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도가 달라지다. - (1) >
안종기가 당황한 눈으로 성윤을 본다.
성윤의 지지자들에게 테러를 당하고 약자로 보여야 하는데, 실패해버렸다.
아니, 실패 정도가 아니다.
성윤의 기세만 더 살려줬다.
사람들은 피를 토할 것처럼 성윤의 이름을 외치고 있다.
“이성윤! 이성윤!”
그 시끄러움 속에서 성윤이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역시 안종기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고맙다고 하세요.”
안종기는 기가 찬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카메라가 두 사람을 찍고 있다.
플래시는 쉬지 않고 터지는 중이다.
성윤이 말한다.
“어서.”
안종기는 허탈한 한숨을 내뱉었다.
“...고맙습니다. 이성윤 후보님.”
“별말씀을요.”
성윤을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었다.
“이성윤! 이성윤!”
그날 밤.
정우가 사무실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보며 킬킬대고 있었다.
“의원님, 계란 맞는 것은 국가대표급인데요? 어쩜 이렇게 잘 맞을까요? 나도 하나 던져보고 싶네.”
다른 선거 위원들이 정우의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리고 쿡쿡쿡 웃는다.
정효순 주임이 목을 가다듬고 기사를 읽었다.
“이성윤 후보는 자신의 연설장에 들어와 봉변을 당할 뻔한 안종기 후보 대신......”
사람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정효순 주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최근 네거티브를 이어가느라 좋은 기사가 없었다.
그런데, 간만에 좋은 기사가 나오자 다들 힘을 얻는 중이다.
그러고 보니, 사무실의 공기도 어제와 다르다.
고된 유세로 파김치가 되어 축 늘어졌는데 오늘은 눈이 반짝반짝하다.
“댓글 읽어봐요. 댓글!”
정책단장이 말했다.
정효순 주임이 고개를 끄덕인다.
“안종기는 거길 왜 간 거냐? 뻔히 적진인 것 알면서.”
“안종기가 갔는데 계란이 준비되어 있었다? 안종기가 뭔가를 준비한 냄새가 나지 않아요?”
“안종기 얼빠진 표정 보소.”
정우가 손을 저었다.
“주임님, 안종기 말고 우리 의원님 것만 골라서 읽어줘요.”
정효순 주임이 스크롤을 움직인다.
“이성윤이 제일 멋져. 얼굴도 잘생김.” “이성윤은 달걀 샤워가 익숙하지.”
“눈빛 요정 이성윤.”
“장비, 장비, 장비.”
“이성윤 보고 있으면 정치는 젊은 사람이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선거 캠프는 흥분으로 가득 찼다.
정효순 주임이 댓글을 읽으면 이 사람 저 사람, 한 마디씩 거든다.
“얼굴이 잘생겼다니......”
“눈빛 요정은 또 뭐예요? 하하하하.”
“기사 보니까 오늘 술 한잔하고 싶네요.”
그리고 잠시 후.
성윤이 손뼉을 짝 쳤다.
그러자 떠들썩대던 소리가 사라졌다.
모든 시선이 성윤에게 향한다.
“선거 아직 안 끝났어요. 술은 선거 끝나면 축하주로 마시죠. 그러니까 끝까지 긴장 풀지 않았으면 해요.”
***
선거 운동이 끝났다.
사람들은 투표소로 향했다.
아이를 안고 가는 아빠도 있고 손을 잡고 가는 노부부도 보인다.
그렇게 소중한 한 표에 도장이 찍혔다.
해가 떨어졌다.
이제 개표가 시작된다.
성윤을 제외한 캠프 관련자들은 소파에 앉아 곧 발표될 출구조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분위기를 탔고 당선 확률도 높다.
하지만 모두의 표정은 초조했다.
까보기 전에는 결과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리를 떨고 손을 꼼지락대며 나름대로 긴장을 풀고 있었다.
정책 단장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지난 재보궐 때 몇 퍼센트 나왔죠?”
정우가 대답했다.
“52.1%요.”
“이번에는 얼마나 나올까요? 기자들이 카메라 돌리기 전에 내기나 할까요?”
청년 위원장이 누런색 지폐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난 33%. 이번엔 남성진 후보가 표를 가져갔으니까 50%는 힘들다고 봐요.”
여성 위원장이 픽 웃는다.
“우리 의원님 지지 기반이 장난이 아니에요. 난 35%.”
홍보 위원장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몇 퍼센트 이런 것 상관없으니까 이기기만 했으면 좋겠어요.”
정책 단장이 홍보 위원장을 보며 눈을 흘긴다.
“말 잘해라. 부정 탄다. 꼭 잔칫상 앞에 두고 방귀 뀌는 놈들이 있어.”
“심장이 터질 것 같으니까 그러죠.”
구석에 앉아 있던 시의원도 오만 원을 꺼냈다.
“난 우리 의원님이 당선되지 못한다는 것에 걸 거야.”
정책 단장의 눈에 불꽃이 번쩍였다.
“에이, 진짜! 이분은 방귀가 아니라 똥을 뿌리고 계시네!” 시의원이 테이블에 돈을 던지며 말했다.
“만약에 지면 돈이라도 따서 위안 가져야지. 이기면 5만 원 잃은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고......”
“이런 분이 한일전 축구 할 때 꼭 일본에 걸더라.”
“맞아. 난 일본에 걸어. 지든 이기든 기분 좋잖아.”
테이블 위에는 오만 원 권이 탁탁탁 놓였다.
“그만! 의원님 올라오세요!”
정효순 주임의 말에 정우가 테이블에 놓인 돈을 손에 쥐었다.
“이 돈은 제가 갖겠습니다.”
“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전 40% 이상에 걸 거예요. 이기면 다 내 돈. 축하주 마실 때 쓸 거니까 불만 없죠?”
사람들이 픽픽 웃었다.
“40%는 좀.......”
긴장된 분위기를 풀기 위한 내기였다.
그리고 의도대로 잠시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다시 상기되었다.
성윤이 들어와 가운데에 앉았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방송국 카메라가 성윤을 잡는다.
모두 조용히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했다.
긴장과 흥분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출구 조사가 시작됐다.
[이번 총선에서 가장 말이 많았던 서안시 동구입니다. 출구 조사 결과 대한당 이성윤 후보가 39.7%로 1위, 민국당 안종기 후보가 19.6%로 2위, 무소속 남성진 후보가 17.2%로 3위입니다.]
“어? 2위하고 20% 차이잖아?”
정책 단장이 한마디 했을 뿐이다.
다들 조용하다.
예상했던 것보다 표 차가 더 벌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순간이었다.
사람들은 방방 뛰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자축하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각자의 휴대폰은 쉬지 않고 진동한다.
축하 메시지가 오고 있었다.
그리고 개표가 시작됐다.
시작하자마자 성윤의 얼굴 위로 ‘당선 유력’이라는 자막이 떴다.
잠시 후엔 ‘당선’이라는 자막이 꽝! 하고 박혔다.
다시 한번 선거 캠프에는 환호성이 빵! 터졌다.
“와!”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얼싸안고 웃고 떠든다.
기자들이 성윤에게 다가갔다.
공중파는 물론 종편 그리고 각 언론사가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기자가 묻는다.
“재선에 성공하면서 이십 대 재선 의원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쓰셨는데요. 당선 소감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기록이나 역사,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당선된 것이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걱정도 됩니다. 소중한 한 표를 주셨는데 원하는 결과를 보여드려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 시각, 안종기 선거 캠프.
안종기는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성윤의 당선 소감을 보고 있었다.
표정의 변화는 없지만 속은 분노가 끓는 중이다.
대선으로 향하는 길에 서안시 동구는 통과 점일 뿐이었다.
작은 돌멩이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위가 있었다.
넘을 수 없는 바위. ‘씨발.....’
성윤이 새로운 역사를 썼다.
안종기는 역사의 뒤안길로 향한다.
대선 후보까지 거론되던 자의 쓸쓸한 퇴장이었다.
그의 입에서 답답한 한숨이 흘렀다.
문제는 선거가 끝난 다음이었다.
검찰은 안종기가 시사프로그램을 할 때 생긴 비리를 다시 파겠다고 선언했다.
공소시효는 분명 지났다.
하지만 검찰은 건설사의 부실 공사 등을 이유로 들었다.
검찰 문제는 선거에서 이겼으면 해결할 수 있던 일이다.
하지만 그의 4년 계약직은 끝났다.
안종기는 음울한 표정으로 소파에 등을 기댔다.
‘젠장......’
그의 뒤에서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렸다.
사람들이 화분이나 집기류 등 물건을 챙기는 소리다.
선거에 패배했을 때는 참 잔인하다.
함께 고생했던 사람들이지만 얻을 게 없다고 생각하면 물건이라도 가져가려 한다.
그렇게 안종기의 선거 캠프는 텅 비어가고 있었다.
마치 태풍을 직격으로 맞은 것처럼 처참했다.
그리고 대한당 중앙 당사.
이곳의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
수백 명의 사람이 나라가 망한 것처럼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특히 당대표는 위가 꽉 막혀 체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하......”
선거 방송이 이어질수록 탄식이 흘렀다.
패배, 또 패배, 그리고 계속 패배.
대한당은 그동안의 경기 침체와 연이어 터진 스캔들의 책임을 지는 중이다.
가르치고 달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국민이 표를 주지 않았다.
국민의 수준은 높아졌고 민심은 잔인했다.
개표 결과를 지켜보던 당대표는 결국 눈을 감았다.
이번 총선은 2년 후 있을 대선의 모의고사와도 같다.
패배한다는 것은 다음에 있을 대선도 어렵다는 거다.
그리고 최종 결과가 나왔다.
대한당이 128석.
민국당이 137석.
진보당이 14석.
기타 정당 및 무소속이 21석.
예상했던 대로 여소 야대의 형국이 되었다.
당대표는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을 집어 던졌다.
쾅! 소리와 함께 애꿎은 리모컨이 박살난다.
그걸 시작으로 당사에는 갖가지 소리가 흘렀다.
한숨, 흐느낌, 거친 욕설......
민국당과 진보당이 손을 잡으면 과반이 넘는다.
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2년.
민국당은 영리하고 교묘하게 대통령을 레임덕으로 만들어 버릴 거다.
모든 정책이 스톱되고 행정을 장악했던 권력은 시든다.
민생은 불안해지고 그 책임은 대한당과 대통령이 지게 된다.
대한당의 분위기는 점점 더 침울해지고 있었다.
그들과 달리 성윤의 캠프는 즐거웠다.
보쌈과 치킨, 파전이 놓였고 술이 담긴 종이컵이 부딪쳤다.
막걸리와 맥주, 소주 다양했다.
밖에서 마시면 좋겠지만 보는 눈도 있고 새벽이다. 술집은 모두 문을 닫았다.
그래서 사무실에 자리를 잡고 조촐히 축하 파티를 여는 중이다.
정우가 품에서 돈다발을 꺼내며 웃었다.
“최종 득표율 40.1%. 이 돈 제가 갖겠습니다!”
“아니, 아까 그 돈으로 술 산다면서요?”
“그럼요. 사야죠. 시장에 가서 족발이라도 사 올까요? 그런데, 어쩌죠? 문을 닫았네요. 으핫핫핫!”
성윤이 황당한 표정으로 정우를 바라봤다.
“내기했냐?”
“제가 땄어요. 하하하하!”
술이 오갔다.
다들 피곤했는지 금방 취했다.
힘들었던 일을 한마디씩 한다.
“계속 허리를 굽히다 보니까 디스크가 온 것 같아요. 병원 가봐야겠어.”
“그때, 민국당 봉사자랑 악수하는 데 힘을 꽉 주는 거야. 기분 진짜 더러워서......”
성윤과 정우는 옥상으로 빠져나갔다.
사무실과 달리 옥상은 조용하다.
성윤이 정우의 입에 담배를 물렸다.
“고생했어.”
“의원님도요.”
정우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의원님은 이겼지만 대한당은 졌네요.”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아?”
권력의 지도가 바뀌었다.
예측은 필수다.
성윤은 정우의 의견이 궁금했다.
“글쎄요. 평생 살을 맞대고 산 부부도 삶이 힘들어지면 갈라서는 게 요즘 세상이잖아요? 그런데, 대한당은 부부가 아닌 남이에요. 분열된다고 생각해요. 탈당이나 창당까지는 아니겠지만 여러 계파가 생겨나겠죠.”
성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꿈속에서 봤던 미래, 정우의 말대로 대한당은 분열됐다.
책임을 전가하며 자기 살길만 찾으려 했다.
싸우고 지지고 볶고.
그 덕에 대선에서 처참히 패배했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기회지.”
“기회요?”
“민국당은 똘똘 뭉칠까?”
민국당은 바보가 아니다.
대한당 몰락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다.
대선 주자를 내세워 새로운 정권, 새로운 세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게 분명하다.
문제는 민국당 역시 계파가 존재했다.
각 계파는 자신들의 수장을 청와대에 보내려 애를 쓸 거다.
“민국당은 힘이 생겨서 분열되고 대한당은 위기여서 분열되고. 재밌지?”
“그냥 다 한심한데요.”
정우가 씁쓸한 표정으로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그가 입을 연다.
“기회는 기회네요. 여기저기 권력을 얻고자 깃발을 올리는 전국 시대. 즉, 난세. 난세는 영웅을 원하죠.”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선거로 내 인지도는 전국구가 되었어. 분열되는 곳에서 내 손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거야. 사람을 얻으면 힘이 생기지.” 위기와 기회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때, 성윤의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다.
박 노인이다.
“네, 어르신.”
-축하해. 이 의원. 하하하.
상당히 즐겁게 느껴졌다.
술도 한 잔 걸쳤는지 목소리가 걸걸하다.
“감사합니다. 다 신경 써 주신 덕분입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예전에 말했던 참한 아가씨, 이제 만나볼 때가 되지 않았나?
“하하, 그런데, 제가 아직 여자는 관심이 없어서요.”
-만나보기나 해봐.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 아까워서 그래. 부담 가질 필요는 없고.
더 거절하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부담 없이 만나보겠습니다.”
-그래, 그래. 하하하.
통화를 종료했다.
정우가 묻는다.
“뭐예요?”
“여자 소개받으래.”
정우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전 불확실한 퇴근 시간 때문에 모태 솔로로 죽어 가는데 의원님은 소개팅한다고요?”
“쏘리.”
성윤은 슬쩍 웃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여자, 꿈속의 아내 말고 여자는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괜히 궁금해진다.
‘누굴까?’
< 판도가 달라지다. -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