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70화 (70/300)

< 판도가 달라지다. - (2) >

***

대한당 당대표와 지도부가 카메라 앞에 섰다.

그들은 최대한 죄송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기자들은 그 표정을 렌즈에 담는다.

그리고 당대표가 침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번 총선 패배의 원인은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당 지도부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저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동반 사퇴하기로 했습니다.”

카메라 셔터가 연이어 눌러졌다.

당대표가 계속 말한다.

“국민의 선택을 회초리라 생각하고 엄중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더 낮은 자세로 임하겠습니다.”

대한당은 이번 국회에서 128석을 얻었다.

대단한 숫자다.

하지만 대한당에겐 용납 못 할 숫자였다.

과반을 넘지 못했고 병신처럼 빌빌대다가 텃밭을 내주기도 했다.

완벽한 패배.

민국당은 축배를 들고 있을 시간에 대한당의 지도부는 물러가고 있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대한당 최고위는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주진만 원내대표를 선출했습니다. 대한당은 새로운 지도부가 선출되기까지 주진만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삑.

텔레비전의 화면이 검게 변했다.

성윤은 쭉 기지개를 켰다.

‘바뀌었네.’

당 지도부의 총사퇴.

꿈에서는 없던 일이다.

그때도 대한당은 민국당에 패배했었다.

하지만 당대표는 그 자리를 버텨냈다.

견제할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주진만 원내대표의 계파가 존재했다.

그들은 다른 계파와 손을 잡고 당대표에게 책임을 물었다.

물론, 당대표를 사퇴했을 뿐이다.

몇 달간 조용히 있다가 권력을 얻기 위해 발악할 거다.

그게 대한당 분열의 씨앗이 될 것이고......

여기까지 생각하던 성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까......’

대한당 몰락의 원인을 굳이 찾아보면 당대표가 아니다.

원인은 성윤에게 있었다.

전 원내대표, 박대철 그리고 백형욱의 섹스 스캔들까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성윤은 그 중심에 있었다.

그때마다 대한당의 지지율이 뚝뚝 떨어졌다.

‘내가 폭탄이었어......’

황당한 웃음이 터졌다.

대한당의 침몰에 원인을 제공한 것 같아서 조금 미안했다.

하지만 그뿐이다.

애정은 없었다.

꿈속의 50년, 성윤이 활동했던 것은 민국당이었다.

대한당과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처럼 끝까지 싸웠었다. 그렇다고 민국당에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민국당은 성윤을 매몰차게 버렸었다.

대한당이나 민국당이나 좋은 감정이 있을 수 없다.

비록 꿈속이었지만 워낙 생생했고 그대로 벌어지는 일이 많으니까.

똑똑 짧은 노크와 함께 정우가 들어왔다.

손에는 성윤이 보고해 달라던 서류가 들려 있다.

서류를 건네받은 성윤은 착착 넘겼다.

이번에 당선된 의원들의 명단이다.

이번에 물갈이된 사람이 141명.

4년 계약직의 최대 약점이다.

검찰총장이나 군 장성의 영혼을 뽑아 들 정도로 강한 권력을 쥐고 있지만 그 시간은 4년.

낙선하는 즉시 백수가 된다.

전문직이 아니거나 그동안 해먹은 게 없다면 앞으로의 인생은 암담할 거다.

그리고 국회의원의 아래에 있던 9명의 보좌진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선거에서 141명의 의원이 사라지며 함께 탄생한 백수의 숫자가 1269명이다.

물론 능력 있는 사람은 다른 의원들이 재빨리 스카웃하겠지만 나머지는 여의도를 배회한다.

“보좌진 찾는 중이지?”

“일단 네 명 정도만 구하려고요. 정효순 주임에게는 민원을 맡길 거예요. 그리고 회계를 맡을 사람하고 홍보를 맡을 사람, 국회에서 정책 파트를 도울 사람 두 명. 그렇게 4급 한 명, 5급 두 명, 6급 한 명.”

성윤이 손가락을 꼽아봤다.

“그럼 너하고 주임님 그리고 나까지 하면 우리 식구가 총 일곱이 되네?”

“네.”

“두 명은 내가 뽑아도 되나?”

“물론이죠.”

“홍보 쪽은 내가 찍어뒀던 사람이 있어. 그러니까 그건 놔두고. 한 명 정도는 민국당 쪽에 있던 사람을 받았으면 하는데......”

“민국당이요?”

“여의도 배회하는 사람 중에 괜찮은 인물로 골라 봐.”

정우는 턱을 쓸어 만졌다.

보좌진은 당의 이념보다 전문성을 갖고 움직이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념을 가진 강성도 존재한다.

민국당에 있던 보좌진을 뽑는 것은 자칫 내부에 스파이를 두는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고심하던 정우가 묻는다.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정우가 어떤 걱정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성윤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갖고 있다.

스파이는 우습지도 않다.

“앞으로 민국당과 대한당은 분열될 거야. 그때 뱀 머리라도 되어서 독이라도 품으려면 세력이 있어야지. 그래서 당을 떠나 정치적 뜻이 맞는 사람을 찾고 싶어. 철저한 실용주의, 합리주의. 우리 국민 우선주의. 정말 어려운 사람을 돕는 국회의원. 이해됐지?”

성윤은 당을 떠나 제3세력을 만들려 하고 있다.

민국당에 있던 보좌진은 그 세력을 위한 안배다.

물론 성윤은 꿈을 통해 미래를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시점의 민국당은 잘 모른다.

누가 야비한지, 의리가 있는지, 깨끗한지 더러운지.

성윤이 민국당으로 간 것은 약 십 년 후의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민국당에 있던 보좌진을 등용해 민국당과 연결되는 통로로 활용할 거다.

잠시 고민하던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대는 어떻게 할까요? 끈으로 쓰려면 연로한 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능력만 있으면 상관없어.”

“알겠어요. 알아볼게요. 그럼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오늘 일정은?”

정우가 악마처럼 웃는다.

“정신이 없겠죠?” 정우의 말대로 이후의 일정은 정신이 없었다.

선거 때 도와줬던 분들을 찾아가 인사했다.

당 사무실을 들렀고 각 향우회를 찾았다.

노인 회관과 서안 보육원 그리고 아파트 입주민 대표까지 만나 감사를 전했다.

커피를 마시고 주스를 마시고 또 마셨다.

민원을 듣고 수첩에 적었다.

청탁을 받고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했다.

한 시간에 3~4개의 스케줄이었다.

그리고 오후 5시.

성윤은 혼자 차에 올랐다.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진이 빠졌다.

사탕을 하나 입에 넣고 당을 채운 후 시동을 걸었다.

서울로 가야 했다.

박 노인이 주선한 소개팅 약속.

본격적으로 바빠지기 전에 만나기로 했다.

미루면 또 언제 시간이 날지 알 수 없었다.

여자를 만난다는 설렘보다 일정을 처리한다는 목적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감성이 메말라가나......’

헛 웃음이 흘렀다.

그러고 보니 사진이나 이름도 듣지 못했다.

약속 장소만 들었을 뿐이다.

이제 와 사진을 달라 말하기도 뭐하다.

‘궁금하기는 하네.’

잠시 후, 6시 30분.

성윤은 호텔의 레스토랑에 들어와 예약한 자리에 앉았다.

퇴근 시간과 겹쳐 조금 일찍 출발했는데 다행히 약속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커피를 시킨 후 고개를 틀어 창밖을 봤다.

흘러가는 한강과 건너편으로 고급 주상 복합 아파트가 보인다.

‘예쁘네.’

봄철의 서울 하늘은 미세먼지로 우중충하다.

하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깨끗하다.

바쁜 일정을 보낸 탓인지 유유자적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수군대는 소리가 들린다.

“맞지? 이성윤.”

“이성윤? 맞네.”

이런 게 연예인 병인가?

괜히 의식하게 된다.

창밖을 보는 행동도 부자연스럽다.

커피를 쥐는 손가락도 이렇게 저렇게 해본다.

그러다가 픽 웃었다.

‘내가 뭐라고.’

평소처럼 행동했다.

그들도 각자의 식사에 집중하는지 곧 성윤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소개팅의 시간 역시 다가왔다.

그제야 긴장되기 시작한다.

‘여자를 만나본 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된다.

자칫 청문회처럼 질문할 수도 있다.

그때, 정우에게 메시지가 왔다. 정우 : 소개팅에서는 가볍게 웃겨 주는 게 신사의 미덕이죠. 하나 말씀드릴게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왕은? 최저임금. 이거 말하면 여자분이 빵 터질 겁니다. 하하하하.

‘미친놈.’

성윤은 휴대폰을 품에 넣었다.

그런데, 다시 진동을 울린다.

또 정우인가 했는데 주진만 원내대표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네, 원내대표님.”

주진만 원내대표는 대한당 비상대책 위원장을 맡았다.

책임이 막중한지 목소리가 어둡다.

-바쁜가?

“아뇨,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내가 메시지 하나 보낼 테니까 한 번 읽어봐. 내일 발표할 대한당 결의문이거든? 어떤지 젊은 사람의 생각을 듣고 싶어.

사실 결의문 따위에 신경 쓰는 국민은 거의 없다.

정치에 관심 많고 꼼꼼한 사람만 읽어볼 뿐이다.

하지만 원내대표의 말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보내주십시오. 바로 읽어보겠습니다.”

통화가 종료됐고 바로 메시지가 왔다.

[앞으로 혁신을 통해 대한당을 발전시키고 국민이 원하는 정치......]

쭉 눈으로 훑은 후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기다리고 있었는지 주진만 원내대표는 다급히 받는다.

-젊은 사람 눈으로 보면 어때?

“괜찮은데요?”

-그래?

“네, 정말 괜찮습니다.”

주진만 원내대표는 몇 번이나 다시 성윤의 확답을 받고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테이블에 내려둔 후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성윤 의원님이시죠?”

고개를 틀어보자 한 여성이 보였다.

확실히 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인상.

복스럽다.

성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이성윤입니다.”

“채성희라고 해요.”

그녀가 자리에 앉았다.

식사가 나오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흘렀다.

성윤은 최대한 예의를 갖췄다.

박 노인을 위해서.......

하지만 계속 인연을 이어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지금 나이에 만나면 결혼을 염두에 둬야 한다.

하지만 성윤은 정치가의 아내가 얼마나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하는지 꿈을 통해 경험했다.

아내의 얼굴은 물론 신상까지 언론에 노출되고 각 커뮤니티의 게시판에 올라간다.

다른 정치 성향을 가진 네티즌들은 아내의 사진에 갖가지 합성을 하고 조롱당하며 비방한다.

명품을 입으면 뇌물 받았냐.

값싼 옷을 입으면 서민 코스프레냐.

얼굴이 어쩌고저쩌고......

뿐만 아니라 권력의 단 꿀을 빨고 싶은 파리 때가 몰려온다.

그들은 뇌물을 흔들어 대며 좋은 자리 또는 유리한 법안 등 더러운 청탁을 한다.

아내의 행동이 조금만 이상해도 결혼 잘 못 했다며 갖가지 욕이 잔칫상처럼 펼쳐진다. 그렇게 꿈속의 아내는 사망했다.

손가락질만 받다가.

잠시 꿈속을 기억하던 성윤은 고개를 저었다.

성윤 자신이 당하는 것은 상관없었다.

하지만 가족이 당하면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한다.

어떤 생각도 나지 않고 분노만 가득해진다.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꿈이라 다행인 거다.

식사를 마치고 성윤이 입을 열었다.

“가볍게 차 한 잔 마실까요?”

“차요? 좋아요.”

그녀는 활짝 웃었다.

근처 프렌차이즈 커피숍으로 향했다.

늦은 저녁이었지만 왁자지껄하다.

퇴근한 직장인, 술 한잔 마신 취객, 구석에 몰려 공부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두 사람은 자리를 찾아 앉았다.

성윤이 커피를 들고 테이블에 놓자 채성희가 입을 연다.

“초면에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뭐하지만 의원님은......”

“편히 말씀하세요.”

“저희 아버지는 지방의 병원에서 병원장을 하세요. 대학 병원처럼 큰 규모는 아니지만 나름 구색을 갖춘 종합병원이죠.”

“네.”

“...의원님의 부모님은 어떤 일을 하시나요?”

“아버지가 경비하시는데요.”

그녀의 눈이 황당하게 커진다.

“그 기사 진짜였어요?”

“네.”

성윤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 조금이지만 실망감이 스친다.

“지금도 하세요? 일이 힘드실 텐데, 그리고 아들이 국회의원인데......”

“즐겁게 하세요.”

말을 이어갈수록 그녀는 속물이었다.

돌려서 물어봤지만 성윤의 차와 집 그리고 재산에 관심이 많았다.

물론 성윤의 대답이 이어질수록 표정이 어두워졌다.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찌질하게 사나?’ 같은 표정으로.

성윤의 월급은 약 월 천만 원.

이 단체, 저 단체 돈을 내고 나면 반절도 안 남는다.

그런데 그것조차 이번 선거 비용으로 몰방했다.

대출까지 받으면서.

물론 선거 비용은 다시 받겠지만 신중석의 벤처가 대박을 내기 전까지는 가난할 거다.

그리고 애초에 성윤은 물욕이 별로 없었다.

물론 그녀에게도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장점도 있었다.

처음 만나는 자리였지만 스스럼없이 웃고 털털하게 행동한다.

박 노인은 아마도 이런 행동에 넘어간 것 같다.

어른들은 딸 같은 여자들이 살갑게 구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성윤에게는 관심 밖이었다.

그저 처음과 똑같이 예의 있게 행동할 뿐이다.

‘이제 집에 갈 시간이지?’

세 시간을 버텼다.

이 정도면 예의는 충분히 갖췄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현실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

하지만 꿈에서는 계속 들었던 그......

다급히 고개를 틀었다.

아내가 보인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저 멀리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친구들과 앉아 즐겁게 웃고 있다.

‘아.’

꿈속에서는 보지 못했던 미소.

지금은 정말 즐거워 보인다.

< 판도가 달라지다.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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