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61화 (61/300)

< 물밑 작업. - (1) >

‘여기는 왜 있는 거야?’

뚫어지게 보고 있었나 보다.

임향숙 대표가 꿈속의 아내를 콕 짚었다.

“예쁘죠?”

“아, 예쁘네요.”

이럴 때 당황하면 더 어색해진다.

대충 얼버무리고 다음 장으로 넘기려는데 정우가 안 도와준다.

고개를 쑥 내밀고 사진을 찬찬히 살핀다.

“어? 진짜 의원님, 스타일인데요?”

성윤은 정우와 오랜 시간을 알아 왔다.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꿈속을 기억해봤을 때, 성윤은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하지 않았다.

그저 세력 확장을 위한 이기적인 선택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성윤의 스타일이라니......

“...내 스타일이 뭔데?”

“처음 보는 여자.”

“됐다.”

성윤은 앨범을 넘겼다.

임향숙 대표는 봉사활동에 관한 이런저런 설명을 이어간다.

그리고 앨범이 덮였을 때 그녀가 말한다.

“알고 오셨겠지만 저희는 정치인을 회원으로 받지 않았어요. 하지만 의원님을 받은 이유는 조금은 다를 것 같아서예요.”

성윤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의원님들은 사회 문제에 대해 항상 공부하시죠?”

사람들은 국회의원을 보고 도대체 뭘 하냐고 손가락질한다.

하지만 많은 국회의원이 새벽같이 일어난다.

첫 일정을 오전 7시 전에 잡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스케줄이 공부의 연속이다.

가볍게는 영어 공부로 시작해서 경제, 경영, 사회 전반적인 문제까지.

항상 전문가들과 붙어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공부와 현실은 달라요. 사각지대는 언제나 존재하는데, 공부에 사각지대는 나오지 않잖아요. 거기까지 몰린 사람은 정말 비참하고 도움이 필요한 법인데요. 의원님께서 직접 도시락 배달을 하신다고 하셔서 회원으로 받은 거예요. 그 사람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보듬는 국회의원이 되셨으면 해요.”

눈높이를 맞추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현장에 가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들이 존재한다.

산의 정상에서 넓은 세상만 바라볼 게 아니라 산에서 내려와 골목을 보며 느껴야 했다.

“기억하겠습니다.”

성윤은 임향숙 대표와 악수를 하며 자리를 일어났다.

다음 일정은 지역 위원들과 만남이었다.

정우가 차를 운전하며 라디오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한당 당대표는 오늘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총선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쇄신을 위해 현 국회의원의 50%를 교체할 것이며 새로운 인물, 새로운 대한당을 만들겠다고......]

정우가 픽 웃는다.

“50%래요. 쑈를 해도 참......”

어차피 윗선은 바뀌지 않는다.

아래만 바뀔 뿐이다.

국회의사당은 다시 노인정 소리를 들을 테고 똑같이 욕을 먹을 거다.

물갈이를 해봤자 그놈이 그놈이다.

정우가 말을 이었다.

“어쨌든, 본격적으로 공천이 시작되려나 봐요. 당대표가 저렇게 말을 흘리는 걸 보면......”

“그러네.”

성윤은 정우를 바라봤다.

김대성 의원에게 말해 비례대표 공천권 한 장을 받을 생각이었다.

국회에 내 사람을 심어두기 위해서다.

하지만 정우는 싫다고 말했다.

다른 인재를 찾을 때까지 잠시 아껴둬야 할 것 같다.

차가 멈춰선 곳은 고깃집이었다.

주차장에서부터 삼겹살 냄새가 풍겨왔다.

안으로 들어가자 십여 명의 사람이 성윤을 반긴다.

대한당 소속의 사람들.

시의원과 대의원, 서안시 청년 위원장과 여성 위원장 마지막으로 당원들이었다.

성윤이 상석에 앉으며 식사가 시작됐다.

그런데, 사람들이 눈치를 본다.

성윤의 옆에 앉을 타이밍을 재는 거다.

이들도 공천이 시작됐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은 공천 심사위원회도 구성되기 전이지만 물밑 작업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성윤에게는 시의원에 대한 공천권이 있다.

시의원 재보궐에 대한 공천을 얻으려면 손바닥을 비벼야 한다.

물론 성윤이 ‘당신에게 공천을 주겠습니다.’했다고 바로 공천을 받지는 못한다.

심사 등의 몇 가지 절차가 존재한다.

하지만 의례적인 일이다.

식사가 시작됐다.

가장 먼저 당원으로 있는 아주머니가 성윤의 옆에 앉는다.

다른 사람들이 힐끗힐끗 눈치를 줬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가 속삭이듯 입을 연다.

“의원님, 이런 말씀 드리기 뭐하지만 부탁이 있는데요.”

“말씀하세요.”

“우리 남편이 군인인데 중령으로 있거든요.”

“진급 문제라면 힘을 써 드리기 힘들 것 같은데요. 제가 속한 상임위가 환노위라서요.”

아주머니가 입을 가리고 ‘호호호호’ 난처하게 웃는다.

그리고 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진급 문제는 아니에요. 어차피 이번에 사회로 나오거든요.”

“그런데요?”

“전역한 후에 군대에 있던 경험을 통해 서안시를 위해 일했으면 해서요. 대대장으로 있을 때 어린 병사들과 상담도 많이 해서 청년에 대한 관심도 많거든요. 시의원이 되면 잘할 것 같은데......”

군대의 경험과 서안시 시의원이 어떤 연관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가 청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성윤이 청년이기 때문이다.

말을 마친 그녀가 힐끗 성윤의 눈치를 본다.

성윤은 묵묵히 고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중령?’

시의원은 성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손과 발이 되어 시장을 견제하고 응원하며 지역구를 관리해야 하니까.

잠시 생각에 빠졌던 성윤이 그녀에게 말했다.

“보좌관에게 말씀해 주세요. 만나보라고 전할 게요.”

“아, 네!”

그녀가 쪼르르 정우에게 향했다.

이제는 정우가 알아서 ‘컷’ 할 거다.

그녀가 떠나자 이번엔 여성 위원장이 다가왔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공천을 받고 싶은 사람 또는 개인적인 민원을 들었다.

아쉬운 소리를 담았다면 이제 성윤이 그걸 무기로 사용할 때다.

티슈로 입을 닦았다.

식사가 끝났다는 뜻.

왁자지껄 떠들던 자리가 조용해졌다.

모두가 성윤의 입에 집중한다.

입을 닦은 티슈를 툭 테이블에 던져둔 성윤이 짧게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거에 관한 내용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바보는 아니다.

서로 서로 눈치를 보며 묘하게 웃는다.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그날 밤.

성윤은 오랜만에 꿈을 꿨다.

결혼했던 꿈이다.

세력 확장을 위해 했던 결혼.

성윤은 그때도 새벽 일찍 일어났다.

그런데 아내는 더 일찍 일어나 아침을 차렸고 양복을 다렸다.

“귀찮지 않아? 세탁소에 맡기지 그래?”

거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다리미판을 놓던 그녀가 활짝 웃는다.

“안 귀찮아요. 양복이 구겨져 있으면 안 돼요. 항상 깔끔해야지 사람들 앞에 설 때 더 당당할 수 있어요.”

“세탁소에 맡겨도 깔끔해.”

그녀가 성윤을 흘겨본다.

“내 남편 옷을 왜 다른 사람에게 맡겨요?”

그녀는 잘 다린 와이셔츠를 가져와 성윤에게 건넸다.

성윤이 와이셔츠를 입자 넥타이를 매준다.

“오늘도 국민을 위한 정치. 파이팅!”

꿈은 끝나지 않고 이어졌다.

윤채아의 저격과 아내의 죽음.

좋은 정치인인 줄 알았던 이준대가 가면을 벗고 괴물의 민낯을 드러내던 날.

사람이 죽고, 또 죽고 감옥에 가고.

혼탁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유를 원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독재를 선택했다.

강력한 힘을 가진 자의 독재자.

그렇게 이준대라는 악마가 대통령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탕!

총소리인지 시끄러운 알람소리인지 성윤은 잠에서 깼다.

이마에 땀이 흥건하다.

‘이건 뭐......’

시민단체에서 아내의 사진을 봐서 또 꿈을 꿨나 보다.

성윤은 얼굴을 쓸어 만졌다.

‘미래는 바뀌고 있어.’

이미 많은 것이 변했다.

박대철이 감옥에 갔고 성윤은 국회의원으로 재선을 준비한다.

주진만이 원내대표가 되었으며 윤채아는 조만간 사라질 거다.

성윤은 침대에서 일어나 가볍게 운동을 시작했다.

상념을 없앨 때는 운동이 최고다.

출근을 위해 옷을 입고 넥타이를 쥐는 순간 멈칫한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넥타이도 잘 매줬었다.

성윤은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됐다. 볼 일 없다.”

꿈은 꿈일 뿐이다.

잠이 깨면 사라진다.

사무실에 출근한 성윤은 정우를 불렀다.

“두 사람 좀 알아봐 줄래?”

“두 사람이요?”

“한 명은 이준대 미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고 나이는 서른다섯. 그리고 또 한 명은 진기성. 인권변호사면서 나이는 서른셋.”

정우가 픽 웃는다.

“다 알고 있네요. 뭘 또 알아볼까요?”

“비리. 지금부터 시작될 비리. 아니면 있었던 비리. 뭐든 좋으니까 전부.”

정우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안기부 요원 오강민에게 연락할까요?”

“아니, 아무도 모르게 진행했으면 해. 오강민에게 말하면 다른 곳에 알려질 수도 있잖아. 그래서 힘든 것 알지만 너에게 부탁하는 거야. 사소한 것도 좋고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까 천천히 알아봐 줘.”

“알았어요. 그리고 이거요.”

대답한 정우가 책상에 태블릿 PC를 놓았다.

“뭐야?”

“보세요.”

성윤은 화면에 집중했다.

‘어?’

장판교 장비 이성윤 팬 카페다.

사실 팬 카페라기보다 중, 고등학생들이 웃긴 것을 찾아오는 카페 같았고 합성사진 장인들의 모임 같았다.

그런데 게시 글이 이상하다.

-이성윤 의원의 보좌관 박정우라고 합니다.

제가 여기 가입한 것은 의원님이 모릅니다.

앞으로 웃긴 사진 많이 올릴게요.

그러니까 비밀로 해줘요. 제발!

그리고 사진이 보인다.

어제 찍은 인상 쓰는 사진이다.

“정우야?”

“댓글 보지 말고요. 이거 보세요.”

정우는 다른 게시 글로 화면을 옮긴다.

제목은 ‘이성윤 눈에서 레이저 쏘다.’

슈퍼맨을 따라 한 것 같다.

다른 점은 빨간 팬티가 아니라 기저귀라는 것.

우주에 선 성윤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데 일본을 폭파한다.

그 모습이 참......

“재밌죠?”

“죽을래?”

찰칵!

또 찍었다.

정우가 킬킬 웃는다.

“죽을래? 할 때 입 모양 대박. 이건 또 어떤 합성 사진이 나올까요? 흐흐흐.”

“야!”

“의원님? 얘들도 3, 4년만 지나면 유권자예요. 인지도 높여야죠. 이건 제갈정우의 공략입니다. 장비는 제 전략에 따라 소리를 질러 주세요.”

“지금 전략이 아니라 즐기는 것 같은데?”

“흐흐흐.”

성윤이 한숨을 내뱉으며 일어섰다.

그리고 옷을 걸치며 말했다.

“오늘 오후 스케줄 없지?”

“아, 네.”

“그럼, 국회 좀 가자. 원내대표님 만나러.”

잠시 후, 성윤은 주진만 원내대표를 만났다.

주진만 원내대표가 ‘허허허’ 웃는다.

“공천 시즌이라 그런가? 요즘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찾아와. 일개 원내대표가 무슨 힘이 있다고.”

당대표의 50% 물갈이 발언 이후로 원내대표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당대표 보다 힘이 없기는 하지만 그에게는 거대 계파가 있기 때문이다.

주진만 원내대표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자네는 공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잖아? 사실 내가 밀어줄 필요도 없고.”

“.....”

“대한당에 청년 의원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데. 게다가 재선에 성공하면 이십 대 재선은 최초 아닌가? YS가 최연소 당선 기록을 갖고 있지만 재선 성공은 서른넷이었을 거야. 당대표도 자기 임기에 이십대 재선이라는 기록을 만들고 싶을걸?”

성윤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가만히 있으면 경선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주진만 원내대표가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경선? 자네는 무조건 전략 공천이야. 경선부터 힘 뺄 것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누가 서안시를 노려?”

“윤채아 의원이요.”

주진만 원내대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윤채아?”

“네.”

윤채아는 성윤과 이미지가 겹친다.

같은 청년이며 이십 대 의원이다.

내년이 되면 서른이지만 만 나이로 계산하면 이십 대.

그녀 역시 기록을 세울 수 있다.

둘이나 기록을 세우면 그 의미는 퇴색된다.

그럼, 한 명만 나설 수 있다는 것.

“윤채아, 윤채아......”

주진만 원내대표가 그녀의 이름을 중얼댄다.

“골치 아프네.”

그녀는 당대표의 사람이다.

나이 많은 의원들에게 손녀처럼 사근사근 대는 탓에 밀어주는 사람도 꽤 된다.

지금도 여기저기 살랑대며 작업을 하는 중일 거다.

주진만 원내대표는 고민 가득한 표정으로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빠졌다.

성윤이 말했다.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어떻게? 당대표라도 찾아가야 하나?”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윤채아는 삽을 들고 있습니다. 열심히 땅을 파고 있죠. 제 딴에는 건물을 세우려는 것 같은데 그건 무덤이 될 겁니다.”

주진만 원내대표의 눈이 반짝인다.

“그 무덤을 알고 있나?”

성윤은 엷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 물밑 작업.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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