 놓으며 반박해야 한다.

그럼, 상대는 그 함정을 피하고 다른 함정을 만든다.

거기에 휘말리면 ‘어버버’ 되지도 않는 변명을 이어가며 흑역사가 탄생하는 거다.

전문직 출신, 직업 정치가들은 이런 싸움이 가능하다.

입으로 먹고살았던 변호사는 말할 것도 없다.

다른 전문직 출신 역시 논리의 허점을 파고들 줄 안다.

하지만 연예인들은 부족하다.

지금껏 해왔던 직업이 각본 속의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예인 출신 국회의원의 현실은 인지도 높은 거수기일 뿐이다.

성윤은 꿈을 통해 한영배를 기억하고 있었다.

국방위에 있던 한영배는 얼토당토않은 법안이 다수결로 통과되는 걸 지켜봐야 했다.

배지를 달고 있어도 무엇 하나 막아내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책감.

그리고 이득에 눈이 먼 국회의원들에게 분노를 느꼈다.

그래서 그는 국회에 반합을 가져와 라면을 끓여 먹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병 생활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이등병의 설움을 알아! 한겨울에 근무 끝나고 반합에 라면 먹어봤어?”

하지만 그의 이미지는 이미 망가졌었다.

언론과 네티즌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국가 망신, 국회에서 반합에 라면 끊이는 한영배 의원]

댓글은 그를 조롱했다.

-이등병이 근무 끝나고 반합 라면을 어떻게 먹어? 그리고 규정 위반 아님? 자랑할 게 아닌데.

-우리 행보관은 뽀글이도 못 먹게 했다! 이 국개의원놈아!

ㄴ나랑 같은 부대인 듯. 그 행보관이 나중에는 컵라면도 못먹게 함. 환경호르몬 나온다고.

-일단 반합 출처부터 알아냅시다. 진짜 군용인지 아닌지.

-딴따라 새끼가 국회의원이라고 똥오줌 못 가리는 거지.

결국 그는 재선에 실패하고 쓸쓸히 사라졌다.

국회의원을 하며 이미지가 나빠졌기 때문에 드라마에도 나오지도 못했다.

잠시 꿈속을 기억한 성윤은 재빨리 일어나 그의 손을 잡았다.

“이성윤입니다. 한영배 의원님의 공약을 읽었어요. 복지에 관한 견해는 저와 똑같던데요?”

“복지 공약이요? 읽어보셨어요?”

한영배는 눈을 깜빡였다.

그는 초선 의원이다.

다른 의원에게 인사를 하러 다녔다.

대부분 ‘그 여자 연예인 연락처 알아요? 잠자리가 죽인다면서요?’ 같은 음담패설로 인사를 받았다.

한영배는 그들 앞에서 억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싫었다.

몸담았던 연예계, 분명 더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자부심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성윤은 공약을 언급했다.

많이 기뻤나 보다.

눈주름이 부드럽게 휘어진다.

“제가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봉사활동을 많이 다녔어요. 그런데, 국가 정책에 포함되지 못하는 힘든 분들이 많더라고요.”

복지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처음으로 정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된 한영배는 실컷 떠든다.

성윤은 잠자코 그의 말을 들어줬다.

한영배는 필요한 사람이다.

일단 정치적 공감대가 있었다.

그 역시 대한당에 적을 두고 있지만 상당한 합리주의자다.

그리고 불의를 보면 과감히 퍼포먼스를 할 정도로 행동력도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연기력이 된다.

다른 정치인들은 우습게 보는 재능.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의 한영배는 가장 무서울 수 있다.

성윤은 한영배의 속마음을 들으며 원하는 칭찬을 이어갔다.

하지만 자신의 속은 내비치지 않았다.

천천히 내 사람으로 만들 뿐이다.

***

성윤은 의원 회관의 사무실로 향했다.

의자에 앉자마자 정우가 서류를 건넨다.

“그때 말씀드린 보좌진 이력이에요. 홍보 쪽은 의원님이 생각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뺏고요. 이 사람은 이번에 낙선한 박승봉 의원 아래 있던 보좌관인데요. 정책 능력이 뛰어나고 인맥이 꽤 넓어요.”

성윤은 정우가 건넨 이력서를 펼쳤다.

민국당에 있던 보좌관으로 이름은 김현석. 나이는 마흔다섯.

앞으로 민국당 의원과의 연결통이 되어줄 사람이다.

나머지 사람의 이력도 확인했다.

특별한 것은 없어 보였다.

어차피 정우에게 일임한 문제다.

다시 이력서를 건네며 말했다.

“알아서 해. 그리고 대정과 성종 사이에 문제가 있었는지 알아봐. 최대한 조용히.”

정우는 눈치가 빠르다.

성종과 대정이라는 말만 듣고 본질을 묻는다.

“...설마, 박무혁 의원이 성종을 친대요?”

“그럴 생각인 것 같아.”

정우의 미간이 팍 일그러졌다.

“아니, 대정은 깨끗하데요?”

“몰라.”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기 딱 좋네요. 그리고 서안시에 성종 쇼핑 본사 이전 논의 중이잖아요? 의원님이 보궐 선거할 때 공약했던 거요. 그런데, 대한당이 앞장서면 다 물거품 되는 거 아니에요?”

사람들은 재벌을 욕한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주는 쇼핑센터는 좋아한다.

집값 상승에 도움이 된다나 어쩐다나.......

쇼핑센터가 나가리 되면 정치인은 힘이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럼, 다음 선거에서 빌빌댈 수도 있다.

재벌과 싸움에서 어려운 점이었다.

성윤이 손을 저었다.

“새우등 안 터지려고 준비하는 거니까, 조심히 알아봐. 그리고 며칠 전에 내가 줬던 명단 있지?”

“아, 네.”

미래의 악마들이다.

“연락해서 식사 약속 잡아줘. 그리고.......”

“또 있어요?”

“오대민 의원 산악회 일정도 알아보고.”

엘리트 오대민 의원.

꿈속에서는 친했지만 현실에서는 다르다.

그는 성윤에게 적대적인 감정이 있었다. 하지만 진작 만났어야 했다.

그 역시 필요하니까.

정우가 수첩에 지시사항을 적으며 묻는다.

“이렇게 사람을 만나고 다니면 주변 시선이 안 좋지 않을까요?”

성윤은 이십 대 재선이라는 시답잖은 이유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할 일 없는 의원들은 성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핀다.

이유 없이 사람을 만나도 의미를 부여한다.

‘세력을 만드는구나!’

‘야망이 있어.’

‘우리 자리를 빼앗으려는 거 아냐?’

어차피 관심받는 것 과감히 행동하기로 했다.

적어도 박무혁 의원이 싸움을 시작하기 전까지 작은 세력이라도 만들 생각이다.

그래야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을 면할 수 있다.

성윤은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우중충했던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진다.

그러더니 천둥 번개와 함께 비바람이 몰아친다.

나뭇가지가 휘어지고 나뭇잎이 날아다닌다.

하늘은 밤처럼 어두워졌다.

“의원님?”

“어?”

성윤이 몸을 틀었다.

정우가 심각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들고 서 있다.

“왜?”

“김대성 의원 보좌관에게 전화 왔어요. 원내대표님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성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많이 다치셨대?”

“모르겠어요. 성종 병원으로 후송 중이라는 말까지만 들었어요. 그리고 다 모이라고.”

갑자기 쏟아진 비에 교통사고가 났다.

대한당, 특히 주진만 원내대표의 계파엔 청천벽력 같은 소리다.

대한당은 위태위태하다.

당 지도부가 물러나며 주진만 원내대표가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있었다.

그런데, 원내대표까지 자리를 빼게 되면......

대한당의 분열은 가속화된다.

물론, 지금은 주진만 원내대표의 안녕이 더 중요하다.

성윤은 재빨리 재킷을 걸쳤다.

정우도 차키를 손에 든다.

두 사람은 빠르게 사무실을 벗어났다.

검은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은 비를 쏟아냈다.

자동차의 와이퍼가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시야가 확보되지 않을 정도다.

여기저기 빗길 사고가 이어지는지 도로는 꽉 막혔다.

마음은 급한데 차는 거북이처럼 이동하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성윤은 조급한 마음을 다스리며 라디오를 틀었다.

[대한당 주진만 원내대표가 오늘 오후 다섯 시, 국회에서 당사로 이동하던 중 차선을 이탈한 트럭과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트럭을 운전하던 34살 이 모 씨는 만취 상태였던 것으로......]

‘대낮부터 술을......’

성종 병원에 도착한 것은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지하주차장에 차가 멈춰 섰다.

성윤과 정우는 뛰듯이 내렸다.

성윤은 익숙하게 엘리베이터를 찾아 달렸다.

분명 처음 오는 장소지만 꿈속에서 여러 번 와봤다. 이곳에서 죽기까지 했으니까.

잠시 그때의 악몽이 머릿속을 울렸다.

귓가에 총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젠장.’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상념을 떨치고 더 빨리 달렸다.

“잠깐만요!”

닫히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안에 타고 있던 남자가 열림 버튼을 꾹 누른다.

가까스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몇 층이야?”

정우가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한다.

각 보좌관들에게 온 많은 메시지가 한 번에 튀어나왔다.

“...8층, 수술실이요.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고요. 다리 수술만 하면 되는 것 같아요.”

“그래?”

“네, 그리고 의식도 있었나 봐요. 수술실 들어가기 전에 빨리 복귀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대요.”

“아.”

성윤은 엘리베이터의 벽에 등을 기대고 낮게 한숨을 내뱉었다.

긴장이 풀렸다.

그러자 원내대표의 건강 걱정이 끝나고 다른 생각이 쏟아져 들어왔다.

대한당의 분열은 성윤이 예측하던 거다.

하지만 가속화된 분열은 막아야 했다.

거센 물줄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까.

갈등이 극에 달하면 국회 시작부터 탈당이라는 초강수를 둘만 한 사람들도 존재했다.

그건 성윤이 원하는 게 아니었다.

‘다행이네. 전부.......’

주진만 원내대표가 빠르게 복귀하면 해결될 일이다.

그때, 옆에 있던 남자의 속마음이 성윤의 귀에 들려왔다.

-안 죽었나?

성윤의 눈이 사납게 휘어졌다.

그 시선이 남자에게 향한다.

< 배후.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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