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59화 (59/300)

< 가장 중요한 것. - (3) >

***

신중석과 유하나가 떠났다.

성윤은 테이블에 놓인 스마트 워치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마치 정지화면 같았다.

앞으로 돈을 벌면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다.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정우가 들어온다.

“상임위 가실 시간입니다.”

“삼십만 원이었나?”

“네? 뭐가요?”

정우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성윤이 시계를 들어올렸다.

“우리가 투자했던 돈이 얼마가 될까 했던 내기.”

성윤과 정우는 신중석의 벤처 회사에 투자한 금액이 얼마나 오를까 내기한 적이 있다.

2억을 기준으로 그 이상이면 성윤, 이하면 정우의 승리다.

정우가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요, 삼십만 원.”

스마트 워치 자체가 관심 받는 사업이 아니다.

더구나 대기업이 싹쓸이 하는 판이다.

정우는 벤처가 비벼대기는 힘들다고 생각했다.

“잊지 마라.”

“당연하죠. 의원님이나 잊지 마세요. 흐흐.”

성윤은 잠시 미안했다.

마치 사기도박을 한 기분이다.

ATM기기에서 삼십만 원을 찾으며 얼마나 분한 표정을 지을까.......

성윤이 정우의 어깨를 토닥였다.

“미안, 잘 쓸 게.”

“하하하, 죄송해요. 제가 이길 수밖에 없어요.”

“응, 그래. 출발이나 하자.”

잠시 후, 성윤은 국회 상임위 회의에 참석했다.

성윤은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전임자가 있었던 곳을 따르는 게 관례여서다.

사실 회의라고 해도 별 것 없다.

힘없는 초선은 거수기다.

잠자코 회의하다가 ‘손들어!’하면 손이나 드는 거수기......

환경노동위원회에는 열여섯 명의 의원들이 있다.

대한당이 여덟 명이고 민국당이 일곱, 진보당이 한 명이다.

평소에는 회의를 진행하다가 가끔 날선 대립도 한다.

각 정당의 목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대한당과 진보당은 멱살 잡기 직전까지 가기도 한다.

하지만 국정감사를 앞두고 다들 힘을 합치고 있었다.

“우리도 재벌 한 명 부를 수 없나요?”

위원장의 말에 민국당 간사가 낄낄 웃는다.

“우리 피감기관이랑 재벌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요.”

“고용 노동부 있잖아요?”

“사장단은 힘들고 부사장급은 부를 수 있겠네요. 한명 부를까요?”

위원장이 고개를 저었다.

“총수가 나오지 않으면 이슈가 안 되잖아요. 아, 누구 없나?”

이슈가 되기를 바라는 이유는 내년에 총선이 있어서다.

그래서 이번 국정감사에서 스타가 되기를 바란다.

스타가 되면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으니까.

이들의 머릿속은 모두 다음 총선을 겨냥하고 있었다.

한심하다.

상임위 회의가 그렇게 끝났다.

성윤은 의원들과 악수를 나눈 후 복도를 걸었다.

“이 의원?”

누군가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음료 자판기 앞에서 민국당 의원이 손을 흔들고 있다.

이차민 의원, 판사 출신으로 3선 의원이다.

성종 그룹에서 용돈을 받아쓴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판사로 있을 때 성종 그룹과 관련된 사건은 프리 패스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 성종에 대한 편애가 심하다.

법안 심의를 할 때 성종 그룹과 관련된 게 있으면 바득바득 우긴다고 한다.

‘곧 피눈물을 흘릴 사람......’

이차민 의원은 백형욱 의원의 입에서 호명될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살생부에 올라간 사람이다.

이차민 의원이 허리를 굽혀 캔 커피를 꺼내 보인다.

“커피 한잔 할래요?”

친근하게 미소 짓는다.

성윤은 이차민 의원과 대화 한번 나눠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왜?’

성윤은 그의 속마음을 들으며 앞에 섰다.

이차민 의원이 뜨끈뜨끈한 캔커피를 건넨다.

“대단해요. 서른도 안 된 지역구 탄생에 우리 당도 떠들썩했어요. 하하하.”

“아, 네.”

그의 속마음을 들려왔다.

-3분 남았나?

‘3분?’

성윤은 손목을 틀어 시간을 확인했다.

4시 57분.

‘5시면......’

백형욱 의원의 기자회견이 있을 시간이다.

이차민 의원의 속마음이 계속 들려온다.

-아, 미치겠네. 백형욱 입에서 네 이름 불릴 거야. 하하하하.

왜 불렀는지 알겠다.

이차민 의원은 백형욱 사건에 깊이 관여한 사람이다.

그는 백형욱의 입에서 성윤과 박무혁 그리고 몇몇 대한당의 이름이 불릴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니까 백형욱이 입을 여는 동시에 무너지는 성윤의 표정을 실시간으로 구경하고 싶은 거다.

미안하게, 백형욱 의원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올 것도 모르고.

성윤은 표정 관리를 위해 캔커피를 한 번에 입에 쏟았다.

“안 뜨거워요?”

“뜨거워요.”

캔커피도 한 번에 마시면 뜨겁다는 걸 알았다.

얼굴은 붉어졌지만 다행히 표정 관리는 된다.

이차민 의원이 조용히 웃으며 휴대폰을 만지작 댄다.

그러다가......

“어? 백형욱이? 이, 이것 봐요.”

그가 휴대폰을 보였다.

실시간으로 속보가 재생되는 중이다.

화면의 아래는 큼지막한 글씨가 박혀 있다.

-백형욱 의원 기자회견.

이차민 의원이 되도 않는 연기를 시작한다.

“백형욱 이 사람, 도대체 뭘 폭로한다고. 쯧.”

그러면서 힐끗 성윤을 본다.

눈빛은 걱정스럽지만 속마음은......

-어린 새끼가 몇 달 동안 나댔지? 이제 그만 사라져라. 여기는 꼬맹이가 들락거릴 곳이 아니야.

성윤은 캔커피를 하나 더 뽑기 위해 자판기 앞에 섰다.

“목 타요? 대한당이 백형욱 때문에 시끌시끌했죠? 이제야 끝이 보이네요.”

표정 관리 때문인데 이차민 의원에게는 목이 타는 걸로 보이나 보다.

친절하게 동전도 넣어준다.

참 고맙다.

이차민 의원의 휴대폰에서 소리가 흐르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백형욱입니다. 먼저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성윤은 힐끗 이차민 의원의 표정을 살폈다.

마른 침을 삼키며 그 역시 힐끗힐끗 성윤의 표정을 확인한다.

축구 한일전을 보는 눈빛으로.

백형욱 의원은 인사말을 길게 이어갔다.

이차민 의원은 화면에 집중했고 성윤은 정수기로 가서 컵에 찬물을 받아왔다.

휴대폰에서 계속 백형욱 의원의 음성이 들려온다.

-저는 국민께 사죄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가 조금 더 깨끗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간 저와 함께 불법적인 성상납을 받아왔던 의원을 알리고자 합니다.

이차민 의원의 눈동자는 성윤에게 박혀 있다.

이재는 조심스럽게 곁눈질로 보지 않는다.

대놓고 확인한다.

성윤의 입술 움직임 눈꺼풀의 떨림, 솜털의 흔들림까지 관찰하는 중이다.

성윤은 뜨거운 커피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기다렸던 말이 터졌다.

-대한당 오채현 의원, 민국당 이차민 의원, 민국당 박우성 의원!

성윤은 이차민 의원을 보고 있었다.

이차민 의원은 돌덩이처럼 굳어버렸다.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다.

“이, 이게......”

곧 휴대폰을 들고 이리저리 검색한다.

자신의 이름이 거론된 게 맞는지 확인하는 거다.

현실부정이다.

하지만 검색도 할 수 없었다.

부르르 휴대폰이 진동한다.

화면에는 어느 기자의 이름이 떠 있다.

“이, 이건 뭐......”

멀리서는 이차민 의원의 보좌관이 창백한 얼굴로 달려왔다.

마치 귀신을 본 것 같은 표정이다.

아, 다가올 시간은 귀신보다 더 무서울 거다.

귀신은 헛것을 본 것으로 치부하면 되지만 시작될 시간은 끔찍할 것이니까.

“의, 의원님......”

보좌관의 더듬거리는 말에 이차민 의원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보좌관을 봤다가 성윤에게 시선을 향한다.

성윤이 손에 들고 있던 찬물을 건넸다.

“목...타시죠?”

이차민 의원은 이제야 역으로 당했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너...너!”

“남을 공격하려 했으면 공격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셨어야죠.”

“씨바알!”

그의 눈이 부릅떠진다.

성윤은 이차민 의원의 보좌관에게 찬물이 든 컵을 건넨 후 몸을 돌렸다.

발정 난 짐승처럼 길길이 날 뛰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고 싶지는 않았다.

***

성윤은 주차장으로 와서 조수석에 앉았다.

정우가 휴대폰을 보인다.

“백형욱이 입 열었어요.”

“어, 봤어.”

정우는 시동을 걸었고 성윤은 휴대폰을 통해 기사와 댓글을 확인했다.

댓글로 차 있던 휴대폰 화면에 발신번호가 뜬다.

‘김대성 의원?’

성윤은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네, 이성윤 의원입니다.”

-대단해.

“네?”

-이차민 미치는 모습을 눈앞에서 구경했다며? 정말 악랄해. 하하하.

원해서 본 것은 아니지만 보기는 봤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 시간 괜찮나?

성윤이 정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정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스케줄 없어요.”

성윤은 다시 휴대폰에 귀를 가져다 댔다.

“괜찮습니다.”

-지난번에 말했던 정보통. 오늘 볼까? 마침 모두 시간이 되는 것 같은데.

“네, 좋습니다.”

-6시에 강남 한정식.

성윤은 통화를 종료했다.

정우는 서안시로 향하던 핸들을 강남으로 튼다.

올림픽대로로 접어들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며 차가 꽉꽉 막힌다.

정우가 묻는다.

“그런데, 의원님. 김대성 의원을 믿으세요?”

성윤이 픽 웃었다.

“믿을 수 있는 정치인은 죽은 정치인이야.”

정우가 킥킥대며 웃는다.

“그럼, 의원님도 믿으면 안 되겠네요?”

“난 믿어도 돼.”

“왜요?”

“미남이니까.”

“하하하, 그럼 전 영화배우겠네요? 제 얼굴이 딱 원빈 스타일 아닌가요?”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미남이지. 그런데, 네 얼굴을 현실에서 찾으면 안 돼.”

“그럼요?”

“데스노트의 류크?”

정우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성윤을 본다.

“거울 보세요.”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며 강남에 도착했다.

정우는 밖에서 대기했고 성윤은 약속 장소로 들어갔다.

김대성 의원이 먼저 도착해 앉아 있었다.

그런데, 소개한다는 정보통은 보이지 않는다.

김대성 의원 혼자 있다.

“천천히 식사하고 있으면 올 거야.”

성윤이 김대성 의원의 앞에 마주 앉았다.

그가 술병을 들어 성윤의 잔을 채운다.

“이차민의 표정은 어땠어?”

“많이 힘들어 보였습니다.”

“지금쯤 성종 그룹도 난리 났을 거야. 이차민의 입에서 자신들의 이름이 나올까봐 노심초사하고 있겠지. 그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정보통 오면 들어보자고.”

술을 마시는 김대성 의원을 보며 성윤이 물었다.

“정보통이 성종 그룹 일가의 일까지 알고 있나요?”

“성종은 꽉 쥐고 있지. 왜냐하면......”

그때, 드르륵.

문이 열리고 예순이 넘어 보이는 아저씨가 들어왔다.

덩치는 작지만 단단해 보이는 체구.

눈이 상당히 매섭다.

매일 정우의 눈을 보고 있지만 더 날카롭다.

그가 김대성 의원을 향해 구십 도로 허리를 굽힌다.

김대성 의원도 정중히 인사한다.

“오셨습니까?”

김대성 의원이 말한 정보통인가 보다.

직업을 예상하면 깡패 또는 강력계에서 오랫동안 굴러다닌 형사 같다.

하지만 예순이 가까운 나이와 덩치를 보면 또 아닌데......

그가 성윤을 향한다.

“처음 뵙겠습니다.”

성윤도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모두 자리에 앉았다.

김대성 의원이 소개한다.

“이 분은 오강민 씨야. 지금은 성종그룹 전략기획본부에서 찌라시를 모으고 있지.”

찌라시를 모으는 곳은 상당히 많다.

금융권은 물론이고 각 기업과 정부도 찌라시를 살핀다.

그중에 최고는 금감원과 성종 그룹이다.

성종그룹의 찌라시 업무를 살펴보면, 국회와 언론은 물론이고 각 정부부처, 채권 금융사, 성종 그룹 내 십만 명의 정보를 추린다.

오강민이 하는 일은 그중에서 진짜와 가짜, 중요도를 가려내 회장에게 직접 보고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오강민은 회장에게만 그 정보를 보고하지 않는다.

훗날을 위해 정치계에도 발을 담그고 있다.

김대성 의원이 말을 이었다.

“안기부에서 대공 요원을 했던 전력이 있어.”

“안기부면......”

“왜? 안기부에 안 좋은 감정이 있나? 젊은 친구들은 그럴 수 있지. 하하하.”

그때, ‘지이이잉’ 성윤의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다.

밖에 있는 정우에게 온 메시지.

-형님, 지금 들어간 놈. 제가 정치를 한 이유에요.

성윤이 국회의원이 된 후 정우는 ‘의원님’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형님이라니......

메시지를 보내면서 마음이 상당히 흔들렸다는 거다.

아니면 급했거나.

성윤은 휴대폰을 검게 물들이며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 가장 중요한 것. -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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