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전. - (3) (유료 연재 시작입니다.) >
지이이잉.
휴대폰은 계속 진동했다.
남성진은 여전히 망설인다.
그가 휴대폰을 무음으로 돌리며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잘하는 것인가?’
‘빚은 어떻게 하지?’
‘1년만 참으면 보궐 선거가 있잖아. 지금의 지지율을 끌고 가면?’
‘그때까지 견딜 수 있을까?’
그가 다시 눈을 떴다.
굳은 결심이 보인다.
“보좌관, 나가 있어.”
“아, 네.”
조수석에 앉아 있던 보좌관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열린 문틈으로 차 밖의 소란이 들려온다.
“남성진! 남성진!”
“국민 여러분! 기호 5번 남성진을 국회로 보내주십시오! 서안시를 바꾸겠습니다. 이 나라를 바꾸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입니다!”
“남성진! 남성진!”
고된 선거에서 후보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환호다.
비록 자원봉사자의 외침이라도 후보는 그 응원에 힘을 낸다.
탁 문이 닫혔다.
실내는 다시 조용해졌다.
남성진이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남성진입니다.”
-남 후보님, 접니다.
“말씀하세요.”
남성진은 안종기의 보좌관이 어떤 말을 할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과 다르지 않은 말이 들려왔다.
-안 의원님을 지지한다고 기자회견 해주세요. 이성윤 같은 놈에게 국가를 맡길 수 없다고 말해주세요. 안 의원님만이......
그때, ‘덜컥’ 차 문이 열렸다.
남성진이 고개를 틀러 열린 문을 본다.
성윤의 보좌관 정우가 미소를 그리며 서 있었다.
정우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통화가 끝나면 드릴 말씀이 있는데,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실까요?”
남성진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정우를 향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끄덕.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안종기의 보좌관은 목에 핏대를 세운 채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는 침묵이다.
남성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남 후보님?”
-제가 지금 유세 중이라...... 잠시 후에 전화하겠습니다.
“아, 네.”
안종기의 보좌관은 찝찝한 표정으로 통화를 종료했다.
뒤에 앉아 있던 안종기가 묻는다. “뭐래?”
“그...유세 중이라고 잠시 후에 전화한답니다.”
안종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유세 중이라고?”
“...네.”
안종기가 발을 들어 조수석을 콱! 콱! 차기 시작했다.
“내가 남성진 그 새끼 핸들링하라고 했지? 딴 마음먹으면 어쩌려고!”
“지, 지금 당장 남성진을 찾아가겠습니다. 가서 직접 이야기하고 오겠습니다!”
“빨리 가!”
그 시각, 남성진은 정우와 앉아 있었다.
정우가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보인다.
그러자 남성진도 휴대폰을 꺼냈다.
지금의 대화를 녹취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정우의 시선이 블랙박스로 향했다.
“잠시 꺼도 될까요?”
“얼마든지.”
정우는 조수석으로 이동해 블랙박스 메모리 카드를 빼냈다.
그리고 다시 남성진의 옆에 앉았다.
남성진이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정우가 그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뿌연 연기가 실내를 채우자 남성진이 묻는다.
“어쩐 일인가?”
“주인공 한 번 되시겠습니까?”
“주인공?”
남성진은 관심 없는 눈으로 정우를 바라봤다.
하지만 연기다.
정우는 그의 눈에 담긴 열망을 봤다.
“저희는 후보님과 안종기 후보의 거래를 알고 있습니다.”
남성진이 입술에 침을 바른다.
그리고 모른 척 묻는다.
“거래라니?”
“뭐, 걸고넘어질 생각은 없으니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진흙탕 싸움이 됐잖아요.”
“그건 그렇지.”
남성진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정우가 말을 이었다.
“안종기 후보는 고고하게 우리를 보고 있어요. 우리가 콜로세움에 던져진 검투사도 아니고 웃기지 않나요?”
“그래서?”
“안종기 후보도 콜로세움으로 끌고 내려오죠. 똑같은 후보잖아요. 함께 똥통에서 뒹굴어야죠. 평등하게.”
남성진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정우의 말을 들으며 갖가지 계산을 하는 중이었다.
어떤 것이 유리할지......
그가 입을 열었다.
“...방법이 있나?”
정우는 품에서 서류를 꺼내 남성진에게 건넸다.
“안종기가 방송국에 있을 때 시사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한 건설사의 비리가 제보되었습니다. 대표가 수백억을 횡령했다는 제보.”
“그런데?”
“안종기는 거짓 제보라며 묵살했어요. 방송은 없었죠. 그리고 며칠 후 제보자는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어요. 안종기는 강남의 주상복합 아파트로 이사했고요.” 남성진의 눈빛이 묘해졌다.
정우가 계속 말한다.
“아나운서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강남 주상복합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것도 대출하나 받지 않고 현금 박치기로... 뭔가 냄새가 나지 않나요?”
안종기의 부모는 가난하다.
그가 내세우는 것 중 하나가 판자촌에서 시작해 앵커 그리고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개천에서 용 난 이야기다.
그런데, 대출 없이 강남 주상복합 아파트라니......
잠시 생각에 빠졌던 남성진이 손에 든 서류 봉투를 흔들었다.
“칼을 잡았으면 직접 쑤시지 왜 넘겨주는 거지?”
정우가 슬쩍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 의원님이 남성진 후보님을 좋아해요. 가끔 존경한다고도 말하죠.”
새빨간 거짓말.
그렇게 비방이 난무했는데 좋아하다니......
남성진도 정우의 말이 거짓인 것을 알고 있다.
그가 어서 본론으로 들어가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정우가 말을 잇는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전 우리 의원님의 손에 피가 묻는 걸 원하지 않아요. 만약 우리가 안종기 후보를 찌르고 당선이 되면 국회 생활이 편할까요?”
편할 수 없다.
피는 피를 부르는 법이다.
안종기를 따르던 세력들이 성윤을 향해 사사건건 시비를 걸 거다.
언제 저격을 당할지 전전긍긍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어차피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잖아요. 방금 전화, 단일화 지시가 아니었나요?”
정우가 깍지를 꼈다.
그리고 남성진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잇는다.
“단일화를 하면 남 후보님의 정치 생명은 여기서 끝납니다. 대한당 소속이었던 사람이 민국당과 단일화라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네요.”
남성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정우는 그의 심정을 정확히 찌르고 들어왔다.
정우가 느릿하게 입을 연다.
“민국당 안종기 씨, 참 대단한 인물이에요. 그런 인물을 몰락시키는데 후보님이 선봉에 선다면...1년 후에 있을 보궐 선거는 어떻게 될까요?”
“......”
“어쩌면 대한당에서 박수 치며 공천을 줄 수도 있겠죠. 거물을 잡았으니까요. 그리고 그건 저희도 돕겠습니다.”
“나를 돕는다고?”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내가 안 한다고 하면?”
“그거야 후보님의 개인 의지죠.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남성진은 손에 쥔 서류봉투를 꽉 움켜쥐었다.
“생각 좀 하지.”
“마지막으로 말씀드릴게요. 단일화를 해도 안종기는 당선되기 힘들 거예요. 그런데, 당선되지 못한 안종기가 후보님과의 약속을 지킬까요?”
남성진은 마른 한숨을 내뱉었다.
정우가 손에 쥐고 있던 블랙박스 메모리를 남성진에게 건넸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정우가 떠났다.
남성진의 시선은 손에 쥔 서류 봉투로 향한다.
‘선택이라......’
그때, 문이 다시 벌컥 열렸다. 안종기의 보좌관이 보인다.
헐레벌떡 뛰어왔는지 초췌한 얼굴이다.
“쉬고 계셨네요. 잠깐 이야기 좀 하죠.”
남성진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 봉투를 아무것도 아닌 척 옆으로 던졌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세요.”
보좌관이 앉자마자 본론을 꺼낸다.
“기자회견 하시죠.”
“언제 할까요?”
남성진의 긍정적인 대답에 보좌관이 미소를 그린다.
“선거가 며칠 안 남았잖아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으니까... 내일 오전 어떨까요?”
남성진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죠. 하죠. 잡아 주세요. 기자 회견.”
새벽 4시.
성윤의 사무실은 이제야 회의가 끝났다.
선거 운동의 주요 직책을 차지한 사람들은 기댈 곳만 있으면 머리를 대고 눈을 감는다.
이제 며칠 안 남았다.
밤을 새는 게 일상이 되었다.
퇴근해서 집에 갔다 오기보다는 사무실에서 쪽잠을 자는 게 편했다.
성윤이 정우의 어깨를 툭 쳤다.
“담배?”
두 사람은 옥상에 올랐다.
정우가 성윤을 본다.
“안 피곤하세요?”
“괜찮아. 넌?”
정우는 기지개를 쭉 켰다.
“피곤은 한데, 잠이 안 와요. 이 바닥이 참 더럽네요. 속이고 이용하고 뒤통수치고, 난 그걸 이용하고. 선거에 공약은 없고 서로 헐뜯고 욕하고 난 그걸 움직이고.”
성윤이 담배를 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구태의연한 정치지.”
“바꿀 수 있을까요?”
성윤이 옥상의 담벼락에 등을 기댔다.
“4년 계약직. 하지만 그 기간은 무소불위의 권력자. 도와줘. 바꿀 수 있게.”
정우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담벼락에 손을 짚고 앞을 바라봤다.
“이번 1년은 생존이 목표였잖아요? 당선되면 앞으로의 4년은 어떤 목표를 갖고 움직여야 할까요?”
“힘. 힘을 키워야지.”
힘이 없는 자의 외침은 누구도 듣지 않는다.
하지만 힘이 있으면 똥만 싸도 박수 받는다.
세상을 바꾸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다음 날, 오전 9시 30분.
안종기는 출근길 선거 유세를 마치고 선거 캠프로 돌아왔다.
그는 곧장 방으로 들어가 소파에 앉는다.
맞은편의 텔레비전 화면에는 ‘서안시 동구 남성진 후보 기자회견’이라는 글자가 박혀 있다.
안종기가 화면을 보며 입술을 쓸어 만졌다. “기자들에게 연락 돌렸지?”
“네, 홍보팀 통해서 기사 만들어 보냈습니다. 기자회견 끝나면 그대로 올릴 겁니다.”
“줘봐.”
보좌관이 안종기에게 기사를 건넸다.
안종기는 제목을 쭉 훑는다.
[남성진 후보 안종기 후보지지 선언. 후보 사퇴.]
[안종기 후보 드디어 골드 크로스?]
[서안시 동구 민국당의 손을 들어주나.]
안종기가 고개를 저었다.
“자극적이지 않아. 자극적으로 해. ‘남성진 쓰레기 같은 이성윤은 싫어.’ 이런 식으로.”
“고소당할 수도......”
“고소 한두 번 당해? 이기면 끝이야.”
보좌관이 홍보팀장을 만나기 위해 방을 벗어났다.
안종기는 다시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린다.
화면에서 남성진이 보인다.
남성진이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는다.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번쩍 터졌다.
그리고......
“보좌관!”
안종기의 벼락같은 소리가 터졌다.
캠프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안종기의 방으로 향했다.
보좌관은 다급히 방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안종기가 놓였던 찻잔을 손에 들고 보좌관을 향해 거칠게 던진다.
와장창 소리와 함께 찻잔이 깨진다.
다행히 보좌관의 머리 위 벽에 맞았다.
후드득. 깨진 유리가 비처럼 쏟아졌다.
안종기가 살인을 낼 것 같은 눈으로 보좌관을 쏘아봤다.
“이 새끼야, 내가 제대로 핸들링하라고 했지!”
텔레비전에서 남성진의 목소리가 흐르고 있었다.
[안종기 후보는 위선자입니다. 방송국에서 추적자라는 시사 프로그램을 할 때, 뒷돈을 받고 불의를 모른 척했습니다.]
남성진은 돈보다 다음 선거에서 손에 쥘 권력을 선택했다.
돈은 자식에게 물려준다.
하지만 권력은 자식과도 나누지 않는다.
권력을 맛본 사람에게 돈을 내밀었던 게 안종기의 실패 원인이었다.
세상은 난리가 났다.
가뜩이나 이번 선거에서 주목받은 남성진이다.
그런데, 그가 안종기를 저격했다.
서안시 동구는 물론 대한민국 모든 네티즌이 안종기를 욕하고 나섰다.
안종기는 시뻘게진 눈동자를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그가 머리를 쥐어뜯는다.
“이, 이대로 끝날 수는 없어.”
안종기는 한참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번뜩이는 눈동자와 함께 고개를 들어 보좌관을 향했다.
“즉시 정치적 음모라고 반박 기사 올려. 그리고 이성윤 스케줄 알아봐.”
“이성윤의 스케줄이요?”
안종기가 얼굴을 쓸어 만졌다.
“몇 대 맞아야겠어.”
*** 유세 현장.
성윤의 목소리가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제 눈으로 직접 보고 발로 뛰며 복지의 사각지대를 찾겠습니다!”
성윤의 말이 끝나면 사람들이 외친다.
“이성윤! 이성윤!”
그때, 길가에 검은색 차가 멈춰 섰다.
차에서 안종기가 내린다.
성윤의 시선이 안종기에게 향했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 역시 모두 안종기에게 꽂힌다.
홀로 적진에 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특히 정치는 이념 싸움, ‘나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다.
‘그런데, 왜?’
성윤은 안종기의 마음을 들었다.
-공격해라. 나를 때리고 짓밟고 계란을 던져라. 나를 약자로 만들어라. 그럼, 민국당은 결집할 것이고 부동층은 나를 향해 움직일 거다.
성윤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안종기의 뜻대로 움직인다.
그를 향해 욕설이 터졌다.
“뻔뻔하게 어딜!”
“오늘 뉴스 봤어! 넌 사람을 죽인 거야!”
“가! 이 새끼야!”
안종기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슬픈 표정으로 외친다.
“모두 정치 음모일 뿐입니다!”
“여긴 왜 왔어!”
“지나가는 길에 이성윤 후보를 봤어요. 그래서 인사나 하려고 들렀습니다!”
사람들은 더 크게 외쳤다.
“꺼져 이 새끼야!”
“꼴도 보기 싫어!”
그런데, 인파 속에는 안종기가 미리 심어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주머니에서 계란을 꺼내 만지작거린다.
‘가슴을 노리라고 했지?’
안종기가 부른 기자들은 카메라를 손에 들었다.
‘지금쯤?’
안종기를 향해 계란이 던져졌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심어뒀는지 하나, 둘, 셋... 계속해서 계란이 날아온다.
와이셔츠에 맞은 계란이 주르륵 흘렀다.
그런데, 안종기가 맞지 않았다.
맞은 사람은 성윤이었다.
시끄러웠던 현장이 적막해졌다.
모두 눈을 깜빡이며 성윤을 본다.
성윤은 가슴을 당당히 펴고 흘러내리는 계란을 툭툭 쓸어 닦았다.
계란이 질질질 흘러내렸지만 비참해 보이지 않는다.
성윤이 몸을 돌려 뒤에 선 안종기를 바라봤다.
안종기의 얼굴은 창백했다.
상황 파악이 잘 안 되는지 눈동자만 움직여 성윤을 위아래로 본다. “이, 이게, 그러니까, 왜, 거기서......”
더듬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성윤은 그의 앞으로 저벅저벅 다가섰다.
코앞에 섰다.
그리고 안종기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가 한수 위네요.”
< 작전. - (3) (유료 연재 시작입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