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66화 (66/300)

< 작전. - (1) >

“도움 된다고?”

정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거티브를 할 거면 제대로 가죠. 온갖 선동과 억측이 난무한 선거. 막상 까고 보면 진실은 없는 선거. 남성진을 쓰레기로 만들어버리는 거예요.”

성윤이 미간을 찌푸렸다.

“상대를 쓰레기로 만들면 우리도 쓰레기장에 들어갈 각오를 해야 해.”

정우가 슬쩍 웃는다.

“들어가면 되죠. 겁날 게 뭐 있어요? 어차피 이 바닥에 들어온 이상 손가락질받을 것은 각오했잖아요. 그리고 상관없어요. 이기기만 하면, 의원님을 손가락질하던 손은 박수 칠 거예요. 다 해결되는 거죠.”

정우의 자신만만한 표정에 성윤이 다리를 외로 꼬았다.

“간단히 말해 봐.”

정우가 컵을 들어 목을 축인 후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안종기 의원을 고립시키는 거예요.”

“고립?”

“우리는 남성진에게 집중하는 거죠. 어렵지는 않을 거예요. 누군가에게 지시받아 행동하는 사람은 반 박자 정도 느리니까요.”

성윤이 정우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확률은?”

“남성진과 안종기, 둘을 동시에 상대하면 40% 이하의 당선 확률, 하지만 하나에 집중하면 70% 이상으로 올라갈 것 같아요. 물론 선거 과정에서 일어날 변수를 넣지는 않았어요. 내일을 예측하기는 어려운 바닥이니까요.”

“알았으니까 이제는 자세히 말해봐.”

정우가 본격적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재 개그를 할 때와는 다른 날카로운 눈빛이다.

“...그럼, 안종기는 잊힐 거예요.”

모든 계획을 들은 성윤이 빙긋이 웃었다.

안종기의 계략을 역으로 이용할 수 있다.

안종기는 자기 꾀에 빠지는 거다.

“괜찮네. 맡겨볼게.”

***

대한민국 최대 축제 중 하나인 총선이 시작됐다.

여기저기 유세 차량이 노래를 쾅쾅 틀며 돌아다닌다.

자신을 뽑아 달라는 후보들의 목소리가 피를 토하듯 울렸다.

이번 선거에서 대한당은 ‘대한당을 뽑아야 정권이 안정된다.’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통하지 않는다.

집권당으로서 무너진 경제의 책임부터 져야 했다.

그런데, 책임은커녕 야당 탓만 하고 있으니 신뢰도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성욕부터 해결하라!’며 비웃었다.

대한당의 위태로운 지지율은 민국당에게 기회였다.

민국당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칼을 갈았다.

그들은 이번 총선으로 대통령에게 레임덕을 선물하고 뒷방 늙은이로 만들어버릴 계획을 하고 있었다.

총선에서 승리하면 대통령과 대한당의 발목을 잡아 국정 운영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국정 혼란은 민생 불안으로 이어진다.

국민은 모든 잘못과 책임을 대통령과 대한당에 겨눌 거다.

그럼, 민국당은 다가올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민국당은 ‘대한당 심판’을 내세웠다.

각자의 의도가 깔린 총선.

국민은 좋은 정치인이 나오길 기대한다.

하지만 대한당과 민국당은 이기기 위한 선거만 고민한다.

그들의 목적은 민생이 아니라 권력이었다.

보기 좋은 공약만 난무했다.

성윤도 본격적인 선거 운동에 들어갔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유흥가, 시장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을 찾아 걷고 또 걸었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지구 몇 바퀴는 돈 것 같다.

계속해서 허리를 굽혔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향해 웃었다.

안면 근육이 마비될 것 같았다.

그리고 기네스북에 도전할 것처럼 악수하고 다녔다.

난처한 상황도 많았다.

들어간 식당의 주인이 느닷없이 말한다.

“안 뽑아!”

가뜩이나 식당 주인은 임꺽정처럼 생겼다.

인상을 구기자 더 무섭게 보인다.

하지만 준비된 말을 앵무새처럼 내뱉어야 했다.

“기호 1번 이성윤입니다.”

“대한당이 뭘 잘했다고 뻔뻔하게 고개를 내밀어!”

이런 것은 약과였다.

받은 명함을 눈앞에서 구기는 아주머니.

침을 뱉고 가는 고등학생.

‘젊은 사람이 왜 대한당이래? 꼰대같이.’ 라고 흘리듯 말하는 회사원.

해가 떨어지고 밤이 찾아왔다.

술집에 들어가 테이블에 명함을 놓고 ‘기호 1번 이성윤입니다.’라고 말한다.

대부분 귀찮아할 뿐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어디든 이상한 사람은 존재한다.

꽤 많이 취한 것 같은 중년의 아저씨가 입을 연다.

“이성윤?”

“기호 1번 이성윤입니다.”

“부킹은 잘 되나?”

“네?”

“명함에 사탕도 안 넣어 다니네? 기본이 안 됐어.”

그러면서 맥주와 소주를 섞어 폭탄주를 만든다.

“마셔. 마시면 매상 올려준다.”

웃어야 했다.

그리고 각 향우회와 규모 있는 산악회를 거쳐 경로당도 찾아갔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여 앉아 성윤을 본다.

자기 PR의 시간.

“이성윤입니다. 전......”

노인 복지에 관한 공약을 말하려 했다.

그런데 한 할아버지가 툭 말한다.

“고향이 어디야? 난 고향 보고 사람 뽑아.”

심드렁하게 보고 있던 할아버지도 입을 연다.

“노래는 잘하슈?”

그러자 옆에 있던 할머니가 손뼉을 친다.

“대한당 후보죠? 맞죠? 난 대한당이면 무조건 뽑아.”

공약과 상관없는 질문이 순서 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대통령은 만나 봤느냐, 요즘 국회의원은 월급이 얼마냐, 결혼은 했느냐......

모든 질문을 받아줘야 했다.

기분 나쁘거나 이상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힘내라며 음료수를 주는 분도 있다.

‘지지하고 있어요. 꼭 투표할게요.’ 작게 속삭여주는 한마디가 힘을 나게 했다.

밤 10시가 되며 유세 활동이 끝났다.

사무실에 들어온 성윤은 의자에 앉아 파김치처럼 널브러졌다.

정효순 주임이 안으로 들어왔다.

“파전이라도 좀 드릴까요?”

“파전이요?”

성윤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정효순 주임을 향했다.

배는 고팠다.

하지만 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정효순 주임의 몰골도 말이 아니다.

눈 아래로 다크 서클이 길게 내려왔다.

“괜찮아요. 주임님도 좀 쉬세요.”

집에 가라는 말은 못 했다.

정우가 들어오면 오늘의 활동 보고와 내일을 위한 회의를 해야 한다.

그리고 정우가 들어오며 회의가 시작됐다.

먼저 전화와 SNS 그리고 메시지를 담당하는 온라인 홍보 위원장이 입을 열었다.

평소에는 서안시 청년 위원장으로 활동하는 사람이다.

“오늘까지 데이터 확보했어요. 결번, 번호 오류, 미수신 등으로 분류했고요. 내일부터 메시지 작업 들어갈게요.”

정우가 물었다.

“메시지 작업이 내일부터라고요?”

“네.”

“지난 재보궐 선거 때, 메시지에 ‘오늘의 날씨’를 넣었어요. 이번에도 식상하지 않게 간략한 정보를 넣었으면 하는데요.”

한 명의 유권자는 여러 후보에게 메시지를 받는다.

각 후보들은 ‘내 메시지는 달라!’라고 주장하겠지만 선거 운동 메시지는 비슷하다.

그래서 몇몇 꼼꼼한 사람만 자세히 살펴볼 뿐, 대부분 유권자에게 선거 운동 메시지는 쓰레기다.

한눈에 볼 수 있으면서도 식상하지 않은 메시지를 고민해야 했다.

정우가 말을 이었다.

“많이 보내면 역효과가 날 수 있으니까 한 명당 최대 3회만 보내세요. 그리고 부동층을 설득하는 스크립트를 확인해 봤거든요. 2분짜리던데, 1분으로 줄여주세요.”

온라인 홍보 위원장이 수첩에 지시 사항을 적었다.

정우의 시선이 유세 단장에게 향한다.

그러자 유세 단장이 입을 연다.

“오늘 시장 사거리에서......”

...그렇게 회의가 끝났다.

밤 12시.

새벽 6시에 만날 것을 약속하며 다들 자리를 떠났다.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보니 모두 비척비척 좀비 같이 걷는다.

정우의 옆으로 성윤이 섰다.

“담배?”

“네.”

두 사람은 옥상으로 향했다.

성윤이 정우의 입에 담배를 물렸다.

“오늘도 고생했어.”

“고생은 의원님이 했죠. 그건 그렇고 남성진이요.”

“어떻게 되고 있어?”

정우가 휴대폰을 틀어 화면을 보인다.

기사 제목이 보였다.

[이성윤 후보는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았다. 사회를 모르는데 정치라니.]

[이성윤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이력서부터 써야 한다.]

[이성윤, 또래 청년의 아픔은 알고 있나?]

모두 남성진이 던진 기사들이다.

다른 의혹은 찾지 못했는지 나이와 경력만 잡고 늘어진다.

정우가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입을 열었다.

“며칠 동안 많이 참았어요. 죄송하지만 내일부터는 시궁창에 들어가실 거예요. 장화 준비하세요.”

성윤의 입에서 담배 연기가 흘렀다.

“진흙탕 싸움, 어차피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기자들 불러서 남성진 한번 만나러 갈까? 그럼, 그림이 더 좋을 것 같은데.”

“그럼, 감사하죠.”

정우는 슬쩍 웃으며 휴대폰에서 김미선 기자의 번호를 찾는다.

그리고 통화버튼을 누르며 귀에 댔다.

“기자님? 주무셨어요? 그때 준비했던 기사 있잖아요? 내일 새벽에 던지고 싶은데요.”

다음 날 이른 아침, 남성진 후보 선거 캠프.

자리에 앉은 남성진은 인터넷에 접속했다.

자신이 인터뷰한 기사를 찾아 댓글을 읽는다.

자극적인 내용의 기사라 그런지 댓글은 비난이 가득했다.

쌍욕도 있었는지 신고 받고 사라진 댓글도 많았다.

“오늘도 괜찮네.”

미끈한 입술에 재수 없는 미소가 걸렸다.

그렇게 마우스 스크롤을 움직이는데......

“어?”

그의 눈에 기사 하나가 보였다.

[이성윤 후보, 남성진 후보의 네거티브 선거를 말하다.]

남성진은 재빨리 기사를 클릭했다.

기사를 읽어가며 지금껏 즐거웠던 눈빛이 사나워진다.

“이 새끼가......”

성윤은 남성진의 지난날을 거론했다.

본회의 84회 중 51회 무단결석.

법안 발의 1건.

음주운전 1건.

부동산 다운계약 적발.

아들 병역 면제.

기사의 마지막에 기자가 적어 둔 문장이 보였다.

[남성진 후보는 이성윤 후보를 검증해야 한다며 네거티브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남성진 후보는......]

기자는 의도적으로 문장 끝을 흐렸다.

남성진은 칙칙해진 낯빛으로 댓글을 확인했다.

-속담을 틀리지 않았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사자성어. 너나 잘해.

-남성진이랑 이성윤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지금 보면 멱살 잡을 것 같은데.

ㄴ 이성윤이 이길 듯.

ㄴ 이성윤 키도 크고 어깨 넓음.

-그런데, 남성진은 왜 나왔냐? 이성윤 욕할 거면 방구석에서 키보드나 두드리지.

ㄴ그러게? 선거 나와서 이성윤 욕만 하던데.

남성진이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이 새끼들이......’

남 욕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자기가 욕을 먹으면 정말 싫어한다.

남성진이 그랬다.

본회의 무단결석부터 아들 병역 면제까지... 자신의 치부가 까발려지자 입술까지 떨며 분노한다.

그 분노는 점심이 지났을 때 정점을 찍었다.

번화가 사거리에서 선거 유세를 하는데 멀리 성윤이 보인다.

횡단보도에 선 성윤은 신호를 기다리며 남성진과 눈이 마주쳤다.

성윤이 차가운 눈빛으로 남성진을 보며 비웃듯 웃는다.

남성진의 머릿속에 아침에 봤던 댓글이 스쳤다.

-똥 묻은 개. 너나 잘해.

횡단보도의 신호가 초록 불로 바뀌었다.

성윤이 남성진을 향해 걸어온다.

성윤의 뒤를 쫓던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마주침을 찍는다.

성윤이 손바닥을 내밀어 악수를 권했다.

남성진은 찝찝하게 웃으며 뒤늦게 성윤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의 손이 꽉 잡히자 카메라 셔터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성윤이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빚은...갚았어요?”

순간, 남성진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알고 있는 건가? 아니면 그냥 하는 말인가? 하는 말이겠지? 내가 빚이 있다는 것 정도는 대한당 의원들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래, 이정도만 알고 있을 거야.

하지만 성윤은 그 속마음을 들어버렸다.

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알고 있어요.”

물론 성윤이 제대로 아는 것은 없었다.

안종기 의원과의 관계를 유추할 뿐이다.

그리고 남성진이 속으로 했던 말을 따라 했을 뿐이다.

그런데, 남성진의 눈이 벌게졌다.

기자들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셔터가 다시 눌러졌다.

그 시각, 서안 보육원.

안종기는 여섯 일곱 살 정도의 아이들과 앉아 삼겹살을 먹고 있었다.

“하하, 솔직히 선거라 왔어요. 하지만 여기서 끝내지는 않을 겁니다. 선거가 끝나도 아이들을 위한 후원은 계속할 거예요. 지난 지역에서도 한 달에 한 번은 아이들과 함께했어요.”

그는 솔직하고 소탈한 웃음을 던진다.

그때, 한 아이가 우울한 표정으로 입을 우물우물하고 있었다.

안종기가 아이를 향해 고개를 틀었다.

“질겨? 안 씹혀?”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원장이 티슈를 꺼내려 했다.

그런데, 안종기가 아이의 턱 아래로 손을 쑥 내밀었다.

“뱉어.”

아이는 질긴 고기를 안종기의 손에 뱉었다.

안종기는 원장이 가져온 티슈에 고기를 담는다.

그리고 조용히 웃으며 다른 고기를 아이의 접시에 놓았다.

“이 고기는 부드럽겠다. 이거 먹어. 아저씨가 나중에는 더 맛있는 고기 사 올게.”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를 마치고 안종기는 밖으로 나섰다.

원장과 아이들이 배웅하기 위해 나왔다.

안종기가 맨땅에 무릎을 꿇어앉아 한 아이와 눈높이를 마주한다.

“매일 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때 아이가 콧물을 주르륵 흘린다.

안종기는 자신의 소매로 아이의 코를 슥 닦았다.

아이가 눈을 깜빡이자 안종기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귀엽네. 하하하.”

안종기는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차에 올랐다.

탁 문이 닫히고 출발한다.

“물티슈.”

조수석에 앉았던 보좌관이 물티슈를 건넸다.

“와이셔츠는 옆에 있습니다.”

“어.”

안종기는 얼음 같은 표정으로 물티슈를 꺼내 손을 닦았다.

마치 더러운 것을 만진 것처럼 아주 오래......

그리고 태블릿 PC를 손에 들었다.

기분 좋은 눈빛으로 기사를 찾아본다.

방금 보육원에서의 일이 기사로 올라왔는지 찾는 거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다.

그의 표정이 점점 찌푸려진다.

“보좌관.”

“네, 의원님.”

“방금 보육원에서 기자들, 신입들이야?”

“아닌데요. 얼굴 아는 기자도 있었잖아요?”

안종기는 계속해서 기사를 찾아봤다.

페이지가 넘어갔다.

그런데, 이성윤과 남성진의 싸움만 보인다.

안종기의 기사는 몇 페이지를 더 넘겨서야 겨우 찾아볼 수 있었다.

안종기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연다.

“보좌관, 뭔가 잘못되고 있어.”

< 작전.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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