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62화 (62/300)

< 물밑 작업. - (2) >

주진만 원내대표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어서 말해보라는 표정이다.

하지만 성윤은 바로 입을 열지 않았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다.

이 사건을 윤채아만으로 끝내기는 아쉽다.

조금 더 큰 판으로 끌고 갈 수 있으니까.

머릿속에서 꿈속에서 봤던 미래가 펼쳐졌다.

이번 공천 과정에서 당대표는 자신의 계파를 공고히 만든다.

거침없이 휘두른 칼에 반대파는 숙청되었다.

물론 당시 반대파는 주진만 원내대표 계파는 아니었다.

어쨌든, 꿈속의 미래에서 대한당은 독재 당이 되었다.

집권당 당대표, 백여 명이 넘는 국회의원의 목숨을 손에 쥔 무소불위의 권력자.

그는 민생은 생각 않고 차기 대권만을 노렸다.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목숨을 끊는 가장들이 늘었지만 그에게는 관심 밖이었다.

“어떻게 하면 조잡한 인기를 끌 수 있을까?”

그것만이 당대표의 생각이었으니까.

경제를 살리자는 법안은 반대에 반대를 이어갔다.

집권당이면서 대통령에 반기를 들며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한 거다.

이번에도 그렇게 될 가능성은 존재했다.

‘그런 세상은 막아야지.’

성윤은 국회의원이다.

국민은 나라 잘되라고 뽑아줬다.

그런데, 나라가 망해가는 걸 뻔히 알면서 가만히 있으면 배지를 던져야 한다.

성윤은 맞은편에 앉은 주진만 원내대표를 바라봤다.

주진만 원내대표는 성윤이 꺼낸 이야기를 기다리며 차를 홀짝이고 있다.

‘당대표의 세력이 약해지면 자연히 주진만 원내대표의 힘이 세질 텐데, 이 사람은 다를까?’

꿈속에서는 보지 못한 미래다.

알 수 없는 미래는 지금 가진 생각으로 통찰해야 한다.

주진만 원내대표의 지난날이 눈앞에 스쳤다.

술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한다.

권력을 쥐고 싶어 하지만 탐욕스러운 야망은 아직 없다.

적어도 당대표보다는 괜찮은 정치인이다.

생각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어떻게 하면 당대표와 윤채아를 엮을 수 있을까.

성윤의 머릿속에서 무수히 많은 계획이 그려졌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성윤은 테이블을 툭툭 두드린다.

일정한 소리가 불안하게 울릴 때 그가 입을 열었다.

“당대표님과 원내대표님이 앉을 공천 테이블, 앞으로 대한당의 권력을 좌지우지할 도박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채아 이야기를 기다리던 주진만 원내대표는 뜬금없는 말에 눈을 깜빡인다.

“갑자기 당대표는 왜?”

“당대표님은 이번에 국회의원 50%의 물갈이를 선언했습니다. 그 대상은 아마도.....”

“내 사람을 쳐내려 하겠지. 대비는 하고 있어. 그런데, 지금 그 문제를 얘기 하는 게 아니잖아?”

“판돈을 쓸어 담으려면 히든카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진만 원내대표는 성윤의 말을 듣고 눈을 반짝였다.

“윤채아의 문제를 히든카드로 쓸 수 있다는 것인가?”

“네, 윤채아는 당대표님의 사람입니다.”

주진만 원내대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성윤은 말을 이었다.

“윤채아가 제 사무실 앞 빌라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제 뒤를 밟기 위해서죠. 보좌진을 심어뒀는지 흥신소를 박아뒀는지, 거기까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개인 일정이 끝난 뒤에는 종종 서안시에 와서 공무원과 향우회를 만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어요.”

주진만 원내대표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같은 당 지역구 의원이 버젓이 있는데 비례대표가 와서 뭘 하고 있다고? 지금 그걸 믿으라는 것인가!”

“네, 사실입니다.”

단호한 눈빛과 말에 주진만 원내대표의 낯빛이 굳어졌다.

대한당의 계파 갈등은 표면적으로나마 사라졌다.

지금 싸움이 벌어지면 총선에서의 패배를 알리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대표도 원내대표도 조심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윤채아의 미친 짓이 세상에 알려지면 국민은 생각할 거다.

-대한당이 또?

주진만 원내대표가 다급히 말했다.

“왜...왜! 보고하지 않았지? 왜 이제야 말하는 거야!”

“저도 이번에 알았습니다.”

물론 거짓말이다.

윤채아의 비정상적인 행동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놔뒀다.

윤채아의 정치 인생을 더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무덤 파기를 기다렸다가 끝내버리고 싶었다.

“하......”

주진만 원내대표의 한숨 소리가 사무실을 채웠다.

성윤은 그의 속마음을 듣고 있었다.

그는 지금 초조하고 불안했다.

성윤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지역구 의원이 있는 곳에 씨앗을 들고 나타난 비례대표 윤채아. 씨를 뿌리고 삽질까지 했어요. 누군가에게 지시받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죠.”

“당대표가 지시한 것으로 만들자?”

“언론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끝낼 수 있다면, 당대표님께 책임만 물을 수 있다면......”

공천 테이블은 주진만 원내대표가 쥘 수도 있다.

주진만 원내대표가 턱을 매만진다.

당대표는 윤채아의 돌발 행동을 모를 거다.

아무리 계파 싸움이 극에 달했다고 해도 지켜야 하는 것은 있으니까.

아니, 안다고 해도 도마뱀 꼬리 자르기를 할 거다.

하지만 성공만 한다면 당대표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다.

“후폭풍이 크겠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방법은?”

성윤은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설명이 끝났을 때 주진만 원내대표는 답답한지 넥타이를 풀었다.

“잠시 술을 멀리해야 하나? 자네에게 연락이 오면 언제든 달려가야 하니까.”

“축하주가 참 맛있을 겁니다.”

“내가 사지.”

“감사합니다.”

이야기가 끝났다.

성윤은 일어서서 주진만 원내대표에게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복도로 나왔다.

복도를 걸으며 성윤은 창밖을 본다.

꿈속을 통해 알고 있던 미래가 크게 꿈틀대기 시작했다.

거대한 물줄기가 방향을 바꾸며 있던 미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괜찮네.’

앞으로 있을 세상은 꿈에서 보지 못한 미래지만 성윤은 알 것 같았다.

지금 그 물줄기를 틀고 있는 것이 자신이니까.

잠시 후, 밖으로 나온 성윤은 차에 올랐다.

기다리고 있던 정우가 묻는다.

“하실 말씀은?”

“윤채아 월세방 감시.”

“정효순 주임이 확실히 보고 있어요. 흐흐.”

“다행이네.”

차가 출발하며 정우가 입을 연다.

“재선에 성공하면요. 보좌진은 계속 저 한 명만 둘 생각이세요?”

“아니, 뽑아야지. 너 과로로 죽으면 안 되잖아.”

“제가 죽으면 의원님이 힘들어지니까요?”

“응.”

정우는 성윤을 악마 보듯 바라봤다.

“악덕 고용주가 직원 과로사까지 생각해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는 됐어.”

“뭐, 일단 정효순 주임을 9급으로 돌리는 것 어때요?”

보좌진의 인사권은 국회의원에게 있다.

의원실마다 다르지만 보통 4급을 제외하고는 거의 수석 보좌관이 알아서 처리한다.

성윤도 정효순 주임을 정식으로 올리고 싶었지만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정우에게 맡기고 싶었다.

그래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정우가 계속 말한다.

“능력만 보면 그 이상도 할 수 있지만 자식들 때문에 칼퇴하는 게 걸려서요. 아무래도 우리 일이 퇴근 시간이 없잖아요. 그런데 앞으로 보좌진이 꾸려지면 형평성에 문제가 될 것 같아요. 그래서 9급 정도면......”

“그렇게 해.”

“다행이네요. 정효순 주임 집안 사정이 힘들거든요. 우리 알바 잘리면 어떡하나 많이 걱정하는 것 같았어요.”

성윤도 알고 있었다.

정효순 주임의 남편은 부동산을 한다.

공인중개사 협회 서안시 지부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부장이라 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니다.

사람 만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런 직함을 다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서안시 부동산 시장은 거래가 되지 않고 있었다.

인구 유입이 없고 젊은 사람들은 서울 등 타 도시로 빠져나간다.

자연히 가정 형편이 어려워졌다.

뒤늦게 일터로 나온 배경이다.

“의원님이 직접 말씀해 주세요. 정효순 주임 정말 좋아하겠네요. 하하하.”

한편 서안시 사무실에서는 정효순 주임이 깊은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막막해서다.

그녀는 성윤이 재선에 성공해도 못해도 걱정이었다.

현재 성윤의 보좌관은 정우 한 사람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아닐 거다.

정치부 기자로 있던 그녀의 감이 말한다.

“이성윤 의원은 재선에 성공하면 보좌진을 채울 거야!”

그럼, 그녀는 새로운 일터를 찾아 전전해야 할지도 몰랐다.

‘하......’

좋은 대학, 정치부 기자라는 출신.

지금은 괜히 좋은 대학을 나오고 기자를 했나 싶었다.

어딜 가도 말한다.

“좋은 대학 나온 사람이 이런 일을 왜 해?”

“기자했던 분이 이런 일 할 수 있어요?”

“정치부 기자면, 기가 세지 않나? 문제 일으키는 것 아니에요?”

이제 선거까지는 몇 개월 남지 않았다.

시한폭탄이 째깍째깍 돌아가는 것만 같다.

‘딸랑’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성윤과 정우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녀가 일어났다.

“오셨어요?”

정우가 성윤의 팔을 끌어 정효순 주임의 앞으로 왔다.

성윤이 그녀의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제가 보좌진을 박 보좌관으로만 구성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었어요. 현실 정치에서 통하는지 아닌지 궁금했거든요. 누군가는 먹어봐야 똥인 줄 아느냐고 말했지만 일단 해보고 싶었어요.”

“네?”

정효순 주임은 난데없는 말에 눈만 깜빡였다.

그녀의 속마음은......

-이제 잘리는 건가?

하긴, 생각해보면 보좌진은 선거캠프부터 구성될 거다.

정식으로 ‘보좌진’이라 말하지는 않겠지만 주요 인물들이 자리를 차지할 것은 당연하니까.

성윤이 계속 말했다.

“또 제 임기가 1년이었잖아요. 그런데, 재선에 실패하면 보좌진들은 1년 만에 실업자가 되죠. 그런 것을 보고 싶지 않았어요.”

정효순 주임의 속마음은 혼란이었다.

-예상이 맞았네. 이제 보좌진을 채우겠다는 거네......

하지만.

“제가 재선에 성공하면 주임님을 9급 비서로 모시고 싶어요. 앞으로도 함께 해주셨으면 하는데요. 괜찮을까요?”

“네?”

생각조차 못 했다.

나이 어린 국회의원이 자기보다 훨씬 나이 많은 사람을 부리는 것은 부담스러울 테니까.

그녀가 눈을 깜빡였다.

성윤이 말을 잇는다.

“대답을 듣고 싶은데요.”

정효순 주임은 말을 못 했다.

입술만 달싹 거릴 뿐이다.

그러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언뜻 들으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렇게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죠......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성윤이 슬쩍 웃었다.

“저도 감사합니다. 그런데, 김칫국 마시는 것일 수도 있어요. 재선에 실패하면......하하하하.”

그날 밤, 집으로 향하던 정효순 주임은 양념치킨을 샀다.

성윤의 말처럼 김칫국 마시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아이들에게 치킨을 사주고 싶었다.

골목을 지나 도착한 낡은 빌라.

문을 열고 들어가자 초등학생 아들이 만세 하듯 손을 들고 달려온다.

“엄마!”

아들의 손이 정효순 주임의 손으로 향한다.

그리고 소리친다.

“형! 엄마가 치킨 사 왔어!”

“치킨!”

아들은 둘, 중학생과 초등학생.

치킨 앞에서 방방 뛴다.

정효순 주임은 아들들의 웃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죽을힘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시각, 국회 의원회관.

윤채아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창밖을 보고 있었다.

어두운 밤이다.

창문에는 그녀의 모습이 비친다.

뒤에 서 있던 그녀의 보좌관이 입을 열었다.

“이성윤 의원 측에서 서안시에 있는 우리 월세방을 알아낸 것 같습니다.”

윤채아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아무도 모르게 하라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어디까지 알아낸 거야? 위치까지?”

“냄새만 맡고 찾는 중인 것 같습니다. 차명으로 계약해서 쉽게 알아내지는 못하겠지만.....”

그녀가 불안한 표정으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이성윤, 머저리 같은 놈이 눈치는 빨라서.’

그녀는 스스로 정보를 흘리고 다녔다.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데 알려지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니까.

그래서 더 당당히 움직였다.

몰래 움직이는 것보다 대놓고 활동하면 겉으로 딴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니까.

하지만 월세방은 다르다.

그녀는 그곳에 사람을 심어뒀다.

성윤의 사무실에 드나드는 사람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당원이면서 성윤의 사무실에 가지 않는 사람은 성윤에게 불만이 있다는 뜻이니까.

그 사람들을 추려 아군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같은 당 지역구 의원을 사찰한 거다.

용서받지 못 할 짓.

그녀의 손톱을 물어뜯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러다가 ‘뚝’ 행동이 멎었다.

‘아니지......상관없잖아? 난 거기를 드나들지 않았어. 괜히 초조하게 움직였다가 함정에 빠질 수도 있는 일이야.’

그곳은 심어둔 사람이 죽치고 앉아 성윤을 관찰하는 곳이다.

계약도 차명이다.

경선에서 이기면 자연스레 그녀의 주소지가 되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증거는 없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역시 빠져나갈 구멍은 존재했다.

지이이잉.

휴대폰 진동 소리가 불안하게 울렸다.

그녀가 고개를 틀어 뒤를 돌아본다.

보좌관이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는다.

“네, 윤채아 국회의원 보좌관......네? 지, 지금요?”

그가 전화를 끊었다.

윤채아가 묻는다.

“뭔데?”

“이, 이성윤 의원 측에서 우리가 잡은 월세방이 자신의 사무실 근처라는 것까지 알아냈다고 합니다.”

윤채아가 손을 저었다.

“됐어. 내가 거기를 계약했다는 증거 없잖아? 정치 음모라고 몰아가면 될 거야. 일단 당 지도부 의원님들 전화 걸어서 약속 시간 잡아. 그리고 월세방에 있는 애들도 물건 빼서 집에 가라고 해.”

“아, 네!”

보좌관이 휴대폰을 들고 서둘러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윤채아는 다시 창밖을 본다.

‘이것만 넘기면......내가 이십 대 재선의 주인공이 될 거야.’

***

서안시 성윤의 사무실.

불 꺼져 어두운 그곳, 성윤이 창가에 서 있었다.

그의 눈은 윤채아가 차명으로 얻은 월세방을 살피고 있다.

잠시 후, 그 방의 불이 툭 꺼진다.

성윤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 물밑 작업.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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