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65화 (65/300)

< 물밑 작업. - (5) >

***

각 정당의 공천 발표와 경선이 이뤄질 때 성윤은 한발 먼저 선거 준비에 돌입했다.

정우가 입을 연다.

“얼굴마담은 이덕근 사장님 정도면 되겠죠?”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아나운서나 연예인 등 유명인을 끌어오지 않는다.

물론 부르는 사람도 있고, 있으면 좋기는 하겠지만 표를 움직일 정도의 파괴력은 없다.

국회의원 선거는 지역구를 위한 것이다.

이덕근 사장처럼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면 얼굴마담으로 충분했다.

“유세 지원으로는 당대표님하고 원내대표님 그리고 김대성 의원님이 각각 하루씩 와 주신다고 했어요.”

“김대성 의원님 선거 캠프는 나도 들를 거야. 스케줄 잡아 줘.”

“옙.”

정우가 수첩에 성윤의 지시를 적으며 말을 이었다.

“자원 봉사단은 여성 위원회하고 청년 위원회, 그리고 당원분들이 주변 친한 아주머니들 섭외 중인 것 같아요. 그리고 캠프 상주 인원은......”

“잠깐만.”

성윤은 정우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시선을 뒤로 옮겼다.

책상에 앉은 정효순 주임이 보인다.

“주임님은 캠프에 상주해 주셨으면 해요.”

선거캠프에는 불특정 다수가 방문한다.

주로 노인들이다.

예전에는 방문한 사람들에게 술과 돈을 줬다고 하는데 요즘은 그렇게 하면 큰일 난다.

김밥과 다과를 대접하고 놀아주며 성윤을 지지할 것을 부탁한다.

“주임님을 도울 사람으로 두세 명 정도만 뽑아주세요.”

“이미 구해뒀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정효순 주임의 가장 큰 능력은 어른들에게 친근하게 구는 것이다.

어디서 배웠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효순 주임의 능력으로 선거캠프는 이 동네의 사랑방이 될 것이다.

성윤의 시선이 다시 정우에게 옮겨졌다.

“계속해.”

그렇게 선거 캠프를 구성한 인원들이 하나씩 채워졌다.

“대략 그림은 그려진 거지?”

“네, 이제 돈만 준비되면 돼요. 의원님 통장에 4천만 원 정도 있고 제 통장에 2천만 원이 있거든요? 합치면 6천이니까......”

정우는 가지고 있던 돈을 선거 자금으로 낼 생각이었다.

자신의 월급을 털어 준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받을 생각은 없다.

“됐어, 기다려봐. 돈은 생길 거야. 안 생기면 대출이라도 받지 뭐.”

“돈이 생겨요?”

“그런 게 있어.”

회의가 끝났다.

이제 지역 위원들과 만나 자세한 전략으로 들어가야 한다.

성윤은 쭉 기지개를 켰다.

“당원들은 언제 만나기로 했지?”

“오후 5시요.”

“그때까지 스케줄은?”

“잠시만요.”

정우가 수첩을 넘길 때, 정효순 주임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 의원님?”

성윤과 정우의 시선이 동시에 정효순 주임에게 향했다.

그녀가 말한다.

“...민국당 후보 발표 났어요. 안종기 의원이요.”

“아.”

“안 놀라세요? 상대가 안종기 의원인데......”

안기부 출신 오강민을 통해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다.

그래서 성윤과 정우는 안종기에 관한 자료를 진작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효순 주임의 말은 끝났지 않았다.

“그리고요. 남성진이 무소속으로 출마한다는데요?”

“누구요?”

“남성진......”

성윤과 정우가 얼굴을 마주 봤다.

남성진이면 대한당에 있었던 전 국회의원이다.

말이 험해서 항상 구설수에 올랐던 사람.

지난번 총선에서 낙마한 후 조용히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성윤과 정우는 재빨리 정효순 주임의 자리로 다가갔다.

모니터에는 1인 방송국 동영상이 보인다.

제목은......

[남성진 전 국회의원 서안시 동구에 무소속으로 출마.]

정효순 주임이 성윤을 보며 묻는다.

“동영상... 틀어볼까요?”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정효순 주임은 마우스를 움직여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화면에는 머리가 반쯤 벗겨진 남성진이 보였다.

나란히 앉은 사람은 요즘 인터넷에서 인기가 많다는 BJ다.

BJ가 질문한다.

“대한당 국회의원으로 재선까지 하셨어요. 그런데, 무소속으로 출마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남성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조금 화난 모습을 보였다.

“대한당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최근에 문제만 일으켰죠. 그런데 사과와 반성은 하지 않고 사람들의 눈만 돌리고 있어요.”

“눈을 돌린다고요?”

남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윤 의원이 재선에 성공하면 이십 대 재선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지금 대한당은 그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서요. 당선되면 떠들썩하겠죠.”

“그러니까 이성윤 의원은 대한당의 기록을 위한 전략이라는 거죠?”

남성진은 단호히 답했다.

“네.”

BJ가 난처하게 웃었다.

“하하, 정말 그렇다면 좀 실망이네요.”

남성진 의원이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이게 여당이 할 생각입니까? 국회의원은 기록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에요. 국민을 위하고 민생을 신경 써야죠! 혹시 대한당과 이성윤 의원이 이 영성을 본다면 한마디 해주고 싶습니다.”

“뭐라고요?”

남성진이 안경을 벗었다.

날카로운 눈매로 화면을 노려본다.

“국회는 아이들 노는 곳이 아니야.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세금 낭비야. 기록을 세우고 싶으면 올림픽에서 노려.”

그렇게 영상이 끝났다.

화면을 내리자 댓글도 엄청나다.

-어린놈이 국회의원이라니 이상했는데 이런 음모가 있었구나.

-세금 낭비! 아웃!

-이성윤 돈 얼마나 버냐?

-천만 원?

-ㅆㅂ 천만 원? 뭘 한다고 천만 원?

성윤의 뒤에서 초조한 눈으로 모니터를 지켜보던 정우는 재빨리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당대표의 보좌관 전화번호를 찾아 눌렀다.

“이성윤 의원 보좌관 박정우입니다. 혹시 남성진 씨가 출마하는 시나리오가 있었습니까?”

-...남성진이 출마하나요?

당대표의 보좌관도 모르는 일이었다.

통화를 종료한 정우는 입술을 꽉 깨문다.

정우는 0.1%의 가능성을 생각했다.

성윤의 상대가 안종기다.

그래서 남성진으로 논란을 일으킨 후 단일화하는 시나리오가 아닐까 하고......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단일화를 생각했다면 이런 식으로 시작 안 했겠지. 이건 외나무다리에서 원수 만난 느낌이잖아.”

“아, 똥 덩어리를 쳐 맞은 느낌이에요.”

잠시 한숨을 내뱉던 정우는 남성진과 친했던 의원들에게 연락해 보겠다며 복도로 나갔다.

성윤은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화면을 새로 고침 할 때마다 댓글이 수십 개씩 팍팍 늘어난다.

입에 착착 달라붙는 찰진 욕이 난무한다.

잠시 후, 정우가 다시 성윤의 옆에 섰다.

“남성진과 친했던 의원들 파악해서 물어봤는데요.”

“뭐래?”

“남성진이 지난 총선에서 패배하고 가세가 기울었대요. 그런데, 또 나온다고 하니까 다들 놀라던데요? 벌써 회복됐냐고 하면서요.”

“가세가 기울었다고?”

“네.”

성윤은 턱을 쓸어만 지며 생각에 빠졌다.

서안시는 브랜드 없이 당선될 장소가 아니다.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패배가 당연시된다.

가세가 기운 사람이 팔 걷고 나올 곳이 아니다.

‘패배할 것을 알고 나왔다는 것인데.......뭐지?’

성윤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종기 의원의 얼굴에서 그 생각이 멎었다.

‘안종기.....’

꿈속의 그는 야비했다.

소탈한 척, 약자를 위한 척 행동하는 위선자였다.

언제나 꿍꿍이를 만들었고 ‘나 아니면 다 더러운 놈.’이라는 프레임을 즐겨 사용했다.

언론 활용에 능했고......

‘이번에도 안종기의 꿍꿍이가 들어간 건가?’

가능성은 존재했다.

그 시각, 무소속으로 출마할 남성진은 차이나 레스토랑에 있었다.

원탁의 맞은편에는 안종기 의원의 보좌관이 보인다.

열 평 정도의 공간엔 두 사람만이 있다.

보좌관이 입을 열었다.

“지금쯤 이성윤도 봤을 겁니다.”

“댓글이 얼마나 달렸나 볼까요? 아이고, 난리가 났네요. 이성윤이가 이걸 봤으면 밖에 못 나갈 것 같아요. 하하하하.”

한참을 웃던 남성진이 미간을 살짝 찌푸린다.

댓글을 보여주던 휴대폰이 진동을 울리고 있었다.

화면엔 발신 번호가 보였다.

대한당에서 오는 전화다.

“평소에는 전화 한 통 없던 놈들. 발등에 불 떨어지니까 전화를 하네요. 평소에 잘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대한당 이놈들은 뱉어버린 사탕을 신경 쓰지 않아요. 그 사탕이 언젠가 독이 되어 돌아올 줄 모른다는 거죠.”

남성진은 비열하게 웃으며 휴대폰의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화면은 생명력을 잃고 검게 변한다.

보좌관이 티슈로 입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출연하신 인터넷 방송이 이십 대 애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대요. 그래서 일부러 섭외한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들 그런 것 있잖아요?”

“어떤 거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

남성진의 입에서 웃음이 흘렀다.

보좌관이 계속 말한다.

“자기들은 방구석에서 휴대폰 게임이나 하고 있는데 또래인 이성윤이 국회의원으로 천만 원씩 받고 있으면 얼마나 짜증 나겠어요.”

남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댓글로 시작된 여론몰이는 중년의 귀에도 노년의 귀에도 들어가겠네요. 좋은 말은 천 리가 한계지만 나쁜 말은 세상 곳곳을 쑤시고 다니니까요.”

남성진과 보좌관은 낮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이뤄지는 중이었다.

보좌관이 티슈를 내려두며 말한다.

“전폭적으로 지원할 테니까 5%만 끌어 와주세요.”

“10%를 끌고 오면 말씀하신 금액의 두 배를 주신다고 했죠? 15%면 세 배입니까?”

“그러죠.”

“15%를 노리고 선거 운동에 임하겠습니다. 사실 저도 이성윤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어르신들 있는 곳에 꼬마가 와서 까분다는 게 참......”

식사도 끝났고 대화도 마무리되었다.

보좌관이 테이블에 놓인 남성진의 차키를 슬쩍 본다.

“그런데, 트렁크는 비워두고 다니십니까?”

“그럼요. 요즘에는 골프도 안 쳐서 안이 텅텅 비었습니다.”

보좌관이 휴대폰을 귀에 댔다.

“들어 와.”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가 안으로 들어온다.

보좌관이 그 사내에게 남성진의 자동차 키를 건넸다.

“트렁크에 넣어드려.”

사내가 허리를 굽힌 후 자리를 떠났다.

보좌관의 시선이 다시 남성진에게 향했다.

“약소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여기서 드리면 번거로우니까 트렁크에 넣어두겠습니다. 선거에서 유용하게 사용하십시오.”

남성진이 능글맞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박살 내겠습니다. 안 의원님께 안부 인사나 전해드리세요.”

안종기 의원의 사무실.

안종기 의원은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남성진 의원의 인터넷 방송 출연이 보인다.

그는 희미한 미소를 입에 담고 올라오는 댓글을 읽었다.

문이 열리고 보좌관이 들어왔다.

안종기 의원은 휴대폰을 내려두며 부드러운 눈길로 보좌관을 향한다.

“성공했네? 그래, 잘했어. 첫 단추가 중요한 거야.”

“선거가 시작되면 곧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습니다.”

“비밀 유지는 철저히 하고.”

“네.”

“상대를 죽일 땐 미안한 감정 같은 것 같지 말고. 철저히 끝내. 다시는 이 바닥에 발을 못 담그게.”

“네.”

안종기 의원의 시선이 다시 휴대폰으로 향했다.

댓글을 보며 뭐가 웃긴지 간헐적으로 어깨가 흔들린다.

***

밤 11시, 성윤의 사무실.

성윤은 팔짱을 끼고 창밖을 보고 있었다.

“다 배웅했어요.”

정우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방금까지 당원들과 선거에 관한 회의를 했다.

이제야 끝내고 배웅한 거다.

성윤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창가에 몸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고생했어.”

당원들과의 회의가 끝났다고 성윤의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는 다시 정우와 마주 앉아 회의에 나왔던 의견들을 종합해야 했다.

정우가 테이블에 놓인 서류를 정리하며 입을 연다.

“오늘 내내 생각했는데요. 남성진은 신경 쓰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유는?”

“남성진과 싸우면 네거티브 선전으로 돌입하겠죠. 그럼, 스윙보터들은 자연스레 안종기를 지지할 거예요.”

스윙보터, 우리말로 부동층 유권자.

그들은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없다.

정치 상황에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그들은 더러운 네거티브를 싫어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성윤이 입을 열었다.

“음모론 하나 꺼내 볼까?”

“음모론이요?”

“들어 봐. 남성진은 돈이 없었어. 대출받을 상황도 아니었던 것 같아. 그렇지?”

“네.”

성윤이 테이블 아래에 보이는 지도, 서안시 동구를 가리켰다.

“그런데, 왜 나왔을까? 남성진이 오면서 누가 가장 이득을 볼까?”

“두말하면 입 아프죠. 안종기...... 설마?”

성윤이 슬쩍 웃었다.

“음모론이야.”

정우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잠깐만요. 남성진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뭔가가 떠오를 것 같아요.”

< 물밑 작업. -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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